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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명숙의 행복한 시 읽기] 1초가 세월로 느껴질 때
구명숙 숙명여자대학교 교수 | 승인 2016.09.21 14:30

1초가 세월로 느껴질 때

                                 구이람

 

늘 세월의 맨얼굴이

보고 싶었네

어디서 무얼 하며 흘러가고 있는지

 

반포 어느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친구

손잡고 웃으며 서로 바라보노라니

삼십 년 세월이 거기 스쳐가고 있었네

 

흰 머리칼 주름살 속에서

순하게 웃는 입가에도 시간이 흐르고 있었네

 

그를 바라보니 세월의 어룽이 보이네

시간의 발자취 그대로 남아 있어

친구의 얼굴 내 얼굴로 떠오르네

 

-시평-

그럭저럭 잘 살아가다가도 어느 순간 문득, 내 나이가 얼마인가? 나는 지금 어느 지점에 서 있는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놀라서 자문할 때가 있습니다.

강물처럼 유유히 흘러가는 듯해도, 바람처럼 천지를 휘저으며 자유를 누리는 듯해도, 꽃처럼 어여쁘게 보여도, 그 속살에는 보이지 않는 삶의 무수한 아픔과 고통의 자국들이 웅크리고 있는 것이지요.

참으로 알 수 없는 시간의 흐름, 바쁘다는 핑계로 1초를 소홀히 하고 놓쳐버리면 시간은 단 0.1초도 머물러 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언제나 멈출 줄을 모르는 시간을 따라 숨 가쁘게 달리다 보면 존재조차 사라져 버리는 허망한 지점에 이르게 되고 말지요.

세월! 늘 나보다 한 발짝 앞서 가기에 세월을 붙잡지도 이기지도 못한다고들 하는 것인가 봅니다. 세월은 흐르고 끝없이 흘러감으로 해서 상처를 아물리는 약이 되기도 하고, 사정없이 엉킨 마음을 차곡차곡 풀어주고 치유해 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새로운 물결로 생성과 소멸의 변화를 일으킵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시간이지만 삶은 그리 공평하지 않기에 주변에 조바심치는 일들이 무수히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구이람의 시 ‘1초가 세월로 느껴질 때’를 다시 읽어봅니다. 빌딩 숲 거미줄에 걸린 듯 둘레를 정신없이 빠져나가려던 찰라, 어느 카페에서 우연히 30년 세월을 건너 뛴 친구와 마주치게 되는군요.

그 세월 내내 그리웠던 친구, 각자의 길을 찾아 순수하게 흐르고 흘러 왔지만 얼굴 주름살과 흰 머리칼이 대번에 세월의 어룽을 말해줍니다.

“너와 내가 비슷하게 늙어가겠구나. 나도 너를 닮아 있겠구나.” 1초의 순간에 세월을 느끼게 해주는 대목입니다. 한 참을 흘러왔으니, 이제 다시 가야할 길이 어디인지를 알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빚어놓은 작품들이 아직 완성되지 못한 채 머리를 숙이고 처마 밑에 앉아 있습니다. 다시 손길이 닿고 녹슬고 또다시 닦고 때를 묻히고,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어 한 줄기 햇볕을 소원할 때 비로소 예술 작품으로 아름답게 빛나겠지요. 1초가 세월로 느껴질 때,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가 봅니다.

구명숙 숙명여자대학교 교수  k93m@s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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