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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면목구명숙의 행복한 시 읽기
구명숙 숙명여자대학교 명예교수 | 승인 2016.10.24 16:04

                                     본래 면목
             
              구이람

얼음이 햇볕에게 몸을 눕힌다
얼음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본래 제 모습으로 돌아가
다시 물의 몸을 되찾는 것일 뿐

나뭇잎이 떨어진다
다만 부서져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잘 익어 가벼이 단풍잎으로 흩날리다가
새 봄을 푸르게 장식하는 썩지 않는 꿈일 뿐
 
-시 감상-

걷기와 명상의 계절,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계곡물 소리, 새들 지저귀는 소리를 따라 단풍 속으로 흠뻑 빠져 들면, ‘나’도 가을이 되고 말 것이다. 굳이 설악이나 오대산이 아니더라도 여기저기 익어가는 단풍을 바라보며 가까운 산을 걸어도 가을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가을 속에서 치유와 휴식을 위해 참 된 나를 찾아, 본래면목을 찾아 걷는 길은 더욱 깊고 그윽하다. 구이람의 “본래면목”(『걷다』 시학, 2012)이란 시가 떠오른다.

본래면목(本來面目)이란 인간과 자연의 본성을 말한다. 우주의 생명이요, 진리요 에너지라는 것이다. 이는 ‘본디 모습’ ‘원래 얼굴’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던가.

모든 사람이 갖추고 있는 본성, 오염되지 않은 본래 마음을 말하는 것이리라. 삶과 죽음이 무엇인지 언어로 다 설명하기 어렵기에 틱 낫한 스님은 걷기 명상으로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가르치고 있는 것일까.

깨달음은 존재의 원초적인 실상인 본성(本性)을 증득(證得)하는 것이다. 어떤 두려움도 구함도 바람도 의지함도 없는 무심(無心)의 상태가 깨달음이라 한다.

깨달음은 언제나 마음의 진정한 평화로 이어지며, 기쁨과 행복이 잔잔히 흐른다. 신비롭고 성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는 부처의 모습이 본래면목일 것이다.

그래서 선사(禪師)들은 자신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찾는 것을 화두로 삼으라하는 것이 아닐는지. 본래면목이라는 말은 부모미생전(분별심이 일어나기 이전)과 같은 말이다. 흔히 두 구절을 합쳐서 ‘부모미생전 본래면목’이라고 한다. 부모로부터 태어나기 전 모습은 무상(無相)이라 한다.

구이람의 시 본래면목(本來面目)은 성스럽고 아름다운 삶의 본래 의미와 가치를 얼음과 나뭇잎에서 발견하고 있다. 2연에서 “나뭇잎이 떨어진다/다만 부서져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잘 익어 가벼이 단풍잎으로 흩날리다가/새 봄을 푸르게 장식하는 썩지 않는 꿈일 뿐”라고 노래한다.

소멸과 생성의 윤회가 영원하며 하나라는 것을 일깨워 주고 있다. 물이 흐르는 계곡을 걸으면서 나와 자연이 하나 됨을 느끼게 된다. 자연은 사람의 마음을 비우게 하고 비움은 상처를 치유하면서 우리의 본래면목을 찾게 할 것이다.

한편, 본래면목이란 남을 흉내 내지 않고 묵묵히 자기만의 걸음을 걷는 일이다. 여기서 시인은 맨얼굴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무념무상의 마음이다. 모양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영혼의 때를 벗기는 아름답고 자유로운 마음일 뿐이다. 본래면목은 사람들 본래의 진실한 모습이며, '참 나'이며, 순수한 인간상을 말한다.

그것은 망상이나 분별심이 있으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자신의 본래면목을 자각하고, 그것을 되찾으려는 부단한 노력이 곧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는 길이 아니겠는가.

이 시를 읽으며, 미국을 대표하는 지성 켄 윌버가 그의 책 ‘모든 것의 역사’에서 “온 우주가 진화를 통해 도달하는 최종 목적지는 결국 우주의 참된 본성이며, 우리가 영의 단계에서 깨닫게 될 자신의 본래면목이다”라고 역설한 대목이 또한 상기되었다.  

 

구명숙 숙명여자대학교 명예교수  k93m@s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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