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나 양육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부모들이 늘어나면서 어린이집에 대한 수요도 부쩍 늘어났다. 하지만 어린이집에 대한 경각심도 동시에 증가하고 있다. 어린이집에 관련된 사고가 빈발하고 있지만 제도, 운영 실태는 미흡한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어린이집 정기 실태조사 없어…관할 구청 손도 못써
민간 주도형 보육구조 각종 문제 고착화 시킬 뿐

유통기한이 1년 2개월이 지난 유부초밥, 410일 지난 감자전분, 358일이 지난 치즈. 324일 지난 건포도. 영양이 어느 시기보다 절실한 어린 자녀들이 이런 것을 먹는다고 생각하면 자연 몸서리가 쳐진다. 하지만 이것은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어린이집에서 식재료 관리 위반으로 적발한 실제 사례다.

어린이집 건축자재에서도 문제는 발견된다. 지난 5월 감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건물 면적문제로 건축자재 석면함유조사에서 제외된 어린이집이 전체의 절반을 넘는 것으로 드러났다. 석면은 국제 암 연구기관(IARC)에서 1 등급으로 분류한 발암물질로 제도상 초·중·고교 및 어린이 보육시설은 건물 면적과 관계없이 석면 함유 조사를 하고 관리토록 하고 있지만 제도가 현실을 따라가고 있지 못하는 상황이다.

실태점검 없이
서류만으로 관리

민간어린이집에 대한 정부 정책은 서로 엇박자를 내고 있다. 한편에서는 완화와 규제를 동시에 진행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올해 3월 무상보육이 전면 실시되면서 어린이집 고갈현상이 심각해지자 규제완화를 선언했다. 민간어린이집의 설립을 촉진하기 위해 위해서다. 정부는 교사 대 아동비율 완화, 초과보육 규정 완화, 보육교사 자격증 취득 경로 확대 등을 통해 규제 완화책을 내밀었다.

이러한 완화책은 보육교사와 이에 수반된 어린이집의 질을 떨어뜨릴 위험이 있는 만큼 철저한 관리감독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교육과 안전에 대해선 손을 놓은 듯한 모습이다.

2009년 어린이집 아동학대 문제가 사회적 논란의 대상이 되자 서울시는 국공립어린이집 일부를 대상으로 CCTV를 설치했다. 그러나 2011년 10월 구립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의 아동 학대 장면이 고스란히 CCTV에 찍혀 보도되자 문제가 된 지역 어린이집 원장들이 합심해서 CCTV를 제거했다.

밀폐된 어린이집에서 학대를 했는지 안 했는지 알 수가 없는 상황에서 사실을 규명할 유일한 수단은 CCTV뿐이지만 CCTV설치가 의무가 아닌 권고사항이기 때문에 서울서도 어찌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나마 국공립의 경우는 조금 나은 편이다. 전체 어린이집 공급의 95%에 달하는 민간어린이집엔 실질적인 CCTV 설치 시도 자체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꾸준히 실태점검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관할 구청 내 어린이집 실무 인원이 있지만 한, 두 명에 불과해 담당 업무를 소화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황이다. 실태점검이나 정기검사는 아예 엄두도 내지 못한다는 것이 일선 관계자들의 말이다.

이러한 가운데 어린이집 안전문제가 계속 들끓고 있다. 지난 8월 29일 울산의 한 어린이집 원장은 '말을 안 듣는다'등의 이유로 18개월 된 영아의 발바닥을 바늘로 찌르며 학대하다 검찰에 송치됐다. 같은 시기엔 태풍 볼라벤이 북상함에도 불구 부모들이 어린이집에 자녀를 맡긴다는 이유로 원생을 학대하겠다는 글을 인터넷에 올린 한 보육교사가 논란이 됐었다.

'미래가 없다' 떠나는 보육교사들

규제완화 및 허술한 관리감독은 원생만이 아니라 보육교사의 설 자리도 지우고 있다.

하루 평균 근무시간 9.5시간, 월 평균 급여 113만원, 한 해 동안 시설 한 곳 당 이직자 수 평균 2.1명. 보육교사들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정부는 보육교사 1인당 처우개선비를 지급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빌미로 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의 월급을 깎는 관행이 비일비재해 실제로 그 효과를 체감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보육교사 1인당 돌봐야 하는 아이의 수도 정해져 있지만 이를 원장이 어겨도 어떻게 항의할 방법이 없다.

특히 연합회를 통해 어린이집 원장들끼리 연락망을 형성한 상황에서 잘못 보이게 되면 해당 지역에 발을 들이밀 수 없는 구조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민간 어린이집의 규모가 다소 작기 때문에 년차 수에 대한 대우를 받기 어렵다는 점이다. 5년차나 10년차나 받는 임금의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보니 일찌감치 회의를 느끼고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

민간주도의 부작용

반면 정부의 규제 및 관리책은 어린이집 재정에 집중되어 있다. 대표적인 것은 두 가지. 보조금을 착복한 어린이집에 대한 처벌, 구간결제제도 등으로 대표되는 보육료 지원책이다.

지난 5월 민간어린이집에서 보조금 횡령이 대거 적발되자 보건복지부는 처벌강화 카드를 내밀었다. 김황식 국무총리도 정부 보조금을 착복한 어린이집에 대해 사회기강 확립 차원에서 엄정 대처를 요구했다.

시설 운영정지 및 폐쇄, 원장 자격정지, 보조금 환수 등의 행정처분과 함께 경찰에 고발해 형사처벌까지 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민간어린이집 사업자들은 정부가 어린이집 경영에 필요한 최소 운영비엔 관심이 없으면서 소수의 사례를 빌미로 삼아 다수의 영세 민간어린이집을 압박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구간결제제도다. 구간결제제도는 원생의 출석일수만큼 보육료 지급하는 제도로 출석일 수가 1일~5일일 경우 보육단가의 25%를 지원하며 6일~10일일 경우 50%, 11일 이상일 경우 100%를 지급하는 방식이다. 반면 인건비, 급간식비는 원생의 출석과 상관없이 고정적으로 지출되기 때문에 재정압박이 심하다는 입장이다.
또힌 시설설치비 및 운영자의 적정이윤을 반영한 표준보육원가 재산정을 해야 운영 및 교육의 질이 좋아질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간어린이집연합회 장진환 위원장은 “복지부는 아이들에게 양질의 교육서비스를 제공하기 보다는 오로지 국가 예산 절감만을 우선시 한다”며 “최소한의 이윤 보장도 해주지 않으면서 민간 어린이집 원장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한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부족한 재원으로 다수의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민간주도로 어린이집 문제에 대처하면서도 정작 이에 관한 관리감독은 허술하다는 것에서 문제가 발생했다고 지적한다.

백선희 서울신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민간어린이집에 국가가 보육료를 100% 지원하는 식의 현행 무상보육 방식은 그 동안 민간주도형 보육구조 하에서 발생한 각종 문제들을 고착화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고승주 기자  sj.go@wso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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