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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주 세종로포럼 이사장 “공직자 신념으로 자원봉사 시작, 여성의 사회진출에도 큰 도움”창의적인 공무원에서 헌신하는 자원봉사 전문가로 변신
김영 기자 | 승인 2016.04.30 02:13

[여성소비자신문 김영 기자] '자원봉사'란 사회 또는 공익을 위해 타인의 지시나 명령이 아닌 자발적인 의지로 헌신하는 행위를 뜻한다. 자원봉사 활성화 정도는 그 사회가 얼마나 성숙된 시민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척도로도 쓰인다.

박승주(전 여성가족부 차관) 한국시민자원봉사회 세종로국정포럼 이사장은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원봉사 분야에서 활동해 왔다. 정부부처 고위 공직자로 재직하던 시절 ‘어머니봉사단’을 직접 조직했으며, 현재도 인성교육 차원의 자원봉사 참여 확산에 노력 중이다.

<여성소비자신문>은 공직자의 신념으로 자원봉사를 시작하게 됐다는 박 이사장을 만나, 그에게 있어 자원봉사가 가지는 의의와 향후 계획 등에 대해 들어봤다.

<사진 여성소비자신문>

- 자원봉사 활동에 참여하게 된 계기를 알아보기에 앞서 30년간의 공직생활이 눈에 띈다. 공직자 시절 박 이사장은 어떤 공무원이었나?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전남도청에서 잠시 근무하다 현재의 행정자치부인 내무부로 발령을 받았다. 박정희 대통령 때는 새마을운동 관련 업무에 참여했고, 전두환 정부 들어서는 사회정화 업무를 서포터 하기도 했다. 김영삼 대통령 취임 후로는 청와대 행정관으로 발탁돼 행정쇄신 업무를 맡기도 했다.

중앙부처와 지자체 양쪽 논리를 모두 잘 알고 있다 보니 지방자치 관련 TF팀 업무를 자주 수행했다. 조직 내에서는 상당히 특이한 사람 취급을 받기도 했다. 이노베이티브 한 생각과 행동들 때문이었는데, 섬과 섬 사이를 오가는 도서 준연륙화 계획도 내가 처음 제안했고 진행한 사업이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인데 2002년 월드컵 때는 행정자치부 산하 월드컵지원국 국장을 맡아 우리 대표팀의 조별경기가 있던 부산과 대구 인천에서 빨간 옷을 나눠주기도 했다.

월드컵 초기만 해도 경기장을 찾은 관람객 중 절반 정도만 빨간 옷을 입고 왔는데, 해당 지자체에 특별교부세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옷을 제공했다. 조별경기 후로는 빨간 옷 대신 김덕수 사물놀이패의 응원단 참여 등을 지원했다.

참여정부 말에는 여성가족부 차관으로 선임됐다. 1995년 자원봉사 활동을 시작하며 ‘어머니봉사단’을 조직하는 등 나름 여성 친화적인 공무원이라 자부했는데, 그런 부분을 인정받은 것 같다.

차관으로 근무할 때는 조직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노력했다. 지자체를 잘 알고 있다는 장기를 살려 여가부 직원들에게 지방자치법 강좌를 4~5차례 정도 실시하기도 했다.

- 언급한 것처럼 공직생활 중 자원봉사 활동을 처음 시작해 지금까지 20년 넘게 이 일을 해오고 있다. 어떤 계기로 자원봉사에 관심을 가지게 됐나?

공무원 사회에는 “승진하려면 바쁜 부서로 가라”는 말이 있다. 나 역시 공무원으로 근무하며 상당히 바쁜 나날을 보냈다. 주5일제도 아니던 시절 야근은 기본이고 휴일도 없이 일하곤 했다.

그러다 보니 토요일 오후가 되면 잠시 농땡이를 피우기도 했는데, 내 경우 정부 청사 인근 화랑이나 표구점에 자주 가곤 했다. 그렇게 찾은 표구점에서 작품을 감상하다 현재 자원봉사 활동을 함께 하고 있는 유주영 한국시민자원봉사회 중앙회장님을 만나게 됐다.

당시 유 회장은 일반 직장에 다니며 청소년 봉사단체 사무총장도 맡고 있었는데 상당히 개혁적인 분이었다. 그때 우리나라 상황에 대해 구한말과 비슷하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국가장래를 걱정하는 부분에 있어 나와 생각이 많이 일치했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던 중 의기투합하게 됐고 함께 한국시민자원봉사회를 발족하게 됐다.

- 현직 공무원 신분으로 다른 사회활동도 아닌 자원봉사를 택한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가?

계몽활동이라 하면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는 것인데, 단순 계몽을 통한 효과에 대해선 다소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공무원 연수원에서 근무하던 시절 일인데, 일주일간의 합숙훈련이 끝날 때쯤 되면 연수생들의 눈빛이 ‘교육이 효과가 있구나’라고 믿을 만큼 변화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과 연락해 보면 거의 대부분 교육받기 전 상태로 돌아가 있었다.

일방적인 훈련이나 교육이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된 계기였다. 그 후 오랜 고민 끝에 사람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몸으로 직접 체화하는 경험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게 됐다.

또 우리 국민들 가슴 속에 자원봉사의 훌륭한 맥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고 판단했다. 농경사회 시절 두레나 상부상조 정신은 물론 국란이 있을 때마다 일어선 의병활동 모두 자신을 희생해 타인을 위한다는 점에서 자원봉사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다만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자원봉사 활동이 조직적이고 체계화되지 못했는데, 이는 단체 수립의 어려움이 컸던 탓이다. 조선시대에는 왕조에 대한 반역으로 일제 때는 독립운동으로 자유당 시절에는 야당을 돕기 위한 행위들로 여겨지며 단체 자체를 만들지 못했다. 이 같은 기조는 최근까지도 이어졌는데 ‘사회단체 등록에 관한 법률’이 사라진 것이 1980년대 말에 이르러서였다.

사람과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직접 경험케 하는 게 최선이고 우리 역사에 자원봉사의 좋은 맥이 이어져 왔음에도, 자원봉사 활동이 조직화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자원봉사 활동을 준비하게 됐다.

자원봉사가 혼자서는 큰 효과를 보기 어렵고 정부에서도 퍼포먼스를 중시한다는 점 또한 조직 체계를 갖추게 된 이유 중 하나였다.

공무원으로서 신념 또한 자원봉사 활동을 시작하게 된 주요 계기 중 하나였다. 공무원의 첫 번째 덕목은 국민에 대한 봉사라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서는 좋은 정책을 만드는 건 기본이고 현장을 직접 찾아가 봐야 한다고 여겼고 그렇게 자원봉사를 시작하게 됐다.

<사진 여성소비자신문>

- 자원봉사 활동을 오랫동안 해 왔는데, 과거와 비교해 우리나라 국민들이 자원봉사를 대하는 태도에 변화가 있다고 보나?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

자원봉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자율적인 참여인데, 단체 설립 초기만 해도 그런 부분에 있어 아쉬움이 많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단체가 커지고 참여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는데 회원 스스로 봉사활동을 계획하고 진행하는 경우가 상당히 적었던 것이다. 그래서 한 때는 봉사활동에 있어 자율성을 강조하며 그렇지 못한 지방조직을 대거 없애기도 했다.

반면 현재는 자율성에 있어 의미 있는 변화들이 자주 눈에 띈다. 특히 국가적 위기 상황이 닥칠 때 국민 스스로 참여하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고 생각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태안반도 기름유출 사고라 할 수 있겠다. 기름 때 제거를 위해 전국 각지에서 120만명이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태안을 찾은 것으로, 우리 단체 회원들 또한 수만명이 태안에서 자원봉사에 나섰다.

기부 또한 자원봉사와 비슷한 맥락이라 보는데, 부자가 아닌 일반 서민들의 기부활동 증가 역시 자원봉사 운동이 가져온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많은데, 그 중에서도 자원봉사자 육성을 위한 정부나 관련단체의 소극적인 자세가 많이 아쉽다.

자원봉사의 경우 총 3단계로 나눠볼 수 있다. 첫 번째가 ‘봉사하러 간다’로 단순한 수준의 봉사참여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 다음이 ‘봉사하러 갑시다’인데, 자원봉사 계획을 수립하고 다른 사람과 함께 봉사에 참여하는 단계라 할수 있다.

그리고 최종 3단계가 ‘봉사하러 갑시다’라고 말할 수 있는 자원봉사자를 육성하는 것이다.

자원봉사 계획을 수립하는 건 일반적인 회사의 기획업무 보다 어려운 일이다. 일정한 루틴 없이 매번 새로운 주체와 색다른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기획능력을 갖춘 자원봉사자 육성에 많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데, 그런 부분에 있어 정부나 관계기관의 부족한 관심이 많이 아쉽다.

- ‘어머니봉사단’ 등 여성들과도 꾸준히 자원봉사를 진행해 왔다. 자원봉사와 여성의 상관관계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현재 운영 중인 조직의 규모나 활동에 비해 그 명성이 외부적으로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편인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자원봉사 활동은 가정에만 있던 여성들의 사회진출 및 재취업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본다.

우리 단체만 해도 30만명에 가까운 여성회원들이 자녀의 대학 졸업 후 사회로 다시 진출했다. 봉사 기획 등의 업무를 수행하며 리더십을 쌓은 여성들을 주변에서 먼저 찾고 있기 때문이다. 자원봉사가 대한민국 전업주부를 경제활동 역량가로 훈련시킨 것이다.

조직 규모나 활동상이 외부로 많이 알려지지 않은 건 이를 굳이 알리진 않았던 탓이다. 지금도 각 조장이 조원들을 직접 관리하고 있으며, 조직 운영을 위한 상근직원도 따로 두지 않고 있다.

조직의 규모 등이 외부에 알려지고 그러다 보면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도 등장할 수 있다고 우려해, 되도록 조용히 활동해 온 측면도 없지 않다.

- 자원봉사에 있어 현재 준비 중인 계획이 있다면 무엇인가?

먼저 말해둘 부분이 있는데,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젊은이들은 물론 어른신들 중에서도 인성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우리 선조들의 경우 서당을 다니기 시작하면 소학, 천자문, 명심보감 등을 먼저 배웠는데 이들 모두가 인성교육이었다. 유학 자체가 인성을 기르는 학문이었다.

그러나 일제시대를 거치며 우리 전통의 인성교육의 맥이 끊어졌다. 과학과 수학 등 이른바 신식교육에 집중하는 사이 전통적 인성교육은 ‘고리타분한 옛것’으로 취급 받았고, 해방이후 지금까지도 제대로 된 인성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성교육의 중요성은 달라지지 않는다. 고대 이집트의 로제타 비석에도 공자가 남긴 논어에도 “요즘 젊은이들은 예의가 부족하다”는 말이 나온다. 예나 지금이나 인성교육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리고 봉사란 상대방을 배려하는 자세가 우선돼야 한다. 상대가 싫은 걸 억지로 하는 건 절대 봉사가 아니다. 그와 같이 남을 배려하는 활동이 인성을 증진시키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또한 오늘날 젊은이들을 위해 우리만의 인성교육 교재를 발굴하고 보급할 계획이다. 논어나 맹자 명심보감 모두 훌륭한 인성교육 교재지만 중국에서 넘어온 것들로 우리 고유의 것은 아니다.

대신 우리에게도 이를 대체할만한 좋은 교재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율곡 이이 선생이 남긴 ‘격몽요결’만한 것이 없다고 본다.

격몽요결은 율곡 선생이 임금인 선조에게 바치는 ‘성학집요’ 집필이후 세상에 내놓은 것으로 율곡 철학의 집대성이자, 선생의 삶에 대한 깊은 고뇌가 그대로 담겨 있는 책이다.

다만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격몽요결 편역본은 오역이 많아, 최대한 중립적인 자세에서 편역본을 새로 준비하고 있는데 해설까지 달아 젊은이들과 신혼부부 등을 위한 인성교육 교재로 활용할 생각이다.

- 봉사에 충실한 삶을 살아왔는데 향후 개인적인 바람이나 계획이 있다면 어떻게 되나?

자원봉사를 오래해 왔지만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공무원과 현장 사이 괴리감이 상당하다는 걸 느낀다. 이를 해소코자 다시 한 번 정무직 공무원을 맡아 공무원 조직 내부에서부터 자원봉사 참여 확대 등의 변화를 이끌어 보고 싶은 생각도 있다.

현재 이사장을 맡고 있는 세종로국정포럼 활동 등을 통해 정부의 국정운영을 서포터 하는 역할 또한 지속할 방침이다.

 
<사진 여성소비자신문>

1952년 전남 영광 태생

학력

서울대학교 경영학 학사
카이스트 대학원 산업공학 석사
동국대학교 행정대학원 박사

경력

제21회 행정고시 합격
내무부 법무담당관실
대통령비서실 행정관
내무부 자치기획 과장
국가전문행정연수원 기획부 부장
행정자치부 제2건국운동지원팀 팀장
행정자치부 월드컵지원국 국장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기획운영실 실장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회 위원
제6대 여성가족부 차관
한국시민자원봉사회 중앙회 집행부회장
한국시민자원봉사회 청소년자원봉사본부 본부장
2012여수EXPO자원봉사 자문위원장
제3대 광주발전연구원 원장

 

김영 기자  young@wso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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