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얼음조각 가득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잠시나마 더위를 피해다니던 여름이 점차 누그러지며 따뜻한 커피 한 잔이 그리워지는 가을이 성큼,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래도 아직 조금은 더위가 남아있는 가운데 기자는 남들보다 먼저 가을을 만나고 왔다. 원두공장 프레세르를 들어서는 순간 푸근한 커피향이 마치 가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을 지키는 이석 대표는 맛있는 커피 만들기에 여념 없는 ‘장인’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카페 창업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날이 갈수록 늘고 있다. 그러나 커피에 대한 깊은 지식과 이해 없이 무작정 카페를 차렸다가, 운영의 어려움을 느끼고 금세 꿈을 접는 이들도 적지 않다. 커피는 좋은 원두로 비싼 기계를 거치기만 하면 다 맛이 좋고 장사도 잘 될 줄 아는 이들이 많은데, 그 세계를 잘 들여다보면 절대 단순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복잡하고 어려운 커피의 세계 속에서 즐겁고 행복하게 일하고 있는 원두공장 프레세르의 이석 대표를 만나 카페운영 노하우를 살짝 들여다봤다.

조용하지만 강하다

카페운영 노하우를 들여다봤다고 했지만 사실 이 대표는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이렇게 해야 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단지 커피에 대한 애정과 관심, 깊은 이해가 프레세르를 자연스럽게 ‘잘 되는 커피숍’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맛있는 커피’를 향한 꾸준한 노력이 이내 카페 운영의 노하우가 됐다. 단순한 진리지만 어려운 그것. 정성과 노력이 곧 성공의 열쇠가 된 것이다.

다른 업종에서 일을 해 오던 이 대표는 평소에 커피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 그래서 짬짬이 시간을 내 학원을 다니며 공부했고, 바리스타 자격증은 물론 그 어렵다는 큐그레이더(Q-grader?커피감별사) 자격증까지 따냈다. 큐그레이더란 커피의 품질(Quality)에 등급(grade)을 매기는 사람으로, 미국 ‘스페셜티커피협회’ 산하의 ‘커피 품질연구소’가 주최하는 시험을 통과해야 자격을 얻을 수 있다. 큐그레이더가 되면 생두를 직접 고를 수도 있게 되고 커피의 신맛, 단맛, 짠맛의 강도와 여러 다양한 향의 구분까지 가능하게 된다고 하니, 그 과정이 얼마나 어려울지는 짐작만 해 볼 뿐이다.

처음에는 원두 납품만 할 생각으로 원두공장 프레세르를 차리게 됐다. 하지만 오는 손님마다 커피 냄새에 매료돼 마셔볼 것을 원하다 보니, 이에 맞춰 커피 메뉴들도 몇 가지 마련하게 됐다. 큰 기대 없이 시작했지만, 꽤 효과가 있었다. 맛을 보고 좋아서 원두를 사가는 손님들도 늘게 된 것이다.

그렇게 2008년에 차린 원두공장이 지난해 4월부터 카페형태로 변모해 개인카페나 일반 손님들에 자신이 직접 볶은 원두도 팔고, 커피도 몇 가지 종류별로 판매하게 되었다. 커피맛이 좋다보니 주변 손님들도 자연스럽게 늘고 소문을 듣고 커피를 마시러 오거나 원두를 사러 오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먼 곳에서 택배로 거래를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일부러 광고를 하거나 인터넷에 소문을 내지는 않았어요. 손님들이 주변 사람들에 소개를 해주는 식으로 거래 고객이 생기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기자가 프레세르를 찾은 이 날도 소개를 받고 찾아 온 손님이 있었는데, 우연찮게도 10년 전에 이 대표와 알고 지냈던 사람이라 적잖이 놀라움을 안겼다. 이런 것도 장사하는 재미가 아니겠냐고 이 대표는 미소지었다.

커피맛이 좋고 파는 사람이 좋으면 입소문은 일부러 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나는 법이다. 그 입소문의 힘을 이 대표는 프레세르를 통해 몸소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결코 쉽지 않은 커피”

이 대표는 커피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다. 심혈을 기울여 생두를 고르고 때마다 로스터기를 들여다보며 원두를 볶아내는 모습에서 그 마음이 오롯이 느껴진다. 커피는 온도와 습도 등에 많은 영향을 받아서 그날그날 추출시의 입자굵기 조정을 다르게 해줘야 한다고 한다. 이를 잘 몰라서 매일 입자굵기를 똑같이 하다 보니, 달라진 커피맛에 당황하는 이들이 종종 있다. 이에 이 대표는 “같은 원두에 같은 기계를 쓰더라도 어떻게 내리냐에 따라 커피맛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한다. 

생두 또한 같은 수입사라도 갑자기 맛과 향이 변할 때가 있어 항상 샘플을 받아 직접 테스팅하며 신중하게 거래처를 고른다. 한 곳에서 매일 같은 거래를 하는 식이 아닌 것이다. 또로스팅도 좋은 기계만 있으면 쉽게 할 수 있다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데, 예열부터 시작해 일일이 사람이 챙겨봐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카페를 차리려고 하는 사람들이 커피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운영을 하다가 어려움을 겪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참 안타까웠죠. 입자 굵기를 달리 해야 하는 것도 모른 채 ‘왜 커피 맛이 바뀌었죠?’라고 묻는 이를 볼 때는 참 큰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더 문제는 하나도 배우지 않고 시작하려는 분들도 적지 않다는 것이지요. 물론, 커피지식이 많다고 다 잘 되는 것은 아닙니다.”

커피는 생두와 로스팅, 추출에 이르는 3박자가 고루 맞아야 진정 맛을 잘 낼 수 있다고 한다. 이를 위해 이 대표도 나름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이디오피아나 케냐 등 산지를 직접 방문해 공부하는 노력도 마다하지 않았다. 여러 산지의 커피를 몇 가지씩 섞는 과정인 브랜딩도 다양하게 해 보며 손님의 반응을 살피고, 고객이 원하는 맛이 무엇인가를 항상 깊이 연구하는 그다.

이제 좀 커피를 알 만 한데도 그는 “커피가 참 어렵다”고 말했다. 때문에 카페 창업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쉽게 생각하면 안 된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공부도 많이 해야 하고, 진정으로 커피를 좋아해야 할 수 있는 일이 바로 카페 일이다. 이 대표는 여유 있게 앉아서 책도 읽고 노래도 들으며 카페 일을 할 수 있다고 ‘로망’만 갖고 있는 이들에게 “카페 일은 생각보다 노동강도가 매우 세다. 이른 아침 문을 열어 준비하는 것만 두시간씩 걸리고 저녁 정리까지 할 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며 결코 얕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 그는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순진한 이들에게 비싼 기계를 팔아가며 가맹을 마구 유혹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프랜차이즈 운영에 대한 우려를 조심히 내비치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도 맛있는 커피”

이 대표 자신은 커피전문 프랜차이즈를 운영할 생각이 없냐는 질문에 그는 바로 고개를 내저었다. 가맹점을 이곳 저곳에 내주다 보면 각각의 지점을 다른 사람들이 운영하게 되는데 이를 일일이 관리하기가 힘들고, 그 가운데 커피맛과 질이 떨어져서 고객들을 실망시키게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사실 돈에 대해서도 그리 욕심이 많지 않아 사업을 크게 벌이고 싶어하지도 않는 그다. 그저 조용히 자신만의 작은 가게에서 아내와 함께 맛있는 커피를 만들어내는 일이 그에겐 가장 즐겁고 행복한 일이다. “사이드메뉴를 만드는 것도 객단가를 높일 수는 있지만 그런 것까지 신경쓰다 보면 커피를 만드는 일에 집중하지 못 할 것 같아 하지 않기로 했죠.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손님들에게서 ‘참 맛있다’라는 한 마디를 더 듣는 게 더 보람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그가 가장 바라는 것은 오로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커피맛’이라고 한다. 언제 찾아도 이 집 커피는 맛있다, 라는 말을 손님들에게 듣고 싶다는 이 대표. 때문에 언제나 맛있는 커피 만들기에 열중하고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새로운 종이 계속 나오고 사람들의 커피맛에 대한 관심과 욕구도 다양하게 변화하고 커지고 있기 때문에 커피 공부는 끝날 수가 없고 언제까지고 계속해야 하는 것이라고.

장사가 잘 된다고 재료를 싼 것으로 바꾸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 대표는 “이익이 덜 남더라도 끝까지 최상의 맛을 유지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런 단단한 의지가 있기에 고객들도 프레세르의 맛을 알아주고 항상 찾아와 주는 것이 아닐까.

이 대표는 영국의 유명하지만 작은 한 카페에 대한 이야기도 잠시 들려주었는데, 그곳은 규모는 작지만 6명의 바리스타가 함께 일하며 커피맛이 좋아서 항상 이를 찾는 손님들의 줄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이 대표의 꿈도 바로 이런 것이다. 작지만 좋은 맛과 향기가 넘쳐나는, 커피에 대한 정성과 고객에 대한 정이 넘쳐나는 카페. 기자는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오랜 세월 많은 이들에 사랑받는 동네 작은 빵집들이 생각났다. 언제나 동네 사람들에 푸근한 미소와 향긋한 빵 냄새로 대하는 ‘빵집 아저씨’처럼 이 대표는 원두공장 프레세르의 ‘착한 공장장’ 같은 느낌이었다. 

이 공장장은 억지로 고객들에게 커피를 팔지 않는다. ‘커피를 마시러 오라’는 문자보다는 ‘오늘은 사정이 생겨 문을 열지 않는다’는 문자를 단골손님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배려가 오히려 손님들의 발길을 더 끊이지 않게 만든다. 화려하지 않지만 편안하고 구성원에 따라 골라 앉을 수 있는 세심한 좌석 배치가 더 이곳에 마음을 두게 한다.

가을의 따뜻한 커피향 같은 그곳, 원두공장 프레세르는 그 골목 그곳에 언제까지나 작은 ‘랜드마크’로 남아있을 듯하다. 원두공장 프레세르는 영어 Fresh와 같은 프랑스 말로 언제나 신선함을 추구한다는 의미다.

서지영 기자  moya27@wolyo.co.kr

<저작권자 © 여성소비자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