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여성 기획특집
산으로 가는 저출산정책, ‘출산지도’에 여성계 발끈“여성을 아이 낳는 동물로 보지 말라”
김영 기자 | 승인 2017.01.16 17:12
출산지도 반대시위를 펼치는 여성들. <사진제공=뉴시스>

[여성소비자신문 김영 기자] 지난해 12월 29일 행정자치부는 저출산 극복 프로젝트라며 ‘대한민국 출산지도’를 작성해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지자체별 출산정책 등을 비교 소개해서 각 지자체의 자율경쟁을 촉진하겠다는 의도였다. 무엇보다 해당 지도에서는 지역별 합계출산율, 출생아수, 가임기 여성인구수, 조혼인율 등 출산과 관련한 정보가 세세히 수록돼 있어 누구든 쉽게 이를 확인해 볼수 있게 했다. 하지만 해당 사이트는 공개 후 단 하루도 지나지 않아 폐쇄됐다. 가임기 여성 수 공개 등을 두고 여성혐오 조장이란 비난 여론이 강하게 제기된 탓이다.

우리 정부는 지난 10년 동안 저출산 극복 정책에만 80조원 이상 투입했지만, 기대한 효과는 전혀 얻지 못했다.

오히려 매년 혼인율과 출산율이 하락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혼인율은 인구 1000명당 5.9명으로, 6.5명을 기록한 2011년 이후 매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출생수 역시 지난해 10월 기준 3만 1600명으로 전년 대비 13.9% 감소했다. 이는 2000년 이후 최저치에 해당한다.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지면 오는 2030~2040년에는 생산가능인구와 노동력이 줄다 못해 ‘제로(0)’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예상이다.

저출산 문제가 사회 근간을 흔들수도 있는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최근 행정자치부에서는 출산지도를 공개하며 출산장려 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해당 서비스 시작과 동시에 국내 주요 여성단체들은 “정부가 여성을 단지 아이를 낳은 기계 내지 가축으로 폄해했다”며 이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겉으로는 ‘출산장려를 위한 캠페인’이라고 밝히면서도 전국 가임기 여성 수 등을 지도에 적시한 것 자체가 ‘저출산의 원인은 가임기간 중 임신하지 않고 있는 여성에게 있다’고 잘못 해석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출산지도를 접한 일반여성들의 반응 역시 비슷했다.

서울에 거주하는 30대 직장인 김모씨는 “가임기 여성의 수가 곧 출산 가능 지표는 아니지 않느냐”며 “여성이 출산을 하지 않는 사회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표면적인 것만 보는 근시안적 통계”라고 말했다.

경기도에 거주하며 서울로 출퇴근하는 20대 최모씨 또한 “지도제작 자체가 여성혐오를 밑바닥에 깔고 만들어진 것 같다”며 “출산의 책임을 여성에게 돌리는 듯한 정책개발에 왜 국가 예산이 투입돼야 하는지 의문이다”고 지적했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는 20대 강모씨 역시 “저출산 극복을 위한 프로젝트라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지만, 여성의 거주정보를 공개하고 지역별로 순위를 매긴 것은 여성에 대한 잘못된 프레임을 정부가 만드는 꼴”이라고 언급했다.

SNS 등 온라인 상에서도 출산지도에 대해 “여성이 공공재냐”, “여성이 애낳는 기계인가”, “정부로부터 시작된 여혐”이라는 반응 등이 쏟아졌다.

출산지도 공개는 성범죄에 대한 우려로도 이어졌다. ‘가임기 여성인구수’는 곧 여성의 거주지역 분포를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에, 가임기 여성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성범죄 발생 확률이 늘수도 있다는 것이다.

행자부가 공개한 출산지도 홈페이지 서비스.

아직 끝나지 않은 논란

행정자치부는 서비스 개시와 함께 온갖 잡음은 물론 민원이 빗발치자 사이트 오픈 하루도 지나지 않은 당일 오후 5시 해당 홈페이지 접속을 차단했다.

아울러 행자부는 공식 홈페이지에 수정 공지문을 게재하며 “대한민국 출산지도는 국민에게 지역별 출산통계를 알리고 지역별로 출산 관련 지원 혜택이 무엇이 있는지 알리기 위해 제작한 것으로 여기에 언급된 용어나 주요 통계 내용은 통계청 자료를 활용해 제공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여러분의 의견을 수렴해 계속적으로 수정 보완하겠다”며 “현재 홈페이지를 수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출산지도 제작의 기본이 된 데이터베이스가 통계청 자료에 의한 것으로 일각에서 제기된 용어 사용 등의 부적절함 등은 타 부처에 있다는 식의 책임전가형 발언을 쏟아낸 것이다.

또한 ‘출산지도 폐지’가 아닌 수정 후 재개시를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라면서도 구체적인 세부계획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결국 정부의 이 같은 움직임은 또 다른 반발을 낳았다.

지난 6일에는 BWAVE(Black wave)는 익명의 여성단체 회원 50여명이 출산지도에 반대하는 가임거부시위를 서울 종로구 세종로 행정자치부 청사 앞에서 열었다.

BWAVE는 임신중단(낙태) 전면 합법화를 요구하며 지난해 10월부터 활동을 시작한 젊은여성들의 온라인 모임으로, 이날 이들은 여성의 선택권을 강조하며 정부의 기존 출산지도 서비스 폐지 및 정책 개선을 요구했다.

BWAVE 관계자는 “행정자치부는 저출생 문제를 인구정책적 차원에서만 접근한다. 반면 출산율 반전에 성공한 국가들은 인구학적 접근보다 사회복지 및 여성학적 접근을 했다”며 정부의 태도 변화를 강조했다.

특히 이들은 ▲기존 출산지도 전면 폐기, 홍윤식 행정자치부 장관과 ‘출산지도’ 총책임자인 안승대 부장 사퇴 ▲기획 단계서 여성 공무원 투입, 여성학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위원회 설립, 해당 사이트 담당 공무원 및 자문위원 실명 및 약력 공개 ▲‘저출산’ 대신 ‘저출생’ 단어 사용 ▲출산지도 홈페이지의 ‘엄마를 위한~’이란 여성혐오적 표현대신, ‘부모를 위한~’ ‘가족을 위한~’ 표현 사용 ▲여성들이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현실적 이유를 출산지도에 명시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 개발 ▲동성부부·한부모가정 등 다양한 가족형태의 법적 인정 및 제도적 지원 약속 ▲출산율 높은 지자체에 대한 정부 인센티브를 여성에게 직접 지급 ▲가임기 남성수 공개 ▲출산과 양육을 위한 실용적인 정보 제공 등의 9가지를 정부 측에 공식 요구했다.

여성계 반발이 커지는 가운데 정치권에서도 출산지도에 대한 공개적인 비판이 쏟아졌다.

야권 대선주자 중 한명인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출산지도 서비스 공개 당일 본인 트위터를 통해 “행자부가 ‘가임기 여성지도’를 작성하고 공개한 것을 보고 경악했다. 출산율 하락의 이유가 여성 때문인가. 일제 식민통치시대의 인구조사를 보는 듯하다”고 꼬집었다.

안희정 충남지사 역시 같은 날 본인 페이스북에 “우리는 아이를 낳는 기계가 아니고 닭장의 닭도 아니다”고 적었다.

지난 9일에는 국회 안정행정위원회 회의에서는 이재정 민주당 의원이 홍윤식 장관을 향해 “안녕하세요, 저는 경기도에 거주하는 가임기 여성입니다”라고 본인을 소개했다. 이 의원은 이어 출산지도에 대해 “지자체 간 경쟁은 편협하고 미시적인 내용일 뿐이고, 청년정책, 실업정책 등 모든 것이 맞물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가족문제 및 사회문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출산지도 정책에 대해선 ‘섣부르고 잘못된 정책’이란 비판이 주를 이루고 있다. 스웨덴과 스페인 등 저출산 문제를 해결한 유럽 국가들의 정책을 비교검토해 볼 때도 양성 평등한 사회환경 조성이 다른 것보다 우선시 돼야 할 것이란 지적이다.

김영 기자  young@wsobi.com

<저작권자 © 여성소비자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영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