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20대총선 평가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여성소비자신문>

[여성소비자신문 조미나 기자]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짐에 따라 여성의 정치적 활동에 대한 논의도 활발해지고 있다. 단순한 투표권 행사 차원을 넘어서 여성 정치인들의 정책활동이 젠더평등 실현에 필요하다는 것이다.

20대 총선이 끝난 지 40여 일이 흐른 가운데, 20대 총선 결과를 평가하고 젠더 정치를 점검하는 평가 토론회가 열렸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25일 중구에 위치한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젠더정치의 오늘과 내일>이라는 평가 토론회를 열고 20대 총선 결과 분석과 평가·젠더 정치에 대한 방안을 시사하는 자리를 가졌다.

정문자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가 사회를 맡고 이진옥 젠더정치연구소 대표와 박진경 한국여성단체연합 성평등연구소장이 발제를 맡았다. △김민문정 한국여성민우회 공동대표 △서복경 서강대학교 현대정치연구소 연구교수 △ 여성학자 권김현영 △김은희 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이 토론자로 나서 한국의 ‘여성정치’의 현주소와 시사점에 대해 토론했다.

박진경 한국여성단체연합 성평등연구소장과 이진옥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가 발제하고 있다. <사진=여성소비자신문>

발제 “여성정치인 수는 증가했지만.. 선거과정부터 결과까지 여전히 '남성' 중심”

두 발제자는 20대 총선의 선거과정과 제도, 결과에 대해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했다.

이진옥 젠더정치연구소 대표는 20대 총선 과정에 있어서 공천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은 비례대표 여성후보 비율을 60%까지 늘리겠다고 공언하고, 실제 공천 비율도 근접하게 맞췄다. 이 대표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당선 가능성이 낮은 번호들을 여성에게 배정해 수치 채우기만 급급했다"고 지적했다.

선거운동의 형태가 지나치게 성별화돼있다는 지적도 화두에 올랐다. 이 대표는 “정의당 공식 테마송을 협연했던 중식이밴드의 여성혐오 논란과 ‘투표를 하면 설현이 심쿵심쿵’이라는 선거관리위원회의 광고는 성차별적인 고정관념을 재생산한다”며 “여성주의적 담론이 주류 남성 중심의 정당에서 배제되어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결혼한 후보와 결혼하지 않은 후보의 선거운동이 가능한 사람의 수가 다른 것(가족중심의 선거운동 형태), 정치적 소수자에게 정치참여의 진입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는 1500만원 가량의 높은 기탁금제, 선거기간 호별방문을 통한 입당권유 금지 등을 문제로 꼽으며 “한국의 선거법이 유권자의 정치참여를 제약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박진경 한국여성단체연합 성평등연구소장도 발제를 시작했다. 박 소장은 ‘젠더’에 대한 사회적 함의를 먼저 짚고 사회에서의 ‘젠더’의식, 총선에서의 ‘젠더’, 정당별 ‘젠더’과제 등에 대해 분석했다.

박 소장은 “이번 총선 과정은 ‘성(sex)’은 뜨고 ‘젠더(gender)'는 사라진 선거였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51명의 여성 후보자 당선으로 전체의 17%의 수치를 기록, 역대 최대의 여성 국회의원을 배출했지만 19대 국회가 15.7%의 수치를 기록했던 것에 비해 증가폭은 1.3%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증가속도로는 임계치인 30%를 달성할 때까지 50년의 시간이 소요된다.

박 소장은 또한 “선거과정에서 정당 및 국가기구들의 성차별이 거침없이 쏟아졌다”고 질책했다.

한국 사회에서 ‘성평등’에 대한 인식이 사회·문화적 의미의 성(gender)이 아닌 생물학적 차원의 성(sex)에 그쳐있다는 것이다. 박 소장은 “노골적인 ‘여성혐오’와 ‘성차별’이 선거운동의 재료로 쓰였다”고 말하며 ‘젠더이슈’가 사라지고 ‘성차별’이 조장된 배경과 원인을 분석했다.

박 소장은 또한 국가정책에서의 성평등 의제 실종, 대통령의 편견 등이 성평등기구인 여성가족부의 기능 마비로 이어지고, 국가기관의 ‘성평등’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성차별을 조장했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의 세계경제포럼 성 격차(gender gap)지수 순위는 145개국 중 115위로 중동국가들과 비슷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소장은 이에 대한 이유를 “불평등한 성역할과 권력관계가 강고하게 버티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 소장은 “아직 한국 정치상황에서 젠더정치 가능성을 판단하기에는 실질적 대표성은커녕 수적인 대표성도 확보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수적 대표성을 늘리기 위해 비례대표 할당제 확대를 노력해온 것이라는 것. 하지만 오히려 여성할당제가 정치적 보수성에 기여할수도 있다고 비판했다. 정당 지도부에게 여성 공천 권한이 있는데, 결국에는 정당의 이익에 봉사하게 될 여성들을 공천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박 소장은 “이런 역학관계에 의한 여성의원의 수적인 증가가 실질적 대표성증가로 나타날 가능성은 희박”하다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박 소장은 20대 국회에서 4년간 주력할 최종 23개 젠더과제와 2개의 선결과제를 선정, 제시했다. 이 과제에는 양성평등기본법에서 성평등기본법으로의 개정, 사회경제적 사유로 인한 인공임신중절 허용, 몰래카메라 유통 사이트 처벌 법제화,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이 명시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등이 포함돼있다.

토론자들이 20대총선에 대한 젠더이슈를 두고 토론하고 있다. <사진=여성소비자신문>

'젠더'이슈 사라졌지만, 젊은 여성들 정치주체로 등장

이후 시간에는 총선의 교훈과 여성운동, 여성정치, 젠더정치, 페미니스트 정치 등에 대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토론을 이어나갔다.

김민문정 한국여성민우회 공동대표는 “다른 관점에서 ‘젠더 이슈’가 많이 부각된 선거였다”며 박 소장과 다른 견해를 드러냈다. 김무성, 김을동 등 정치인의 성차별적 발언, 성차별적인 고정관념을 재현한 선거관리위원회의 투표 참여 캠페인 등 다양한 사안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여성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김민문정 공동대표는 “20대 총선에서는 20대 여성이 새로운 정치 주체로 등장했다”고 덧붙였다. 300명의 총선 당선자 중 20-30대의 당선율은 1%에 불과해 매우 낮지만, 20대 총선 후보자 중 20대 여성 후보자는 5명에서 16명으로 증가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김민문정 대표는 “이는 여성정치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표”라고 말했다.

서복경 서강대 교수는 “20대 총선에서 젠더 관련 정책의제가 보이지 않게 된 것에는 정당 간, 정당 내 경쟁구도 변동의 영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20대 총선에서 정당들이 여성, 청년, 노인 등 사회 집단의 표를 타겟으로 한 것이 아니라 지역 동원 전략을 중심으로 전략을 채택했다는 것이다.

이어 "하지만 선거 정치 공간에서 젠더 관련 이슈를 정치화하지 않았거나 의도했음에도 성공하지 못한 측면은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주로 논의됐던 의제는 공천 할당제, 여성비하·차별 발언을 한 정치인의 낙천·낙선이었다는 것.

요즘 들어 떠오르고 있는 ‘여성혐오’담론에 대해서 서 교수는 “혐오담론은 정치담론으로서 결함이 있다”며 “여성혐오가 발생한 이유는 시장에서 약자들에 대한 차별적 제도와 행태가 근본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정서적 반감이 사회구조적으로 만들어진 결과로 이해돼야 하는데 시민무화적 차원에서만 접근하면 구체적 대안과 연결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여성학자 권김현영은 “20대 총선은 방식과 제도가 깨어지고 인맥만 남았다”며 국회의원들의 발언을 꼬집었다. 정청래 의원이 “내 생애 탈당과 이혼은 없다”, 새누리당 조원진 위원이 “헌법위에 인간관계”라고 발언한 사례를 볼 때, 정책보다는 정치권의 인맥이 후보 공천에 작용했다는 지적이다.

권김현영은 이어 “정책선거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정책’의 내용을 정치의 중심으로 다시 가져가는 기획이 필요하다”며 “이데올로기,신념, 종교 등이 아닌 교육, 복지, 안전, 재정 등이 공적으로 논의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선거제도 개혁과 선거법 개정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지방자치선거 일부에 추첨제 민주주의를 실험하는 것도 방안일 수 있다”며 대안을 제시했다.

김은희 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은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으로 비유되지만, 시민들을 관객으로 전락시키기도 한다"며 '선거가 과연 민주적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알고보면 정치 또한 게임의 룰이 지배하는 처절한 경쟁의 공간이라는 것.

김 위원장은 여전히 남성 중심인 정당 체계를 꼬집고 "대의를 위해 여성들에게 강요돼 온 침묵은 집단적으로 이뤄지는 사회적 방관과 조장을 통해 구조화된 것"이라며 "그 밑바닥에는 여성을 열등한 집단으로 간주하는 심리가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조미나 기자  mina77@wso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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