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천대 길병원 홈페이지 캡처>

[여성소비자신문 박상문 기자] 인천의 한 종합병원 간호사가 20대 군인에게 잘못된 약물을 투여해 사망하게 한 사건과 관련해 병원 측이 조직적으로 증거를 인멸하려 한 정황이 형사재판 과정에서 드러났다.

인천지법 형사5단독 김종석 판사는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간호사 A씨에게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고 20일 밝혔다.

인천지법에 따르면 지난해 3월 19일 인천 가천대 길병원 간호사 A(26·여)씨는 손가락 골절 접합수술을 받고 회복을 위해 병동으로 온 육군 B(20) 일병에게 잘못 주사를 놨다. 의사가 처방전에 쓴 약물은 궤양방지용 '모틴'과 구토를 막는 '나제아'였지만, A씨가 투약한 약물은 마취 때 기도삽관을 위해 사용하는 근육이완제인 '베카론'이었던 것.

주사를 맞기 2분 전까지 친구들과 휴대전화로 카카오톡을 주고받던 B 일병은 투약 후 3분 뒤 심정지 증상을 보였고, 같은 날 병실을 찾은 누나에게 뒤늦게 발견됐을 때는 의식불명에 이른 상태였다. B 일병은 그로부터 한 달여만인 지난해 4월 23일 저산소성 뇌 손상 등으로 숨졌다.

당시 A씨는 수사기관 조사에서 "주치의가 지시한 약물을 정상적으로 투여했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고, 경찰이 신청한 A씨의 구속영장도 기각됐다.

하지만 재판부는 A씨가 B 일병에게 베카론을 투약했다는 직접 증거가 없었지만 수시로 비우게 돼 있는 간호사의 카트에서 사고 후 베카론 병이 발견된 점 등을 토대로 검찰 측 공소사실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간호사로서 환자들의 건강상태를 잘 살피고 처방전에 따른 약물을 정확하게 투약해야 할 주의 의무가 있지만, 정확한 확인 없이 약물을 투약해 피해자를 숨지게 한 중한 결과를 초래했다"고 판단했다.

재판 과정에서 병원 측이 사고 발생 직후 병동 안에 있던 '베카론'을 없애고 간호 기록지를 허위로 작성하는 등 각종 증거를 은폐하려 한 정황도 드러났다.

사고 당일 병원 측은 의료사고를 대처하는 적정진료관리본부장과 병원 부원장, 담당 의사, 법무팀장 등이 참석한 대책회의가 열렸고, 당시 회의에서는 "병동에서 근육이완제가 발견됐다. 병동에 있으면 안 되는 것 아니냐"는 말이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 측은 사고 후 B 일병이 숨진 병동에 설치된 비치약품함 안에서 베카론 3병을 빼내 적정진료관리본부로 넘겼고, 이를 숨기기 위해 병원 내 약국에 반환한 것처럼 '약품비품 청구서와 수령증'을 허위로 작성했다. 해당 약품은 3개월 뒤에 약품 관리를 담당하는 직원의 책상 서랍에 보관됐다가 결국 수사기관으로 넘겨졌다.

이런 정황에 따라 재판부는 베카론 오투약으로 B 일병이 사망한 사실을 A씨와 병원이 사전에 알았던 것으로 판단, 병원 적정진료관리본부장의 "베카론을 잘못 투약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취지의 진술을 인정하지 않았다.

또한 A씨가 투약 후 5분가량 B 일병과 정상적인 대화를 나눴다고 작성한 간호기록지 역시 사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허위로 작성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간주했다.

재판부는 "병동에서 보관하던 베카론 병을 두고 병원 관계자들이 한 일련의 조치는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며 "결과적으로 사고 당시 병동에 해당 약물이 어느 정도 보관돼 있었는지 등 판단이 불분명해지는 상황을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병원의 전반적인 약품관리 상황이 체계적이지 못했고, 언제든 환자에게 약물이 잘못 투약될 가능성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박상문 기자  msp29@wso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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