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행이 금융당국이 밀어붙이고 있는 은행원 임금체계 개편안 때문에 속이 타들어 가고 있다.
 
정부가 금융개혁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면 걸수록 기업은행 경영진의 고민은 점점 깊어지고 있는 것.

국책은행 중 시중은행과 역할이 가장 겹치는 기업은행은 금융개혁의 모범이 돼야 한다는 식의 압박이 계속되기 때문.

기업은행 임직원들은 타행과 달리 이미 지난 10월 올해 임금상승분(2.4%)을 지급 받은 바 있다.

이에 대해 30일 금융계에 따르면 기업은행이 금융당국이 밀어붙이고 있는 은행원 임금 체계개편안 때문에 속이 타들어 가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앞서 KEB하나은행이나 산업은행 등은 고통 분담 차원에서 임직원 임금상승분을 사측에 반납하며 당국의 압박을 비켜갔지만 기업은행은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그렇다고 현 노조와 임금체계 개편안을 논의하는 것 또한 소용이 없다. 기업은행은 1일 노조위원장 선출 투표 과정을 거쳐 내년 초 신임 노조가 출범하기 때문에 현 노조와의 대화 자체가 무의미하다.

현재 금융당국은 금융권 임금체계를 성과 중심으로 개편할 것을 거듭 주문하고 있다.

시중은행들은 성과주의 임금 체계 도입 확대에 전적으로 공감했다. 하지만 은행들은 노조의 반발을 막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우려의 목소리도 동시에 보냈다.

A은행 부행장은 "금융 당국의 요구 뿐만 아니라 비용절감, 효율성 증대 등 은행 필요에 의해서도 성과주의 임금체계 도입은 필요하고 앞으로 필수적인 추세가 될 것"이라며 "충격을 줄이기 위해 점진적으로 성과급 비중을 높이는 방향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B은행 고위 관계자도 “큰 틀에서 성과주의 임금체계 도입에 공감한다”며 “노사 합의를 통해 현재 10~20% 수준인 성과급 비중을 높여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성과급 임금체계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업무영역에 대한 확실한 구분도 필요하다”며 “모두들 성과가 되는 일만 찾아한다면 은행 업무는 큰 혼란이 올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C은행 부행장은 “임금체제 개편은 노조와의 합의가 필요한 사항이라 이 부분을 움직이긴 어렵지만 직원 동기부여를 위한 유인은 필요하다”며 “포상, 승진기회 등 노사 합의사항이 아닌 부분을 확대해 성과 보상을 강화하려는 계획”이라고 말했다.

국내 은행은 임금체계와 관련, 일반 직원(부지점장 미만)의 경우 호봉제를 채택하고 있다.

여기다 직무수당과 성과급이 추가로 지급된다. 본봉은 연공서열형 호봉 테이블에 따라 일률적으로 지급되기 때문에 연차가 쌓일 때마다 임금이 저절로 상승하는 구조다.

성과급은 지점 성과에 따라 5∼7등급으로 나눠 차등 지급된다. 하지만 은행 일반 직원의 성과급의 비중 자체가 10% 수준에 불과한데다 개인성과의 반영 비율 역시 미미해 지점 등 단위조직별 성과에 좌우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한은행은 이미 부지점장 이상은 성과가 기반이 되는 연봉제를 도입하고 있다.

기업여신담당(RM)이나 개인사업자담당(RRM), PB직군 등 일부 직종에 한해 개인별 평가에 따라 성과급제 비중을 높인 상황이다.

KB국민은행은 최근 ‘자기계발 및 영업실적 자가진단 서비스’를 도입, 직원 스스로 본인의 성과를 진단할 수 있도록 했지만 노조의 반발로 평가를 중단했다.

국민은행은 현장 건의를 반영해 내년 초 재개할 계획이지만 여전히 노조의 반대에 부딪힐 가능성이 크다.

신한은행과 KB국민은행, KEB하나은행 등 시중은행들은 금융당국의 주문에 발맞춰 중장기적으로 성과급 비중을 확대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노조와의 협상이 쉽지 않다.

또 다른 은행 고위 관계자는 “성과주의 연봉 도입을 반대하는 노조의 동의를 얻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현재 노조는 개별 은행이 아니라 산별 노조 차원에서 대응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노조를 어떻게 설득하느냐가 관건이라는 점에서 정부가 노사 대타협 등을 통해 직접 나서야 할 필요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금융산업노조는 노동의 성과를 객관적으로 측정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성과주의 임금체계 개편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하고 나섰다.

김문호 금융산업노조 위원장은 성명을 통해 “임금체계를 성과주의 보상체계로 바꾸면 금융서비스 질이 저하되고 불완전판매 등의 금융소비자 피해가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책은행으로서 기업은행의 역할을 강조하는 분위기는 점차 확산되고 있다.

올 초 기업은행은 금융당국으로부터 가계대출 증가액이 1조원이 넘지 않도록 관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우선적으로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의 가계대출 창구를 틀어쥔 셈이다.

또 금융위는 최근 기업은행 역할 강화 방안을 발표하며 창업, 또는 성장 초기 기업에 대한 금융 지원 규모를 현행 9조1000억원 규모에서 2018년까지 15조원으로 늘리기로 방침을 세웠다.

문제는 기업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 비율이다. 창업 자금에 대한 대출의 경우 중소기업자금대출에 비해 위험도가 400% 높아 BIS 비율이 급격히 떨어진다. 목표치를 맞추기 위해서는 기업은행의 주력 부문인 중소기업 대출을 줄일 수밖에 없게 된다.

더욱이 기업은행은 순이익을 많이 내도 BIS 비율을 끌어올릴 수 없다. 정부는 재정 확보를 위해 현재 29.9%로 금융권 최고 수준인 기업은행의 배당성향을 오는 2019년까지 40%로 늘릴 방침이다.

기업은행은 코코본드를 발행하며 BIS 비율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기업은행은 올 3분기에도 6000억원 가량의 코코본드를 발행해 BIS 비율을 직전 분기에 비해 0.13%포인트 높인 12.65%로 끌어올렸지만 오히려 보통주 자본비율은 8.48%로 0.11%포인트 감소했다.

금융감독원 측은 보통주 자본비율을 2019년까지 10.5%로 늘리라고 요구하고 있어 이 같은 추세가 계속된다면 수년간 영업을 잘해놓고도 정부의 출자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이 밖에도 기업은행은 연체이자율을 비롯해 중도상환수수료율 또한 국내 은행 중 가장 먼저 인하하는 등 수익성보다는 국책은행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1일 <여성소비자신문>과 통화한 기업은행 관계자는 “기업은행은 예산 등 업무 계획을 짤 때 금융위의 승인을 받는다. 중소기업 대출은 얼마를 하고 가계 대출은 얼마를 해야 한다는 식의 승인을 받는데 가계 대출 한도가 1조이다. 모든 예금이 들어올 때 기업은행은 중소기업 대출이 80%를 차지하고 나머지는 공공대출, 기관 대출 또는 가계대출이 20%를 차지하도록 하는 식의 승인을 받는다”고 말했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여성소비자신문>과의 통화에서 “”기업은행은 최근 3년간 실적이 호전되고 있으며 특히 올해 실적이 가장 좋다. 다른 은행보다 이익을 더 많이 냈다“며 ”9월말 기준으로 자산 240조원의 기업은행이 8100억원의 이익을 냈다. 이는 자산 300조원의 KB국민은행이 9600억원의 영업이익을 낸 것과 비교할 때 결코 나쁜 실적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또 "금융위가 추진하는 임금체제 개편안에 대해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답했다.

 

 

김희정 기자  penmoim@wso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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