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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띠의 해, 치킨게임은 그치고 평화와 사랑을
강창원 건국대학교 명예교수 | 승인 2016.12.21 14:52

[여성소비자신문]어김없이 또 한 해가 저물어간다. 너도 나도 송년모임에 바쁘다. 참석자들이 한명 두명 모여 들면서 나누는 이야기들이 예년과는 다르다.

보내는 한해에 대한 아쉬움, 그간의 수고와 감사, 새해의 포부와 기원보다는 나라 걱정이 앞선다. 기행에 가까운 박근혜 대통령의 직무수행과 행적, 진심어린 참회 보다는 변명과 거짓말에 대한 실망과 분노로 시작하여 박 대통령 탄핵 후 한치 앞을 점치기 어려운 불확실성에 말끝이 흐려진다.

북한의 핵무기 안보위협, 조선업과 해운업의 침몰, 수출과 내수경제의 급강하, 고병원성 질병으로 인한 계란 값 폭등, 소비자물가 상승 등 등 마치 불 꺼진 자동차로 어두운 터널을 지나야하는 답답한 형국이다.

더욱 답답한 것은 탄핵으로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된 상황에서도 우리 여야 정치 지도자들은 국가나 국민은 안중에도 없이 오직 ‘너 죽고 나 살자’ 식 치킨게임(chicken game)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현실이다.

온 나라를 혼돈에 빠뜨리고서도 뉘우치기는 커녕 당내 파벌간 주도권 싸움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여당이나 혼란한 정국을 정상화 시키려는 로드맵(road map, 구상)은 커녕 어떻게든지 정국혼란의 어부지리만을 노리는 야당 지도자들을 바라보는 우리 국민들 모두는 참으로 불행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치킨게임은 닭(치킨,chicken)이 겁쟁이라는 뜻에서 우리말로는 ‘겁쟁이 게임’ 이라고도 한다. 1955년에 개봉된 제임스 딘(James Dean) 주연의 ‘이유 없는 반항’이라는 청소년 비행 문제를 다룬 미국 영화에서 보여주듯이 1950년대 미국 젊은이들이 지어낸 위험한 놀이이다.

두 사람이 차를 몰고 서로 상대방 또는 벼랑 끝을 향하여 돌진하다가 먼저 핸들을 꺽거나 차를 버리고 밖으로 몸을 피하면 치킨(겁쟁이)이 되어 게임에서 지는 담력시험이다. 만약 한 쪽이 먼저 포기하지 않으면 두 사람 모두 죽음에 이를 만큼 폭력적이고 파괴적이다.

소설가 조정래씨의 ‘태백산맥’에서도 조직 폭력배들이 열차가 달려오는 철교위에 서서 누가 더 오래 버티는지 내기를 하는 것 역시 일종의 ‘치킨게임’이다.

이 같은 놀이는 그 폭력성 때문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은 영화나 문학작품에 등장할 뿐만 아니라 가끔 젊은이들 사이에서 실제상황으로 벌어져 사람들을 놀라게도 하고 기업간의 경쟁이나 국가간 힘겨루기에 이용되는 상대방 죽이기 전략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국민들을 위해 산다는 우리 정치 지도자들이 국민들 앞에서 이처럼 파괴적인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영자신문의 기사제목 ‘Park's chicken game (박 대통령의 치킨게임)’에서 보듯이 대통령, 여당 내 파벌, 야당, 북한의 김정은 정권 등, 우리나라가 마치 치킨게임에 빠진 조직 패거리들의 유희장처럼 번지고 있다.

이러한 겁쟁이게임은 일종의 ‘승자독식’ 또는 ‘전부 아니면 무(all or nothing)’ 식의 약육강식 세계에서 보여지는 사고방식에서 나온다.

지혜나 사랑은 없고 오직 막무가내식의 무모한 배짱만이 있을 뿐이다. 한 번은 이길지 몰라도 결국은 모두 패망에 이르는 ‘사망의 유희’일 뿐이다.

이처럼 지혜롭지 못하고 무모한 경쟁을 치킨게임이라고 부르는 것은 닭이 미련한 겁쟁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의 잘못된 선입관 때문이다.

닭은 지혜롭고 평화로운 동물인지라 사람들이 재미나 돈벌이로 벌리는 투계장이 아니면 치킨게임을 하지 않는다.

고등동물 가운데 가장 조숙한 동물이 닭이다. 동물행동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알에서 갓 깨어난 병아리는 부화한지 며칠만에 기초적인 수학, 기하학, 물리학, 공학은 물론 자기통제(self control) 능력을 터득하여 어린아이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복잡한 삶의 기술을 터득한다.

뿐만 아니라 이들을 몇 개월간 분리시켜 두어도 100마리 정도의 동료들을 식별하는 기억력을 획득한다.

‘병아리가 걸음마를 배우는 유아보다 더 영리하다’라고 하는 이유로는 우선 타고난 닭의 소통 능력에 있다. 병아리가 부화 즉, 태어나기 전에도 옆에 놓인 알속의 태아 그리고 알을 품고 있는 어미와 소리로서 서로 소통을 하여 거의 동시에 알을 깨고 나온다.

어미는 소리로서 생존에 필요한 기술을 가르친다. 뿐만 아니라 닭은 무리와 함께 공동체를 형성하며 무리 가운데 개체별 크기나 품행에 따라 사회적 서열이 빠르게 결정된다.

행동학에서는 닭이 만드는 ‘쪼기서열(peck order)’을 사회적 서열 결정의 기본양식으로 삼는다. 그리고 닭은 단순한 겁쟁이가 아니다. 가장 높은 서열의 수탉은 공동체 내의 동료나 암탉 및 어린 닭들을 잘 지키며 보호한다.

청각이 예민하여 작은 소리에도 자기보호 본능으로 도망하지만 알을 품고 있거나 병아리를 데리고 가는 암탉은 구렁이나 개가 지나가도 도망하기는커녕 오히려 덤벼든다.

닭은 자연과 시간 및 환경변화를 민감하게 알아차린다. 어둠이 물러가고 새벽이 다가옴을 알리는 닭의 울음이나 낯선 손님이나 짐승이 나타날 때 새끼나 동료에게 알리는 위험 신호도 있다. 선견지명이 있어 미래에 대한 대처능력이 있다는 닭의 지혜를 알았음인지 우리 선조들은 닭의 여러 가지 모습을 그리기 좋아했고 학문과 벼슬을 꿈꾸던 선비들의 서재에는 닭 그림을 걸었다.

이중섭 화백의 ‘닭과 가족’ 그림은 가족과 함께 보낸 행복한 시간을 그리고 있으며, 조선 후기 숙종 때 화가인 변상벽의 ‘암탉과 병아리’ 그림 속에는 새끼들에게 벌레를 물어다 주는 따뜻한 모성애가 나타나 있다.

닭의 해를 맞이하여 우리 정치지도자는 물론 온 국민들이 닭으로부터 교훈을 얻은 지혜가 있기를 바란다.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치킨 게임은 더 이상 허용하지 말자. 어두움 속에서 빛이 다가옴을 알고 새로운 변화에 대처하는 새벽을 깨우는 닭 울음과 앞뜰에서 병아리를 먹이는 암탉의 평화와 사랑이 넘치는 우리나라가 되도록 다짐하는 송구영신을 소망한다.

 

 

강창원 건국대학교 명예교수  kkucwkang@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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