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소비자신문 김영 기자] 정권발 기업 구조조정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정부가 밝힌 구조조정 가속화 방침에 여당은 물론 야3당 모두 동의 의사를 나타낸 것으로, 글로벌 경기둔화 속 실적악화가 이어지고 있는 해운‧조선‧철강‧정유‧석유화학 등의 업종이 구조조정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한 때 우리 경제를 지탱해온 이들 업종의 총체적 위기상황이 쉽게 타계되지 않고 있는 모습으로, 재계 위기론의 시발점이라 볼 수 있는 해운업계의 경우 국적사인 현대상선과 한진해운 양사 모두 채권단과 자율협약까지 맺은 상태다.

지난 21일 유일호 경제부총리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노동·공공·금융·교육 등 4대 부문 구조개혁에 산업개혁을 더한 ‘4+1 개혁’을 추진하겠다며, 정권 차원의 ‘구조조정 가속화 방침’을 밝혔다.

재계 전반을 휘감은 총제적 위기론 극복을 위해 정부가 직접 나서겠다는 의지 표명으로 한계기업 구조조정에 대해선 여당인 새누리당은 물론 20대 국회 주도권을 쥐게 된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3당 역시 원론적 차원의 동의의사를 나타냈다.

다만 정치권의 이같은 움직임이 꽉 막힌 재계 숨통을 트여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로, “너무 늦은 대처 아니냐”는 의견도 적지않다. 특히 수년간 적자상태가 이어지는 가운데 업황 개선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는 해운업에 대해 우려가 상당하다.

용선료 인하 협상에 사운을 걸고 있는 현대상선. <사진제공=뉴시스>

해외 투자자 빠져 나가는 현대상선

2000년대 중반까지 국내 해운업계는 전 세계적 경기호황 속 성장을 거듭해 왔다. 배가 부족해 물건을 못 실어 나를 정도로 경기가 좋았던 것으로, 컨테이너선 대형화 바람이 업계 최대 이슈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2008년 미국의 리먼 브러더스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해운경기는 바닥까지 내려앉었다.

급격한 물동량 감소 여파 속 선박 공급과잉 현상이 벌어진 것으로, 다수의 해운사가 배 운임료로 용선료(선주로부터 배를 빌릴 때 주는 돈) 조차 벌지 못하는 상황에 놓였다. 그리고 현재도 세계 해운경기는 별다른 개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국내 해운업계를 대표해온 현대상선과 한진해운 역시 글로벌 해운경기 불황 여파 속에 수년간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중에서도 해운사가 그룹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해 온 현대상선 측의 타격이 더 큰 모습이다.

이에 현대상선은 지난 2013년말부터 여러 자구책을 내놓고 있다. 현대로지스틱스와 현대증권 등 알짜 계열사 및 주요 자산을 매각했다. 지난 3월에는 산업은행·수출입은행·기업은행·국민은행·하나은행·우리은행·신용보증기금 등 채권단과 조건부 자율협약을 맺고 올 상반기 안에 경영정상화를 마무리하겠다는 계획까지 세웠다.

그럼에도 현대상선의 자생 회복을 기대하는 목소리는 그닥 많지 않다.

일단 자구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영국·싱가포르 등지의 해외 선사들과의 용선료 인하 협상이 아직 이렇다 할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당초 현대상선은 용선료 인하협상을 이달 중 마무리하고 6월경 채무 재조정을 위한 사채권자집회를 개최한다는 계획이었는데, 선결조건이던 용선료 협상이 무산될 경우 여타 자구책 역시 실시 자체가 불가능하다.

최근 증권가에서는 현대상선 해외 투자자들의 사채 회수 소식도 들려오고 있다. 채권단으로부터 강도 높은 구조조정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현대상선의 미래 실적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가 많아지자 일부 해외 투자자들이 보유 중이던 현대상선 해외 사모 교환사채(EB)를 교환 대상인 KB금융지주 주식으로 일부 교환해 간 것.

앞서 현대상선은 2013년 5월 싱가포르 등 해외 금융시장에서 1억 1760만 달러(1300억원) 규모로 사모 교환사채를 발행했다. 2018년 5월 9일 만기인 이 교환사채는 주당 4만 2700원에 KB금융지주 보통주로 교환할 수 있다. 2013년 6월 9일부터 교환 청구가 가능했는데 종전까지는 KB금융지주 주가가 3만원대로 교환가액을 밑돌아 이를 교환한 투자자가 거의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현대상선이 법정관리 될수 있다는 소문이 나돌자 해외 투자자들의 교환 청구가 이어지는 모습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들 또한 “해외 투자자들이 나중에 더 큰 손실을 막으려고 보유 교환사채를 주식으로 미리 교환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사진제공=뉴시스>

자율협약 체결한 한진

한진그룹 산하 한진해운 상황도 암울하긴 마찬가지다.

2013년 12월 한진해운은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과 재무구조 개선 약정을 맺고 총 2조 3500억원 안팎의 재무개선 성과를 냈다. 벌크 전용선 사업부, 스페인 알헤시라스 터미널, 부산 신항만 터미널 지분, 광양터미널 지분, 영국 런던 사옥, 한진 상표권 등을 매각했으며, 노후 선박 폐쇄와 인건비 절감 등 비용 감축 방안도 추진했다.

그룹 차원에서도 한진해운 살리기에 전력을 다했다. 같은 그룹 계열사인 대한항공은 한진해운에 빌려준 2200억원을 무기명식 무보증 사모사채(신종자본증권)로 전환해주기도 했다.

그럼에도 재무상황은 크게 개선되지 못했고, 4월 22일 한진해운 측은 현대상선과 마찬가지로 채권단과 자율협약 체결하기로 하고 이를 공시했다. 재무구조 개선 및 경영정상화를 위한 목적으로 구체적인 진행상황에 대해서는 추후 공시할 예정이다.

한진해운의 자율협약 체결 소식에 재계에서는 조양호 회장의 경영권 포기를 요구해 온 이동걸 산업은행장의 요구가 받아들여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정부 차원의 기업 구조조정이 본격 시동을 건 사례로도 풀이 중이다.

향후 한진해운이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어느 정도선까지 구조조정을 단행할지에 대해선 아직 알려진 내용이 없으나, 일각에서는 감자를 비롯해 추가 사업부문 매각까지 검토 중이란 설 등이 나돌고 있다.

김영 기자  young@wso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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