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美 국무장관 시절, 한국을 찾았던 힐러리 클린턴.

[여성소비자신문 김영 기자] 미국 대통령 선거 재수에 나선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후보가 4년여간 이어져 온 ‘대세론’에도 불구하고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와의 본선 경쟁에서 패했다. 2008년 오바마 대통령과 치른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이은 두 번째 패배다. 1947년생인 힐러리 클린턴의 나이를 고려하면 사실상 마지막 대선도전이 수포로 돌아간 모습으로 최초 출현이 기대된 미국 여성 대통령 역시 당분간 보기 힘들 예정이다.

미국이란 나라가 세워지고 240년, 미국 내 여성 참정권이 보장되고 100여년 만에 첫 탄생이 기대되던 미국 여자대통령 출현이 또 한 번 무산됐다. 오바마 대통령 재선 성공 후 강하게 제기돼 온 힐러리 클린턴 차기설이 선거 마지막 순간 뒤집힌 것이다.

현지시각으로 8일 치러진 미국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은 득표수에서는 트럼프를 근소하게 앞섰으나 선거결과를 결정하는 선거인수에서 크게 밀렸다. 캘리포니아, 뉴욕주 등 유권자 수가 많은 지역에서 승리했지만 경합주에서 아슬아슬하게 트럼프에 밀렸기 때문이다.

클린턴의 패인에 대해선 그녀 개인의 치부 때문이란 지적이 지배적이다. 여성에 대한 편견도 일정부분 작용했을 수 있으나, 선거과정에서 보여준 그녀의 신뢰할 수 없는 모습에 미국 국민들이 등을 돌렸다는 분석이다.

특히 클린턴은 당초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하던 남성 백인층의 마음을 되돌리지 못한 채 본인 지지세력이라 여겨졌던 여성과 히스패닉계 유권자들에게도 생각만큼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여성 유권자의 경우 지난 대선 때 오바마 대통령을 선택한 여성 유권자 수와 클린턴을 선택한 여성 유권자 수가 거의 비슷한 비율을 보였다.

기존 주류 정치인에 대한 미국인들의 반감이 상당했던 가운데, 월가와의 유착 의혹 및 호화로운 생활상 그리고 측근의 선거개입까지 터져 나오며, 선거 막판 그녀에 대한 불신이 크게 증가했고 결국 민주당 지지층이 아닌 여성유권자의 마음을 그가 가져오지 못한 것이다.

샌더스 지지층 흡수 실패

클린턴은 민주당 대선 당시 버니 샌더스란 예상 외 후보와 경쟁에서 상당한 곤경에 처했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도널드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미국 내 기존 정치질서와 사회 양극화 등에 회의감을 가지고 있던 상당수 젊은층으로부터 큰 인기를 끌었다.

트럼프와 차이가 있다면 버니 샌더스가 추구하는 미국은 민주사회주의 노선이 자국 내 부의 재분배에 핵심 가치를 두고 있는 반면 트럼프는 미국제일주의에 기반한 보호주의 정책을 주장해 왔다는 점이다.

클린턴으로서는 트럼프와 승부에 앞서 샌더스 지지층을 완벽히 흡수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나 실제 선거에서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오바마에 대한 불만도 한 몫

클린턴을 적극 지지했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경우 본인에 대한 지지율 자체는 높지만 그와 민주당의 경제, 외교, 복지, 교육 정책 등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 또한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불만과 분노를 트럼프가 건들었고 백인층이 이에 환호했던 것이다.

대표적인 게 오바마 대통령이 주도한 의료보험시스템 일명 ‘오바마케어’다. 오마바 정부는 대형 제약사 등 거대 이해집단 개혁에는 실패했다. 내년엔 일부 주의 보험료가 50%이상 오를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왔다. 더 많은 의료보험료를 부담해야 하는 국민들의 불만은 커질 수 밖에 없었다. 트럼프는 오마바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며 “작동하지 않는 나쁜 제도인 오바마케어를 없애버리겠다”고 했다.

거짓말 이미지에 여성, 중장년층 등 돌려

8일 CNN이 2만여명의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출구조사 결과 클린턴을 지지한 여성은 54%로 예상보다 낮았다. 45세 이상 유권자들은 클린턴 지지율이 45% 정도에 그쳤다.

여성과 중장년층이 클린턴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선 선거 막판으로 갈수록 뚜렷해진 그의 ‘거짓말’ 이미지 때문이다.

트럼프는 그녀에 대해 ‘사기꾼 힐러리 클린턴’이라 공격했고 뉴욕타임스(NYT)와 CBS가 대선 일주일 전(10월 28일~11월 1일) 유권자 1333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클린턴이 정직하고 신뢰할 만하다’고 답한 사람은 32%에 불과했다. 64%는 클린턴이 부정직하고 신뢰할 수 없다고 답했다.

클린턴이 불신 이미지를 쌓게 된 데는 e메일 스캔들이 한몫했다.

그가 국무장관으로 재직하던 2009년부터 4년간 개인 e메일 서버로 국가기밀이 포함된 문건을 주고받았다는 의혹으로 미국 연방수사국(FBI)는 이 사건에 대해 ‘무혐의’ 처리했으나 트럼프는 이를 계기로 클린턴의 도덕성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선거 막판 클린턴의 비서 후머의 개인 컴퓨터에서 그의 이메일이 대량 발견된 것 역시 문제가 됐다.

‘클린턴 재단’의 비리 의혹도 그의 도덕성에 흠집을 냈다. 클린턴 재단은 클린턴 일가의 로비 창구로 의심을 받았다. 올해 초 보수성향의 시민감시단체 ‘사법감시’는 클린턴 재단과 국무부가 유착관계에 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클린턴 재단의 고액 기부자들이 클린턴 재임 당시 국무부로부터 각종 특혜를 받았다는 것이다.

고액 강연료 문제도 클린턴에 대한 불신 이미지를 더했다. 클린턴은 남편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함께 수백회 강연에 나갔는데, 강연료가 한 회당 최고 28만 달러에 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클린턴 부부가 강연료로 벌어들인 수익은 550만 달러 정도로 알려졌다.

더욱이 그는 2008년 금융위기를 유발한 월가에서 그들의 이익을 옹호한 강연을 했던 것으로도 전해지며 유권자들의 분노를 샀다.

클린턴으로서는 버니 샌더스 지지층 흡수도 실패했고 오바마에 대한 백인층의 반감도 어찌 하지 못했으며, 결정적으로 본인의 도덕성에 흠집이 발생하며 다 잡은 승리를 놓치고 말았던 것이다.

김영 기자  young@wso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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