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0월이 되면 우리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것과 우울하게 해주는 것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길거리 카페나 자동차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성악가 김동규와 조수미의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라는 아름다운 노래로 우리가슴은 따스해지고 행복감을 느낀다. 그런데 집에 들어와 TV를 켜거나 신문을 들쳐보노라면 올해의 노벨상 수상소식들이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특히 올해는 예년보다 훨씬 더하다. 이웃 일본은 물리학과 생리의학 두 분야에서 두 명의 수상자를 배출했고 중국에서도 한 명의 생리의학상 수상자가 자신은 물론 국가의 명예를 드높였다. 이웃 잔치를 바라만 보아야하는 우리 국민들은 그저 ‘네가 있는 세상 살아가는 동안 더 좋은 것은 없을 거야.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라는 음악만으로 위로가 되질 않는가보다.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의원들도 뿔났다. 국정 감사장에서 관련부처 장관을 불러 질타와 채근을 해댄다. “도대체 우리나라에서는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언제 나올거냐?” 참으로 코미디 같은 장면이 가감 없이 방송에 중계되고 그간 삶에 지쳐 별로 이런 일에 관심도 없던 일반 국민들조차 자조와 불평의 언성을 높인다.

교육과 연구에 그 많은 국가 예산을 투입하고 자식들을 위한 교육비 지출이 이리도 큰데 왜 우리는 아직도 수상자 한명이 없는가 하고. 이럴 때면 그간 대학 연구실에서 꽤 많은 연구비를 써온 나를 포함한 과학 기술인들은 괴롭다.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유구무언이요 한없이 작아지곤 한다.

‘노벨상을 부탁해. 후배 과학자들이 열심히 연구하고 있고 온 국민들이 관심과 응원을 계속하고 있으니 곧 좋은 소식이 있겠지.” 라고 응답했다.

일본은 이번에 오무라 교수의 생리의학상과 가자타 교수의 물리학상 두 개를 포함하여 지금까지 24명(이중 2명는 국적상실)의 수상자를 가진데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평화상 1명밖에 없으니 자괴감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여기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이웃사촌 증후군이 가미되어 평소에는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토양을 만드는 것과는 전혀 다른 생각과 주장을 해오던 분들조차 누구를 향한 것이지 알 수 없는 질타를 쏟아 놓는다.

축구나 골프, 빙상경기처럼 노벨상 수상이라는 경주에서도 일본을 따돌렸으면 좋으련만 비슷하기는커녕 비교하기조차 거북스러우니 이러한 불만이나 질타를 탓할 수도 없다.

오히려 우리나라 과학기술계에 대한 사랑과 충정으로 여겨지기에 이 같은 불만의 에너지를 긍정의 에너지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후배들에게 노벨상을 부탁해본다.

노벨상 수상자 발표가 있는 10월의 한 달만 이웃사촌 증후군을 앓다가 한 달이 채 못 되어 남의 일처럼 까마득히 잊어버리지 말고 이제는 경제적 성공 신화와 같이 노벨상 수상 신화를 쓰기 위한 토양을 만들어 나가자.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으며 인구가 2000만도 채 안되지만 일본을 훨씬 능가하는 수상자를 내고 있는 유대인들의 노벨상 신화를 성공모델로 벤치마킹 하는 것이 어떨가. 영토가 강원도와 경기도를 합한 정도의 작은 나라이지만 이스라엘과 세계 각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유대인들은 지금까지 300명가량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것이다. 이들 민족은 과학기술분야 뿐만 아니라 세계 정치, 경제, 사회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 않는가? 첫 번째로 갖추어야 할 토양은 창의성을 증진시키는 학습방법이다. 학교는 물론 가정에서 듣고 외우는 식의 교육을 지양하고 왜라고 묻고 토론하는 학습의 장으로 전환하자. 지능 지수가 특별히 높은 것도 아니고 세계 각지를 떠돌아다니느라 우리나라 어린이들에 비하면 체계적인 교육의 혜택도 받지 못한 유대인 자녀들이 훗날 각 분야 최고의 자리에 오른 것은 어릴 때부터 구약성서 토라를 가르쳐 자긍심과 긍정적 사고를 길러주고, 끊임없는 질문과 토론으로 호기심을 자극하며, 다양한 사고로서 상상력과 창의력을 키우는데 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찾고 좋아하는 일에 열정을 쏟게 된다. 학교나 학원에서 선생이 가르치는 것만 부지런히 외우고 시험문제 출제경향 정보 수집과 시험점수 따는 요령에 시간을 쏟는 현재 우리 교육으로는 노벨상은 물론 세계적인 지도자를 키우기에 너무 미흡하다. 최근 이러한 획일화된 주입식 교육을 탈피하기 위한 새로운 대안학교나 교수법이 시도되고 있는 것은 그나마 한 가닥 희망으로 비쳐진다.

두 번째는 인재들이 창의적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제도적인 토양조성이 필요하다. 재능이나 적성보다는 수능점수에 맞추어 대학과 학과를 선택하며 입학 후에는 전공에 대한 열정도 진로에 대한 확신도 없이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대학생들과 청년들이 없게하자. 어차피 수능점수에 따른 대학선택이 현실이라면 입학 후에 본인의 적성과 재능을 고려한 전공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대학 제도를 바꾸어야한다. 학생 부족으로 자리가 없어질까 전전긍긍하는 교수들의 불안을 해소해 주어야 학제개편도 가능하다.

세 번째는 창의적이고 열정을 지닌 과학기술자들이 안정된 연구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재정적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과학 분야의 노벨상 타령은 매년 반복 될 것이다. 기업은 물론 정부조차도 재정적인 어려움이 닥치면 제일 먼저 과학기술관련 예산을 줄이고 인력을 감축하는 상황에서는 우수한 인재들이 연구실에 남고 싶겠는가?
연구실이나 실험실은 한없이 작고 초라해 보이고 총장실이나 기관장실은 크고 좋아 보이며 기회만 생기면 외국 이민 서류를 들추긴다면 우리의 노벨상 신화는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고 국가의 장기적인 발전 또한 한계점에 부딪치게 될 것이다.
가정을 꾸려 자녀를 가지려는 신혼부부에서부터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에게 이르기까지 10월의 노벨상 축배와 국가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교육과 연구의 새로운 토양을 가꾸는 노력을 기대하며 노벨상을 부탁해본다.

강창원 건국대학교 명예교수  건국대학교 동물생명과학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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