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가 을미년 양의 해이다. 양 중에서도 푸른색의 청양(靑羊)의 해라고 한다. 양은 성질이 온순하고 이해심이 뛰어난 동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을 구별할 때 양(sheep)과 염소(goat)의 비유를 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새해 벽두부터 양으로 상징되는 온유와 이해, 화평과는 거리가 먼 ‘갑질’이라는 단어가 최대의 화두가 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국내 항공사 부사장의 ‘땅콩 회항사건’, ‘아파트 경비원의 자살’, ‘백화점 주차장 경비원 무릎 꿇기’, ‘백화점 판매원 뺨 때리기’ 그리고 ‘유명 연예인의 항공기내 소동 및 여승무원 성추행사건‘ 등등. 강자가 상대적 약자에게 행하는 비상식적이고 부당한 행동들 즉 ’갑질‘ 소식이 끊임없이 터져 나오고 있다.

‘갑질’이란 계약서에서 주도권을 가진 편을 갑이라 칭하고 그 상대방 즉 주도권을 행사하기에 불리한 쪽을 을이라 칭하는 ‘갑을관계’에서 갑이 을에게 가하는 부당행위를 일컫는 신조어이다. 따지고 보면 지위, 권력, 재력 등을 가진 자가 이들을 갖지 못한 약자에게 대하여 가하는 ‘갑질’은 사회적 계약관계는 물론 일상생활에서도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는 잘못된 행동양식이며 악습이다.

언젠가 출장 중에 약간 이른 점심을 먹기 위해 마침 피자가게 앞에 차를 세우고 내리던 중이었다. 이때 음식점 안에서 문을 열고 나온 남자 한분이 대뜸 왜 차를 여기다 주차하느냐고 얼굴을 찡그린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점심 먹으러 들어가려던 참이라고 말하자 그 남자의 얼굴이 붉어지더니 어색한 표정으로 들어오라고 하기에 "여기서 점심을 먹으면 소화가 되질 않아 체할 것 같네요" 하고 돌아 나왔다.

이처럼 우리사회는 신문이나 방송에 보도되는 ‘갑질’ 사건이 아니더라도 정부관료, 직장, 상거래, 기업 활동은 물론 아주 사소한 일상생활에서 조차 사회전체에 만연된 악습들이 참으로 ‘갑질가경(甲質佳境)’이다.

사회구성원에 의해 얻어지고 공유된 행동양식을 그 사회의 문화라 한다면 ‘갑질’ 또한 우리사회의 잘못된 문화적 병폐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이러한 병폐는 사회 심리학적인 부작용은 말할 것도 없고 구성원들의 정신적 신체적 건강을 해친다. ‘갑질’ 즉 약자에 대한 비정상적이고 부당한 행동을 당하는 약자인 을은 물론 갑의 신체에도 좋지 않은 변화를 일으킨다. 기쁨이나 행복의 호르몬인 세로토닌(serotonin)이나 도파민(dopamine)은 줄어들고 긴장 호르몬인 노르아드레날린(noradrenaline)이 다량 분비되고 혈중 스트레스 호르몬 코르티솔(cortisol) 수준이 높아진다. 이러한 긴장 호르몬과 스트레스 호르몬 증가로 불쾌감과 공격적 성향을 띄게 되며 혈압상승, 우울증, 불안감, 면역결핍으로 질병에 걸리기 쉽게 되고 극단적인 경우 자살 충동을 느끼게 된다.

아파트 입주민의 갑질이 경비원을 자살로 몰고 간 것과 같은 현상이다. ‘갑질’의 양측 당사자가 아니라 할지라도 이러한 사회적 현상을 접하는 사회 구성원들에게 미치는 영향 또한 유사하다. 즉 긴장호르몬 완화를 위해서 지속적인 세로토닌의 분비가 이루어지고 뇌에서 세로토닌 구성 물질이 지나치게 소비되고 나면 우울함과 불안감이 높아진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갑질’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세계 최고의 갑부였던 미국의 석유재벌 록펠러(J.D.Rockefeller, 1839~1937)가 부를 축적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행동양식을 들 수 있다. 부의 축적을 위해 정경유착, 무자비한 기업인수는 물론 돈을 구걸하는 거지를 외면했던 그의 갑질 때문인지 결국 젊은 나이에도 병이 들어 의사로부터 남은 수명이 1년 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는 그간의 갑질에 대한 깊은 참회와 함께 자선 사업에 남은 여생을 바침으로 건강을 회복하고 98세의 장수를 누렸다고 한다.

요즈음 강원도 횡성의 시골마을에서 98세 조병만 할아버지와 89세 강계영 할머니 부부의 76년의 결혼 생활 중 할아버지가 돌아 가시기전 약 2년간의 사랑이야기를 담은 기록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마오’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온순한 한 쌍의 양처럼 개울에서 물장구치며, 꽃을 꺾어 서로의 머리에 꽂아주고 어디 갈 때는 손을 꼭 잡고 걸으며, 그 나이에도 서로 존댓말을 쓰고 머리를 빗질해주며, 얼굴을 쓰다듬어주는 온유한 두 백발 노인네들의 사랑과 이해 및 포용에 20대 젊은이들도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한다. 병원은커녕 약국도 없는 산간벽지에서 자식들마저 떨어져 살고 있는 처지의 이 노부부가 이처럼 장수를 누리는 것을 볼 때 개개인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서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잘 말해준다.

모르긴 몰라도 서로를 믿고 존중하며 이해하고 서로 사랑을 베푸는 조병만 할아버지와 강계영 할머니 몸에는 긴장과 스트레스 호르몬보다는 기쁨과 행복의 호르몬이 항상 넘쳐 남으로 세상 어떤 진수성찬이나 보약보다 더 건강에 좋았을 것이다. 이같이 76년이라는 긴 세월을 신혼처럼 살았기에 건강과 행복이 넘쳐 나는 한 쌍의 양처럼 아름다운 부부가 되었다. 을미년 양의 해에는 ‘갑질가경’의 부끄럽고 해로운 문화를 청산하고 사랑과 이해가 넘치는 ‘님의 사랑’으로 우리 모두의 건강과 행복을 지켜 나가야 하겠다.

강창원  건국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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