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는 재벌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다. 때문에 재벌이라는 조직의 지배구조를 합리적으로 변화시키지 않고서는 선진경제로 갈 수 없다.

더구나 지난해  태광, C&그룹 등 재벌그룹들의 불법비리 사건이 잇달아 터지면서 이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개선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 현재 국회에는 금융실명법 개정안, 상법 개정안 등이 발의돼 있으나 2년 넘게 계류 중이다.

선진국 같으면 몇 십년에 한 번 정도 발생할까 말까한 수준의 조직적인 대형비리가 한국사회에서는 거의 매년 주요 재벌들에게서 터져 나오고 있다.

이는 대기업 비리에 대한 규제수준이나 관련 제도운영 수준에 있어서 한국사회가 현재 대단히 후진적인 수준에 있음을 보여준다.

통상 주식회사는 벌어들이는 이익을 재투자해 기업의 성장을 도모하거나 주주에게 이익을 배당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재투자를 통해 기업이 더 성장하고 이를 통해 주가가 높아지는 것이 배당을 하는 것보다 더 주주에게 이익이 된다면 재투자를 하고, 투자가치가 마땅치 않으면 원칙적으로 이익을 주주에게 배당하는 것이 주식회사의 정상적이고 합법적인 경영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한국의 재벌총수들은 배당에도 인색하고 주가를 높이는 데도 큰 관심을 쏟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유는 주가를 높이거나 이익을 배당하는 정상적인 방식으로 경영할 경우 총수 일가의 몫은 주주 평등의 원칙에 따라 평균 4.4%에 불과하기 때문이라는 것.

심지어는 총수 일가의 사적인 사업이 실패하면 그 손실을 계열회사들이 대신 떠안도록 하거나 계열회사들이 가진 브랜드나 노하우, 인력 등의 유무형의 자산을 아무런 대가 없이 사용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이에 대해 김석연 변호사는 “총수 일가 지분이 높은 비상장회사들이 이러한 사익 추구의 통로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비상장회사들의 경우 공시의무가 없고 외부 주주가 별로 없어 견제도 취약하다보니 비밀리에 비정상적 사익 추구 행위를 하는데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총수 일가가 향후 그룹 계열사들과의 거래를 통해 이익을 낼 가능성이 높은 비상장 계열회사 지분을 외관상 법에 위반되지 않는 수준으로 싸게 인수해 이익을 취득하거나 아니면 총수 일가가 직접 비상장사를 설립한 후 계열사들로 하여금 물량 몰아주기를 하게 하고 비정상적 단가로 거래를 하게 함으로써 이익을 취득하는 경우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2세 또는 3세에게로 지분과 경영권을 상속시켜야 하는 상황에서 상속세를 내게 되면 지배회사 경영권 확보에 필요한 지배지분이 줄어들고 지배권을 상실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경영지배권 행사에 필요한 지분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세금비용 상당액을 비정상적 방법으로 마련하고자 하는 시도도 사용된다.

재벌의 비리 유형과 관련하여 김 변호사는 외환위기 이전에는 불법 정치자금이나 뇌물공여, 분식회계와 사기대출, 비자금 조성과 횡령 등 노골적인 방법들이었다면 외환위기 이후에는 회사기회 유용이나 물량몰아주기와 같이 정상적인 거래를 가장하여 회사의 부를 총수일가에 유출시키는 배임적 비리들이 성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비자금 조성과 횡령, 차명계좌를 이용한 불법자금 관리와 탈세 등과 같은 전통적 유형의 비리들도 지속적으로 재발하고 있어, 이를 척결하기 위한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삼성의 서울통신기술

경제개혁연대의 채이비 연구원은 문제성 주식거래로 의심되는 대표적인 사례로 삼성의 서울통신기술 등 14개 그룹의 사례를 들고 있다.

서울통신은 1996년 12월 이재용 부사장이 신주인수권 부사채를 통해 당시 주당 5000원에 50%의 지분을 확보한 회사이다.

삼성전자 등 계열사와의 거래가 매출의 51%를 차지하고 있으며 삼성전자에 분사한 회사의 지분을 임원이 보유한 후 이재용 부사장이 지분을 인수해 임원과 지배 주주일가가 삼성전자의 사업기회를 유용한 사례로 지적되었다.

SK의 SK C&C

SK C&C는 설립 당시에는 SK(주)와 SK건설이 100% 지분을 보유했다.

1994년 SK그룹이 SK텔레콤을 인수하여 SK C&C가 SK텔레콤과의 거래 등을 통해 본격적으로 회사가 성장하기 시작했는데 수익을 창출하게 된 시점인 1994년과 다음해인 1995년에 지배주주인 최태원 회장의 일가가 SK(주)와 SK건설로부터 각각 보유하고 있던 70%와 30%의 SK C&C 지분을 주당 400원에 사들였다.

1998년 4월 최태원 회장은 SK C&C와 SK텔레콤간의 부당지원 거래로 공정위의 제재를 받은 적도 있으며 당시 소액 주주들의 기업지배구조 개선요구에 따라 SK C&C 지분 30%를 SK텔레콤에 무상 증여했다.

2002년 12월에는 JP모건과의 이면계약으로 인해 SK증권이 입은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최태원 회장이 SK C&C 지분 45%를 SK증권에 증여한 바 있는 때 이때 주당 가격은 이미 58만6000원으로 훌쩍 뛰어있었다.

이후 SK C&C는 2009년 11월 SK네트웍스와 SK텔레콤이 보유한 지분을 매각하는 방식으로 상장하였으며 SK그룹이 SK텔레콤을 인수한 이후 SK C&C도 급속한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1991년 설립 이후 3년간 전무했던 매출액은 최태원 회장 일가가 지분을 확보한 1994년 28억원에 이어 1995년 453억으로 치솟았으며 이러한 비약적인 매출 신장세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SK C&C 매출액 가운데 2000년부터 10년간의 SK텔레콤과의 거래가 차지하는 비중이 43%에 달하며 약 70%의 매출이 관계사 거래에 의존했다는 것이 채 회계사의 지적이다.

금호의 아시아나IDT

아시아나IDT는 1991년 아시아나항공과 아바쿠스가 공동출자해 설립된 ‘아시아나애바카스 정보’가 2003년 1월 아시아나항공의 정보통신 사업부를 양도받아 사명을 변경한 회사이다.

당시 아시아나항공이 보유한 아시아나IDT 지분율은 90%였다. 아시아나IDT는 2003년 6월 주당 1만원에 9만2000주를 유상증자하였다.

이때 아시아나항공은 실권하고 실권주 전량(8만2800주)을 박삼구 회장을 포함한 그룹 지배주주 일가가 8억원에 인수하였다.

2004년 아바쿠스의 지분은 주당 3만3500원에 유상감자되다가 2005년과 2006년 무상증자를 통해 주식수가 증가하였다.

2006년 5월에는 주당 5000원에 37만9000주를 유상증자했는데 이를 아시아나항공이 모두 인수하면서 지분율이 증가했다.

2008년 11월 아시아나항공은 박삼구 회장 등 그룹 지배주주 일가가 보유한 아시아나IDT의 지분 전량을 204억원(주당7만1330원)에 인수하여 아시아나IDT의 단일 주주가 되었다.

그러나 아시아나항공은 정보통신 사업부의 양도로 아시아나IDT의 매출이 급격한 신장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었음에도 당시 유상 증자에 참여하지 않고 이를 모두 지배주주일가에 내주었다.

아시아나IDT의 2003년 이후 매출액 중 관계회사 매출 비율은 평균 약 80%에 이른다. 따라서 아시아나IDT는 아시아나항공의 사업기회를 유용한 것으로 의심되고 있다.

그룹 전체가 위기에 빠지는 상황에서도 지분을 계열사에 매각하면서 현금을 챙김으로써 지배주주의 도덕성 문제까지 지적되었다.

신세계의 광주 신세계

1995년 4월 신세계의 100% 지분 출자로 광주 광역시에 별도법인으로 설립된 광주 신세계는 당시 자본금이 5억원에 불과했다.

광주신세계는 이후 1998년 4월 주당 5000원에 총 25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했는데 이때 신세계가 불참하고 지배주주인 정명희 회장의 아들인 정용진 신세계 부사장인 인수하여 지분 83.33%를 보유한 최대 주주가 되었다.

광주 신세계는 2002년 2월에 상장하였으며 신세계의 브랜드를 이용해 설립 2년만인 1997년 이미 55억8500만원의 영업이익을 거두면서 당기순이익이 33억6800만원에 이르고 있다.

LG그룹의 GS네오텍

GS네오텍(구 LG기공)은 1999년말부터 2009년말까지 GS일가인 허정수씨가 100%의 지분을 보유한 회사다. 2004년 이전에는 계열사와의 거래관계가 없었지만 2005년부터 GS건설과의 설비, 전기 및 통신공사 용역 거래가 발생하여 계열사 비중이 평균 49%에 달해 지원성 거래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

LG그룹의 지흥 역시 2008년 4월에 설립된 디스플레이용 광학 필름 제조회사다.

설립 당시 주주는 구형모씨가 100%를 보유하였으나 2008년 10월 유상증자를 통해 서민원, 서보원이 각각 4.55%의 지분을 확보하였다.

디스플레이용 광학필름 제조는 LG화학과 밀접한 사업연관성을 갖는 사업인데도 지배주주 일가가 지흥을 설립한 것을 회사기회를 유용한 사례로 의심되고 있다.

대책방안은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이상민 의원은 “이러한 총수일가의 경영지배권 남용을 억제하고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익추구행위들을 억제하기 위한 법적·제도적 방안들이 필요하다”며 “구체적으로 상법상 회사기회유용금지조항의 도입, 이사의 경업금지 및 자기거래금지 보완, 이중대표소송제도의 도입, 주주대표소송의 단독주주권화, 사실상의 이사제도 개선, 총수일가가 취득한 부당이득의 원상회복조항 도입, 상장회사 이사자격 제한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공정거래법상 부당지원규제를 대규모 기업집단 규제 관련 조항으로 옮겨 실효성을 높이고 공정위의 ‘물량몰아주기’등 부당지원행위에 대한 실태조사를 강화해야 한다는 방안이 거론되기도 했다.

경제개혁연대 김상조 소장은 “과거에는 주식을 취득해 증여하거나 연계 증권을 사들이는 방법을 이용하는 등을 방법을 사용하는 것에서, 최근엔 비상장 회사를 새로 설립해 계열사 물량 몰아주기를 하는 등 재벌들의 부당, 불법승계 방식이 보다 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희정 기자  penmoim@wsobi.com

<저작권자 © 여성소비자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