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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협받는 여성인권... 안전한 장소도 믿을 사람도 없다여성 대상 범죄 집중진단 ① 강남역 살해사건 이후 한달, 여성 대상 범죄 줄이어
김영 기자 | 승인 2016.06.21 09:50

[여성소비자신문 김영 기자] 사상 유례 없는 추모열풍으로 이어졌던 강남역 20대 여성 살해사건이 어느새 사건 발생 한달여를 지나고 있다. 해당 사건에 대해 경찰은 “조현병 환자에 의한 묻지마 살해사건”이라 규정했으나, 여성계를 비롯한 상당수 대중은 “여성혐오에 의한 여성 대상 범죄이자 취약한 여성인권 실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이라 평가하고 있다. 또 강남역 사건 이후 발생한 신안 섬마을 여교사 성폭행 사건과 수락산·사패산 여성 살해 사건 등은 우리나라 여성인권이 여전히 위협받고 있다는 반증으로도 여겨지고 있다.

강남역 살해사건 추모현장. <사진 여성소비자신문>

지난 5월 17일 새벽 1시경 강남역 인근 노래방 화장실에 한 20대 여성이 처음보는 남성에게 흉기에 찔러 살해된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인 김모(34)씨는 경찰 조사 당시 “사회생활에서 여성들에게 무시를 당해왔는데 참을수가 없어 범행을 저질렀다”고 범행동기에 대해 밝혔다. 단지 ‘여성’이란 이유 하나 때문에 꽃다운 나이의 젊은 청춘이 생면부지의 남성에 의해 생을 마감해야 했던 것이다.

다만 경찰은 여성 대상 범죄의 심각성을 일깨워 준 강남역 살해사건에 대해 평소 김씨가 정신분열증(조현병)을 앓아왔다는 진료기록과 프로파일러 조사 등을 근거로, “조현병 환자인 피의자가 복용하던 약을 끊은 뒤 저지른 묻지마 범죄”라고만 결론지었다.

여성만을 대상으로한 계획 범죄임이 확인됐음에도 이를 우발적 사건이라 볼 수 있는 ‘묻지마 범죄’로 몰아간 것으로, 이에 대해 여성계를 비롯한 시민단체는 경찰 측의 재조사를 요구하는 등 크게 반발하기도 했다.

아울러 여성계는 “강남역 사건의 배후에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 현상이 있다”고 강조하며, “이 같은 사회적 풍토가 이어지는 한 또다른 여성 대상 범죄가 양산될 것”이라 지적했다.

실제 강남역 사건 발발 후 한달여 동안 전국 각지에서는 이와 유사한 여성대상 범죄가 줄지어 발생했다.

여성혐오 및 여성 대상 범죄의 심각성에 대한 우려가 커진 상황 속에서 이를 예방하기 위한 경찰 및 각 지자체의 물리적 노력이 적지 않았음에도 여성만을 대상으로 한 강력범죄가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강력범죄에 무방비 노출된 여성

5월 22일 전남 신안의 한 섬마을 초등학교 관사에서는 부임한지 3개월된 20대 여교사가 해당 초등학교 학부모인 박모(49)씨와 김모(38)씨 및 주민 이모(34)씨 등에 의해 오후 11시부터 이튿날 오전 1시 30분까지 수차례 성폭행 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 조사 결과 가해자들은 식당에서 혼자 저녁 식사를 하던 여교사에게 접근해 술을 먹인 후 정신을 잃게 한 뒤 초등학교 관사로 옮겨가 차례로 성폭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5월 23일 충북 증평에서는 같은 마을에 사는 80대 할머니를 성추행한 뒤 살해한 신모(58)씨가 경찰에 검거됐다. 신씨는 5월 15일 피해자 할머니의 집에 침입해, 헛간에서 목을 졸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한 신씨는 할머니를 살해하기 직전 강제 추행한 것은 물론 피해자 할머니 집에 있던 곡식까지 훔쳐 달아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신씨를 6년 전 같은 마을에서 발생한 70대 여성 성폭행 방화사건의 유력 용의자로도 특정짓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수락산 등산객 살해사건 피의자 김학봉.

5월 29일 서울 노원구 수락산에서는 60대 여성이 강도살인 전과가 있는 김학봉(61)에 의해 살해됐다. 경찰은 김학봉이 동종범죄 전과가 있고 출소 4개월여만에 또다시 살인을 저질렀다는 점에서 검거 직후 신상공개를 결정, 실명과 얼굴을 대중에 공개됐다.

김학봉의 경우 흉기를 이용한 잔인한 살해수법은 물론 범행 동기에 있어 강남역 피의자 김씨와의 유사성이 확인돼 이슈가 되기도 했다.

당초 경찰은 김학봉의 진술을 토대로 금품을 노린 계획범죄로 이번 사건을 결론지었으나, 검찰 송치 중 언론매체와 만난 김학봉이 “돈 때문에 살인한 것이 아니다”라며 “짜증나서 화가 나서 그랬다”고 밝힌 것. 무엇보다 김학봉은 김씨와 마찬가지로 조현병으로 네 차례 병원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는 것으로도 확인됐다.

6월 7일 의정부 사패산 등산로에서는 나홀로 산행을 하던 50대 여성이 정모(44)씨에 의해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정씨는 피해여성의 상의를 올리고 하의를 벗긴 뒤 성폭행하려다 실패하자, 머리를 때리고 목을 졸라 살해 한 뒤 지갑을 빼앗아 달아났다가, 범행 나흘만인 6월 10일 수사망이 좁혀오는 것에 대한 불안감에 자수했다.

6월 12일 서울경찰청 성폭력특별수사대는 프랑스 유학파 출신 유명 서양화가 김모(56)씨를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국내외 전시전을 다수 열고 방송에도 출현한 바 있는 김씨는 천주교 단체 회원으로 활동하며 미술에 관심 있는 학생들을 소개받았는데 이 중 몇몇에게 “미술에 재능이 있다”며 접근, 자신의 신체 부위를 만지게 하는 등의 성추행 행위를 일삼아 온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그는 일부 학생에게 “그림을 잘 그리려면 신체를 잘 알아야 한다”고 접근해 성폭행했고, 이 장면을 몰래 동영상으로 촬영해 보관해 온 것으로도 드러났다. 김씨에게 성추행 피해를 당한 학생 중에는 청각장애가 있던 여학생도 2명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6월 16일 광주에서는 10대 청소년을 유인해 오피스텔에 감금한 뒤 성폭행하고 다른 남성들에게 돈을 받고 성관계까지 맺게 한 남성 2명이 강간·아동청소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동네 선후배 사이인 홍모(20)씨와 임모(18)씨는 6월 14일 저녁 스마트폰 채팅앱을 통해 알게 된 10대 소녀를 오피스텔로 유인, 손과 발을 테이프로 묶어 감금했다. 이후 소녀가 도망치려 하면 빗자루로 폭행을 가하거나 성폭행 했으며, 10여 차례에 걸쳐 다른 남성들에게 돈을 받고 성관계까지 갖도록 했다.

6월 20일 서울 수서경찰서는 16일 강남구의 한 아파트에 침입해 60대 여성을 살해한 뒤 도주한 A(35)씨를 검거하기도 했다. 전자발찌가 부탁돼 있던 A씨는 여성 살해 후 전자발찌를 부수고 달아났으나, 18일 또 다른 여성의 핸드백을 날치기 하려다 실패한 뒤 경찰에 검거됐다.

여성범죄, 여성혐오가 원인?

강남역 사건 이후로도 여성대상 강력범죄가 줄지어 발생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여성계와 학계 그리고 정치권은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약자라는 점을 인정하고 이와 같은 관점에서 문제의 원인을 바라봐야 할 것이란 의견이 주를 이루고 있다.

범죄심리전문가로 유명한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은 여성범죄 발생과 증가 추세에 대해 “대한민국 사회가 여성과 어린이, 노인,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을 제대로 보장해 주지 않고 있다”며 “강남역 사건과 부산에서 발생한 여성 대상 묻지마 폭행 등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 역시 “강남역 사건을 위시한 여성범죄는 여성이 소수자고 약자라는 것이 증명된 ‘페미사이드(여성살해범죄)’다”고 언급하며 “여성혐오는 엄연히 이데올로기며 구조적인 문제로 해결되지 않으면 유사한 사건이 지속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남성의 상대적 박탈감은 가부장제 이데올로기가 구축했던 근대적 경제모델이 무너지고 있는 과정에서 비롯됐다”면서 “그러나 남성들은 구조나 계급에 문제제기를 하지않고 눈앞에 보이는 약자에게 모든 책임을 돌린다. 한국남성에게 가장 빈번하게 목격되는 약자는 바로 여성”이라고 언급했다.

송란희 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의 경우 “여성에 대한 폭력은 성적불평등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하며 “여성폭력근절을 위한 모든 정책은 성평등을 지향해야하며 성평등 정책은 당연히 여성에 대한 폭력 근절을 담보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이윤소 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사무국장은 “여성혐오의 문제를 제대로 짚어내지 못하고 갈등을 부추기는 보도는 언론이 성인지적 관점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설명하며 “이런 언론의 태도는 여성혐오를 심화시킬 것”이라고 강조, 여성범죄를 다루는 언론의 보도행태에 대해 비판하기도 했다.

강남역 살해사건 경찰 조사에 대해 항의 중인 여성단체 회원들.

그런가하면 강남역 사건 이후 강남역과 홍대 등지에서 여성혐오 반대시위를 주도 중인 여성단체 회원과 페미니스트들은 “한국은 명백한 여성혐오 범죄를 애써 무시하려고 한다”며 여성혐오 범죄 인정이 먼저라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여성범죄 증가와 관련 “우리도 잠재적인 피해자”라고 강조하며, “사회 곳곳에 자리 잡은 여성혐오 인식을 개선하지 않으면 이와 같은 사례가 또 다시 발생할 것”이라 말했다.

일부 사회단체에서는 가부장적이며 권위적인 조직 문화가 여성범죄 발생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신안 여교사 성폭행 사건 발생 직후 전국 유치원과 초·중·고등학교 근무하는 여자교사 1758명에 대한 설문조사 실시해 그 결과를 공개했는데, 이에 따르면 현직 여교사 10명 중 7명이 교직 생활 중 성폭력 경험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가장 응답율이 높았던 피해사례는 술 따르기, 마시기 강요(53.6%)였으며, 노래방 등 유흥업소에서 춤 강요(40.0%), 언어 성희롱(34.2%), 허벅지나 어깨에 손 올리기 등 신체 접촉(31.9%)의 순이었다. 2.1%의 교사들은 키스 등 심각한 성추행 피해를 경험했으며 강간과 강간 미수 등 성폭행 피해율도 0.6%로 나타났다.

특히 가해자의 경우 대부분이 학교 주변 사람인 것으로 조사됐다. 교장, 교감 등 학교 관리자가 72.9%, 동료교사가 62.4%로 집계됐다.

다른 곳도 아닌 교직에서 가까운 주변인에 의한 성폭행 피해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한 전교조 관계자는 “교장과 교감의 권한이 큰 초등학교에서 특히 여교사의 성폭행 발생 비율이 높았다”고 지적하며, “권위주의적인 조직문화가 원인으로 보인다”고 언급했다.

장기적 대안마련 부족, 근본적 해결책 아쉬워

여성대상 범죄 증가에 따른 원인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예방책을 두고서는 경찰과 각 지자체에서 다양한 방안 등을 내놓고 있다.

지난 17일 이상원 서울경찰청장은 “여성 대상 범죄의 경우 보복우려, 죄질불량 등을 고려해 구속수사를 하는 등 경찰의 엄정한 수사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여성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른 전력이 있는 우범자(전자발찌 착용 우범자 등)에 대해서는 최상위 등급으로 격상해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 청장은 “여성 대상 범죄에 대한 사회적 불안감이 증폭된 상황에서 수사경찰은 사안의 경중을 불문하고 민감하고 신속하게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특히 형사들은 민생치안에 투입된 경찰관 기동대와 함께 취약장소, 야간·심야시간대에 집중적이고 반복적인 예방순찰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섬마을 여교사 성폭행 사건과 관련해서는 해당 지자체 주도로 마을 안 폐쇄회로TV(CCTV) 추가 설치안 등이 해법으로 거론되고 있다. 자율방범대가 없는 도서 지역에 한해서는 청년회를 중심으로 한 자율방범대 신설안 등이 논의되고 있다.

여성 대상 범죄 중 가장 흔하게 발생하는 공공장소 추행건 예방과 관련해서는 여성안심관을 통해 공공장소 몰래카메라 여부 등을 단속하겠다는 서울시의 여성안심보안관 제도 등이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대안책 모두 단기적이고 즉각적인 효과를 기대할 순 있어도 여성대상 범죄 증가의 근본원인으로 꼽히는 여성혐오 감소에는 별다른 영향을 줄수 없을 것이란 평가를 듣고 있다.

이에 여성계에서는 정부나 국회 등이 전면에 나서 여성혐오 감소를 위한 장기적 양성평등 교육 실시 등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대안 마련이 우선돼야 할 것이란 주장이 나오고도 있다.

김영 기자  young@wso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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