▲ (왼쪽부터) 김창연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선임연구원, 유정미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 이숙진 젠더사회연구소 소장·한국여성민우회 이사

복지국가를 만드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과제는 평등한 사회를 구성하는 것에 있다. 이런 점에서 성평등 복지국가는 복지국가 중에서도 가장 추구해야 할 모습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복지국가는 아직 가부장적 복지국가에 머물러 있어 성평등 복지국가로 발돋움하는 데 있어 많은 과제가 남아 있다.

우리 여성들이 꿈꾸는 복지국가는 어떤 모습일까? 성별에 따라, 소득에 따라, 인종에 따라 차이를 두지 않는 모든 사회구성원이 일과 쉼과 돌봄을 균형 있게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합의를 전제로 하는 국가다.
민주통합당 남윤인순 의원은 “복지국가에 대한 논의가 그동안 시민단체에서도 많이 있었고 정치권 내에서도 많은 논의를 했는데 사실 답답했다”며 “복지국가 핵심키워드가 젠더인데 젠더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가운데 어떻게 실행해 나갈지 걱정했다”고 말했다.

성평등 복지국가는 어떤 국가인가.

이숙진 젠더사회연구소장은 모든 복지국가가 성평등한 복지국가는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 소장은 “지금 복지국가로 가는 길목에서 가부장적 복지국가로 갈지 성평등 복지국가로 갈지, 그 방향성을 찾고 있다”며 “지금까지 여러 논의를 통해 어떤 복지국가로 가야 할까 하는 논의가 많았다. 복지국가를 얘기하면 몇몇 나라를 떠올리게 된다. 그 나라가 지향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된다. 한국 사회에서 복지국가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긴 했지만, 여전히 젠더와 성평등에 대한 이야기는 주변화됐다”고 말했다.

최근 복지국가에 대한 논의에서 여성주의 진영이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바로 복지국가가 젠더의제를 실현하는데 충분한 정치체제인가 하는 점이다.

초기복지국가는 남성-생계부양자-노동자, 여성-생계의존자-주부라는 성별분업을 전제로 여성을 독립된 개인이 아닌 남성배우자를 통해 차등적으로 사회에 통합되는 존재로 규정하고 있다.

성평등 복지국가에 대해 이 소장은 “성차별적인 전통적 성별분업을 약화시키는 정책과 제도를 실행하는 복지국가”라며 “젠더레짐에 기초해 여성과 남성의 양육자와 소득자 역할에 대한 성별화된 구분과 분리를 넘어서고 자율성과 독립성에 기초한 시민의 권리를 보장하며 돌봄의 욕구를 인정하고 돌봄의 책임을 재분배하는 국가”라고 말했다.

젠더레짐은 가부장적 복지국가와 성평등 복지국가의 스펙트럼을 펼쳐주는 복지국가 유형이며, 이는 곧 여성, 남성, 양육자, 소득자에 대한 조합과 국가와 시장의 개입 정도에 따른 국가별 차이를 반영한다.

이미 대다수의 한국여성은 가부장적 가족관계에 의존적이거나 수동적이지 않다. 고용불안과 가계소득저하 탓에 남성 1인에 의한 생계부양이 불가능한 상황이 됐으며 1인 가구의 증가로 나타나는 결혼에 대한 태도와 가족구조의 변화 등은 남녀를 불문하고 성인 개개인의 소득자로서의 역할을 필요로 하고 있다.

이 때문에 강요된 ‘경제활동’이 아니라 진정한 ‘일’을 선택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 위해 우선 필요한 것은 공공의 좋은 일자리를 통한 여성소득자의 확대다.

또한, 근로시간 단축을 비롯해 초과근로시간 제한 규정도 강력히 규제돼야 한다. 여성의 소득자의 권리를 강화하고 남성들의 돌봄 참여를 통해 임금노동과 돌봄노동의 성별화를 극복하는 적극적 정책을 펴야 한다.

종전의 일·가정 양립정책은 여성만을 대상으로 일하는 여성의 돌봄노동을 지원하는 형태로 추진됐으며 이는 여전히 돌봄의 여성책임을 변화시키지 못했다. 따라서 남녀 모두 일과 생활의 균형을 추구하는 노동시간 재구조화, 휴가 등 시간의 보상, 그리고 정규직 남성에게 맞춰진 노동주기의 변화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외에도 돌봄서비스의 공공화와 노동시장에서의 성차별, 여성의 낮은 정치적 대표성, 그리고 성폭력, 성희롱, 가정폭력 등 여성의 자유권적 권리에 대한 침해로 나타나는 남녀구별에서의 성별권력관계 등을 변화시킬 여성정책이 보다 적극 실행돼야 한다.

여성 1인 가구 실태

지난 2010년 통계청이 실시한 ‘인구·주택 총 조사’ 결과를 보면 전국의 총가구 중 1인 가구 비율은 23.9%로 2인 가구 비율보다 0.4% 낮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1인 가구 중 남성 가구주는 46.5%, 여성 가구주는 53.5%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1인 가구를 위한 복지 정책의 필요성이 떠오르고 있지만 아직 복지 정책의 주요 방향은 부양가족이 있는 4인 가구를 대상으로 이뤄져 있다.
1인 가구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연령은 70세 이상 고령자(19.2%)지만 절대적 증가치가 가장 많은 연령은 30대와 40대로 나타났다. 이는 만혼과 비혼, 이혼율의 증가가 원인으로 꼽히고 있는데 이들 1인 가구는 다인 가구에 비해 사회경제적 조건이 상대적으로 불안정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에 올해 서울시는 지자체 최초로 ‘여성 1인 가구 종합지원대책’을 수립했다. 서울시의 여성 1인 가구 정책은 여성 1인 가구의 요구에 충족할 수 있도록 주거·안전·건강·일자리·커뮤니티·불편해소 6대 분야에 걸쳐 다각적 지원책을 마련한 것으로 여성 1인 가구를 정책 대상으로 특화한 최초의 사례다.

그러나 아직 많은 여성 1인 가구주들은 낮은 경제활동참가율, 비정규직화, 성별 임금 격차 등으로 복지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에 유정미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는 ‘노후’라는 주제를 갖고 두 차례의 좌담회를 통해 여성 1인 가구의 복지 요구를 들여다봤다. 우선 주택의 경우 1인 가구의 주택 유형과 점유 형태는 다인 가구에 비해 열악한 상황이다. 다인 가구의 경우 아파트 거주 가구의 비율이 높은데 반해 1인 가구는 주로 단독주택에 거주하고 있으며 월세 가구의 비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주거 복지와 관련해 1인 가구의 경우 정부가 저소득 가구에 지원하는 임대주택이나 저렴한 가격의 분양주택에서 대부분 1인 가구는 지원 자격이 없거나 지원하더라도 우선순위가 낮다.

토론회에 참석한 A(30·여)씨는 “내 집이 아니더라도 좀 안정적인 주택문제 해결에 대해 정부의 어떤 게 있었으면 좋겠다”며 “혼자 사는 여성으로서 메리트 되는 부분이 전혀 없다. 결혼해야 되고 부양가족이 있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전혀 거기에 신청해도 될 확률이 거의 없는 게 항상 안타깝다. 꼭 좋은 아파트가 아니어도 안정적이고 깔끔한 곳에서 크게 문제없이 살고 싶은 건데 그 정도의 것도 전혀 할 수 있는 기반이 없다는 게 가장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또한 1인 가구의 경우 경제적 소득 수준이 낮은 것은 물론 노후 소득에 대한 불안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60세 정년퇴임까지는 일할 수 있더라도 이후 30여 년 동안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으며 돌봄 측면에서도 상대적으로 불안감이 컸다.

유 교수는 “1인 가구의 증가는 그것이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일상생활을 구성하고 타인과 관계를 맺는 방식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가족 단위 경제 체제와 보살핌 체제가 지배적인 상황에서 제도로서 혼인에 편입되지 않고 단독으로 가구를 유지하는 집단의 증가가 기존 가족 단위 복지체제의 한계를 드러내며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족’ 기능의 재강화가 이들 1인 가구에 대한 복지의 대안이 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부양부담과 현실적인 기회구조가 열악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또한, 근대적 핵가족 형태의 기본은 남성 생계부양자와 여성 전업주부의 역할분업으로 구성돼 있어 돌봄 부담과 역할 간의 갈등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이에 유 교수는 “가구 단위의 부양과 보살핌의 체제는 경제적 불안정성이 심화되고 성별분업 변화에 대한 요구가 증대된 상황에서는 가족을 강화하기보다는 오히려 가족 구성원들 간의 유대 관계를 어렵게 하도록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노동시간에서의 남녀 격차 줄여야

서울시 여성가족재단 김창연 선임연구원은 “노동시간에서 성별에 따른 시간 격차가 반영되지 않은 점을 들며 노동시간 재구성으로 쉼표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규직 노동자들과 달리 단시간 근로 및 시간제 근로 등 비정규직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만큼의 적정한 노동시간을 확보하지 못한다. 문제는 이런 비정규직에서 여성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비정규직 근로자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지난 2008년 3월 49.57%에서 올해 3월 53.69%로 4.12% 증가했다.

일과 관련해 성별 시간사용분포를 살펴보면 평일과 토요일, 일요일 모두 남성이 여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지만, 가정관리를 위한 시간은 여성이 남성보다 평일, 토요일, 일요일 모두 더 많이 할애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여성은 남성보다 각각 1시간 55분, 1시간 56분, 1시간 51분을 더 사용하고 있었으며 가족 보살피기 시간도 여성이 남성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이는 맞벌이 부부도 같은 결과를 보였다. 은퇴 이후 시간 사용 역시 은퇴 이전 사용시간의 성별성이 그대로 유지된다. 삼성생명 은퇴연구소가 50대 ~70대 은퇴자 3826명을 대상으로 여가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분석한 결과 남성은 TV 시청에, 여성은 가사활동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결과는 여성들은 ‘일’에 연속적이고 충분하게 시간을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대신 타인을 돌보는 노동은 계속된다. 이 때문에 자신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지 못하는 여성들이 증가하고 있는 것.

김 연구원은 “남성 중심적 시간규범은 생애 시간에도 영향을 미친다”며 “이는 우리 사회의 모든 제도와 시스템, 인식은 30여 년간 쉼 없이 일하는 이상적 노동자의 생애 시간을 기준으로 설계돼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연금, 복지, 보건, 국가재정은 물론 교육, 취업, 정년제도, 개인의 재테크와 인생플랜이 모두 ‘60세에 은퇴해서 80세까지 사는 것’을 전제로 짜여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간 규범이 낳는 문제들도 많다. 전일제 노동자 외에는 노동자로 보지 않는 시선과 바쁜 것을 유능함이라는 단어와 동등한 선상에 두고 비교하는 것은 이미 일상이다. 과도한 업무와 잦은 야근으로 건강을 상실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허울만 좋은 가족친화정책에 대한 비판도 높다. 현실에서는 실제로 사용률이 높지 않은 것은 물론, 본인들이 재직하고 있는 회사에서 가족친화정책으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는 일도 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이상적 노동자 규범을 전환하고 최대근로시간제 도입과 시간 외 근로에 대한 할증률 변경, 휴일과 휴가 확대 등을 통한 실근로시간을 단축해 돌봄이 있는 노동, 순환적 생애 주기 정착 등을 추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효정 기자  hj@wso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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