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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가는 ‘유리천장’ 강경화는 한국의 힐러리가 될 수 있나?두텁던 남녀차별, 21세기 들어서 균열 발생
김성민 기자 | 승인 2017.05.24 15:14

[여성소비자신문 김성민 기자]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눈에 띄는 변화 중 하나는 여성의 고위직 진출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인사가 바로 강경화 외교부 장관 내정자 지명이다. 여성계에서는 강 내정자 인선에 환영의 뜻을 전함과 동시에 이를 계기로 우리 사회 내 뿌리 깊은 남녀차별이 조금은 해소되길 기대하고 있다.

‘유리천장’(Glass Ceiling)은 여성의 고위직 진출을 가로막는 조직 내 보이지 않는 장벽을 일컫는다. 1970년 미국의 경제신문지 월스트리트저널이 처음 사용한 신조어로, 남녀 성차별을 상징하는 용어 중 하나로도 쓰이고 있다.

이 단어가 유행처럼 퍼질 때쯤인 1991년 미국 정부는 성차별을 해소하고 여성들의 사회진출을 제도적으로 독려하기 위해 ‘유리천장 위원회’를 구성했다. 실제로 ‘유리천장 위원회’는 미국 사회에 양성평등 인식을 확산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사진제공=뉴시스

금 가기 시작한 유리천장

여성의 사회진출 관련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는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총리 재임 1979~1990)가 있다. 그는 고복지·고비용·저효율을 특징으로 하는 만성적인 ‘영국병’을 치유했다는 평가 속에 여성 지도자의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로도 남아 있다.

그러나 대처뿐이었다. 이후 십여 년 넘게 국제무대서 주목 받은 여성 정치인은 나오지 않았고 21세기에 접어들고서야 오랜 기간 견고함을 자랑해 온 유리천장이 세계 각국에서 하나둘씩 금이 가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이 대표적 인물이다.

1776년 독립선언 이후 미국에서는 여성 대통령은 물론 여성 부통령이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지난 2016년에 있었던 힐러리 클린턴의 민주당 대선후보 지명은 선거 결과와 관계없이 ‘여성도 가능하다’라는 메시지를 줬다.

클린턴은 여성 정치인으로서 미국 사회에 존재하는 유리천장을 깨기 위해 쉼 없이 달려왔다. 그는 변호사, 퍼스트레이디, 상원의원을 거쳐 지난 2009년 올브라이트, 라이스에 이어 세 번째 미국 여성국무장관으로 임명됐다. 그동안 미국의 외교·안보를 담당하는 국무장관 자리는 거의 남성의 독무대였던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발전이다.

그는 또한 국무장관으로서 핵 개발에 나선 이란의 강경책과 이스라엘과 가자 지구 간 휴전 중재 등에서 탁월한 통솔력을 보이며 여성 지도자에 대해 왜곡된 선입견에 경종을 울렸다.

2008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버락 오바마에게 패했을 때 그는 "유리천장을 깨지는 못했지만 1800만개(총 득표)의 금을 냈다"는 명언을 남겼다. 지난해 7월 열린 전당대회에서는 "난 이제까지 중 유리천장에 가장 큰 금을 냈다"라고 말했다.

프랑스에서는 2011년 크리스틴 라가르드가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로 임명됐다. IMF는 세계은행과 함께 세계 금융시장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국제기구이다. IMF 수장인 총재는 1944년 출범 이후 줄곧 금녀의 자리였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독일의 첫 여성 총리로 유럽 정치와 경제를 진두지휘 중이다. 현재 4연임을 바라볼 정도로 독일 내에서 신망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국방 등 국가 요직의 여성 진출도 증가하는 추세다.

아웅산 수치 미얀마 국가자문역 겸 외무장관을 비롯해 호주의 줄리 비숍, 인도의 수시마 스와라지, 인도네시아의 레트노 마르수디 등 30개국에서 여성 외교장관이 맹활약하고 있다.

여성 국방장관도 세계 각국에서 속속 등장하고 있다. 최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새 정부 첫 국방장관에 여성인 실비 굴라르 유업의회 의원을 지명했다. 그는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이 임명한 미셸 알리오마리 전 국방장관에 이어 프랑스 역사상 두 번째 여성 국방장관이 됐다.

2013년 독일에서 의사 출신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이 최초 여성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됐다. 이 밖에도 유럽 주요 국가인 네덜란드, 스페인, 노르웨이, 보스니아, 슬로베니아 등의 국방장관도 모두 여성이다.

사진제공=뉴시스

유리천장에 금이 가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지난 11일 청와대 인사 수석비서관에 조현옥 이화여대 초빙교수를 임명했다. 17일에는 국가보훈처장으로 피우진 예비역 중령을 임명했고, 21일 강경화 UN 사무총장 정책특보를 외교부 장관 후보자로 내정했다.

강 후보자 임명 소식에 정치권에서는 ‘유리천장’을 뚫는 파격 인사라는 평가가 쏟아지고 있다. 만약 강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하면 70년 외교부 역사상 최초의 여성 장관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비(非) 외무고시 출신인 점도 눈에 띈다.

문 대통령은 “외교부 국장과 이후 2006년부터 유엔에서 활동하며 국제 외교 무대에서 쌓은 전문성과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외교 현안을 슬기롭게 헤쳐 나갈 적임자”라며 발탁 배경을 설명했다.

강 후보자는 여성으로서 수많은 ‘최초’의 타이틀도 보유하고 있다.

강 후보자는 이화여고, 연세대 정외과를 졸업한 뒤 미국 매사추세츠대 대학원에서 커뮤니케이션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KBS 영어방송 PD 겸 아나운서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가 국회의장 국제비서관을 거쳐 지난 1999년 1월 비 외무고시 출신이란 약점을 딛고 외교부 국제전문가로 발탁돼 여성 최초로 홍순영 외교통상부 장관보좌관으로 특채됐다.

1997년 김대중 대통령 정부 시절 대통령 통역사로 활동하며 본격적으로 외교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외교부 특채로 뒤늦게 외교부에 들어온 그는 2005년 외교부 국제기구국장에 올라 외교부에서 두 번째 여성국장이 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 임기 막바지였던 2006년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실 부판무관이 됐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시절인 2011년에는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 부대표를 역임했다.

2013년부터는 재난 등 비상상황에 처한 회원국에 유엔의 자원을 배분하는 유엔 산하기구인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 사무차장보로 활동했다.

이후 지난해 10월에는 반 전 총장의 후임인 안토니우 구테흐스의 인수팀장을 맡았으며, 지난 1월 유엔 사무총장의 정책특보로 임명되는 등 한국인 여성으로서는 유엔 최고위직을 거친 입지전적의 인물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18대 대선 당선은 최초 여성 대통령 출현이란 점에서 큰 의미를 가졌으나 이후 그가 보여준 행보는 우리 사회 내 여성 정치인의 한계를 보여주는 예로 거론될 만큼 부정적이다.

강경화 내정자에게도 두 갈래 길이 제시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힐러리가 되어 후배 여성들이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고, 또는 여성 지도자의 한계를 또 한 번 보여주는 불명예스러운 사례로 남을 수도 있다.

강 내정자가 문재인 정부의 여러 여성 인사 중에서도 특히 더욱 잘해야 하는 이유다.

김성민 기자  smkim@wso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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