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냐, 자녀냐'는 직장에 다니는 기혼 여성에게 피할 수 없는 딜레마다. 출산을 결정하려는 직장인 기혼 여성들은 생명을 가진다는 기쁨보다는 덜컥 겁이 난다. 달라진 몸 때문이 아니다. 육아 휴직을 얼마나 신청해야 할 지, 아니면 어린이 집에 맡겨야 할 지, 아이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 같은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하는 여성들은 자연 출산을 뒤로 미루게 된다. 그 결과 매년 40세 이후에 첫 자녀를 가지는 노산이 날로 증가하고 있다.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현실이란 벽을 생각해보면 출산이 꺼려지는 것은 당연지사라고.

출산 후엔 퇴물 취급…출산휴가 법 위반해도 처벌 미비
위기에 몰린 무상보육 정책, 지자체 예산고갈 도미노

지난 9월 3일 통계청 출생통계에서 씁쓸한 최고 기록이 발표됐다. 2011년 40세 이상 산모가 낳은 아이는 1만635명으로 통계를 잡기 시작한 1981년 이래 사상 최대 수치를 기록했다.

이는 2010년 9291명보다 14.5%가 증가한 수치이며, 10년 전인 2001년 5445명을 기록한 것에 비하면 2배 이상에 달하는 수치다.

노산을 하게 되면 산모로서는 부담해야 할 위험이 많다. 통상적으로 고령 임산부들은 자연 유산 위험이 젊은 산모보다 높다. 20대 산모의 경우 자연유산 위험이 12%, 하지만 30대가 되면 20%이상 증가한다.

그 이유는 당연하다. 일반적으로 중년 산모는 젊은 산모보다 건강상태가 안 좋기 때문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불규칙한 식생활, 하루 종일 앉아 있는 생활습관, 부족한 운동량 등이 겹쳐지면 이미 임신을 하기 전부터 고혈압, 당뇨병 등 각종 성인병에 시달리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여성들이 이유없이 출산을 미루는 것은 아니다. 직장을 잃지 않기 위해, 생계비 문제 때문에, 변변한 양육시설 등이 없어서 등 만만히 볼 수 없는 문제가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육아휴직 규정 지켜지지 않아

육아 휴직을 최대 2년까지 보장해준다는 모 항공사. 이 회사는 전체 1만700명의 직원 중 55%가 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회사에서 자체적으로 부모 교실을 운영해 직원들에게 자녀 학습의 노하우를 가르치는 부모 교실도 운영하고 있다. 불가피하게 출산문제로 퇴직을 한 여직원들이 재취업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대부분의 기업에서 이와 같은 경우는 꿈같은 일이다. 출산 이야기만 꺼내면 자연 퇴직으로 유도하는 회사 분위기가 무서워 아예 입에 꺼낼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기혼 여성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육아휴직 기간 내에 다른 사람을 채용하거나 아니면 복귀 후에 한직으로 발령내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말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영유아보육법에 의거해 상시근로자 300인 이상 대기업을 직장보육시설 설치 의무대상으로 지정했지만 10곳 중 3곳 이상이 규정을 이행하지 않았다.

새누리당 신의진 의원의 자료에 따르면 공공기관을 포함한 대기업 562곳 중 209곳(37.2%)이 직장보육시설을 설치하지 않았다. 그 중엔 대기업형 의료기관 24곳도 포함돼 있다. 위반 업체는 모두 직장보육시설에 대한 대책을 고려하지 않았다.

유명무실한 제도

그나마 대기업의 경우는 나은 편이다. 중소기업에 근무하거나 비정규직 여성들은 더 취약한 위치에 놓여 있다. 중소기업은 규제 자체가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을 뿐더러 고용노동부의 시정 지시에만 응하면 처벌을 간단히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가 8월 5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1년 육아휴직 사용자 5만8137명 중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근로자는 3만2416명(55.8%), 대기업 근로자는 2만5721명(44.2%)으로 드러났다. 수치상 만으론 중소기업 근로자가 더 많지만 중소기업에 다니는 노동자 수가 전체 83%에 달한 점을 감안하면 대기업 근로자가 중소기업에 비해 6배나 높은 이용률을 가진다.

비정규직의 경우 임신이나 출산은 계약해지로 직결된다. 일반적으로 비정규직일수록 가구 소득이 낮기 때문에 안심하고 가정에서 자녀를 양육할 수 있는 형편도 아니다. 오히려 양육비를 대기 위해 다시 직장을 구해야 한다.

물론 최소한의 보호책조차 없는 것은 아니다. '임신·출산 후 계속고용지원금'제도에 따르면 임신 혹은 출산을 이유로 계약기간이 만료된 비정규직 근로자를 사업주가 출산일로부터 1년 내 재고용하면 최대 540만원까지 지급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2006년 시행 후 2010년 421명, 2011년 435명으로 수혜자가 늘어나고 있지 못하다.
법으로도 출산휴가는 법적으로 보장된 제도로 사업주가 이를 위반 시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관리가 미비한 틈을 타 제도가 안착을 하지 못하고 있다. 2010년 70개, 2011년 66개 업체가 출산휴가 위반으로 적발됐지만 실제 처벌된 업체는 2010년 3곳, 2011년 5곳에 불과했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고용부는 '근로감독관집무규정'에 따라 위반사항 적발시 먼저 시정지시를 해 시정이 완료된 경우에는 종결 처리를 하고 시정지시에도 불구하고 시정하지 않는 경우에 사법처리를 하고 있다"며 "시정조치로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어린이집 대기자 줄이어

직장 여성들은 생계를 이유로, 전업 주부들은 시간을 이유로 자녀를 어린이집에 맡기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올해 3월부터 0~2세 전면 무상보육이 시행되면서 비용 부담이 사라지자 어린이집 자리는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 서울 영등포구의 모 어린이집의 경우 대기자가 200~500여명이나 된다.

특히 어린이집들이 인근 거주자를 중심으로 영아를 받으면서 상대적으로 먼 위치에 사는 직장 여성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자녀를 어린이집에 맡기려면 뱃속에서부터 대기신청을 해야 한다는 냉소 섞인 농담이 나올 정도다.

임채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보육서비스의 실수요인 저소득층·맞벌이부모·다자녀 가구가 우선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겠다"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되려 불을 지피는 결과를 낳았다. 직장인 여성, 전업주부를 막론하고 늘어나는 어린이집 수요는 무시한 채 공급을 늘린 방안은 세우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예산이다. 0~2세 전면 무상보육 정책은 시행 1년도 안 돼 이미 연쇄 예산고갈 사태에 직면하고 있다. 서울 서초구·구로구·송파구·중구 등 서울시 내 9개구는 이미 '0'이 됐으며 9월 용산·동대문구 등 10개구, 10월엔 강북구·중랑구를 마지막으로 서울 시내 모든 자치구의 예산이 바닥난다.

지방지자체도 사정은 같다. 경기도가 연말까지 필요한 보육예산은 1조4700억원. 올초 마련한 예산은 1조200억원에 불과했다. 대전·충남은 10월, 경남·충북·전북은 11월을 마지막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예산고갈 현상의 원인은 정부와 정치권이 수요예측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결국 정부는 어린이집 무상대책을 중단했다. 정부는 자녀의 나이가 어린 만큼 직접 양육을 하려는 부모들이 많을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연령과 관계없이 애초에 어린이집에 대한 잠재적인 수요가 많았던 차에 공짜 정책은 불섶에 불 붙이는 효과를 야기했다. 한 관련 공무원은 "무상보육이 중단돼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크게 타격을 받고 있다"이라고 지적했다.

고승주 기자  sj.go@wsobi.com

<저작권자 © 여성소비자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