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이람

장독 뚜껑 몇 천 번 여닫으면서 그 여자
목구멍에서 창자 끝까지 몇 만 킬로나 걸어왔을까
검은 옷 빨고 삶아 흰 옷 다듬이질하면서
배내옷에서 壽衣까지 몇 만 번 갈아입고 살아왔을까

-시작 노트-

이 세상 여자들은 참으로 위대합니다. 새 생명을 잉태하여 낳고 기르는 일 하나만 놓고 보아도 세상을 창조하는 것만큼 위대하다고 생각지 않는지요?

그러나 조선시대 여성들은 유교적 가부장제의 덫에 갇혀 태어날 때부터 아들과 차별 받으며 무시당하고, 자신의 존재를 전혀 드러내지 못한 채 성장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떠나 시집을 가면 그 때부터 고된 시집살이를 감내해야 하는 모진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러한 어둠의 세월도 흐르고 흘러 시대가 바뀌고, 선구적 여성들의 끊임없는 헌신적 여성해방 투쟁으로 드디어 21세기 남녀 평등시대가 도래했지만 아직도 여성들의 위치는 허약하고 힘들고 고달픕니다.

여성들의 삶이 끝없이 어려운 이유는 바로 밥을 짓고 밥을 먹이고 밥이 되는 일을 감당해야하기 때문이 아닐는지요? 구이람의 시「그 여자 몇 가마의 쌀 씻어 밥을 지어 왔을까」는 바로 이 시의 첫 행 “장독 뚜껑 몇 천 번 여닫으면서”에 인내 속에서 발효하는 여성의 삶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장 담그고 국 끓이고 밥을 짓는 어머니! 날마다 하루 세끼 밥상을 준비하는 어머니의 삶을 생각하면 이 세상 여자의 일생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듯합니다.

 “목구멍에서 창자 끝까지 몇 만 킬로나 걸어왔을까/
 검은 옷 빨고 삶아 흰 옷 다듬이질하면서/
 배내옷에서 壽衣까지 몇 만 번 갈아입고 살아왔을까”

 저 공중 나는 어미 새들 역시 광풍을 뚫고 구만리 어디라도 날아가 애써 물어온 먹이를 새끼들 입안에 넣어줍니다. 젖 먹던 힘을 다 해 사냥하는 맹수들도 생존과 함께 새끼들의 밥을 위해 견디는 필사의 노동이라고 봅니다. 이렇듯 세상의 엄마들은 자식들과 가족을 위해 밥상을 준비합니다. 생각을 담아 꿈과 행복, 그리고 건강을 담아 최고의 밥상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식들은 무엇인가요? 자식은 그저 자식일 뿐이고 자식에게 엄마는 밥, 만만한 밥이라는 이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할머니가 된 여성들은 어디서나 손주를 자랑하고 맙니다.  손주들 자랑에 벌금을 내고도 환히 빛나는 늙은 어머니의 눈을 봅니다.

그 순간은 이마에 주름살도 말끔히 펴집니다. 자식은 어렵고 힘든데 손자는 마냥 예쁘기만 하다고 말합니다.

오늘날 아이를 낳지 않아 걱정하는 소리가 드높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시대라 할지라도 여성이 아이를 쑥쑥 잘 낳고 행복하게 기를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꿈인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나도록 엄마들은 “목구멍에서 창자 끝까지” 걸으며 “검은 옷 빨고 삶아 흰 옷 다듬이질하면서” 여전히 밥을 지을 것입니다.

구명숙 숙명여자대학교 어문학부 교수  k93m@s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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