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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시읽기] 이재무 '국밥'
구명숙 숙명여대 명예교수 | 승인 2024.05.23 14:16

[여성소비자신문] 매번 고인께는
면목 없고 죄스러운 말이지만
장례식장에서 먹는
국밥이 제일 맛이 좋더라
시뻘건 국물에 만 밥을 허겁지겁
먹다가 괜스레 면구스러워 슬쩍
고인의 영정 사진을 훔쳐보면
고인은 너그럽고 인자하게
웃고 있더라
마지막으로 베푸는 국밥이니
넉넉하게 먹고 가라
한쪽 눈을 찡긋, 하더라
늦은 밤 국밥 한 그릇
비우고 식장을 나서면
고인은 벌써 별빛으로 떠서
밤길 어둠을 살갑게 쓸어주더라예

 

무슨 사유이건 먼저 이 세상을 떠난 고인을 마지막 보러 간 장례식장에서 시인은 만감이 교차하였을 것이다. 살아생전 함께 한 시간과 사연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고 목이 메여 국밥인들 술술 넘어 갔겠는가?

그가 가고 없는 이 자리, 밥이 넘어가지 않는 심정을 역설적으로 “장례식장에서 먹는/ 국밥이 제일 맛이 좋더라”고 너스레를 떠는 게 아닌가. 또한 죽은 사람만 아깝고 허망하지 산 사람은 그런대로 살아간다는 왠지 미안한 마음을 내포하고 있다.

시인은 무심코 국밥을 훌훌 먹다가 고인의 생각이 떠올라 영정 사진을 올려다보니 “고인은 너그럽고 인자하게/웃고 있더라”고 전한다.

그리고 평소처럼 바쁜데 와주어서 고맙다며 “마지막으로 베푸는 국밥이니/넉넉하게 먹고 가라”는 구절에서는 남에게 잘 베풀고 인자하던 고인의 인품을 족히 짐작하게 한다. 고인을 그대로 남겨둔 채 늦은 밤 허전한 마음으로 장례식장을 나서니 “고인은 벌써 별빛으로 떠서/밤길 어둠을 살갑게 쓸어주더라”

고인은 하늘나라에서도 우리를 사랑으로 지켜주고 있음을 알고 나도 그렇게 살아가야겠다는 결심을 하지 않았을까. 삶의 여운이 은근하게  맴돈다.


구명숙 숙명여대 명예교수  k9350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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