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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적 자유의 평등한 분배를 위한 기본소득지식협동조합 좋은 나라 제공 <유종일 이사장>
김교성 중앙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 | 승인 2016.09.05 13:56

후기 근대사회에 들어 케인스주의에 기초한 ‘복지국가’는 다양한 사회적 위험과 불평등 문제에 적절한 대응책을 제공하지 못했다.

복지급여와 관련된 약속을 이행할 능력이 축소되었으며, 세계화 시대의 피해자인 동시에 경제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인식되고 있다.

불평등 문제의 구조적 책임도 ‘근로동기의 약화’라는 명분하에 ‘재상품화’와 ‘보조화’의 과정을 통해 개인에게 전가하고 있다.

‘임금 없는 성장’의 과실이 기업에 집중되는 동안 복지국가를 지탱하던 전통적인 노동자 ‘계급’도 함께 붕괴하고 말았다.

최근 복지국가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면서 불평등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으로 ‘기본소득’이 크게 부상하고 있다.

새로운 재분배와 분배 구조의 확립과 단계적 확산을 통해 ‘평등한 사회’의 부활을 위한 장기적 기획이다. 노동과 분리된 기본소득을 제공함으로써 개인의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고 ‘실질적 자유’를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불평등의 확산과 구조화
 
우리는 매우 불평등한 사회에서 살고 있다. 사회구성원 일부의 이윤독점과 막대한 지대추구로 인해 다수가 인간 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다. 다양한 증거는 역사 속에 축적되어 왔다.

지난 30년 간 지니계수, 소득 10분위, 5분위 배율, 소득점유율 등 불평등과 관련된 수치가 이를 예증한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며 세대 간 이전을 통해 ‘구조화’ 혹은 ‘고착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문제는 불평등 현상이 우리 사회의 다양한 측면에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불평등과 병리적 현상들 간 높은 상관관계는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 확인되었다.

대체로 범죄, 건강, 사회적 타살, 배제 등 다양한 사회문제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Wilkinson & Pickett, 2010).

정치적 불평등에 영향을 미치면서 민주주의의 악화, 사회정의와 공정성의 훼손, 신뢰성의 하락, 국가 정체성의 위기 등의 ‘대가’도 지불해야 할지 모른다(Stiglitz, 2013).

최근에는 경제성장에 역효과를 미친다는 연구결과까지 발표되고 있다(Atkinson, 2015; Reich, 2012). ‘기능적 소득분배’ 관련 연구에 따르면, 대부분의 국가에서 개인 혹은 가계의 불평등 현상이 확대되고 있는 동시에 국가총소득에서 노동자에게 귀속되는 총보수의 비중이 크게 감소하고 있다.

실질임금 수준의 축소로 인해 소득분배가 더 불평등해졌다는 의미이며 총수요의 감소와 함께 국가 전반의 경기침체로 이어지게 된다.

따라서 불평등에 대한 논의도 ‘가계’ 혹은 ‘소득’ 불평등이라는 좁은 영역을 넘어 사회 전반의 ‘실질임금’ 수준이나 ‘노동소득분배율’과 같은 거시적 지표 변화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국가총소득에서 ‘노동’과 ‘자본’, ‘임금’과 ‘이윤’간 소득분배 문제에 주목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불평등의 가장 큰 원인은 (대)기업의 ‘이윤독점’에 있다. 지난 30년 동안 경제가 성장하면서 기업의 순이익은 증가하였고 현금성 자산과 사내유보금 비중도 확대되어 왔다.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임금억제 방식을 활용하여 기업의 경영수익은 확대되었으나 노동자의 실질임금은 크게 인상되지 않았다.

‘임금 없는 성장’의 결과로 경제성장의 혜택은 기업에게 집중되고, 노동자의 삶은 가계부채의 증가와 더불어 점점 더 황폐해지고 있다.

‘승자독식의 사회’를 건설하는데 관여한 정부도 불평등의 원인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기업과 부유층 감세에 집중하고 불공정한 임금교섭 과정을 못 본 척하며, 낮은 수준의 임금과 복지지출을 방관하고, 노동조합과 복지 때문에 경제가 망한다고 협박하고 있다. 
 
근대사회는 복지국가라는 수정된 자본주의 형태를 통해 발전해 왔고, 경제·사회구조의 변화와 함께 후기 근대사회로 전환되었다.

다양한 차원에서 변화를 목격할 수 있지만 핵심적인 내용은 기술의 진보, 세계화, 산업구조의 변화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 과정을 통해 자본의 힘은 더욱 강화되었으며 노동과 자본 간 결속은 크게 침식되었다.

첫째, 기술의 진보로 인해 생산양식의 변화와 노동시장의 변혁을 경험하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생산성 증가와 탈산업화가 가속화되면서 일자리는 구조적으로 감소해왔다.

향후 로봇기술, 인공지능(AI), 생명과학, 사물인터넷, 자율 주행차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과학기술의 발전에 의한 ‘4차 산업혁명’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더 많은 일자리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

기술혁신은 직접적인 일자리의 감소뿐만 아니라 생산양식의 변화도 추동하였다. 노동시간과 장소의 탈집중화를 가속화하여 ‘집단적’ 생산 활동 자체를 축소시키고, 노동과 비노동 간 경계를 약화시켜 고용관계의 ‘유연화’를 주도하였다.

그로 인해 복지국가의 핵심 가치인 노동자 간 연대와 결속의 약화가 관찰되며, 노동의 본질과 의미에 대한 근본적인 (재)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둘째, 무역의 증가, 생산의 다국적화, 자본의 이동, 금융, 자본, 통화시장의 규제완화 등의 세계화 현상이 일반화되었다.

정부는 자본의 이탈을 방지하고 새로운 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시장에 대한 규제완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자본은 노동자 계급의 협조 없이 어디서든 값싼 노동력의 확보가 가능해지면서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하였고 임금 수준의 격차를 확대(임금유연화)하거나 해고를 쉽게 하는 방식(수량적 유연화)으로 ‘고용 없는 성장’을 주도하였다.

‘인원감축’과 ‘구조조정’을 통해 실업자와 불안정 노동자의 수는 급증하였고, 임금격차 수준도 확대되면서 불평등 현상은 심화되었다.

손쉬운 해고와 비전형 근로자에 대한 적극적인 활용은 전통적인 노동의 개념까지 변화시켰다. 고정된 일터에서 동일한 시간동안 표준화된 작업에 종사하며 균일한 노동력을 제공하는 ‘전형적’ 형태의 일자리는 빠르게 잠식되었다.

종신고용이 보장되었던 정규직 노동자 수는 크게 감소하였으며, 수백만의 ‘프레카리아트’(precariat)가 생겨났다.

노동자의 임금교섭력은 자연스럽게 약화되었고 노동과 자본간 균형적 관계가 무너지면서 상대적 권력의 변화를 초래하였다.

복지국가를 지탱하던 전통적인 노동자 ‘계급’이 붕괴하게 된 것이다.

셋째, 산업구조의 변화는 반숙련 제조업의 쇠퇴 및 서비스 섹터의 확장과 관련이 있으며, 생산성 하락과 경제성장 둔화에 영향을 미친다.

제조업 기반 생산체계의 붕괴는 중앙집권화 된 연대교섭의 약화를 초래하였고, 실질임금의 축소와 불평등의 확대로 귀결되었으며, 낮은 수준의 경제성장과 재정적 압박의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서비스 분야의 일자리는 연속적이기 보다는 프로젝트 중심인 경향이 많고 노동수요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일시적 혹은 임시직 노동의 증가를 추동한다.

많은 정규직 일자리가 비정규직으로 대체되고 외주와 파견이 일상화되었다. 글로벌 금융자본이 상주하면서 서비스 영역의 정규직 대체와 불안정 고용의 확산은 강화되었으며, 저숙련·저임금 서비스직 노동자들은 실업과 취업을 반복하거나 더 불안정한 일자리에 취업하며 ‘근로빈곤층’이 되어 갔다. 
  
과거 복지국가 혹은 사회국가를 구축하여 나름 ‘평등한 사회’를 경험한 적도 있었다.

강력한 임금교섭, 적절한 고용보호, 관대한 복지제도를 통해 일반 시민들에게 충분한 수준의 임금과 급여가 제공되던 시기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불평등의 문제는 ‘케인지언’적 합의와 ‘보편적’인 복지제도의 실행을 통해 완화되었고 ‘완전고용’과 ‘경제성장’의 목표도 함께 달성되었다.

이는 노동-자본-국가 간 합의와 타협의 결과였다. 분배와 격차의 해소는 모두에게 이익이라는 신념과 상호협력에 기반하여 세 행위자 간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관계가 형성되었으며, 완전고용은 상호관계 유지의 필수조건이었다.

자본축적과 생산방식의 변화로 인해 노동과 자본의 사회적 합의의 필요성이 감소하면서 양자 간의 관계는 약화되었다.

국가와 노동은 악화된 조건에서 초국가적 자본을 붙잡아야 하는 상황에 접어들었다. 복지국가가 추구했던 전반적인 사회 경제 질서에 대한 관리체계는 노동과 자본의 합의가 붕괴하고 국가에 대한 영향력이 축소되면서 실현 불가능한 목표가 되었다.

복지국가의 기본적인 운영방식에는 ‘노동할 수 있는 사람은 모두 노동에 종사해야 한다’라는 완전고용의 전제가 깔려있다.

국가는 노동시장에 건강하고 고용 가능한 노동력을 끊임없이 유지·공급하기 위해 노동과 연계된 복지제도를 운영한다.

노동이 가능한 집단에게는 노동과 기여를 전제로 한 급여를 제공하고 노동이 불가능한 집단에게는 노동을 조건으로 혜택을 지급하여 가입자의 지속적인 노동을 통해 지지되거나 수급자의 ‘고용가능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제도가 설계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은 ‘엘리자베스 구빈법’의 도입에서부터 ‘사회보험’의 실행과 ‘근로연계복지’의 강화까지 꾸준하게 진행되어 온 복지정책의 자명한 역사이다.

사회보험은 노동과 자본의 장기적인 관계가 성립되지 않을 경우 제도의 운영 자체가 불가능하다. 공적연금과 같은 장기적인 사회보험의 세대 간 합의도 노동중심의 경제체제와 기여기반의 확대가 지속적으로 유지될 것이라는 가정 하에 성립된 약속이다.

후기 산업사회에 들어와 괜찮은 일자리의 지속적인 창출과 노동공급의 유지는 구조적으로 불가능해졌다.

노동시장의 유연화로 인해 노동과 관련한 기존의 확고한 관계가 단기적이고 개별적인 노동의 형태로 변화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실업과 비정규직 취업을 통해 사회보험의 ‘사각지대’에서 어렵고 불편한 생활을 지속하고 있다.

‘완전고용’의 신화가 무너지면서 복지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기반에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임금이 축소되고 사회적 급여 수준이 감소하면서 노동자의 생활수준은 악화되었고 불평등 수준은 확대되었으며, 총수요의 감축과 더불어 국가경제도 침체에 빠지고 말았다.

‘경제성장’의 신화도 함께 추락하면서 복지국가의 제도들이 제 기능을 수행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집단적 비용부담 방식의 지속가능성에 의문이 생기면서 사회적 위험에 스스로 대비해야 한다는 사고가 확산되었다.

국가는 매번 자본의 지시(?)에 따라 ‘위기담론’(예를 들어 경제위기, 외환위기 등)을 동원하여 공적 영역의 책임을 회피하고 사회적 위험에 대한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고 있다.

근대사회의 복지국가는 표준화된 방식으로 사회적 위험에 대비했다면, 후기 근대사회의 사회적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에 대한 국가의 보호기능은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고 개인과 가족, 이웃 등의 사적 네트워크가 활성화되면서 ‘개인화’ 시대가 전면에 등장했다. 
  
개인화된 사회에서 ‘개인’에게 평등한 자원의 분배를 통해 불평등 수준을 감소하고 총수요를 확대·창출하여 경제성장을 주도할 수 있는 대안으로 ‘기본소득’이 부상하고 있다.

노동의 위상이 축소되고 있는 후기 근대사회에서 (유급)노동과 소득/복지를 완전하게 분리하고, 다양한 욕구를 시민권적 권리를 통해 충족시킴으로써, ‘실질적 자유’의 ‘평등한 분배’라는 사회정의의 이념을 달성하기 위한 제안이다.

기본소득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모든 개인에게 아무런 자격이나 조건에 상관없이 일정 수준의 소득을 제공하는 아주 단순한 정책이다.

기본소득의 도입을 전 지구적 차원에서 논의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 Basic Income Earth Network)의 공동대표이자 기본소득의 이론화 작업에 가장 큰 역할을 한 Van Parijs(2006)에 따르면 기본소득은 ‘자산조사나 근로조건부과 없이 모든 구성원들이 개인 단위로 국가로부터 지급받는 소득’으로 정의할 수 있다.

수급권이 모든 형태의 노동행위와 단절되어 있고 개인이 가질 수 있는 다른 종류의 소득으로부터 완전하게 독립되어 있으며 일부에게만 제공하지 않고 가구가 아닌 개인에게 지급한다는 점에서  ‘무조건성’(no means test, no work related, no contribution),, ‘보편성’(universality),  ‘개별성’(individual base)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시민권(혹은 거주권)에 기반하여 모든 구성원에게 동일한 급여를 제공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나, 연령별 차등지급도 가능하다.

다만 인구학적 구간(아동, 청소년, 성인, 노인 등) 설정의 문제와 차등지급의 정당성이 확보되어야 하며, 성인기에 최고수준의 급여를 제공하는 방안이 선호되고 있다.

자산조사를 실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부조방식과 구별되며 수급자를 선별하기 위한 심사과정과 행정적 관리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운영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각지대와 낙인의 문제도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 기여금을 낼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기간 동안 유급노동에 종사한 사람에게 제공되는 사회보험이나 현재 근로의무 조항을 수용하여 노동에 참여하거나 기꺼이 참여할 의지가 있는 사람에게 제공되는 근로연계복지와 기본적인 성격이 다르다.

구체적인 제도의 내용은 정치적 합의수준에 따라 다양하게 변용될 수 있다. 사회적으로 유용한 활동에 대한 의무를 부과하여 호혜성의 원칙을 강화하는 ‘참여소득’부터, 생애 일정 기간 동안 한시적으로 제공하는 ‘일시적’ 기본소득이 있다.

아동이나 노인과 같은 특정 인구집단에게 지급하는 수당도 ‘부분적’ 기본소득으로 간주할 수 있다.

현재 성남시에서 실행하고 있는 청년배당이 좋은 예이다. 정부의 재정적 부담을 고려하여 급여수준을 낮게 책정한 뒤 점차 올려가는 ‘전환적’ 기본소득의 형태도 존재한다.

이러한 수정형 기본소득은 ‘무조건성’이라는 포기할 수 없는 기본소득의 핵심 부분에 대한 조정이 필요하므로 진정한 의미의 기본소득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

기본소득이 가지는 효과를 제대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탈생산주의적’이어야 하며, 충분한 수준의 급여가 전 생애주기에 거쳐 안정적으로 제공되어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엄격한 개념적 규정에는 평생 동안(life time), 규칙적(regularity)으로, 충분한 금액(sufficient)을 지급한다는 부가적인 특성이 포함되기도 한다.

평생 동안의 규정을 개념에 포함할 경우, ‘한시적 시민수당’ 등은 제외될 수 있으며, 규칙적으로 제공된다고 하는 것은 대체로 월 단위 급여를 의미한다.

기본소득 실시의 가장 큰 쟁점은 제공되는 기본소득의 ‘수준’ 혹은 ‘충분성’과 관련이 있다. 실제 기본소득에서 주장하는 다양한 장점 혹은 정책적 목적들도 충분한 급여가 제공된다는 전제에 기초한 것이다.

이는 제공 주체의 재정적 역량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제도의 지속가능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대체로 전체 국민의 평균소득의 50%가 충분한 수준으로 인지되고 있으나, 최저생계비 혹은 상대적 빈곤선(중위소득의 50%)이 일반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기본소득은 모든 사람에게 기본적인 소득에 대한 권리를 인정함으로써 개인의 실질적이고 적극적인 자유를 확대하고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이다. 여기서 자유란 자유로운 삶을 위해 근로에 종사해야 하는 형식적 의미의 자유 혹은 다른 사람에게 종속되어 있는 자유가 아니라, 약자(노동자)에 대한 강자(자본)의 억압과 차별이 배제되어 있는 오직 평등한 사회에서 개인이 누릴 수 있는 실질적 자유를 의미한다.

이를 위해 시민의 권리는 잘 보장되어 있어야 하고, 개인은 자신에 대한 소유권(ownership)이 있어야 하며,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기회와 가능성이 최대화되어 있어야 한다.

기본소득이 온전한 시민으로서 동등한 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실질적 의미의 자유와 정의를 보장하기 위한 수단과 기회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불평등이 만연해 있는 사회에서는 인간의 존엄과 본성 유지가 불가능하고 능력과 재능이 낭비되며 비효율적인 경제활동을 하게 된다.

따라서 기본소득은 특권이 없는 사회에서 기회를 평등하게 제공하고 사회적 이동의 가능성을 향상시키며 부의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이다.

기본소득은 빈곤과 불평등, 사회적 배제로부터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급여 제공과 관련하여, 선별적 사회부조에 내재되어 있는 사회적 낙인이 존재하지 않으며, 근로의지나 근로성과가 급여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의존성 문제와도 무관하다.

수급자를 선별하기 위한 심사과정과 행정적 관리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사각지대 문제도 극복할 수 있으며, 수급률(take-up rate)까지 향상시킬 수 있다.

여성에 대한 성차별 해소나 가정 내 성별분업으로부터의 해방적 관점에서 적절한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경제활동참여 여부와 상관없이 지급되므로 여성의 경제적 독립성을 증가시키고, 남성 부양자에 대한 재정적 의존도 약화시킬 수 있다.

노동시장 참여와 관련한 자율적 선택의 기회를 제공하고, 가구 내 협상력을 강화하여 권력관계의 변화를 도모하며, 남성의 가사노동에 대한 참여를 독려하여 젠더평등을 강화할 수 있다.

여성 ‘개인’의 사회권 확대를 통해 무급노동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여 ‘보편적 돌봄 제공자 모델’(universal care-giver model)의 실현 가능성도 높일 수 있다(Robeynes, 2008).

노동자의 협상력을 확대시켜 노동시장 내 더 큰 평등주의도 추구할 수 있다. 사용자에게 좋은 근로조건과 괜찮은 일자리 제공을 위해 노력하도록 요구할 수 있으며, 유연화된 노동시장에서 자발적인 노동형태의 선택도 가능하게 한다.

건강이나 존엄성을 해칠 수 있는 일자리를 거부하고, 노동에 대한 자발적인 선택과 참여를 통해 진정한 자아를 실현하고 풍요로운 삶을 향유할 수 있게 한다.

따라서 노동에 대한 의욕은 더 커질 수 있으며 부가적 임금에 의해 생산성도 향상될 수 있다. 개인의 구매력과 사회 전반의 총수요 확대를 통해 경기침체 혹은 저성장의 문제를 극복하고, 총생산 증가와 고용창출 등 경제성장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기본소득에 대한 문제의식과 공감대는 점차 확대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복지선진국 가운데 기본소득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는 국가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얼마 전 스위스에서 실시된 국민투표는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핀란드는 중앙정부 차원에서 완전 기본소득과 부분 기본소득에 관한 네 가지 방안을 비교하고 있다.

네덜란드는 지방정부(위트레흐트)를 중심으로 호혜성과 관련한 실험을 주도하고 있다. 영국, 뉴질랜드, 캐나다 등에서도 기본소득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경제정책을 구상 중이다.

논의의 중심에는 일자리 감소로 인한 위기감이 주된 이유로 작용하고 있지만, 복지행정 비용 축소라는 다른 이슈도 존재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강남훈·곽노환(2009)를 시작으로 여러 제안들이 제시되고 있다(강남훈, 2010a, 2010b; 김교성, 2009; 백승호, 2010; 이승윤, 2016). 대체로 월 30~50만원 수준의 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하고 있으며, 총 200조원 이상의 막대한 예산이 필요한 제안들이다.

문제는 실현가능성에 있다. 도입의 취지에는 상당부분 동의하지만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는 제도인가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조세방식의 보편적인 복지제도에 익숙하지 않은 국가에서 보면 상당히 혁신적인 주장임은 분명하다.

막대한 재정적 부담과 관련된 경제적 실현가능성은 물론이고, 제대로 된 ‘사회수당’ 하나 운영해 보지 않은 상태에서 자본주의 생산과 분배양식의 근간을 흔드는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는 ‘노동윤리’의 단단한 굴레도 극복해야 할 과제 중 하나이다.

오랜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고 사회구성원 간 합리적인 의견교환에 기초한 공감대 형성이 중요해 보인다.

기본소득은 새로운 분배구조의 확립과 단계적 확산을 통해 ‘평등한 사회’의 부활을 위한 장기적인 기획이다.

무조건성, 보편성, 개별성의 특성들은 성, 인종, 소득, 종교, 성적취향 등과 관계없이 제공되는 ‘참정권’의 성격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100년 전 모든 시민에게 투표권을 주자고 하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거나 감옥에 가야 했다. 시민들은 오랜 시간의 투쟁 끝에 기본적인 권리를 쟁취하였다.

사회적 시민권은 최저한의 경제적 복지와 안전을 청구할 권리에서부터 사회적 부를 공유할 권리와 더불어 사회의 표준적인 수준에 맞는 문화시민으로 생활할 권리에 이르기까지 매우 광범위한 내용을 포괄하고 있다.

시민권이 불평등과 자본에 종속되지 않기 위해서는 개인의 권리와 존엄, 그리고 자유의 가치를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일정 수준의 소득이 평등하게 보장되어야 한다.

단기적으로 불가능해 보이고 당장 이루어질 것 같이 보이지 않아도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한 이유이다.

 

김교성 중앙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  office.good6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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