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새 성장축으로 삼으려다 망신만 당하게 생겨

롯데와 신세계, 현대 등 백화점 업계 유통 빅3가 패션 사업을 놓고 한창 기 싸움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신세계그룹과 현대백화점그룹의 수입 브랜드 판권을 둘러싼 심리전이 첨예한 갈등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롯데와 신세계에 비해 백화점 내부 조직이 약했던 현대백화점은 올해 초 계열사 현대홈쇼핑을 통해 패션전문기업 한섬을 전격인수하면서 이를 새 성장발판으로 삼으려 했지만, 이후 잇따라 한섬의 대표 수입브랜드였던 지방시와 셀린느의 판권을 신세계 계열 신세계인터내셔날로 뺏기게 되면서 자존심에도 금이 가고 패션사업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받게 됐다.

최근 현대백화점은 소비 경기둔화로 백화점 매출이 줄어들고 있는 가운데 리뉴얼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서울 무역센터점의 오픈이 올해 말 또는 내년 초로 연기되고 양재 파이시티 복합유통센터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STS개발과 신세계가 출점 약정을 맺음에 따라 서울 양재점 출점이 불확실해 지는 등 여러 악재가 겹치면서 주가 하락에도 영향을 미쳐,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의 고민이 날로 깊어지고 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백화점 매출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패션부문은 백화점 오너들의 중요한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다. 현대백화점그룹 정지선 회장 또한 패션부문 확대를 통해 신성장 동력을 갖추고자 지난 1월 계열사 현대홈쇼핑을 통해 한섬을 인수했다. 당시 한섬은 타임, 마인, 시스템, SJSJ 등 국내 인기 여성의류브랜드와 함께 셀린느, 지방시, 발렌시아가, 랑방, 끌로에 등 유명 수입 브랜드 국내 독점 판매권도 지니고 있어 현대백화점에 적지 않은 경쟁력과 이익을 안겨줄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황금알을 낳는 오리'일 줄 알았던 한섬은 곧 현대백화점의 '미운 오리새끼'로 전락하고 말았다. 보유하고 있던 수입브랜드 판권을 채 반년 사이 거의 잃게 되면서 현대백화점이 한섬에서 도움을 받기보다는 되려 빈틈을 지원해줘야 하는 격이 됐기 때문이다.

신세계에 한 발 주춤

지난 4월 무렵부터 업계에는 한섬이 전개하던 프랑스 브랜드 지방시의 국내 독점 판매권을 신세계그룹 계열사인 신세계인터내셔날이 가져가게 됐다는 소식이 들여오기 시작했다. 또 한섬과 계약기간 종료를 앞둔 셀린느와 끌로에, 랑방까지 신세계인터내셔날이 탐내고 있다는 소식이 이어서 들려오던 찰나, 지난 7월 1일 이 회사가 지방시의 판권과 함께 셀린느의 판권까지 모두 인수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미 갭, 아르마니, 돌체앤가바나 등 명품급 해외 브랜드 30여개의 국내 판권을 보유하고 있던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이로 인해 더욱 패션명가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하게 됐다.

업계는 현대백화점의 한섬 인수설이 돌기 시작하면서부터 한섬이 판권을 보유하고 있던 해외 명품 브랜드들이 보다 안정적인 경영을 위해 새로운 파트너를 찾기 시작했으며, 이를 일찍이 알아차렸던 신세계 측이 적극적으로 공략을 펼쳐왔던 것으로 분석했다.

현대백화점 측은 해외 브랜드의 라이센스 종료가 한섬 인수 당시에도 모두 파악하고 있었던 문제라고 말하지만 경쟁사인 신세계에 주요 해외브랜드 판권을 뺏기게 된 정지선 회장으로서는 적지 않게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을 것으로 보여진다. 이를 방증하듯 지난 4월 20일 새롭게 문을 연 신세계백화점 의정부점에 한섬이 가진 브랜드가 모두 입점되지 않았다.

빠져나가는 것은 지방시와 셀린느뿐만이 아니었기에 정 회장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게 됐다.
이어서 여성 잡화업체인 발센시아가도 최근 한섬과의 라이센스 기간이 끝나게 되면서 재계약 대신 국내 직접 진출을 선언했고, 끌로에와 랑방 또한 올해 말 계약 종료를 앞두고 있는 가운데 신세계는 물론 다른 대형 업체들의 끊임없는 구애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고현정 브랜드'로 유명한 앤 드뮐미스터 판권은 지난 5월 제일모직에 넘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잇따른 계열사 수입브랜드의 이탈로 인해 매출감소가 우려되자, 현대백화점은 최근 자사가 보유한 수입브랜드 쥬시꾸뛰르와 올라카일리 등 3개 브랜드의 판권을 한섬에 양도하고 한섬의 편집매장인 '톰그레이하운드다운스테어즈'와 '무이'를 현대백화점 본점과 무역센터점에 들여놓기로 하는 등 한섬의 패션사업을 적극 지원하게 됐다. 유통부문과의 시너지 효과를 높이기 위한 방안이라지만 업계는 현대백화점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보는 경향이 크다.

신경쓸 곳 다른 데도 많은데…
    
정지선 회장의 고민은 수입 브랜드 판권 문제뿐만이 아닐 것으로 보여진다. 현대백화점은 정 회장의 야심에 따라 양재점 출점을 오랫동안 계획해 왔으나, 신세계가 양재 파이시티 복합유통센터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STS개발과 최근 출점 약정을 맺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양재점 개장 여부가 불확실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또 서울 무역센터점의 경우 리뉴얼 공사로 인해 매출이 줄어들고 있고 이것이 현대백화점 주가에도 영향을 주고 있는데, 재오픈 시기가 12월 말 또는 내년 초까지 연기될 전망이라 이를 우려하는 시선도 적지 않다.

뿐만 아니라 수도권 남부 공략을 본격화하기 위해 준비 해 온 판교점과 광교점 등 신규점포도 경기 불황을 이유로 3년 이상 오픈이 연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백화점은 소비 경기 둔화로 백화점 매출이 줄어들면서 주가가 좀처럼 큰 상승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는데, 여러 지점들의 계획이 차질을 빚게 되고 수입 브랜드 사업까지 흔들리게 되면서 먹구름이 잔뜩 끼여있는 듯한 모습이다.

서지영 기자  moya27@wo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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