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의 재지(才智)가 뛰어나 호걸을 부릴 수 있거나, 재치는 부족하더라도 현자를 임용할 줄 알면 치(治)가 된다.

한편 군주가 자신의 총명을 믿고 아랫사람을 불신하거나, 반대로 간사한 자를 신임해서 귀와 눈을 가리면 난(亂)하게 된다.”

율곡 이이(李珥) 선생이 동호문답(東湖問答), 군도(君道) 편에서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에 대해 갈파한 말이다.

실정(失政)과 선정(善政)의 차이에 대한 이이 선생의 위와 같은 명쾌한 지적은 왕조 시대의 임금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21세기 소통 리더십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우리 주위를 살펴보면 매우 성공적인 소통 리더가 있는 반면, 소통에 실패한 리더의 사례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소통에 성공하는 리더와 실패하는 리더의 차이는 과연 무엇인지 살펴보자! 왜 이들은 소통에 실패를 할까? 왜 사람들은 어느 지도자는 따르고 어느 지도자는 따르지 않는 것일까?

탁월한 연설가, 히틀러의 몰락

히틀러(Adolf Hitler)는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그만의 카리스마는 많은 사람을 전율시켰으며 그를 찬미하게 만들었다.

웅변술 또한 탁월해서 연설을 할 때면 능숙한 방법으로 지도자와 대중 사이의 일체감을 이끌어 냈고 군중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했다. 히틀러를 만난 독일 국민들은 그가 무엇이든 성취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다.

히틀러는 도탄에 빠진 국가 경제를 재건했고 좌절해 있는 국민들을 독일 통일이라는 기치 아래 하나로 집결시켰다. 게다가 외교 정책이나 개전 초기 전쟁 능력 수행 능력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특히 그의 천재적인 선동적 연설 기법은 후세의 정치인들이 모범으로 삼을 정도였다. 차라리 경제 정책에 성공했을 때 죽었더라면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대단한 카리스마와 영감을 주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시대가 그러한 리더를 맞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잊혀진 존재가 되고 만다.

한때 한 시대를 풍미했던 히틀러는 시대를 잘 타고나 독일 국민의 추앙을 받았지만 우리에게 역사적인 죄인, 독재자, 실패한 리더, F학점의 소통 리더로 기억된다.

당신은 어떠한 리더가 되고 싶은가? 어떤 사람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후세 사람들로부터 나오게 된다. 일이 벌어지는 당시에는 냉철한 눈으로 그것에 대한 평가를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정한 소통 리더가 되기 위해 현재에 나타나는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귀 기울이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자세를 갖는 것도 필요하다. 이러한 리더의 진가는 언젠가는 사람들이 반드시 알아주기 마련이다.

고르바초프와 카터의 소통력 비교

지난 20세기의 리더들 가운데 소통에 성공한 리더와 실패한 리더로 비교되는 인물을 말하자면 고르바초프(Mikhail S. Gorbachev) 전 러시아 대통령과 카터(Jimmy Carter) 전 미국 대통령을 꼽을 수 있다.

고르바초프는 1985년에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 취임했고, 1990년에는 다시 러시아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했으며, 그 해 노벨 평화상을 받았지만 옐친(Boris N. Yeltsin)에게 정치적으로 패배해 1991년 권좌에서 물러났다. 고르바초프는 눈부신 성공 뒤에 허망한 실패를 맛본 리더였다.

페레스트로이카(perestroika)와 글라스노스트(glasnost)를 외치며 공산당이 독점하고 있는 권력을 시민들에게 돌려줄 때, 고르바초프의 영향력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았다.

엄청난 기대와 찬사를 받으며 세계를 누비고 다닐 때 그의 모습은 마치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을 다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며 언제나 다른 사람들에게 갈 길을 환히 밝혀 줄 것처럼 보였다. 세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가 매일 그에게 집중되었다.

그렇지만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의회에서 옐친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고개를 숙이고 물러난 후로 그는 잊혀진 인물이 되고 말았다.

고르바초프는 페레스트로이카를 추진해 70년에 걸친 공산 압제의 사슬을 걷어내고 탈이데올로기화, 탈군사화의 시대를 열었으며, 사유재산 소유와 자유 창업이 허용되는 개방화를 단행했다. 또한 글라스노스트를 통해서는 사상과 정보 공개의 자유화를 이뤘다.

그 뿐만 아니라 독일의 통일을 비롯한 동유럽의 민주화 개혁에도 엄청난 기여를 했다. 한마디로 그는 21세기의 세계 지도를 새로 그린 주인공의 한 사람이라 할 만큼 눈부신 업적을 남겼다.

그러나 이런 눈부신 업적에도 불구하고 그는 확실하고 신속한 개혁을 단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소련 국민들에게 비판받고 권좌에서 끌어내려졌다.

고르바초프와는 대조적으로 카터는 참담한 실패 뒤에 눈부신 성공을 이룩한 리더다. 대통령 재직 시절에는 하는 일마다 시비와 비난이 그칠 줄 몰랐고 급기야 1980년 재선 도전에 실패하고 조지아 주의 땅콩 농장으로 돌아갈 때 신문들은 그를 패가망신한 소인배로 매도했고, “어떻게 저런 사람이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을까” 하는 말들이 난무하는 등 그의 실패는 극에 달했다.

그러나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고 33년이 지난 오늘날, 그는 미국인들로부터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직 대통령”이라는 찬사와 함께 세계 언론의 초점이 되고 있으며, 지금까지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리더 중의 한 사람으로 남아 있다.

한편, 할 일을 찾지 못한 채 이리저리 소일하던 어느 날 카터는 깨달았다. 삶은 점점 축소되는 것이 아니라 점점 확장되는 것이라고. 그는 이내 망치를 들었다. 집 없는 이들을 위해 기꺼이 목수가 되었다.

그것이 해비타트(Habitat)운동이다. 그는 해외의 민주화 노력을 지원했다. 니카라과의 선거감시인으로 활동하고 분쟁 지역을 제 발로 찾아 나섰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직함이 따로 있을 리도 없었다. 그저 전직 미국 대통령이었을 뿐이다. 처음에는 쓸데없이 일에 개입한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실질적으로 일을 풀어냈다.

그는 청바지를 입고 무주택자를 위한 집을 지어 주는 현장에서 머리에 수건을 두른 채 땀을 뻘뻘 흘리며 망치질과 톱질로 세월을 보냈다.

개발도상국에서 중요한 선거가 있으면 아무 권력도 없는 일반 시민의 자격으로 달려가서 공명선거 감시단원으로 활동했다. 고르바초프의 업적에 비하면 카터의 업적은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그는 재임 당시의 고르바초프보다 더 존경받고 있으며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 노력에 대한 국제적 평가를 받아 카터는 1976년 대통령에 당선된 후 4년 뒤 레이건에게 패배해 실패한 대통령으로 기록되어 권좌에서 물러났지만 그로부터 다시 26년이 지난 2002년도에는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그는 재임 중 가장 형편없는 대통령으로 평가받았지만 퇴임 후에는 가장 성공한 대통령이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대통령이 나오길 바란다.

 

김재득 동북아리더십센터 이사장  leadershi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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