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집회에 참석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여성소비자신문 김영 기자] 지난달 29일 체결된 한일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합의 관련 진통이 끊이지 않고 있다. 현 시점에서 볼 때 최선의 결과라는 정부 주장과 달리 야권 및 시민단체에서는 굴욕적 협상이었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고 있다. 당사자인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사전협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고 합의 내용에 일본 정부의 법적 배상도 빠졌다는 지적이다. 여성계 내에서는 여성인권 보호라는 측면에서 볼때도 이번 한일 합의에 아쉬움이 크다고 피력 중이다.

지난 13일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 나서며 한국과 일본 정부간 체결된 일본군 ‘위안부’ 합의 관련 “최선의 결과”라 밝혔다.

이날 박 대통령은 “협상이라는 것은 여러 현실적 제약이 있기 때문에 100% 만족하게 할 수는 없었다”며 “지난 24년간 어떤 정부에서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심지어 포기까지 했던 아주 어려운 문제였다”고 이를 설명했다.

이어 “현실적으로 작년에 아홉 분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돌아가셨고 마흔여섯분이 남아 계시는데, 평균 연령이 89세에 달한다. 시간이 없다”며 “한분이라도 더 생존해 계실 때 사과를 받고 마음의 한을 풀어야 하지 않겠냐. 그분들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해야 한다는 다급하고 절박한 심정으로 그간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한일관계의 특수성에 비춰볼 때 협상 과정이 쉽지 않았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살아계실 때 실질적인 도움을 드려야 한다고 볼 때 이번 한일 합의가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는 의견이다.

박 대통령과 우리 정부 및 여당에서는 앞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요구한 ‘일본군 관여 인정’ ‘일본 정부 차원의 공식 사과’ ‘일본 정부의 예산으로 피해 보상’ 등의 내용이 이번 합의에 담겼다는 점 또한 강조했다.

위안부 문제 주관부처인 여성가족부의 강은희 신임 장관 역시 박 대통령과 비슷한 견해를 보였다.

지난 7일 국회 인사청문회 당시 강 장관은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한 야당 의원 질문에 “위안부 문제는 할머니들의 상처가 깊고 오래되서 어떤 결론이 나도 현실적으로 오래 끌어왔다고 생각한다”며 “일본에서 사과와 반성을 했고, 군이 관여한 것에 대해 인정했다”고 밝혔다.

강 장관은 이어 “일본 정부가 책임을 통감하고 사과, 사죄하면서 예산을 투입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징성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보수진영 내에서는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가 있었던 것은 물론,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커지고 경기침체 장기화가 우려되는 시점이기에 이번 합의를 거국적인 차원에서 받아들여야 할 것”이란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반면 위안부 피해 할머니 및 야권 그리고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등 다수의 시민단체에서는 이번 합의 내용을 절대 받아 드릴수 없다며 우리 정부가 기존 협상을 파기하고 재협상에 나서야 할 것이라 요구 중이다.

양국간 합의 전 피해 당사자인 할머니들의 의견을 묻지 않은 것은 물론 일본 정부 차원의 법적 배상이 합의문에 빠졌고 아베 총리의 직접 사과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가운데 시민단체 일각에서는 일본 정부가 피해 할머니들 지원을 위한 재단 설립에 10억엔(103억원 상당)을 내기로 한 것 관련 “돈 몇푼 때문에 위안부 합의를 해준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10억엔 거부한 할머니

현재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한일 위안부 합의 무효를 주장하며, 일본 정부가 출연키로 한 10억엔 역시 받지 않기로 결의한 상태다.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 정대협과 나눔의집 등이 주최한 제1213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집회에서도 이 같은 내용이 재차 확인됐다.

이날 집회에는 그동안 건강문제와 고령으로 수요집회에 참석하지 못했던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 및 이용수 할머니, 나눔의 집 소속 이옥순, 박옥순, 강일출 할머니가 동석했다.

할머니들은 일본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며 한국 정부를 향한 질타를 함께 쏟아냈다.

김복동 할머니는 “위안부 문제해결을 정부에 요구했으나 피해자들에게는 한마디 없이 협상을 타결했다는 소식만 티비에서 봤다”며 “이처럼 허무하게 협상을 진행할 줄은 몰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 할머니는 일본 정부를 향해 “대신 사죄는 말도 안 된다. 아베 총리가 직접 나서서 사죄하는게 마땅하다”며 “한국 정부 역시 할머니들을 일일이 방문해 설득하는 짓을 그만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옥순 할머니도 “남자는 군인으로, 여자는 위안부로 한국의 아들 딸을 가져간 일본에게 꼭 사죄를 받아야겠다”며 “더 이상 피해자들의 입을 막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말을 이었다.

일본의 10억엔 출연에 대해서도 거부의사를 분명했다. 대신 할머니들은 국민들이 나서서 위안부 할머니 지원과 평화 박물관 설립을 위한 재단 설립을 하자는 제안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수 십 년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일본의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을 외쳤지만, 아무런 변화도 없다”며 “더 이상 우리에겐 정부도, 나라도 없다. 역사를 올바로 세우기 위해 국민들이 함께 해달라”고 요청했다.

할머니들의 발언 직후 윤미향 정대협 상임대표는 “이번 합의를 통해 한국 정부는 피해자들이 회복해가고 있는 명예와 인권을 가두려 하고 있다”며 정부를 재차 비판했다.

윤 대표는 “이는 정부가 뒷짐지고 있을 때 피해 할머니들이 스스로 쟁취한 것”이라며 “한 때 한국 정부에 자국민들이 겪은 피해 구제에 나서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지만 이제 정부를 향해 가만히 있으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윤 대표는 “무너진 인권은 스스로 되찾겠다.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된 238명 뿐 아니라 20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 한국 위안부 피해 여성들의 삶을 되찾고 그들의 명예 회복을 위해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여성인권 사라진 합의

지난 14일 일본에서는 집권당인 자민당 소속 사쿠라다 요시타카 의원이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직업으로서의 매춘부였다”는 망언을 쏟아냈다.

사쿠라다 의원은 “그것(일본군 위안부)을 희생자였다는 듯 하는 선전공작에 너무 현혹됐다”며 “일본에서 매춘방지법이 제정된 것은 1955~1964년 전후였다”고 강조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위안부가 일본 국내법상 합법적인 매춘부였기에 문제가 없다는 발언으로, 전쟁 당시 일본 본토에서 동원된 일부 매춘부 출신 일본인 위안부와 조선 및 기타 지역에서 강제 징집 또는 납치된 위안부 사례를 동일시 본 착각이다.

또한 그는 법적으로 허용할 경우 매춘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비상식적인 견해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와 관련 우리 여성계 내에서는 “위안부 피해사건의 본질에는 전쟁기간 중 자행된 식민지 여성에 대한 일본 제국주의 차원의 여성인권 유린이 있다”며 “한일 합의 사안에 이에 대한 일본측 반성이나 피해방지를 위한 사후 대처가 없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 한일 합의문 발표 후로도 일본 내에서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망언이 제기된 것 관련 “여전히 일본이 이 사건의 본질 조차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함께 이어졌다.

수요집회에 참석한 한국여성민우회 등 33개 여성단체 또한 “피해 당사자를 배제하고 진상규명, 재발 방지 없는 한일 위안부 합의는 무효”라고 주장하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국가가 자행한 성폭력”이라 비판했다.

이들은 “전시 성폭력 가해자가 어떤 방식으로 사죄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했는지 합의문에 남겨 후대에 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금옥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는 “한일 위안부 문제 해결은 인권 회복의 문제며 정의를 바로 세우고 평화를 만드는 일”이라며 “이는 세대를 계승해 이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기자회견 후 외교부에 이같은 주장을 담은 항의서한을 전달하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서울시의회 더불어민주당 의원들 역시 특별선언문을 발표하며 “현존하는 피해자들의 명예회복 문제이자, 전시 여성에 대한 납치, 강간, 집단 성폭력, 인신매매라는 최악의 여성인권 침해사건으로 세계사적으로 경종을 울려야 하는 중대한 사안”이라고 밝혔다.

민간 성금 모금 활동 들어가

한편 정대협 등 시민단체에서는 일본이 위안부 문제 보상의 성격으로 10억엔을 출연하기로 한데 반발해 10억엔 국민기금 모금운동을 진행키로 결정했다.

이들 시민단체는 14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일 위안부 합의 무효와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전국행동’ 발족식을 개최하고 이같이 밝혔다.

이들은 “일본 정부의 기금 출연을 거부하고, 전 세계인들로부터 10억엔을 모아 재단을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일본은 국가 차원의 조직적 범죄행위를 인정하지 않고, 10억엔을 출연한다면서도 배상금이 아니라고 했다. 추모사업 등 재발방지를 위한 후속조치 약속도 없었다”고 꼬집었다.

이와 함께 전국행동에서는 서명운동 등을 통한 무효 여론 결집, 국회에 협상 무효 및 재협상 약속 받기, 문화제와 동시다발 수요시위 등 거리행동과 국제사회와 연대, 유엔 등 국제사회에 긴급호소서한 발송, 전세계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시위 및 캠페인 요청, 아시아연대회의 긴급 대표자회의 등을 진행할 계획이다.

김영 기자  young@wso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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