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소비자신문]공정위가 입법예고한 소비자생활협동조합 시행령 개정안에 대한 반발여론이 드세다. 사무장 병원을 막는다면서 조합설립요건을 대폭 강화하고, 차입금 한도를 설정하며, 인허가 관리감독 권한을 건강보험공단으로 위탁 이관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럴 경우 조합의 신설은 엄두도 못 내고 기존 의료생협은 문을 닫아야 할 처지이다.

21세기 신자유주의를 표방하는 금융자본주의 경제의 폐해가 크게 증가했다. 2009년 UN총회에서는 새로운 경제성장의 추동력으로 협동조합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2012년을‘세계협동조합의 해’로 지정했다.

이러한 세계적 시대적 추세를 반영해 우리나라도 사회통합적인 경제모델을 구축하겠다며, 2012년 12월 1일‘협동조합기본법’을 제정해 협동조합운동을 국가가 장려하고 있다.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은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되기 훨씬 이전인 1999년 2월 5일(법률 제5743호)에 ‘상부상조의 정신을 바탕으로 한 소비자들의 자발적인 생활협동조합 활동을 촉진함으로써 소비자의 복지향상에 이바지하기 위해’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을 만들어 현재까지 잘 운영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일반협동조합은 5명만 있으면 누구나 자유롭게 설립 운영할 수 있다. 그러나 생협은 60배나 더 많은 300명의 조합원이 있어야 하고 설립·운영도 매우 까다롭다.

한편 공정거래위원회가 입법예고한 법령 개정안은 의료생협을 설립할 때 설립동의자 수를 기존 300명에서 500명으로 대폭 늘리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는 협동조합기본법에서 정한 조합원 수보다 100배 더 많은 조합원이 있어야 설립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명백히 협동조합의 기본을 규정한 협동조합기본법의 정신에 완전히 반하는 개정안이다.

출자금도 서민들과 기초생활수급자,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가 감당할 수 없는 1인당 5만원 이상으로 정하고 있으며 출자금은 총액 1억원 이상이 되도록 대폭 늘리겠다고 한다. 의료생협의 운영에 필요한 차입금도 출자금의 2배 넘게는 빌릴 수 없도록 강력히 규제하고 인허가 감독권은 전문성도 법적권한도 없는 건보공단에 위임하는 것으로 개정하려고 한다.

정부는 소비자의 권익증진을 위해 협동조합기본법을 제정했고 소비자를 위해 협동조합의 설립과 운영을 지원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동조합을 만들기 어렵고 까다롭게 바꾸겠다면 이해 당사자와 소비자들과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기본법의 취지에 위배되는 법개정에는 이에 상응하는 합당하고 상당한 이유를 모두가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이해시켜야 한다.

의료생협은 조합원의 의료, 건강, 생활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고 다양한 보건예방, 건강증진활동, 지역복지활동을 전개하여 건강하고 따듯한 진료, 행복한 공동체를 만들어 와 사회적 순기능 역할이 지대하다.

하지만 최근 극히 일부의 사무장 병원들이 의료생협의 탈을 쓰고 숨어 들어와 의료생협의 이미지를 흐리게 만들고 건보공단과 일부 의료 기득권 단체는 의료생협 전체를‘사무장병원’으로 몰아 여론을 호도하고 국민들의 인식조차 매우 삐뚤어지게 바라보는 등 의료생협의 숭고한 가치가 바닥에 떨어지게 만들었다.

협동조합이 설립한 병원은 당연히‘의사’가 아닌 자가 병원장이 되는 것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마치 자격이 없는 자가 설립한 병원처럼‘사무장병원’이라고 호도하는 것은 대학병원이나 의료법인 병원 역시‘의사’가 병원장이 아닌 경우도 모두 사무장 병원이라는 비상식적인 논리가 성립하는 것이다.

공정위는 의료생협이 소관단체 임에도 아무런 조치 없이 나몰라라 수수방관 방치한 책임이 있고, 건보공단은 부족한 건보료를 메꾸기 위하여 특별팀을 만들어 공권력을 남용하여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의료생협도 힘들게 해왔다.

급기야 조합을 보호해야 할 공정위는 관리감독권을 포기하고 생협의 관리감독권을 전문성도 법적권한도 없는 건보공단으로 떠넘기고, 조합의 설립을 장려하기는 커녕 설립요건을 어렵게 만들어 설립을 막기 위해 출자금과 조합원수를 대폭적으로 올리는 반소비자적인 입법 예고안이다.

‘사무장병원’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설립요건을 대폭적으로 강화하려 하지만 의료생협의 탈을 쓰려는‘사무장 병원’은 아무리 설립요건을 강화해도 설립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오히려 소비자들이 힘을 합쳐 만들려는 순수한 조합 활동이 어려워질 것이다. 또한, 영세서민과 사회적 약자들은 스스로 의료생협을 설립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 개정안이다.‘빈대 잡으려다 초가 삼칸 태운다’라는 속담이 이번 개정안에 딱 들어맞는 상황이 될 것이다.

정부는 협동조합정신을 훼손시키지 않고, 이러한 문제점을 고쳐서 ‘조합원의 공동이익 증대’라는 조합의 본래 취지에 맞는 정책목표를 실현시킬 수 있는 법령 개정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조연행 한국소비자생활협동조합연합회 이사장  kicf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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