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을 들 때 판매자는 소비자에게 쓸개라도 빼내줄 듯 ‘유혹’하지만, 보험금을 받을 때 소비자는 마치 ‘죄를 지은 듯’ 보험사가 꼬치꼬치 따져 ‘범죄자’가 된 듯한 대접을 받는다.

우리나라는 가구당 보험가입률이 97.5%가 넘는다. 1인당 3.6개의 보험을 가입하고 있으며 가구당 14건의 보험을 들고 있다. 이렇듯 보험보급률은 세계 상위권을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보험에 대한 불만은 세계 최고를 달리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사 '캡제미니'가 발표한 '2014 세계 보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소비자들의 보험에 대한 만족도는 조사 대상 30개 나라 중 꼴찌였다. 보험소비자 중 '보험에 만족한다'고 답한 비율은 15%로 러시아(20%), 중국(16%)보다도 낮았다.

또한, 컨설팅 회사 '언스트&영'이 지난해 낸 '아시아·태평양 세계 보험 소비자 서베이' 보고서에서도 한국인의 보험 만족도는 매우 낮았다. 보험 산업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가진 한국인은 26%로, 조사 대상이었던 아시아 7개 나라 중에 최하위를 기록했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에 접수된(2013년 상반기 기준) 금융 관련 민원 3만9000건 중 절반 정도인 1만9000건이 보험민원인 가운데 이중 절반이 보험금 지급과 관련한 민원이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보험설계사의 판매도 문제이지만, 보험사의 공정한 보험금 지급 사정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1997년에 도입된 지 40년 가까이 된 손해사정제도가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어서다.

현재 우리나라 손해사정제도는 한마디로 보험사의 보험금지급 도구나 수단으로 전락한 형편없는 몰골이다. 보험사가 아예 설립하거나 퇴직임직원이 만들고, 보험사가 손해사정 일을 주면서 보험사 입맛에 맞는 손해사정을 해주고 있다.

보험금을 안주거나 많이 깎는 손해사정법인이 우대받고 재계약을 체결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재계약을 체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공정하고 합당한 손해사정이 아니라 보험금을 적게 주거나, 삭감하는 수단으로 전락해 손해사정이란 단어를 붙이기도 부끄러운 형국이다.

소비자 편의 독립손해사정사가 한 손해사정 역시 보험사가 인정해주지 않고 보험사 마음대로 조정해도 어찌할 수 없는 상태이다. 독립손해사정사들은 전문 자격을 갖고 있지만 변호사법이 금지하는 ‘합의 조정’을 하다가는 자칫하면 변호사법 위반으로 교도소 담장을 걷는 불안한 영업에 빠질 수 있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보험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를 되찾기 위해서라도 조속히 바꾸어야 한다. 공정한 손해사정으로 보험사도 신뢰하고 소비자도 신뢰할 수 있는 손해사정제도가 되어야 한다. 손해사정제도의 보험사의 독점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여 올바른 손해사정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보험사들이 자회사에게 일감을 몰아주지 못하게 해야 한다. 현재 이종걸 국회의원이 대표 발의한 보험업법개정안의 자기손해사정 비율인 50%보다 더 강화해서 25% 이내로 낮추어야 한다. 물론 소비자들도 손해사정사를 직접 선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만 소비자들이 객관적으로 공정하게 보험금을 산출하고, 안심하고 보험금을 받을 수가 있다. 보험사의 무너진 소비자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선 허울뿐인 손해사정제도를 바로 세우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금융소비자연맹 조연행 상임대표  kicf21@gmail.com

<저작권자 © 여성소비자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