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함께 살아갈 생각에 설레어할 결혼식. 그런데 요즘 결혼식을 앞둔 예비부부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그동안 모은 돈으로는 신혼집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일 뿐 아니라 혼수·예단을 어떻게 조율해야 할지를 놓고 힘들어하고 있다. 적당히 알아서 해오라는 말에서도 '적당히'라는 말에 모호해 하고, 결혼 뒤까지 갈등의 빌미가 되기도 한다. 거기에 호화 결혼식 준비까지. 신혼부부들은 결국 결혼식 후 허니문푸어로 전락하고 만다. 또한, 자식 결혼식에 노후자금까지 다 탕진했다는 부모들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왜 결혼이라는 새로운 시작을 하면서 서로 다투고 힘들어야하는 것일까. <여성소비자신문>이 현 결혼문화의 실체를 집중 조명해 봤다.

 

 

 

김모씨는 대기업에 다니는 20대 남성과 교제하다 덜컥 아이가 생겨 급하게 결혼을 준비하면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집을 먼저 마련해야 하는데, 남자친구가 갓 취직해 여윳돈이 없을 뿐 아니라 양쪽 집안 사정이 다 어려워 도움을 받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결국 김 씨는 대출을 받아 간신히 빌라 한 채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한 달 월급에 대출이자와 원금을 내고 나면 남는 게 거의 없어 요즘 속히 말하는 허니문푸어가 됐다. 김 씨와 같은 사연은 드문 일 아니다.

 

실제로 취업포털 사람인이 20~30대 기혼 직장인 489명을 대상으로 허니문푸어 해당 유무를 질문한 결과, 절반 이상인 56.7%가 ‘그렇다’라고 대답했다. 허니문푸어가 된 가장 큰 원인 역시 76.5%가 ‘주거지 마련’을 꼽았다. 주거 자금도 ‘은행권 대출(50.5%)을 통해 마련했다. 대출자금과 함께 결혼생활을 시작하면 저축을 하지 못 하는 것은 물론이고 높은 대출이자를 갚는데 많은 비용이 지출된다. 대출이나 현금서비스 등의 이용으로 신용도가 나빠진 상태에서 돈이 필요한 경우에는 대부업체 등 제 2금융권을 찾을 수 밖에 없어 생활여건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집값도 마련하지 못한 채 결혼식은 성대하게 치르려는 잘못된 ‘결혼 문화’다. 지난 주말 예식비용이 8000만원이 넘는 서울 시내 특 1급 호텔에서 한 커플이 결혼식을 올렸다. 신부 한모씨는 “한번뿐인 결혼이라 갖출 건 다 갖추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1000만~2000만원 드는 변두리 예식장과 비교해 결혼식 내용은 별 다를 게 없었다. 사람들은 결혼을 일생에 한번뿐인 특별한 행사라고 생각하고 조금 무리해서라도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려고 한다. 한 씨는 “남들에게 지기 싫어 일부러 크게 하는 것도 있다”고 덧붙였다. 여러 사람들을 초대해 올리는 결혼식은 괜한 과시욕구 때문에 당연히 보여주기식 행사가 된다. 이로 인해 몇몇 부모들은 자녀들의 결혼을 위해 노후자금으로 모은 돈을 전부 쏟아 붓기도 한다.

 

 

 

심지어 최근 고물가 현상이 이어지면서 혼수나 예단 문제로 결혼을 미루거나 파혼하는 커플도 늘고 있다. 오는 11월 결혼 예정이던 최모씨는 결혼식을 한 달여 앞두고 파혼을 겪어야만 했다. 파혼의 가장 큰 이유는 시댁 측에서 요구한 무리한 혼수와 예단비 때문. 집안형편이 여의치 않아 결혼자금을 손수 준비해야 했던 최 씨는 그동안 직장생활을 하며 모아둔 2000만원에 1000만원을 대출 받아 겨우 결혼준비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예비남편은 병원을 이제 막 시작한 개원의로 시댁에서 병원을 차려줬다는 이유로 혼수부터 예단, 전셋집 마련 비용까지 전부 최 씨에게 부담하라고 요구했다. 대출까지 받은 상황에서 더 이상 여유자금을 마련할 수 없었던 최 씨는 결혼을 포기해야 했고, 두 사람 사이에 생긴 골은 점점 깊어져만 갔다. 결국 3년 간 키워온 두 사람의 사랑은 결실도 맺지 못한 채 물거품이 돼버렸다.

 

 

 

이에 현재 잘못된 결혼 문화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성신여대 생활문화소비자학과 김인옥 교수는 “현재 잘못된 결혼 문화를 바꾸기 위한 노력은 20년 전부터 여성가족부, 보건복지부 등과 함께 논의해 왔지만 쉽지는 않았다”며 “국가 차원에서의 실효성 있는 정책도 필요하지만 예비신혼부부들과 그 가족들의 인식 개선 등이 함께 이뤄져야 이룰 수 있는 일이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정부는 허니문 푸어를 양산하는 가장 큰 원인인 주택과 결혼식 비용 문제 해결을 위해 공공결혼식장, 소형주택 등을 보급해야 한다”며 “또한, 예비부부들의 파혼을 야기하는 혼수, 예단 문제는 각자 입장에서는 충분이 당위성이 있는 부분이다. 2억을 투자한 남자 측 부모 입장에서는 당연히 신부 측에서 적어도 10%는 현금으로 줘야 된다는 보상심리가 생기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한 해법으로는 남자 측에서 꼭 주택을 마련해야한다는 인식을 없애고 각자 예산에 맞게 전체 결혼 비용을 정하고 이를 5대 5로 나누는 문화를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