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지속적괴롭힘범죄 처벌 등에 대한 특례법안 마련을 위한 공청회'가 열렸다. <사진=여성소비자신문>

[여성소비자신문 조미나 기자] ‘열 번 찍어 안 넘어 가는 나무 없다’는 옛 속담은 ‘노력하면 안되는 것이 없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나, 최근 들어선 ‘남녀 사이에서도 꾸준한 애정공세가 상대방의 마음을 살 수 있다’는 뜻으로도 자주 치환돼 쓰이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선 이 같은 비유에 대해 “나무를 얻기 위한 나무꾼의 마음은 헤아리면서, 열 번 찍히는 나무의 입장은 헤아리지 않는다”며 일방적 애정공세의 위험성에 대해서 꾸준히 지적해 왔다. 스토커들의 비정상적이고 지속적인 감정 표출로 인해 피해자들은 정신적·신체적 피해를 호소하고 있기 때문.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도를 넘어선 애정표현, 이른바 스토킹(stalking)이 오히려 상대에게 공포감을 조성해, 젠더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스토킹 범죄를 일으키는 스토커들의 범죄유형은 매우 다양하며 죄질 또한 절대 가볍지 않다. 애정을 방패삼아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거나, 핸드폰 배터리가 방전될 때까지 전화·문자를 하는가 하면, 나체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하기도 한다. 나아가 일부 스토커들은 스토킹 상대를 감금하거나 살해하는 등의 중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볼 수 있다.

반면 우리 사회에서는 스토킹 범죄에 대해 사회적 문제로 여기기보다는 가볍게 보는 측면이 없지 않다. 가시적인 피해가 발생하기 전까진 이를 경범죄로만 취급하다 보니, 거리에 침을 뱉거나 쓰레기를 버리는 행위 등과 비슷한 수준의 벌금형만 가해자들에게 내려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에 최근 법조계 및 정치권을 중심으로 스토킹의 심각성을 세상에 알리고, 별도의 법률 제정을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지난 28일에는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대한변호사협회 주최 국민의당 김삼화 의원 후원으로 ‘스토킹범죄 처벌 등에 대한 특례법안 마련을 위한 공청회’가 개최되기도 했다. 공청회에서는 스토킹범죄 피해자들의 피해사례에 대한 소개와 함께 양형 기준 강화를 위한 방안이 제시됐다.

특히 이날 공청회에는 ‘스토킹 처벌법’ 발의를 추진 중인 김삼화 의원을 포함해 같은 당 최도자, 신용현, 김수민 의원이 함께 했으며, 김학자 변호사 진행 아래 홍지혜·최익구 변호사의 ‘특례법안 제안 이유 및 정의와 내용’ 등에 대한 발제 및 참석자 토론 등이 진행됐다.

국민의당 김삼화 의원. <사진=여성소비자신문>

한편 공청회에 참석한 의원들은 하나같이 스토킹을 ‘지속적 괴롭힘범죄’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처벌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삼화 의원은 “스토킹에 대해 우리 사회가 관대하다”며 “스토킹의 끝은 강력범죄임에도 불구, 처벌은 솜방망이처럼 가볍다”고 꼬집었다. 이어 “17대 국회부터 추진하던 법안인 만큼, 오늘(회의 결과)를 바탕으로 꼭 발의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신용현 의원의 경우 “평소에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두 가지 있다”면서 “하나는 술에 취해 누군가를 폭행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어떤 피해자가 끝까지 몰려서 피해를 받아야 처벌을 받

는 것”이라고 말했다. 스토킹 범죄의 특성상, 피해자가 폭행·살해 등의 피해를 입기 전까지는 처벌이 어려운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그런가하면 김수민 의원은 “피해자의 대부분이 제 나이의 여성들이기에 더욱 와닿는 일”이라며 “공청회를 통해 구체적 제도가 확립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국민의당 김수민 의원. <사진=여성소비자신문>

절대 쉽게 볼 수 없는 스토킹 피해, 처벌은 약소

#독일에서 유학생활을 하던 A씨(남, 36세)는 2011년경 같은 건물에 거주하던 B씨(여,38세)에게 구애를 했지만 거절당하자 B씨를 미행하기 시작했다. A씨는 B씨가 다니는 교회에 계속 쫓아왔는데 B씨가 교회를 옮기자 옮긴 교회까지 따라왔다. A씨는 한국에 귀국한 후에도 약 6개월에 한 번씩은 독일에 있는 B씨를 찾아가 계속 따라다녔다.

#C씨(50대)는 여자친구인 D씨와 이별한 후, D씨의 나체 사진, 속옷 사진 등을 D씨의 집 근처에 유포하며 다시 만나달라고 협박했다. C씨는 “전화하지 않으면 친오빠에게 사진을 보내겠다”는 내용의 글을 용지에 적어 D씨 집 앞에 놓아두기도 했다.

#E씨(여, 43세)는 에어로빅 강사인 F씨로부터 댄스교습을 받은 후 F씨의 집에 들어가 침대에 누워있거나 F씨 소유 승용차에 몰래 앉아있기도 했으며 F씨의 집과 직장에 찾아가 소란을 피웠다.

위 사례들은 이날 공청회에서 소개된 국내 스토킹 피해 사례들로, 우리 사회에서는 이처럼 여러 유형의 스토킹 범죄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자행되고 있다.

지난 2014년 한국여성민우회와 한국성폭력상담소가 공동기획해 발표한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스토킹 행위로 피해를 입은 피해자 상담일지 분석결과’에서도 이 같은 경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조사 결과 피해자 240명이 겪은 스토킹범죄의 가해유형이 괴롭힘, 언어적 협박, 불시 방문 등 매우 다양했다. 최근 들어선 피해자를 물리적으로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방법 외에 전화, 문자 등 통신수단을 통해 연락하거나 사이버 상으로 괴롭히는 행위 또한 증가하고 있는 추세로 확인됐다.

다만 스토킹 피해자의 성별에서는 여전히 여성이 절대 다수를 차지했으며, 상당수 스토킹 가해자들은 전 애인 등 피해자와 아는 사이인 경우가 많은 것으로 조사결과 드러났다.

‘한국여성의 전화 가정폭력·성폭력상담소’의 2015년 상담통계자료 역시 이와 비슷했다. 전체 상담전화 1746건 중 스토킹 행위에 관한 상담은 총 162건(9.2%)이었는데, 그중 스토킹 행위 피해자의 성별 또한 모두 여성이었다. 또한 스토킹 행위의 가해자 중 96.9%를 피해자가 알고 있었다.

또 해당 통계자료에 따르면 상담 피해자 중 절반 이상은 1달 이상 스토킹 피해를 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스토킹 피해기간이 1개월~6개월 피해자가 32%, 6개월~6년이 28%였다.

그러나 정작 우리 사회에서 스토킹 범죄자에 대한 처벌은 너무 가벼운 편이다. 스토킹에 대해 징역을 선고하는 해외와 달리 국내에서는 경범죄로 처벌하고 있는 것.

“스토킹범죄가 지속적으로 이뤄짐에도 불구, 그에 대한 제재는 단발적으로 끝나 사실상 피해자가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상당하다.

실제 현재 스토킹행위에 대한 현행법은 ‘경범죄 처벌법’ 제3조 제1항 제41호(지속적 괴롭힘)에 따라 1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의 형으로 나와 있다. 동법 시행령 별표에서 범칙금을 겨우 8만원으로 규정하고 있다.

‘스토킹행위’에 대한 정의의 모호성 또한 문제에 대한 사회적 접근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현행법 상 ‘지속적 괴롭힘’은 ‘상대방의 명시적 의사에 반해 지속적으로 접근을 시도, 면회 또는 교제를 요구하거나 지켜보기, 따라다니기, 잠복하여 기다리기 등의 행위를 반복해 하는 사람’으로 명시돼 있다.

반면 최근 발생하는 스토킹 방법은 과거에 비해 더 다양해지고 있다. 이에 정황 상 스토킹 행위임에도 그에 대한 정의가 없어 법망을 빠져 나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 국내에선 경범죄 처벌법 외 스토킹 행위 자체를 규제하는 법률이 존재하지 않는다. 스토킹 행위가 주거침입, 명에훼손, 상해, 성폭력, 살인 등 처벌 규정이 있는 범죄의 방식으로 행해지거나 발전할 경우메만 처벌이 이뤄지고 있다.

반면 해외에서는 스토킹 정도에 따라 이를 엄격히 처리하고 있다.

1990년 캘리포니아주의 ‘스토킹금지법’ 제정을 시작으로 50개 주에서 스토킹행위를 금지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연방 스토킹대책센터가 2004년 각 주의 스토킹관련 법률들을 분석해 ‘모범스토킹규제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형량은 평균 2년 이상 4년 이하의 징역형이다.

일본에서도 지난 2000년 ‘스토커행위 등의 규제 등에 관한 법률’이 도입됐다. 이후 일본은 2011년과 2012년에 연이어 스토커에 의한 살인사건이 발생하자 경찰의 소극적 대응 및 위 법률의 미비점이 문제됐다. 이에 2013년에는 피해자의 금지명령 신청권, 가해자의 금지명령 위반시 처벌 규정 등을 도입했다. 최근에는 위 법률의 적용대상을 SNS까지 확대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마련 중이다.

<사진제공=뉴시스>

한국형 ‘스토킹 처벌법’, 어떻게 만들어질까?

김삼화 의원, 대한변호사협회 여성변호사특별위원회 등이 주축이 돼 추진 중인 ‘지속적 괴롭힘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가명)의 주요 골자는 다음과 같다.

◆스토킹 명칭 변경 -> ‘지속적 괴롭힘’으로 명칭을 변경한다

- 스토킹을 ‘지속적 괴롭힘’이라는 명칭으로 변경. 최근 법률 규정이 한글표기를 따를 뿐 아니라, 현행 처벌규정인 경범죄 처벌법에서도 ‘지속적 괴롭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

◆지속적 괴롭힘 정의 -> ‘다른 사람의 의사에 반하여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명시된 행위를 해 불안감이나 공포심을 일으키는 것’으로 정의한다.

- 접근하거나 따라다니거나 진로를 막아서는 행위, 주거·직장·학교 그 밖에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장소 또는 그 부근에서 기다리거나 지켜보는 행위, 통신수단을 이용해 글·말·부호·음향·그림·영상·화상 또는 물건을 도달하게 하는 행위, 직접 또는 제3자를 통해 물건등을 도달하게 하거나 주거등 또는 그 부근에 물건 등을 두는 행위 등.

◆피해자 보호범위는 ‘생명과 신체, 사생활의 안전’으로 한정한다.

- 신체의 자유, 사생활의 자유 등으로 규율범위가 지나치게 확대해석되지 않도록 보호 대상을 신체 및 사생활의 안전으로 한정한다.

◆ 현장에 출동한 사법경찰관리는 행위자에 현장조치를 취해 피해자를 보호한다.

- 현장에 출동한 행위자와 피해자를 분리해 수사해 피해자를 보호한다. 또한 행위자에게 범죄를 중단할 것을 통보한 후에도 지속적 괴롭힘을 계속할 경우 잠정조치를 경고할 수 있다. 또한 피해자가 요청한 경우 피해자지원기관에 연계한다.

◆ 법원은 사건의 원활한 조사와 피해자 보호를 위해 경우에 따라 잠정조치를 할 수 있다.

- 법원은 피해자의 주거등에서 100m이내의 접근 금지, 통신 수단등을 이용한 접근 금지, 유치장 또는 구치소 유치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

◆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이 피해자 관련 서류를 작성할 때 피해자의 인적사항은 기재하지 아니한다.

- 지속적 괴롭힘범죄가 계속될 우려가 있거나 피해자가 보복을 당할 우려가 있을 경우 조서 등에 피해자의 성명·연령·주소·직업 등은 기재하지 아니한다. 성명을 기재하지 아니할 경우 서명은 가명으로, 날인은 무인으로 한다.

◆지속적 괴롭힘범죄를 범한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 흉기 또는 그 밖의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고 지속적 괴롭힘범죄를 범한 사람은 위 항에 정한 형의 1/2까지 가중한다.

법안에 대한 발제가 끝나자, 현직 변호사, 판사, 검사 등의 법조인들은 토론을 통해 해당 법안의 실효성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진=여성소비자신문>

토론자들 “특례법 초안 완성도 높지만 현실 반영할 필요 있어”

토론자들은 ‘스토킹 처벌법(지속적괴롭힘범죄 처벌법)’의 입법 필요성에 공감하며, 특례법의 세부 사항에 대한 심층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민의당 한지영 여성정책전문의원은 “‘지속적괴롭힘’이라는 단어가 범죄 내용을 지칭하는 보다 정확한 용어일 수 있다”면서도 “다만 ‘스토킹’이라는 단어가 국민 인식 상 통용되고 있는 것을 감안에 용어 선정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특례법 초안에서 설정한 처벌기준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할 경우 범죄행위 성립이 쉽지 않아 입법효과가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것이다.

법원행정처 사법지원심의관인 권순건 판사는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며 “방법론 면에서 기존의 특별법 등의 방식을 사용하는 것이 입법에 유리하다”고 말했다.

또한 특례법 초안의 처벌 모호성 가능성을 제기했다. 제2조 1호 다.목의 ‘이와 유사한 수단’ 등의 표현과 마.목의 ‘그 밖의 위 각 목에 행위에 준하는 행위’등은 처벌범위를 모호하게 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는 “처벌의 미비점이 드러나는 부분은 과감히 삭제하는 것이 좋다”고 제언했다.

이어 그는 “경찰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출동했을 때 행위자를 현행범으로 체포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며 “이것이 가능하면 보다 효과적인 행위자 제재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법무부 형사법제과의 서효원 검사는 “법 자체의 완결성은 상당히 높다고 생각된다”며 “다만 실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어떤 절차를 통해서 작동이 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는 부분들도 있다”고 밝혔다.

서 검사는 이어 “가정폭력·아동학대처벌법, 일부 성복력 처벌법을 기반으로 초안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그 법들과 스토킹 처벌법의 목적이 동일한지에 대한 논의는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은 한국여성의전화 상담데이터베이스에 유형화된 스토킹 사례들을 기반으로 특례법에 대한 의견을 제시했다.

송 사무처장은 “규율범위가 지나치게 확대해석 되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지만 본 법안에 포함되지 못하는 스토킹피해도 있을 것”이라며 법안의 모호성을 최소화할 것을 제언했다.

이어 송 사무처장은 “스토킹 범죄는 친밀한 관계에서 피해가 더욱 심각하게 발생한다”며 “친밀한 관계에서의 스토킹 범죄와 스토킹으로 처분받은 전력이 있는 사람이 또 다시 같은 범죄를 저질렀을 때 가중처벌 하는 방안도 고려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지영 국민의당 여성정책전문위원, 권순건 검사, 서효원 판사. <사진=여성소비자신문>

조미나 기자  mina77@wsobi.com

<저작권자 © 여성소비자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