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소비자신문]영국의 화가이자 탐험가이며 고고학자이기도 한 새비지 랜도어(Savage-Landor)가 1800년대 후반에 우리나라를 여행하고 펴낸 기행문에서 우리나라를 고요한 아침의 나라(Corea or Cho-Se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라고 소개하였다고 한다.

‘조선인은 감정표현을 잘 안하고, 풍자와 해학을 즐기는 민족이며, 비범한 지성으로 단기간에 지식을 습득하며, 일반적으로 다정다감한 마음씨를 지녔다’(네이버 지식백과).

이보다 훨씬 이전인 17세기에 네덜란드인 하멜이 제주도에 표류하고 나서 남긴 기록에도 ‘조용한 아침의 나라 또는 운둔의 나라‘로 소개했었다.

인도의 시성으로 불리우는 타고르(Tagore) 역시 1929년 동아일보에 보낸 격려의 송시 ’동방의 등불‘에서 우리나라를 조용하지만 이상을 향해 나아가는 지성이 넘치는 동방의 빛으로 표현하였다.’...지식은 자유롭고 좁다란 담벽으로 세계가 조각조각 갈라지지 않은 곳, 진실의 깊은 속에서 말씀이 솟아나는 곳,...지성의 맑은 흐름이 굳어진 습관의 모래 벌판에 길 잃지 않은 곳,....그러한 자유의 천당(천국)으로...’

한 세기 전 이들이 소개한 대로 우리민족은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다정다감한 이웃사랑으로 그리고 끈기 있는 지성의 추구를 통해서 이제는 전 세계인의 놀람과 부러움을 받을 만큼 경제적 문화적인 발전을 이루어 놓았다.

그런데 아직 ‘자유의 천당(천국)’은 아닌 것 같다. 이 나라 에서 사는 것이 자랑스럽고 행복하기보다는 불만스럽고 짜증스럽고 불안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너무 많으며 OECD국가 중에서 행복지수는 최하위이고 자살율은 최상위다.

어느 때부터인지 우리는 갖가지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한 세기의 빠른 변화 속에서 고요하고 조용함이 요란스럽고 폭력적인 땅으로 변화되어왔다.

우선 북쪽 땅에는 김씨 일가가 3대째 세습을 유지하기 위해 핵무기와 갖은 만행으로 남한은 물론 세계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북한정권의 폭력적 위협을 받고 있는 우리 남한이라도 조용하고 다정다감하며 지성이 넘치는 나라로 세상의 밝은 빛으로 나아가고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지난 2월초 아랍 위성방송 알자지라는 25분짜리 다큐멘터리인 ‘만취한 한국, South Korea's hangover'에서 세계 최악의 음주국가로 우리나라의 폭력적인 음주문화를 소개했다고 한다. 부끄럽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 술 취한 취객이 파출소에 들어가 집기를 부수고 경관에게 폭행을 가하는 광경을 찾아볼 수 있을까? 경찰에게도 행패를 부리는데 집에서 가정폭력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이상하다. 가정폭력은 이미 도를 넘은지 오래다.

2015년에는 하루 평균 100건이 넘었고 2014년에 비해 두 배 이상 증가하였다. 어린이집의 어린이 폭행은 이미 뉴스거리도 아니고 친자식까지 굶기고 구타하고 죽으면 시체를 훼손하는 참상이 보도되고 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에 달고 사는 목사이며 신학대학 교수도 예외는 아니었다. 치한은 말할 것도 없고 남녀 교제중 벌어지는 갖가지 데이트 폭력으로 공황상태에 빠진 젊은 여성, 도로에서 난폭운전으로 인한 운전폭력, 인터넷과 스마트폰 사용이 일반화됨에 따라 나타나는 추악한 언어폭력 등, 우리는 폭력사회로 인한 불안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동방의 등불’로 칭송을 받던 우리가 한 세기만에 이처럼 공포스럽고 불안한 사회로 바뀌어가고 있는 것은 어떠한 연유이며 치유의 길은 없는 것일까? 참으로 어려운 과제임에는 틀림없으나 이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드리워진 불편한 진실을 인정하고 근본적인 치유의 길을 모색해 나가야 할 것이다. 폭력과 범죄의 원인을 보는 관점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좋지 않은 외부자극 즉 환경이 원인이라는 사회심리학적 관점이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그 개인의 내재적인 유전이나 소질 때문이라는 사회생물학적인 주장이 있다.

1970년대 미국의 생물학자인 윌슨(E.O.Wilson)에 의해 체계화된 사회생물학(sociobiology)은 인간의 행동과 사회현상을 생물학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즉 인간의 행동도 궁극적으로 유전자의 표현이기 때문에 인간의 제도, 종교, 문화 등도 유전자의 생존과 번식을 위한다는 '유전자 결정론'에 힘을 실어 주었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인간의 행동은 외부의 자극 즉 환경에 대한 반응으로 보는 사회심리학으로부터 거센 반대에 부딪치고는 있지만 범죄 생물학에서는 여전히 범죄나 폭력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유전인자를 포함시키고 있다.

다만 사회전반에 걸쳐서 볼 때 범죄 유전자에 기인한 범죄나 폭력보다는 환경이 미치는 요인이 더 크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그런데 설혹 어떤 개인이 특정 유전자를 가지고 있더라도 유전자 발현(표현)이 달라질 수도 있다. 즉 유전이 운명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특정 유전정보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유전정보가 다르게 나타나는 발현현상을 2000년대 중반에 들어 생물학자들은 후성유전학(epigenetics)으로 설명한다.

후성유전학에서는 DNA에 들어있는 유전자 정보가 히스톤(histone)이라는 DNA결합단백질이나 메틸기(methyl group)라는 생화학 물질의 기능과 역할에 따라 달라 질수 있고, 이렇게 해서 달라진 특징이 후대에 유전 된다고 한다.

즉, 환경이 유전자에 흔적을 남기고 유전자는 이 흔적을 기억하여 몇 세대에 걸쳐 대물림 된다. 이는 암과 같은 질병뿐만 아니라 행동양식에도 나타나기 때문에 결국 한 개인의 폭력성이나 사회적 병리현상도 환경변화에 의하여 억제되고 개선될 수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아무리 좋은 유전적 소인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좋지 않은 심리학적 자극이나 환경변화 등은 개인을 폭력성이나 범죄로 몰아가고 이것이 반복적인 자극이 될 때 DNA에 흔적이 되어 후대로 이어진다. 그리고 어려운 환경으로 인하여 폭력성 유전자가 증가하면 점차 불안사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유전이냐, 환경이냐’ 라는 대립적 개념에서 벗어나 환경과 유전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 즉, 후성유전학의 관점에서 우리사회의 폭력성의 심각함을 인식하고 사회병리적 현상의 진단과 예방대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심리학, 사회학 뿐만 아니라 생물학, 법률 전문가들이 서로 협력하여 대안을 제시하는 통합적 노력 즉, 지식의 융합 또는 통섭(consilience)이 절실히 요구된다. 이러한 노력으로 우리사회가 100여년 전에 서양인들이 부러워하는 ‘고요한 아침의 나라’를 되찾았으면 한다.

강창원 건국대학교 명예교수  penmoim@wsobi.com

<저작권자 © 여성소비자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