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소비자신문] 해당화 피고 지는 섬마을에
철새 따라 찾아온 총각선생님
열아홉 살 섬 색시가 순정을 바쳐
사랑한 그 이름은 총각선생님
서울엘랑 가지를 마오 가지를 마오

구름도 비겨가는 섬마을에
무엇하러 왔던가 총각선생님
그리움이 별처럼 쌓이는 바닷가에
시름을 달래보는 총각선생님
서울엘랑 가지를 마오 떠나지 마오

이미자가 부른 ‘섬마을 선생님’(이경재 작사, 박춘석 작곡)은 언제 들어도 애잔한 느낌이 든다. 비단결 같은 미성(美聲)이 감칠맛을 더해 준다. 낭랑하고 애틋한 음색에다 총각선생님에 대한 섬 처녀의 순정이 듬뿍 묻어난다.

1960년대 조국근대화바람을 타고 한국여인의 비극적인 아름다움을 그려내 들을수록 가슴이 찡해온다. 24세의 이미자는 첫돌이 지난 딸(정재은)을 업고 다니면서 이 노래를 불렀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음반 나오자 가요계 태풍, 20년간 방송금지

‘섬마을 선생님’은 1965년 음반으로 발표됐다. 레코드가 나오자 품절사태를 빚는 등 인기가 엄청났다. 1967년 문공부 주최 제2회 ‘무궁화상 가요제’ 대상과 작곡상, 가창상을 받기까지 했다.

이 곡으로 다른 음반사들이 힘든 상황이 되자 이미자 노래에 제동을 걸 필요가 있다는 얘기까지 나돌 만큼 ‘섬마을 선생님’ 인기는 대단했다. “그 무렵 가요계 태풍을 일으킨 곡으로 김종필 전 총재가 아코디언으로 연주해준 적도 있다”고 이미자 씨는 회고했다.

이미자는 자신이 가장 아끼는 노래로 ‘동백아가씨’, ‘기러기 아빠’와 함께 이 곡을 꼽는다. 이들 노래는 공교롭게도 박정희 군사정권 때인 1969년 방송금지곡으로 묶인 아픔이 있다. 노래가 왜색으로 일본의 ‘다와라보시겐바’란 엔카를 표절했다며 1989년 해금 때까지 방송전파를 타지 못했다.

‘섬마을 선생님’은 북한에서도 잘 알려진 가요다. 더욱이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생전 애창곡이기도 하다. 남한가요를 좋아했던 그는 ‘사랑의 미로’, ‘그 겨울의 찻집’, ‘찔레꽃’, ‘이별’ 등과 함께 즐겨 불렀다. 측근들과 여배우들이 참석하는 비밀파티 땐 남한노래가 자주 흘러나왔다.

‘섬마을 선생님’은 신세대가수 장윤정이 젊은 느낌의 버전으로 불러 눈길을 모았다. 생명력이 길고 세대를 뛰어넘는 노래임이 입증됐다. 장윤정은 고교시절 ‘섬마을 선생님’을 즐겨 불렀다. 이 노래는 거친 할머니들이 펼치는 코믹극 ‘마파도2’의 삽입곡으로도 쓰여 신세대들로부터 사랑 받았다.

1967년 같은 제목 영화 개봉

‘섬마을 선생님’이 빅히트하자 1967년 같은 제목의 영화(감독 김기덕)도 개봉됐다. 외딴섬에 계몽을 간 총각선생님과 섬 처녀 사이의 수채화 같은 사랑이 담긴 작품이다. 영화엔 오영일, 문희, 안은숙, 김희갑 등 그때 최고인기배우들이 나온다.

영화줄거리는 월남전에 갔다 온 교사(오영일)가 남해의 섬 학교에 자원해 근무한다. 얘기는 섬의 유일한 학교인 분교에서 펼쳐진다. 그는 섬마을사람들의 무지와 편견에 시련을 겪지만 굽히지 않고 잘 헤쳐 나간다. 그런 가운데 선생님과 섬 처녀(문희)가 가까워지면서 뜨겁게 사랑한다.

흑백영화였음에도 촬영지인 대이작도(인천시 옹진군 자월면)의 아름다운 풍광으로 큰 인기였다. 지금 섬마을입구엔 전교생이 몇 명뿐인 ‘이작 분교’가 있다. 그러나 그땐 자월초등학교 계남분교가 하나 더 있었다. 1992년 폐교됐지만 영화제작 때 주 촬영지로 쓰였다.

인천연안부두에서 배로 1시간 거리인 대이작도는 ‘섬마을선생 섬’이란 수식어가 붙는다. 부두에 내리면 ‘문희 소나무’가 길손을 맞는다. 마을 쪽으로 3백여m 떨어진 이 나무는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 장면에 나온다.

문희가 이 소나무에 기대서서 선생님이 타고 떠나는 배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았다고 해서 그렇게 불린다. 계남분교 앞엔 영화촬영지표지석이 있다. 옹진군은 계남분교 일대를 영화에 나온 모습으로 되살려 관광명소로 삼고 있다. 마을입구에 노래비도 섰다.

노래 배경지는 안산시 대부도

하지만 실제 노래배경지는 안산시 대부도다. 대부도 섬마을추진위원회는 철새도래지로 염전이 많은 지역특성상 소금운반 배로 서울을 오갔고 해당화군락지가 있었다는 점도 근거로 들었다. 종이미술관 부근엔 해당화길과 총각선생님길이 있다. 2020년 8월 노래비까지 세워졌다.

노래 속 주인공은 대부도 대남국민학교로 발령받았던 서00선생님이다. 19살 여고생으로 자신을 짝사랑했던 이00와 결혼, 인천에 살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와 관련, 2010년 4월 6일 KBS 사극 ‘용의 눈물’ 연출가 김재형 PD가 ‘섬마을 선생님’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노래라고 증언했다.

그가 1960년대 초 서울중앙방송에서 근무할 때 ‘섬마을 선생님’ 작사자 이경재와 호형호제하던 사이였다. 두 사람은 서울 마포나루에서 이구영 선장의 소금돛배를 타고 대부도 긴장불이해안에 닿았다.

그곳 고랫부리횟집에서 만난 대남국민학교 교장선생으로부터 학교가 앞장서 해당화를 심은 이야기며 총각선생의 사랑이야기를 듣게 됐다. 이 씨는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섬마을 선생님’을 작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4년 7월 하순엔 전남 함평군 손불면 월천리 안악해변에도 ‘섬마을 선생님’ 노래비가 세워졌다. 노래를 기념하고 ‘2008 함평 세계 나비․곤충엑스포’ 성공을 비는 조형물이다. 노랫말이 새겨진 조형물 중 소녀상은 총각선생님에 대한 섬 처녀의 간절한 기다림을 나타냈다.

바로 옆엔 500원짜리 동전을 넣으면 노래를 들려주는 기계도 설치돼 있다. 해당화는 함평에 아주 많다. 함평군은 2000년 8월 태풍으로 쓸려간 월천방조제를 다시 쌓아 해당화 6만 그루를 심어 해당화길로 꾸몄다. 국내 최대 규모의 해당화단지다.

‘섬마을 선생님’은 1966년 KBS라디오 연속극으로도 방송됐다. 이어 SBS가 같은 제목의 드라마를 제작, 2004년 6월 2일~7월 22일 매주 수․목요일 밤에 방영했다. 전남 신안군 흑산면 하태도(극중에선 ‘하루도’로 불림)를 무대로 젊은 남녀의 운명과 사랑을 ‘증인보호프로그램’이란 새 소재를 바탕으로 신선하게 풀어내 화제였다. 지난해 12월 28일엔 ‘섬마을 선생님 노래 배경지를 찾아서’(김선철 지음) 책도 발간됐다.

박춘석, 평생 독신으로 2700여곡 발표

노래를 작곡한 박춘석은 1930년 5월 8일 서울서 태어났다. 본명은 의병(義秉). 춘석은 아명이다. 조선고무공업(주)를 운영하던 아버지 밑에서 유복하게 자란 그는 4살 때부터 풍금을 잘 치며 ‘신동’소리를 들었다. 서울 봉래소학교, 경기중학교를 거치는 동안 피아노와 아코디언을 스스로 익혔다. 1949년 피아노전공으로 서울대 기악과에 입학, 1년간 다니다 그만두고 이듬해 신흥대(현 경희대) 영문과로 편입해 졸업했다. 

그는 경기중 4학년(고교 1년) 때 길옥윤, 베니 김의 제의로 서울 명동 ‘황금클럽’무대에 서면서 피아니스트로 활동했다. 1954년 ‘황혼의 엘레지’(노래 백일희)를 작곡, 본격 작곡가 길로 들어섰다. 검은 뿔테안경이 트레이드마크로 평생 독신으로 지내며 2700여곡을 발표했다.

그중 1152곡이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등록됐다. 최다등록기록이다. 특히 가수 이미자를 키운 작곡가로 그녀의 노래 500여 곡을 발표했다. 그의 히트곡 중 4분의 1을 이미자가 불렀고, 이미자 히트곡의 3분의 1 또한 박춘석이 만든 노래다. 이미자에게 ‘엘레지의 여왕’이란 별칭의 왕관을 씌워준 이도 박춘석이다.

이미자와의 만남은 그의 음악세계에 큰 변화를 몰고 왔다. 1964년 이미자와 콤비시대가 열리면서 작곡풍이 트로트로 돌아섰다. 뇌졸중으로 16년간 투병한 그는 2010년 3월 14일 자택에서 80세로 별세했다.

노랫말을 지은 이경재는 작사가 겸 극작가로 드라마대본도 썼다. 가수 차중락의 노래 ‘사랑의 종말’, TBC(동양방송) 금요드라마 주제가 ‘운명’ 등을 작사했다. 김태자 전 세종솔로이스츠 이사장(김정렬 전 국무총리 딸)의 외삼촌이기도 하다.

‘가요계 전설’ 이미자, 기네스북에 올라

‘가요계 살아 있는 전설’ 이미자는 1941년 10월 30일 서울 한남동에서 2남4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서울 마포에 있는 문성여고 3학년 때인 1958년 KBS-TV 노래자랑대회에 나가 1등을 한 뒤 1959년 19살 때 ‘열아홉 순정’으로 데뷔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음반을 내고 노래도 취입했다. 기네스북에 오른 1990년까지 낸 음반은 560장, 노래는 2069곡. 60여 년간 2100곡을 발표했다. 그 중 400여곡이 히트했다. 1989년 대중가수로는 이례적으로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서기도 했다.

왕성상 언론인 / 가수  wss404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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