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소비자신문 조미나 기자] 공직자들의 뇌물 수수와 청탁을 금지하기 위해 마련된 일명 ‘김영란법’의 도입을 앞두고 재계와 언론에서 상반된 시각을 보이며 시행 전부터 진통이 이어지고 있다. 단순히 공직사회의 부정부패 방지 차원이 아니라 경제 전반에 타격을 줄 것이란 예상 때문이다.

‘김영란법’이란 2012년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추진했던 법안으로, 정확한 명칭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다. 올해 3월 국회본회의를 통과한 이 법안은 5월 9일 시행령이 입법예고돼 9월 28일부터 시행된다.

법안 적용대상은 △공직자 △언론사 임직원 △사립학교·유치원의 임직원 △사학재단 이사장과 이사로, 본인이나 배우자가 100만원을 넘는 금품 또는 향응을 받으면 무조건 형사처벌을 받는다.

또한 해당 직업군은 직무 관련인으로부터 3만원 이상의 식사대접을 받으면 과태료를 내야한다. 이는 현행 공무원 행동강령에서 규정하고 있는 상한선을 그대로 유지한 것. 기존의 공무원 행동강령에는 선물을 원칙적으로 금지, 선물비용에 대한 상한액은 없었으나 이 제정안은 상한선으로 5만원을 책정했다. 경조사비용은 현행 5만원에서 10만원으로 올렸다.

해당 법안이 공직자 뿐 아니라 하급 공무원과 언론인 등 적용 대상이 확대됨에 따라 일각에서는 “지나친 규제”라며 “시행 이전에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농수산물·외식업 타격 예상...'경제 침체 심화될 것'vs'지나친 공포 마케팅'

이에 대한 농수산물과 외식업계의 반발도 뜨겁다. 김영란법 제정이 해당 업계의 수익에 차질을 줄 것이란 예측 때문이다. 경조사비용과 선물의 상한선을 정하면 한우·굴비·화훼 등 고가의 선물 품목의 판매율이 현저하게 떨어질 수 있다는 것.

농협중앙회는 지난 12일 '김영란법'(부정청탁 금지법)적용대상에서 농수산물을 제외해 달라는 긴급 성명을 발표했다. 농협중앙회는 “우리 주요 농축산물의 40%가량이 명절 기간에 집중적으로 판매되는데, 법 시행으로 인해 수입산 농축산물 선물세트가 저렴한 가격으로 대체될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농협에 따르면 명절 때 과일 선물세트는 전체의 50% 이상, 인삼은 70% 이상, 한우는 98% 이상이 5만원 이상 대 가격으로 팔리고 있어, 부정청탁 금지법에 따라 해당 품목은 선물로 유통될 수 없다. 또한 농협 측은 “김영란법 시행으로 사과·배는 최대 1500억원, 한우 산업은 최대 4100억원까지 매출액이 감소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외식업계 또한 매출 감소를 이유로 법 시행 반대에 나섰다. 한국외식산업연구원은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국내 외식업 연간 매출의 약 5%인 4조1천500억원이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연구원은 통계청이 발표한 2014년 외식업 매출액 83조원과 김영란법 시행으로 영향을 받는 고객의 비율(16.3%) 등을 근거해 이같이 추산했다.

지난해 김종태 새누리당 의원은 이러한 업계의 의견을 고려해 ‘김영란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하며 농수산 생산품과 가공품을 수수금지 대상에서 제외할 것을 추가했지만 실제 법 제정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반대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법 시행으로 인한 일시적 경제 침체도 있을 수 있으나 수조원의 피해라는 추정은 지나친 억측이라는 것이다.

농·수산업계와 외식업계가 분석한 통계는 현행 3만원 이상 음식점이나 5만원 이상 선물 세트가 모두 '접대용'이라는 가정에 기반한 추산이다. 공직자나 교직원이 단순한 외식업체 이용이나 가족을 위한 선물 용도로 농·축산물을 구매할 수 있음에도 이러한 부분을 모두 일반화시키는 것은 위험하다는 지적이다.

한 전문가는 "이로 인해 경기에 미치는 파급력이 크다면, 고가 선물이 공직자들 사이에 만연하다는 방증 아니겠냐"며 "그렇다면 경기침체를 감수하더라도 공탁 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영훈 국민권익위원장이 9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제2브리핑룸에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 법)' 시행령안의 주요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일부만 개선하면 경기 활성화 예상" 긍정적 효과도 기대

일부 업계의 반발과 달리, 다른 쪽에서는 부정부패를 제재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 오히려 경제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무조건 법안을 배척할 것이 아니라 도입 이후 예상되는 문제점이나 한계점을 보완해 시스템을 안착하는 방향으로 법안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법안의 적용 대상이 공직자, 언론인 등 다소 포괄적으로 명시돼있어 법 시행 이후 다소 혼란이 예상된다.

언론인의 경우, 언론사 규제는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른다. 이 법에는 ‘방송, 신문, 잡지 등 정기간행물, 뉴스통신 및 인터넷신문’을 언론사로 규정하고 있다. 때문에 언론사 직원 중 어떤 직무까지 ‘언론인’으로 규정할 것이냐에 대해서도 관심이 뜨겁다. 언론사에는 기자가 아닌 인사·회계 등의 부서가 있기 때문에 전직원에게 적용할 경우 적용 대상이 지나치게 확대된다는 것.

또한 언론사가 아닌 금융·의료·법조계에서도 일부가 정기간행물을 발행하고 있어, 직군의 중복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일반 변호사와 의사는 법안의 제재 대상이 아니지만 간행물을 발간하는 일부 전문직의 경우는 법안에 해당할 수 있다. 때문에 해당 업계에서는 “법안이 형평성의 원칙에 의거해 적용될 수 있도록 구체적인 가이드라인과 현장 매뉴얼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이러한 우려에도 불구, 시스템이 안착되면 오히려 경제 진작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과 부패인식지수(CPI) 상관관계에서, 사회 투명성이 높아져 CPI 지수가 1% 오를 때 1인당 GDP는 연평균 0.029%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렴한 사회분위기일수록 경제 활성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하버드 경영대학원 또한 “국제청렴도 지수 부패의식 인식이 약 7.5%의 세율인하의 효과를 유발해,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조미나 기자  mina77@wso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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