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에버랜드 전환사채 인수 관련해 제일모직에 130억원을 배상하라는 고등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대구고법 민사3부(재판장 홍승면)는 22일 열린 항소심 공판에서 “전환사채 발행부터 조세를 회피하고 에버랜드에 대한 지배권을 이재용 등에게 넘기기 위한 목적으로 피고 이건희와 그 지시를 받은 비서실을 통해 이뤄진 것으로 판단된다”며 “피고 이건희가 제일모직에 전환사채 인수를 포기할 것을 지시 및 요청한 적이 없다”란 피고의 항소를 기각했다.

이번 판결의 근거는 1996년 전환사채 발행 당시 주당 22만3659원에 달하는 에버랜드의 적정 주식가치. 하지만 에버랜드는 주식가치의 4%에도 미치지 못하는 주당 7700원에 전환사채를 발행했다. 이 회장이 헐값 주식을  발행한 후 이재용 등 자신의 자녀들이 독점하게 하기 위해 제일모직에 사지 못하도록 비서실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일모직은 전환사채를 인수하지 않은 탓에 139억원의 손실을 감내해야 했다. 반면 이재용 등은 1054억원에 달하는 에버랜드 주식을 97억원에 인수해 957억원의 차익을 얻었다.

재판부는 "에버랜드는 설립 이후 한 차례도 발행하지 않았던 전환사채를, 그것도 기존주식의 1.8배에 달하는 많은 양으로 발행했고, 제일제당을 제외한 모든 주주가 실권을 하면서 장남 이재용 등 피고 이건희 자녀들이 인수해 종전에 주식이 전혀 없던 이재용이 에버랜드의 최대주주가 되었다"고 명시했다.

또 “이재용 등이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취득하면서 ‘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순환형 출자구조를 형성하게 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피고 이건희의 경우 손해배상액을 감액할 사정이 없고, 제아무개·유아무개 제일모직 전 이사는 개인적으로 취득한 이득이 없다는 점을 참작해 그 배상액을 손해액의 10%로 감경한다”며 130억원을 배상하라는 원심의 판결을 확정했다.

앞서 1심을 맡은 대구지법은 “피고 이건희가 조세를 회피하고 그룹의 경영권을 이전하려는 목적으로 전환사채를 발행했고, 제일모직에 전환사채를 인수하지 않도록 한 것은 배임에 해당한다”며 “피고 이건희를 포함한  3명은 제일모직에 130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번 소송을 제기한 장하성 교수 등은 2006년 4월 이 회장과 에버랜드 전 이사 등 모두 15명을 상대로 제일모직에 139억원을 배상할 것을 요구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대법원과 서울고법, 서울중앙지검 등이 이건희 회장과 관련한 형사재판 기록의 송부와 열람을 거부해 소송 제기 후 4년 10개월이나 지난 2010년 2월에야 1심 선고가 열렸다.

고승주 기자  sj.go@wso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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