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이냐 독이냐를 결정하는 것은 섭취하는 양의 문제이다(The dose makes the poison).’

약 500년 전에 독성학의 아버지로 불리 우는 파라셀수스(Paracelsus, 1493~1541년, 스위스, 독일 국적)가 한 말이다. 당시에 파라셀수스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독성물질인 아편이나 수은도 잘만 쓰면 극소량으로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처방을 내리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의학이나 과학이 최고도로 발전된 현대에 와서는 건강에 꼭 필요한 식품이나 음식도 지나치면 오히려 병을 일으키는 독이 될 수 있다는 경고로 받아들여진다.

햄, 소시지, 쇠고기, 돼지고기 또한 그러하다. 햄, 소시지, 베이컨 등 가공육제품(processed meat)을 1군 발암물질로, 그리고 소고기, 돼지고기와 같은 붉은색의 적색육(Red meat)을 발암가능 물질인 2A군으로 분류한다는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 International Agency for Research on Cancer)의 발표는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에 큰 충격이었다.

수퍼마켓의 가공육제품은 매출이 20~30% 감소하였고, 우리나라 보다 몇 배 소비량이 높은 서구에서는 더욱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게 되었다. 그러자 WHO는 대변인을 통해 ‘육제품 섭취를 중단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이를 줄이면 대장, 직장암의 위험이 줄어들 수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에 얼마나 먹는 것이 좋다’라는 허용량을 정하기는 어렵다니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그렇게 맛있게 잘 먹어오던 햄, 소시지로 인해 내 몸에 암세포가 자라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냉장고에 사 넣어둔 쇠고기, 돼지고기 마져 찜찜하네. 앞으로 계속해서 고기 없는 밥상준비는 어떻게 해야 하지?

따지고 보면 WHO와 같은 공신력 있는 기관이 이러한 발표로서 불안과 우려를 자아낸 것은 우리의 지나치게 편중된 식습관에 대한 경고이고 좀 더 건강한 식생활을 유도하자는 좋은 뜻이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불안하고 걱정하기보다는 차제에 우리 식생활과 건강에 대한 기초적인 원리를 되짚어보고 건강한 삶을 위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식습관을 구축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

첫째 발암물질 분류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IARC에서 발표한 발암물질의 분류는 지금까지 연구조사 결과를 토대로 어떤 물질이 암을 일으킨다는 증거가 얼마나 확실하게 확보되어 있는가에 따라 4개의 군으로 나눈 것에 불과하다.

즉 육류섭취와 암 발병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조사를 검토해본 결과 햄이나 소시지 등 가공육제품을 다량 섭취했을 때 대장암 발생이 높아졌다는 충분한 증거가 제시되었기에 이들을 담배, 석면, 술 등과 함께 1군 발암물질로 분류한다는 뜻이다.

한편 가공되지 않는 소, 돼지, 양 등 적색고기는 일부 제한적인 연구결과에서만 대장암 발생과 상관관계를 보였기에 2A군으로 분류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1군에 속한 발암물질은 실험동물은 물론 사람들에 대한 근거자료가 충분한 것들이지만 2군은 동물 실험에서는 근거가 충분하나 사람에게서는 충분하지 않는 경우이고 3, 4군은 근거가 없는 물질들이다. 예를 들자면 햇빛은 피부암을 일으킨다는 증거가 확실하므로 담배나 술과 같이 1군에 속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이러한 분류가 암 발생 위험도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담배로 인한 연간 사망자는 약 100만 명인데 비해 육제품으로 인한 암 발생 사망자는 연간 3만4천명에 불과하다. 뿐만 아니라 물질에 노출되는 정도(섭취량)와 그 물질에 함유된 암 유발 물질에 따라 암 발생 위험도는 달라진다.

IARC에 의하면 매일 50g의 가공육제품을 먹으면 대장암에 걸릴 위험이 18% 높아진다고 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가공품 섭취량이 하루에 6g에 불과하며, 적색육 섭취량이 하루 평균 100g 이면 대장암 발병률이 17% 증가한다는데 우리나라 평균섭취량은 61.5g으로 이 두 가지를 합친 섭취량 67.5g은 영국이나 호주의 권장수준에 훨씬 못 미친다.

그리고 가공육내의 암 유발인자로 주목받고 있는 아질산나트륨 1일 섭취량 또한 WHO 섭취 허용량의 20%에도 못 미치는 적은 양이다. 이러한 조사결과를 보면 WHO경고에 아직은 크게 불안하거나 염려할 일이 아니다.

세 번째는 발암물질이 인종이나 식문화 즉 식습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1군 발암물질인 햇빛은 백인에게는 매우 위험하지만 유색인종에게는 그다지 우려할 것이 못된다.

이번 발표근거는 주로 서구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조사 결과이기 때문에 동양인에게는 다르게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1997년부터 3년간 7만명 이상의 중국여성을 대상으로 한 연구조사에 의하면 붉은색 고기를 많이 섭취한 여성들의 대장암 발생률이 오히려 낮았다.

한편 칼슘 섭취량이 낮은 중국 여성들에게는 대장암 발생률이 높게 나타나 대장암 발생을 낮추려면 충분한 칼슘 섭취가 권장된다.

고기를 먹을 때 김치나 쌈과 같은 채소류를 많이 섭취하는 우리나라 식생활을 고려할 때 국내의 육류섭취와 암 발생간의 좀 더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하루 평균 적색육과 가공품 섭취량 합계가 70g 이상이 아니라면 불안해하거나 밥상에서 붉은색 고기를 줄여나갈 필요가 없다.

다만 김치, 쌈 등 섬유질 섭취량이 충분치 않다면 채소와 과일 섭취량을 늘이는 노력이 계속 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 노인층에서는 오히려 육제품 섭취량을 증가시켜 균형 있는 영양과 면역력을 높이는 게 바람직하다.

다만 적육 제품의 섭취 시 지나친 지방부위는 피하고 고기를 구울 때 발암성분이 생성될 수 있으므로 가급적 삶는 요리가 권장된다.

특히 육가공품 제조 시 아질산염을 넣지 않도록 안전성을 높여나가는 연구개발 노력이 계속 되어야 할 것이다. 이번 IARC 발표를 계기로 좀 더 우리국민을 대상으로 한 깊이 있는 연구조사와 정밀한 권장이 필요하다.
 

강창원 건국대학교 명예교수  penmoim@wso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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