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열린 '2016 한,미 상속법- 유류분제도의 개선 방향' 심포지엄. <사진=대한가정법률복지상담원>

[여성소비자신문 조미나 기자] ‘백세시대’라 불릴만큼 노년기가 길어지면서 새로 떠오르는 이슈가 있다. 바로 ‘상속법’이다. 피상속자는 자기 의사에 따라 유산을 분배하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 상속인이 이의를 제기해 유산상속 갈등이 여러차례 이어지고 있는 것. 이때 이들이 내놓는 명분이 바로 '유류분'이다.

유류분이란 일정한 상속인을 위해 법률상 유보된 상속재산의 일정부분으로, 상속받는 자 외의 남은 가족의 생계를 고려해 일부 유산을 떼어놓은 것을 말한다. 미성년으로 경제적 능력이 없거나 생계가 어려울 경우가 바로 이에 해당한다.

2010년 이후 한국사회의 평균수명이 80세를 넘어서게 됐고, 상속이 개시될 때 자녀들의 연령은 30,40대 이상인 경우가 일반적이다. 또한 이 시기의 자녀들 대부분은 부모에 대한 부양의무 없이 경제적으로도 독립한 상태이기 때문에, 상속의 주된 이유였던 ‘자녀 부양 기능’은 설득력을 잃고 있는 모양새다.

이에 ‘사망자의 유산을 상속인에게 무조건적으로 상속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논의가 펼쳐지면서, 유류분 제도의 정당성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대한가정법률복지상담원(원장 양정자)에서는 7일 ‘유류분제도의 개선 방향’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심포지엄은 한국과 미국의 상속법을 비교 분석하고 현 상황의 문제점을 들어 개선방안을 논의하는 식으로 전개됐다.

발제에는 김상용 중앙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박영선 미국 오렌지카운티 한인변호사협회장이 나섰다. 토론에는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최금숙 회장 △김효선 여성신문사 사장 △이명숙 법무법인 나우리 대표 변호사 △김정숙 평택성폭력삼당소 소장 △이재연 숙명여대 아동복지학과 명예교수가 참여했다.

현형 유류법, 사회 변화에 맞지 않아

현행상 유언 자유의 원칙에 따라 피상속인은 자유롭게 자신의 재산을 처분할 수 있다. 유언에 의해 법정상속인이 상속에서 배제될 수도 있고, 상속인의 범위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 유증을 받을 수도 있다. 다만 이 유언자유의 원칙은 유류분에 의해서 상당한 제한을 받게 되기 때문에 상속자유가 침해될 수 있다는 논란이 있어, 유류분제도의 정당성을 재검토하자는 제언이 나온 것이다.

민법상 유류분은 피상속인과 유류분 권리자, 다시말해 일정 재산을 받을 권리를 가진 자 사이에 최소한의 유대관계가 존재하지 않아도 인정되고 있다. 예를 들어 자녀의 무관심과 학대로 부모와 자녀 사이가 완전히 파탄된 경우에도 부모의 상속분에 대해 자녀가 재산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해당 유류법이 시행되던 1960년 당시 평균수명은 여자 53.7세, 남자 51.1세(평균 52.4세) 가량이었다. 비교적 짧은 평균수명으로 자녀 또는 유족이 경제적 능력이 없거나 부양이 필요하다기 때문에 일정 부분 의무적으로 유산을 상속해줘야 한다는 것이 전통적 유류분제도의 근거로 자리매김해왔다. 또한 산업사회 이전의 가족은 생산공동체의 성격을 갖는 경우가 많아 자녀들이 상속재산의 형성에 기여해, 유산에 대한 권리를 인정받아왔다.

하지만 산업사회로 접어들면서 가족은 자녀양육과 소비와 휴식을 위한 공동체의 성격으로 변화해 자녀가 부모의 재산형성에 기여하는 경우가 드물어졌다. 이와 더불어 2013년 이후 평균수명은 여자 85.1세, 남자 78.5세(평균 81.9세)로 크게 증가했다.

또한 여자의 평균수명이 남자보다 약 7세가량 길고 혼인 당시 남녀의 연령차가 크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생존 여성의 상속재산 의지도 또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배우자의 사망 이후 여성은 거의 전적으로 상속재산에 의지해 생계를 이어가기 때문.

2010년 이후의 통계를 보면 사별한 65세 이상의 부부 중 남편이 먼저 사망한 경우가 약 80%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즉 노후에 배우자의 사망으로 여자노인이 생존 배우자로서 여생을 혼자 살아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상속이 개시될 때 자녀는 이미 경제적으로 독립해 부양의 필요성이 사라졌으며 부모 재산형성에 대한 자녀의 기여도 또한 낮아진 점, 그리고 자녀 뿐 아니라 여성 또한 배우자 사망 이후 부양이 필요해졌다는 점을 두고 현행 유류분제도의 개선 필요성이 제기된 것이다.

<사진=대한가정법률복지상담원>

김상용 교수, “유류분 제도, 가족의 기능과 연계시켜야”

김 교수는 “가족의 실질적인 역할에 따라 유류분 제도를 연계시켜야 한다”며 “부양의 필요성이 없거나 가족간 유대관계가 없을 경우에는 유류분 인정을 제한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자녀에게 유류분을 인정하는 이유가 피상속인 사후 상속재산으로 부양을 보장하려는데 있다면, 성년자로서 스스로 생활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춘 자녀에 대해서는 유류분을 감축하거나 또는 아예 인정하지 않아도 무방하다는 것이 김 교수의 주장이다. 김 교수는 “다만 미성년자녀 또는 질병과 장애 등의 이유로 부양의 필요성이 있는 자녀에게는 유류분이 인정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이에 대한 근거로 외국의 입법례를 예시로 들었다. 유럽에서는 이미 이전부터 유류분을 부양의 필요성과 연계시키는 방안이 주장돼 왔다는 것.

에스토니아는 상속이 개시될 당시 근로능력이 없는 자에 대해서만 유류분을 인정하고 있으며, 폴란드는 미성년자녀와 근로능력이 없는 자에 한해 유류분을 그 외 경우보다 많이 인정하고 있다. 러시아에서는 미성년자녀와 장애로 인해 근로능력이 없는 자녀에 한해 유류분을 인정하고 있다. 즉, 스스로 부양할 능력이 없거나 부양을 받던 자녀들에게 한해 유류분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영미법계 국가에서는 아예 원칙적으로 자녀에게 유류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김 교수는 “우리 민법에는 유류분의 상실에 관한 규정이 없어 상속결격사유에 해당되지 않는 유류분권리자는 반환청구를 할 수 있다”며 “형평에 어긋나는 경우에도 유류분 반환청구를 모두 인용한다면 이는 구체적 타당성에 반하는 결과”라고 주장했다.

박영선 변호사 “미국법, 재산형성에 기여도에 따라 재산 분배”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유상상속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박영선 변호사는 유언 자유원칙을 따르고 있는 미국법을 기반으로 유류분제에 대해 설명했다.

영국의 관습법에 뿌리를 둔 미국의 상속법은 부부공동재산제에 따라 배우자의 상속권을 보호하는데 비해 한국 유류분처럼 자녀의 상속권을 보호하는 전통이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는 피상속인의 유언의 자유가 비교적 강하게 보호받고 있다.

미국법에서 자녀의 상속권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자녀가 부모의 재산형성에 기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상속시 배우자의 재산권을 보호하게 되면 배우자는 상속받은 재산을 자신 뿐 아니라 미성년자녀를 부양하는데 쓰게 되므로, 굳이 재산권을 인정하지 않아도 자녀들의 부양 문제가 해결된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또한 이혼과 재혼이 빈번한 미국사회의 특성을 감안해, 양육을 책임지기로 한 배우자의 사망을 대비해 미성년자의 양육비를 보호하기 위해 생명보험을 사도록 하는 것이 관례로 정해져있다.

박 변호사는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사는 가족들의 경우 법이 서로 대치하는 경우가 발생한다”며 “하지만 대부분의 상속분쟁이 법정에 들어가기 전에 합의되기 때문에 판례를 많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에서는 자녀의 유류분을 인정하지 않지만, 과연 자녀를 배제하는 유산제도가 과연 좋은 것인가 하는 것에는 의문이 든다”고 밝혔다. 소위 ‘꽃뱀’ 또는 ‘제비’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자산을 소유한 노년층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 자녀를 배제한 상속을 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 변호사는 “한국에서 유류분제도 및 상속제도를 개선한다면 시대의 사회현상을 법제에 반영해 연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사진=뉴시스>

토론 "유류분제, 자녀보다는 배우자에게 초점 맞춰야"

토론자들은 두 발제자의 의견에 대부분 공감하며 유류분 개선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최금숙 회장은 발제에 대한 동의를 전제, “유류분 권리에 부양청구권만을 연결시키는 것은 유류분제도의 목적을 지나치게 좁게 보는 한계가 있다"며 "생존 배우자의 유류분권을 재산의 절반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정숙 평택성폭력상담소 소장 또한 “과거에 만들어진 유류분제도의 존치에 대해 상당부분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며 유류분제도의 개선 필요성을 주장했다. 자식을 낳지 않고 사는 부부와 1인가구의 증가로 가족간 유대는 더 이상 큰 의미가 없기 때문에, 유류분제를 최소한으로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어 김 소장은 “자녀의 부모에 대한 살해와 유기, 방임, 학대사건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럼에도 불구하고 재산을 상속해야 하느냐” 며 “상속결격사유에 종속된 유류분 제한범위를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배우자와 직계존속, 다시 말해 피상속인의 부모와 윗 세대의 유류분권을 인정하고 자녀의 유류분은 제한적으로 인정하자”며 “피상속인의 형제자매에게까지 유류분권을 인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조미나 기자  mina77@wso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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