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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허명 밝은 미래 이사장 "청소년들, 자원봉사로 자신의 꿈 키워요"자원봉사는 남에게 도움 주는 것 보다 자신이 배우는 게 더 많아
김희정 기자 | 승인 2017.05.16 16:48

[여성소비자신문 김희정 기자]지금 우리는 어느 때 보다도 기술이 발달한 시대에 살고 있다. 모든 것을 기계에 의존하다 보니 더불어 살고 있는 이웃에 대한 배려는 점점 잊혀지고 있다. 이웃 간에 따뜻한 정이 없는 사회는 외형적 화려함과 성장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없다.

사단법인 ‘밝은 미래’의 허명 이사장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시간, 재능 그리고 열정을 그것들을 필요로 하는 이웃과 하께 나누는 일이야 말로 우리가 지향하고 있는 모두가 행복한 복지사회로 가는 길이라 생각한다”고 강조한다.

‘밝은 미래’는 우리나라의 앞날을 이끌어 갈 청소년들이 올바르게 성장해 훌륭한 사회 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려는 생각으로 2013년에 설립됐다. ‘밝은 미래’는 ‘밝은미래봉사단’을 운영하면서 여러 봉사단체와 함께 어울려 청소년 사업을 하고 있다.

이 단체의 이사장을 맡은 허명 이사장은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교에서 교육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유학을 가 전공을 바꿔 교육학을 전공했다.

그는 독일에서 교육학을 전공하면서 우리나라 교육의 잘못된 점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사단법인 ‘밝은 미래’가 다문화 가정 청소년들을 위한 프로그램에 신경을 특별히 쓰는 이유는 허 이사장이 20년 이상 독일에 머무르면서 자신이 다문화 사회 사람으로 받은 따가운 인식들이 바탕에 깔려 있다.

허 이사장은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다문화 가정의 어려움을 자신이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매주 토요일마다 다문화 가정 자녀들에 대한 교육을 해요. 우리는 미국 사람과 한국 사람이 결혼한 것은 다문화가정라고 하지 않잖아요. 그렇지만 그것도 사실 다문화에요. 그런 나라는 제외하고 동남아나 중국 사람과 결혼을 해 이루어진 가정을 주로 다문화가정이라고 부르면 그 사람들이 싫어하죠. 저도 사실 독일에서 거주하였을 때에는 다문화 가정이었어요. 남편이 한국사람이지만 그 사람들과의 문화가 다르니까 그들이 우리 가정에 대해 다문화 가정이라고 보는 거죠.”

그는 독일에서 길거리 갈 때나 공공장소에서 외국인, 다문화라고 따갑게 보내는 시선들을 많이 경험했다. 독일 사람들도 혈통주의를 무척 따지기 때문에 다른 나라 사람들에 대해 무시하는 것을 많이 느낄 수 있었다.

“독일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에 대해 일반적으로 ‘간호사’를 떠올려요.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간호사들이 독일에 많이 갔지요.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은퇴 후 독일에 여전히 살고 있지요. 그래서 많은 그곳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을 보면 ‘간호사로 일하세요?’라고 묻는데 그 밑바닥에는 마냥 좋은 뜻만 있는 게 아니니까요. 어떻게 보면 무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어요. 간호사가 부족하니까 한국 사람들을 많이 고용했지만 그들이 무시하는 말투라는 것을 알게 됐죠. 그 당시에는 저도 모르게 제가 가난한 나라인 한국사람이라는 것을 많이 느꼈어요.”  

그가 유학을 갔던 1975년에는 한국 사람이 많지 않았고 여성은 더구나 없었다. 그는 한국 사람을 만나면 그만큼 공부가 늦어진다고 생각해 한국 사람을 만나는 것을 꺼리기도 했다.

“1978년 제가 유학생활을 하고 있을 때 남편이 국비유학생으로 독일에 왔어요. 한국 사람을 잘 만나지 않았지만 도서관에 갔을 때 한국 사람을 만나면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는 하잖아요? 국비 유학생들이 왔다 길래 ‘왔나 보다’ 하고 별로 신경도 안 썼어요.

그런데 어느날 집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벨이 울리더라구요. 오늘 한국유학생들 추석행사가 있는데 가겠느냐고 하면서 한 유학생이 저를 데리러 온 거에요. 그때는 한국 유학생들이 별로 없었습니다. 가서 식사만 하고 오면 된다고 그 분이 그러더라구요.  행사장에 갔는데 사람들이 다 앉아 있고 빈 자리가 마침 있어서 자리에 앉았는데 그 옆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이 나중에 제 남편이 되었어요.” 

박정희 대통령 재임 시절 언젠가는 동구권이 개방될 것에 대비해서 동구권 전문가를 야성하기 위해 국비유학생을 선발했어요. 남편은 폴란드 전문가로 뽑혔죠. 그 당시만 해도 폴란드는 공산국가였어요.인연이 되려고 하니 우리는 만난 지 4개월만에 결혼을 했어요.

그런데 유학생활을 하다 보니 어려움이 많았어요. 1978년 4월에 결혼을 했는데 그해 10월에 10‧26 사태가 터졌어요. 6개월 동안 장학금이 안오니까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을 해야 했어요”.‧

결혼한 그해 8월에 허 이사장은 베를린으로 이사를 갔다. 그 때만 해도 독일은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으로 분단돼 있었기 때문에 한국 사람을 만나지 않고 독일 친구들만 사귀며 지냈다. 먹는 것과 문화 등 모든 생활방식을 철저히 독일식으로 바꿨다.

한국외국어대학교 폴란드어학과를 창설하고 교수로 재직했던 남편 정병권 교수는 2014년에 퇴직하고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폴란드어-한국어 사전을 만들고 폴란드 언어와 문화를 한국에 소개한 공로를 인정받아 정 교수는 폴란드 정부로부터 국민 훈장을 받았다. 

“남편이 폴란드의 아담 미츠키에비츠 대학교에서 명예박사를 받을 때는 그 의전이 대단했어요. 1시간 반 동안 의식이 엄숙하게 진행되었어요. 우리나라 예술의 전당 같은 커다란 홀에서 음악회가 개최되기도 했어요. 조수미씨도 출연했지요.” 

그들 부부는 1983년에 귀국했다. 그리고 1998년에 남편이 독일 베를린에 있는 자유베를린대학에 교환교수로 가게 되면서 다시 독일에 가게 됐다.

당시 허 이사장의 두 딸이 다니던 초등학교(Europa Schule)에는 장애인 학교인 비잘스키 학교가 함께 있어서 등교 시간에 장애 학생들을 데리고 오는 학보무들을 볼 수 있었다. 피부색이 서로 다른 장애 아이들을 서너명씩 입양한 보호자들도 적지 않았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보호자들의 표정은 너무나 밝았고 아이들을 차에서 휠체어로 옮길 때도 시종 웃는 얼굴로 정성스럽게 도와주고 있었다.

그때 허 이사장은 “남을 위한 봉사라는 것이 저런 것이 아닌가”하고 마음에 새기게 되었다. 웃는 얼굴로 다정하게 신체적, 지적 장애아동들을 돌보던 베를린 학보무들의 모습은 그가 봉사활동을 하면서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모델이다.

이런 체험과 다짐을 통해 그는 독일에 거주하는 동안 독일 양로원에서 알츠하이머 환자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돌보고 다른 나라에서 온 이주 여성의 독일 정착을 돕는 일을 했다.

그는 학부형들과 함께 딸들이 다니는 학교의 불우한 학생을 위한 자선 바자회를 주관하고 베를린 다문화 가정의 문제아들과 학부모를 상대로 생활상담이나 진로 상담도 했다.

남편이 연구 년을 마치고 귀국한 후에도 그는 자녀들과 함께 11년을 더 독일에 거주하게 되었다.

“저는 조기 유학을 찬성하는 사람은 아니에요. 하지만 저희 둘째 딸이 초등학교 3학년이 됐을 때 한국에 가야 한다고 하니까 그렇게 싫어하더군요. 여기서는 선생님들이 천재라고 하는데 한국 가면 매일 선생님께 야단 맞는다는 거에요. 엄마 아빠가 다 들어가고 언니와 함께 있을 집을 구해주면 있겠다는 거에요. 결국 제가 아이들과 일 년을 더 머물기로 하였지요. 그런데 그 다음해에 큰 딸이 학교에서 학생 회장을 해 보겠다며 한국에 안 가겠다는 거에요.

그때는 우리 큰애가 케네디 스쿨이라는 미국학교에 다니고 있었어요. 그 다음에는 대학에 들어가야 되니까 또 중간에 들어올 수가 없더라구요. 아마 우리 딸이 그때 한국에 들어왔다면 한국대학 시험에는 떨어졌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렇게 독일과 한국을 오가며 생활한 20년 동안 허 이사장의 두 딸은 독일에서의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며 훌륭한 인재로 성장했다.

“큰 애는 고등학교 때 결국 여성으로서 학생회장을 했어요. 큰 딸이 학생회장이 되면서 제가 봉사라는 것을 알게 됐죠. 미국, 독일 학부모들과 함께 열학교와 저소득층을 위해 많은 봉사를 하였어요. 그 때 저는 제 전공을 살려서 장애인재단 'Best Buddies' 독일지부를 만들기도 했지요. 

그 덕에 우리 애들이 좋은 학교에 잘 들어간 것 같아요. 큰 딸이 케네디고등학교를 마치고 콜롬비아대학에 입학했을 때 그 고등학교에서 11년 만에 콜롬비아대학에 보낸 것이라고 하더군요. 둘째 딸도 런던에 있는 임페리얼 공과대학 기계공학과에 들어갔지요. 지금은 변호사와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어요."

귀국 후 그는 송파구자원봉사 센터 소장이 되었다.

“저는 자원봉사센터 소장을 하면서 독일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배운 방식을 활용했어요. 서울시 인센티브 사업에 송파구가 2년 연속 우승을 하기도 했어요.”

청소년들을 봉사의 현장으로

그가 송파구자원봉사센터 소장을 하는 동안 한번은 송파구에 있는 중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다. “한 중학교에 갔는데 학생들이 책상에 엎드려서 자고 있는 것에 충격을 받았어요. 그것이 제가 청소년 선도를 위한 활동을 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어요.”

그는 2011년부터 2013년 6월까지 2년 동안 송파구 자원봉사센터 소장을 하면서 10만 자원봉사 인력을 관리하고 격려하며, 여러 나라의 외교사절들과 함께 한 아프리카 아동 돕기 기금 마련 캠페인 ‘아우 인형 만들기’ 행사를 시작으로 문화 나눔 강좌, 졸업식문화개선사업인 ‘위풍당당’, 소외계층 청소년을 위한 ‘나눔 걷기대회’ 등 수많은 행사를 주관했다.

청소년기는 일탈이 심각한 시기이다. 그는 송파구에 있는 37개의 중·고등학교와 MOU를 맺고  청소년들에게 봉사활동을 통한 나눔과 배려의 교육을 실시하면서 청소년들을 봉사의 현장으로 끌어들였다.

대일외국어고등학교에서 13년간 교직생활을 한 경험과 독일에서 교육학과 아동심리학을 공부한 것을 바탕으로 ‘드림클래스’, ‘힐링스쿨’ 등 청소년 선도프로그램을 송파경찰서와 함께 만들고 추진했다.

“청소년들이 꿈을 키우고 틀을 깨고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선배들의 경험을 들어보는 프로그램인 ‘꿈틀 토크 콘서트’ 행사를 추진해 고등학교 학생들을 적극 참여시켰어요.”

<사진 여성소비자신문>

청소년들의 국제교류 길 만들기도

이밖에도 그는 송파구가 국제적으로 알려지고 민간 차원에서도 국제적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자신이 오랫 동안 살았던 독일 베를린 스테글리즈-젤렌도르프구와 송파구 간의 자매 결연을 추진해 스테글리즈-젤렌도르 구청장과 의회의장 등 대표단이 송파구를 방문해 MOU를 맺도록 해 송파구민과 청소년들이 국제적으로 교류를 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하기도 했다.     

2013년 9월 송파구자원봉사센터 소장 임기를 마치고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밝은 미래’를 설립하게 됐다. ‘밝은 미래’는 어르신 봉사단, 국악예술단, 이미용봉사단, 사물놀이동아리, 송파어린이 합창봉사단 등 10여개의 봉사단체로 구성된 연합봉사단이다.

“저는 청소년에게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봉사활동은 청소년의 일탈을 막고 인성교육 강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2015년 초.중.고등학생들로 구성된 ‘밝은미래청소년 모니터봉사단’을 창단하여 매년 200여명의 학생들과 5개 분야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베이비부머 세대들을 모집하여 자원봉사 교육을 지도하였지만 교육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그들은 50년 이상을 살아온 방식이 있기 때문에 교육을 받아도 쇱게 봉사자로 변화되지 않아요. 그분들이 받은 자원봉사 교육을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것은 가능했죠.” 

이에 그는 거꾸로 청소년들을 봉사활동을 지도하여 가정에서 부모들을 이해시키도록 했다. 

청소년 모니터 봉사단을 창단하여 토요일마다 교통과 생활안전, 다문화, 장애인스포츠, 다도 등의 분야에서 활동을 하도록 한 것이다.

“송파경찰서의 지도 하에 교통법규 위반 차량, 예를 들면 방향지시등, 꼬리 물기, 주정차 위반 등을 청소년들이 모니터하도록 했어요.

위반 차량들을 보는 청소년들은 그것이 불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중에는 자신도 어른들이 했던 것처럼 습관적으로 똑같은 위반을 하게 됩니다. 

지금 교통문제가 심각하잖아요?  특히 교통질서와 공중도덕을 지키는 것이 우리가 선진국으로 가는 지름길이지요. 그래서 우리 청소년들이 직접 보고 집에 가서 거꾸로 부모님들에게 얘기를 하도록 하는 거에요. 그런 의미에서 청소년 교통모니터단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목욕탕에서도 사람들이 쓸데없이 물을 낭비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안 좋다고 한다. “우리들은 비누칠을 다 한 후에 물을 틀어서 씻도록 교육해야 합니다. 이 물을 데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사용할까를 생각하게 돼요. 그런 연료들이 미세먼지를 만들어낸다고 봅니다. 미세먼지는 중국에서 오는 것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자체에서도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 때문에 많이 발생하고 있어요.” 

그는 어른들의 습관들을 하루 아침에 바꾸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학교에서 청소년들에게 특강도 하고 교육도 하는 일에 나섰다고 한다.

다문화 교육은 소통부터

“다문화의 아픔은 외국 생활을 오래 한 제가 너무나 많이 겪어봤어요, 마음 아픈 적도 많고 속상한 적도 많고요.” 

허 이사장은 다문화 자녀들에게 엄마 나라와 아빠 나라를 동시에 인정하고 사랑하도록 지도해야 하며 다문화 청소년들도 우리 국민이기에 따뜻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 보고, 함께 하는 마음을 갖도록 지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다문화는 우리 사회가 선진국으로 가는 필연적인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멘토가 되어 다문화 가정 자녀들을 지도하며, 함께 활동하는 다문화모니터봉사단을 만든 이유이기도 하다. 밝은 미래 다문화모니터봉사단은 다문화에 대한 선입견을 없애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장애인 친구들과 함께 하는  스포츠모니터봉사단은 육영학교와 MOU를 맺고 활동하고 있다. 장애인 친구들은 우리가 이해하고, 따뜻하게 도와주어야 하는 우리의 친구들이다.

이 봉사활동을 통하여 우리의 청소년들은 나눔과 배려를 배우고 있다. 자폐증을 앓고 있는 장애 청소년들과 활동하는 스포츠모니터봉사단은 봉사는 상대방에게 도움을 주는 것일 뿐만 아니라 자신은 참을성을 배울 뿐 아니라 자신들의 행복을 발견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고 강조한다.

“아이들이 봉사활동을 하면서 건강한 육체를 주신 부모님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또 이런 봉사활동을 하다 보면 청소년들이 조그만 일에 흥분하거나 다투는 일이 줄어들면서 사춘기를 가볍게 넘기게 되지요. 요즈음은 학교 교장 선생님들로 부터 많이 협조를 받고 있어요.”

그는 매년 청소년 모니터봉사단 발대식을 개최할 때 가능한 한 유명인사들을 많이 초청해 성대하게 한다. 또 과정이 끝나 수료식을 할 때는 구청장상, 국회의원상, 경찰서장상 등 많은 상을 준비한다.

“아이들은 칭찬을 받기를 좋아합니다. 칭찬을 해주면 ‘다음에는 더 좋은 일을 해야지’ 라고 생각하게 되는 거죠.”

그가 청소년들에게 봉사활동을 권하는 이유는 청소년들이 봉사활동을 통해 스스로 지역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것을 일깨워, 지역 사회에 대한 사랑을 더 갖게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나눔과 배려가 뭔지 가르쳐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통을 한다는 것은 함께 할 때 이루어진다고 생각해요. 청소년들이 다양한 봉사활동을 통하여 많은 경험을 하게 되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함께 고민하고 상의할 때 소통과 화합을 자연스럽게 실천하게 되지요.

또 봉사활동을 통해 우리 청소년들이 어릴 때부터 서로 나누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요즘 정치인들이 서로 다투는 모습을 보며 우리 아이들에게는 어렸을 때부터 토론을 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에게 ‘봉사’를 하라고 하지만 봉사가 뭔지, 봉사를 왜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게 필요해요. 봉사를 통해 경험을 쌓게 되고 경험을 쌓게 되면 내 꿈을 더 현실화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토론을 통한 리더 양성 교육 필요

20년간 독일에서 생활한 그가 느끼는 한국의 교육제도와 독일의 교육제도에 있어서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

“제가 독일에서 공부할 때는 항상 세미나식으로 공부를 했어요. 또 그룹으로 공부를 했어요. 한 주제를 갖고 그룹으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여러 사람들의 창의적인 생각이 모이게 됩니다. 그룹 공부를 하며 각자 발표를 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리더십을 키우게 됩니다.

미국 교육이 리더를 키우는 교육이잖아요.  아이들이 많은 경험을 하면서 자연히 자신감과 함께리더십을 기르며 훌륭한 사회인으로 성장하게 되지요.

제가 독일에서 저희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면서 배운 게 있다면 우리 아이들이 자신의 의사를 당당하게 표현할 줄 알게 됐다는 거에요. 선생님들이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주었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우리들도 어디 가서 인사말을 하라고 하려면 말이 잘 안 나오잖아요. 그건 경험이 부족하고 연습이 안 돼서 그런 거에요. 그런데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자기 의견을 말하다 보니 많은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두뇌가 발달된 것 같아요. 이처럼 많은 것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이 바로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일에서 강의 시간에 교육을 다이아몬드와 비교하는 교수님의 말을 자주 들었지요. 다이아몬드의 원석은 빛이 안 나지만 그것을 어떻게 깎느냐에 따라 빛이 굉장히 많이 나게 됩니다. 아이들에게 자신을 빛낼 수 있도록 많은 경험의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듣기만 하는 주입식 교육에 치중하고, 대학 입시 위주의 교육으로 서로 경쟁이 심해지게 되는 거에요.  

독일에서는 초등학교 때 부터 주관식 시험이기에 다른 학생의 답안을 베낄 수도 없습니다. 아무도 자기와 똑같은 생각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심지어 자신의 노트를 빌려줘도 상관없다는 거죠. 우리 교육이 주입식 교육인 반면 독일은 창의력을 기르게 하는 교육방식의 차이인 것 같아요.”

한국도 공교육에 대한 대안으로 대안교육에 관심이 커지고 있는데 대안교육이 정말 공교육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인지 그에게 물어봤다.

“독일에도 대안학교가 있어요. 대안학교란 아이들이 공부를 좀 덜 하더라도 생각을 좀더 할 수 있는 기회를 더 주자는 의미에서 대안학교 제도가 아주 좋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대안학교를 설립하시는 교사들이 얼마나 공부를 많이 하고 대안학교를 만들었는가 하는 것 입니다. 그 자체는 굉장히 좋은 것이지만 과연 교육 효과가 잘 반영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또 우리나라는 초등하교 때부터 정해진 교육을 받아 왔기 때문에 하루 아침에 교육 방식을 바꾸는 것이 잘 되지 않는 것 같아요.”

공교육 커리큘럼 만으로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학교교육을 개선하겠다고 정부도 강조하지만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그는 “독일에도 우리 학교와 마찬가지로 사립학교가 있어요. 그들도 집 주변에 있는 학교에 다녀야 하기 때문에 종종 좋은 학교가 있는 곳으로 이사를 가기도 해요, 하지만 숫자로 따지면 공립학교가 사립학교보다 훨씬 많아요. 물론 독일에서도 몇 몇 공립학교는 들어가기가 엄청 힘들어요.

그리고 그곳을 나오면 대학에 들어가기가 그만큼 쉽죠.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사립학교는 그대로 두고 공립학교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봅니다.

또 “교육학에서 교육은 일률적으로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공부를 좀 더 하기를 원하는 학생들은 대학을 진학하지만, 공부보다는 직업을 택하겠다는 학생은 직업학교를 선택할 기회를 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독일은 중고등학교 5학년이 끝나면 6학년부터는 직업을 가질 것인가 인문계로 갈 것인가 선택을 하게 되고 직업학교를 선택했더라도 나중에 공부를 하고 싶다고 생각을 하면 다시 옮길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독일은 인문계 고등학교에 들어가는 비율이 30%~40% 밖에 되지 않고 대학에 들어가는 학생의 비율도 전체의 30%에 불과하다. 그만큼 대학을 꼭 나와야 한다는 생각이 없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다. 

청소년 자원봉사 운동을 꾸준히 해온 그가 가장 크게 보람을 느끼는 점은 무엇일까. 

“해마다 200명의 청소년들과 봉사단 발대식을 합니다. 우리 청소년봉사단 중에는 1년 봉사활동 을 마치고도 그만 두지 않고 계속 하겠다는 학생들이 많이 있어요.

‘자원봉사가 뭔가’라는 질문에 ‘내가 주는 것보다 배우는 게 많았어요’라고 말했어요. 또 한 아이는 ‘진정으로 내 꿈을 키우는 계기기 되었다’고 말했어요. 자원봉사를 통해 남을 도와주며 여러 경험을 하게 되면서 자신이 원했던 꿈을 발견하게 되기도 하고 더 놓은 꿈을 꾸게 되었다는 거죠.

한 여학생은 자원봉사가 ‘어머니’라고 답했어요. ‘어머니는 자녀를 위해 평생 봉사를 하신다는 것이지요.’ 처음 봉사를 시작하는 청소년들은 마지 못해 봉사를 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하지만 1년이 끝날 때 쯤에는 그 아이들이 더 적극적이 되는 것을 보고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또 제가 송파결찰서와 강남 경찰서 청소년 선도위원으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아이들 얘기를 들어 보면 대부분의 문제가 엄마 아버지에게서 나오더군요. 아이들이 욕을 하는 것을 보면 아버지들이 많이 사용하는 단어들인 경우가 많아요. 여학생의 거친 성격은 엄마가 딸에게 욕을 하거나 소리를 지르기 때문에  그 화난 것을 친구들에게 발산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점에서 부모가 모범적인 행동을 한다고 봅니다. 

메르스 사태가 났을 때 아이들에게 메르스 예방교육을 했어요. 그 결과 청소년 봉사단원들은 인터넷에서 메르스 관련 방지방법 등을 찾아내  안내지를 만들어 지하철 역에서 배부를 하였어요. 메르스라고 부모들은 걱정을 하는데 아이들이 직접 행동에 나서는 것을 보고 청소년봉사단원들이 자랑스러웠지요. 저도 많이 배우게 되었어요.

도로의 싱크홀에 사람들이 빠지는 일이 생길 때도 청소년들이 ‘안내문’을 만들어 조심하는 방법을 전파하는 것을 보면서 아이들이 봉사활동을 통해 더 똑똑해지고 자신감이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경험을 쌓다 보면 자신감이 생기잖아요. 그래서 저는 이런 일들을 많은 분들이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경쟁과 순위, 업적, 성과 지향적인 사회구조 속에서 살고 있어요. 이런 사회에서는 다른 사람의 행복과 이익이 나의 복지가 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갈등 구조 속에서는 자원봉사 활동이 활성화하기 쉽지 않아요. 

그렇지만 자원봉사 활동을 어떻게 이끌어 나가느냐에 따라 우리 사회의 대립과 갈등 요소를 완화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봉사하는 마음 자세의 기본은 겸손과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우리 청소년들은 자연스럽게 나눔과 배려의 미덕을 배우고 자기가 살고 있는 사회를 더 밝게 만들어 갈 것입니다.

지금까지 400명의 청소년들이 우리 밝은 미래의 가치 아래서 봉사 활동을 했습니다. 그등 중에 소위 말하는 문제 학생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이런 청소년들을 어른들이 사랑과 격려의 눈빛으로 지켜봐 줄 때 그들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큰 꿈을 키워갈 것입니다.  

저의 계획은 청소년 대토론회를 개최하여 우리 사회에 만연된 여러 사회 문제에 대해 청소년들이 그들읠 경험을 바탕으로 토론하며, 스스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 주려고 합니다. 또한 청소년들이 봉사활동을 통하여 나눔과 배려의 미덕을 익히고, 훌륭한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청소년나눔걷기대회' 등 봉사의 기회를 더 많이 만들 계획입니다.”

 

 

 

김희정 기자  penmoim@wso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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