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마리아

[여성소비자신문 김희정 기자]여성 독립운동가 하면 태극기 들고 만세 부르다 옥중에서 숨진 유관순 열사 이외에 모르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대갓집 마님에서 최고의 신식교육을 받은 엘리트 신여성의 독립운동가들도 있다.

김락, 이화림, 남자현, 정정화, 동풍신, 김마리아, 안경신, 박차정, 조마리아, 권기옥, 부춘화, 김향화, 장주룡, 윤희순, 이병희, 조신성, 김알렉산드라, 오광심, 김명시, 정칠성, 방순희, 이희경, 주세죽 등이 그들이다.

정운현 작가가 ‘조선의 딸 총을 들다’에서 이들의 삶을 재조명했다.

정운현씨는 1959년 경상남도 항양에서 태어나 경북대학교를 졸업했다.

1984년 중앙일보에 입사해 서울신문 차장, 오마이뉴스 편집국장 등 20여년 동안 기자로 일한 정운현씨는 1980년대 말부터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박고 있는 친일문제에 관심을 갖고 자료수집과 취재를 했다.
 
그에 따르면 일제 강점기에 전국 각지에서 여성단체들이 일어났다. 서울 부인감찬회, 대안동 국채보상부인회, 인천 적성회, 대구 국채보상탈환회, 부산 좌천리 부인회감선의연회, 삼화항 폐물폐비부인회, 창원항 국채보상부인회, 선천 의성회, 안악 국채보상탈환회, 안성 장기동부인모집소, 진주 애국부인회, 남양 의성회, 김포국채보상의무소, 제주도 삼도리부인회가 있다.

감찬회는 반찬 가짓수를 줄여서, 탈환회는 금가락지를 빼서 그 돈으로 나라 빚을 갚자는 모임이다.

많은 여성들이 아침저녁으로 반찬값을 줄이거나 애지중지해 온 폐물을 독립운동하는데 내놓았다. 가난한 과부나 노파는 품삯을, 혼례를 앞둔 처녀는 혼수감을 내놓기도 하고 어떤 여성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팔아서 의연금을 내놓았다.

당시 삼화항 패물 폐지부인회 소속이었던 안중근 의사의 모친 조 마리아 여사는 은가락지 2쌍, 은투호 2개, 은장도 1개, 은귀이개 2개 등 총 10종에 넉냥 닷돈을 쾌척했다.

1913년 평양 숭의학교 교사 황에스더, 김경의, 박정식 등 3인이 중심이 되어 송죽회를 조직했다. 이 단체는 나중에 대한애국부인회로 계승, 발전되었다.

1919년 2월 일본 도쿄에서 도쿄학생들로 학우회가 결성되자 여자 유학생들은 재동경조선여자친목회를 별도로 조직해 활동했다.

이들은 2․8 독립선언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고 당일 행사에도 직접 참가했다.

3․1운동이 일어나자 신진심 등 이화학당 재학생과 졸업생이 만세시위를 시작했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이밖에도 정신여학교, 경성여고, 진명여고, 숙명여고, 배화여고 학생들도 참가했다.

4월 1일 충청도 아우내 장터에서는 이화학당 학생 유관순이 만세 시위를 일으켰다. 유관순은 이날 시위로 일경에 검거돼 서대문형무소에서 18살에 옥사했다.

항일투쟁에 직접 참여한 여성들 외에 전단배포 등 선전활동, 공작, 독립군 군복 및 화약 제조, 도피자 은닉, 군자금 모집, 비밀문서 및 군수품 운반, 비밀연락책 역할을 한 여성들도 많다.

정운현씨는 “여성 독립 운동가들은 남성 독립운동가들에 비해 두 세배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자년 양육과 시부모 봉양, 가사노동을 병행하면서 가족의 옥바라지를 했다”고 말했다.

박경목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관장이 발표한 ‘일제강점기 서대문 형무소 여수감자 현황과 특징’에 따르면 1920년~1945년까지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됐던 여성 수감자들 가운데 수형기록카드가 남아 있는 인물 181명 중 치안유지법 위반이나 보안법 위반 등이 대부분으로 이들이 항일 투쟁에 참가했다.

김락을 비롯한 여성독립운동가들

양반가 출신 중 독립운동에 참여한 여성도 있다. 김락은 1862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다. 1910년 8월 시아버지 이만도씨가 “식민지 땅에서 무릎 꿇고 살 수 없다”며 단식에 들어갔다. 1904년 을사늑약 이후 전국에서 60명 가까운 지사들이 자결로 일본에 항거했는데 그 가운데 안동 사람이 절대 다수였다고 한다. 이만도는 24일 동안 곡기를 끊은 후 결국 순국했다.

김락의 큰오빠 김대락과 큰형부 이상룡은 서간도에서 경학가를 조직해 독립운동의 전초기지를 만들었다. 김락의 남편 이중엽은 1914년 안동과 봉화 장터에 유림들의 궐기를 촉구하는 격문인 ‘당교격서’를 돌렸다. 1919년 3․1혁명 당시 서울에서 활동하던 남편은 ‘파리장서’라는 독립청원서를 발의하고 강원도와 경북 지방 유림 대표의 서명을 받는 일을 했다. 1차 유림단 사건으로 이중엽은 투옥되고 이듬해 11월 동지들과 함께 독립청원서를 손문 등 중국의 유력인사들에게 보내려고 시도하다 출국 직전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김락은 1919년 3월 22일에 있었던 예안면 시위에 참가했다가 현장에서 일경에 체포됐다.

김락은 조사과정에서 일경의 고문으로 두 눈을 잃었다. 이런 사실은 80년이나 알려지지 않았다가 지난 2000년 김희곤 안동대 교수가 조선총독부 경북 경찰부가 만든 고등계 형사 지침서인 고등경찰요사를 살펴보다가 알게 됐다.

이화림은 윤봉길 의거에 앞서 1월 이봉창 의사의 일왕 암살 시도 의거 때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준 여성이다. 그는 이봉창이 거사에 사용할 폭탄을 바짓가랑이 속주머니에 넣을 수 있도록 주머니를 만들어 바지를 꿰맨 인물이다.

남편을 따라 독립운동가가 된 남자현은 1872년 안동에서 영남의 전통 유생인 남정한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19살에 부친의 문하생이던 김영주와 혼인해 경북 영양으로 시집을 갔다. 1895년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살해되자 전국에서 의병이 일어났을 때 남편 김영주는 “나라가 망해가는데 어찌 집에 가만히 있겠느냐며 영양 의병부대에 가담했다가 이듬해에 진보면 홍구동 전투에서 전사했다.

1919년 남자현은 아들을 데리고 중국 요령성 통화현으로 망명했다. 그는 남편의 원수를 갚기 위해 무장항쟁 운동에 뛰어들었다. 남자현은 서로군정서에 가입해 독립군 뒷바라지를 했고 아들 감성삼은 신흥무관학교에 입학시켜 독립군 교육을 시켰다. 또 조선인 거주 농촌 지역을 돌며 12개 교회를 세우고 여자 교육회를 설립해 여성계몽과 민족의식 고취에 앞장섰다.

1926년 남자현은 초대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를 처단하기 위해 남편과 함께 의병활동을 했던 이청산과 함께 조선으로 건너왔다.

세 사람은 서울 헤화동 28번지 고씨 집에 숨어 있었다. 이때 사이토의 목숨을 노린 또 다른 인물인 송학선이 창덕궁에서 사이토를 노렸다. 송학선은 일본인이 탄 자동차가 금호문으로 들어오자 비호같이 자동차에 올라타 이들을 찔렀으나 아쉽게도 그가 찌른 일본인은 사이토가 아닌 경성부회 평의원이었다. 이 사건으로 총독경호가 강화되자 남자현 일행은 거사를 포기하고 만주로 되돌아갔다.

1931년 일제가 만주사변을 일으키자 국제연맹이 국제적 비난 여론에 못이겨 이듬해 9월 조사단을 하얼빈에 파견해 진상조사에 나섰다. 남자현은 조사단에게 우리의 독립의지를 전하기 위해 자신의 왼손 무명지 두 마디를 잘랐다. 그는 ‘조선은 독립을 원한다’라고 혈서를 쓴 후 하얀 손수건에 자른 손가락을 함께 싸서 조사단에 보냈다.

대갓집 맏며느리였던 정정화는 임시 정부 시절 일제의 철통 같은 감시를 뚫고 무려 여섯 번이나 국경을 넘나들며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고 운반하는 밀사로 맹활약했던 독립투사였다.

독립운동을 하던 시아버지를 봉양하기 위해 20살에 상해로 건너간 정정화는 조국 광복을 위해 일생을 바쳤다.
   
신여성 항일운동가인 김마리아는 1918년 동지 황애덕과 함께 2․8 독립선언에 필요한 자금 100원을 모금해 기증했다. 2․8 독립선언 당일에는 독립선언 대회에 참가했다가 연행돼 취조를 받았다.

김마리아가 감옥에 수감돼 있을 당시 정신여학교 동창들은 혈성부인회를 조직해 3․1운동으로 투옥된 남녀 애국지사 옥바라지를 하고 그 가족들을 돌봤다.

또한 기독교인 여성들은 대조선독립애국부인회를 결성해 임지정부 후원활동을 했다.

김마리아는 엘리트 출신으로 얼마든지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었음에도 평생을 독립운동에 몸 바친 인물이다. 1937년 중일 전쟁 발발 후 천주교, 장로교, 감리교 등 한국 기독교 주요 교파들이 신사참배에 나서는 등 대거 변절했지만 김마리아는 끝내 지조를 굽히지 않았다. 그는 여러 차례 일본경찰에 체포돼 고문을 받았다.

일본경찰에게 체포돼 고문을 받는 과정에서 한쪽 가슴을 인두로 지져버리는 잔혹한 성고문을 당해 김마리아가 남긴 한복 저고리는 안섶과 겉섶의 길이가 짝짝이다. 고문 후유증이 재발해 평양기독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던 김마리아는 광복을 불과 1년여 앞둔 1944년 3월 13일 숨을 거뒀다.

박자혜는 3․1운동을 앞두고 간호사들의 독립운동단체인 간우회를 조직해 각종 유인물을 비밀리에 제작해 배포하는 한편 3월 10일 간우회 회원들과 만세 시위를 벌인 여성이다.

얼마 뒤 그는 총독부 병원 소속 조선인 의사를 규합해 일제의 부당한 대우에 항의하는 태업을 주도했다. 이 사건으로 박자혜는 일경에 체포돼 수감됐다. 감옥에서 풀려난 훈 박자혜는  이국땅인 북경까지 건너가 연경대학 의예과에 입학했다.

북경 생활 1년 뒤인 1920년 봄 그는 당대 최고의 문필가이자 혁명가로 이름을 떨친 신채호를 만나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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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채호의 부인인 박자혜는 옥중에서 타계한 남편 신채호의 옥바라지를 하고 두 아들을 홀로 키웠다.

여순감옥에서 신채호가 사망한 후 박자혜는 둘째 아들이 폐병에 걸리는 등 혹독한 가난을  견디며 살아야 했다. 그렇지만 독립운동가의 아내로서 그 역시 잦은 연행과 고문 후유증으로 병을 얻은 후 1944년 1월 16일 단칸 셋방에서 홀로 쓸쓸히 숨을 거뒀다.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인 조마리아는 아들을 천금보다 귀한 아들을 조국에 바친 여성이다. 그는 구한말 나라가 빚에 허덕이지 소중히 간지해 오던 패물 여럿을 기꺼이 내놓았다. 또 임시정부의 재정이 어렵다는 소리를 듣고 망명지 상해에서 안창호와 함께 재정후원회를 결성해  독립운동을 도왔다.

안경신은 대한광복군 총영 소속으로 몸소 항일 무장단체에 들어가 항일 투쟁을 한 여성이다.
대한광복군 총영은 조선총독부 등 일제 통치기관 폭파 및 총독부 요인 처단을 하는 항일 무장단체였다.

이 단체 조직원들은 1920년 8월 미국 상하 의원단 100여명이 중국을 들러 일본으로 가는 길에 조선을 방문할 계획이라는 정보를 입수했다.
이 단체는 그 기회가 한국 독립의 당위성을 세계에 널리 알릴 좋은 기회라고 판단해 폭탄 거사를 계획했다. 거사 장소는 서울, 평양, 신의주 등 세 곳이었다. 이들 가운데 자그마한 몸집의 여성대원이 끼어었었는데 그가 바로 제 2대에 속한 안경신으로 당시 33살의 임신부였다.

안영신은 주로 폭탄 운반 임무를 맡았다. 안경신이 치마 속에 폭탄을 숨겨 평양까지 무사히 폭탄을 들여왔다. 그는 대한광복군 총영에 몸담은 후 폭탄 투척 거사에 자원했다.

당시 안경신이 속한 제2대는 의용단 평양지단과 함께 평양 시내의 일제 통치기관을 폭파하기로 돼 있었다.

같은 대원인 문일민과 우덕선이 먼저 평양경찰서 남부 담장에 폭탄을 투척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장덕진, 박태열, 안경신 세 사람으로 이루어진 제2조가 2차로 도화선에 불을 붙였으나 안타깝게도 불이 붙지 않았다. 도화선이 빗물에 젖어버린 때문이었다.

거사에 실패하고 피신한 안경신은 이튿날 아침 기자림에서 문현철을 만나 폭탄 한 개를 건네 받아 또 한번 기회를 노렸다. 그러나 평남도청 폭파 사건 이후 경비가 강화되는 바람에 끝내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함경남도 이원군 남며 호상리 최용주의 집으로 피신했다. 안경신은 도피생활 7개월째인 이듬해 1921년 3월 20일 피신처에서 아기를 낳은 지 2주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 평양경찰서에 체포됐다.

그는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상해 임시 정부에서 안경신이 평남도청 폭파사건과 무관하다는 내용의 투서를 총독부에 제출한 덕에 항소심에서 10년형으로 감형됐다.

항소심 재판에서 그는 “조선 사람이 조선 독립운동을 해 잘 살겠다고 하는 게 무슨 죄냐”며 당장 자신을 석방하라고 불호령을 내렸다고 한다. 그러나 출옥후 그가 어디서 생을 마쳤는지 정확한 사망연도조차 알지 못한다.

이처럼 여성항일 운동가들은 지금까지 대부분 이름 조차 알려지지 않았다. 광복 70년이 되도록 우리가 알고 있는 여성독립 운동가는 유관순 여사가 전부다.

대갓집 마님에서 신여성까지 일제와 맞서 싸운 24인의 여성독립운동가 이야기를 ‘조선의 딸 총을 들다’에서 소개한 정운현 씨는 역사 속에 감춰진 우리 어머니와 딸들의 만세를 다신 한번 재조명해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희정 기자  penmoim@wso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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