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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칼럼] 벳시 웨스트-줄리 코헨 감독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나는 반대한다’
임복희 전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객원교수 | 승인 2024.04.13 17:38

[여성소비자신문] 세계에서 효력을 가지고 있는 헌법 중 가장 오래된 미국 연방헌법은 18세기 유럽에서 풍미했던 계몽운동 사상을 국가의 통치원리로 삼고 우선 인민이 정부를 수립하는 것을 강조하여 그 전문에서 "우리 합중국 인민들은 더욱 완전한 연방을 형성하고, 정의를 확립하고, 국내 안녕을 보장하고, 공동방위를 도모하며, 일반복지를 증진시켜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만대에 자유의 혜택을 확보하기 위해 이 헌법을 제정•확정한다"고 규정했다.

그리고 연방헌법은 법원 조직에 관하여 제3조 제1항에서 "연방 사법권은 1개의 최고법원(supreme court)과 연방의회가 수시로 제정하여 설치하는 하급법원(inferior court)에 속한다"고 규정했다.

이처럼 연방헌법에 의해 설립된 법원을 헌법법원ㅣ이라 하고 여기에는 연방 대법원(The U. S. Supreme Court), 13개의 연방항소법원(Court of Appeals) 및 94개의 연방지방법원(District Court)이 속한다.

연방대법원은 9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되고 연방항소법원은 11개의 지구 순회법원(Circuit), 워싱턴 DC를 관할하는 콜럼비아 특별재판구 항소법원(District of Columbia Court), 연방순회항소법원(Court of Appeals for Federal Circuit)으로 구성되며, 연방지방법원은 미국 전역을 94개의 지역으로 나누어 설치되어 있다. 주의 법원은 주의 역사나 전통에 따라 그 형태나 명칭이 다르게 규정되어 있다.

보통의 사건은 주법원의 관할에 속하고, 연방법원의 관할은 미국 연방헌법 제3조에서 규정한 연방 문제에 관련된 사건과 주 사이의 관할권이 충돌하는 사건에 한한다.

한편 연방대법원의 대법관 구성에 따라 연방대법원 판례는 시기별로 일정한 흐름을 보이는데, 예를 들면 1803년 Marbury v. Madison 사건에서 법원의 위헌심사제가 확립된 이후에는 사법소극주의(conservatism)가 지배적이었던 반면 1953년부터 1969년까지는 진보적 사법 적극주의(liberalism)가 우세했다.

벳시 웨스트•줄리 코헨(Betsy WestJulie Cohen) 감독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나는 반대한다>는 긴즈버그(Ruth Bader Ginsburg. 1933-2020)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documentary) 영화이다.

1933년 태어난 긴즈버그는 뉴욕(New York) 브루클린(Brooklyn)의 노동자 거주 지역에서 자랐고, 하버드 로스쿨(Harvard Law School)에 진학해 남편 마틴 긴즈버그(Martin Ginsburg)와 함께 학업을 이어나갔다.

그 사이 마틴이 암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는 동안 긴즈버그는 그의 과제를 도와주면서 자신의 강의를 듣고 과정을 수료하며 아이를 양육했다. 이후 콜럼비아 로스쿨(Columbia Law School)로 옮겨 수석으로 졸업했다.

그런데 당시 뉴욕의 그 어느 로펌(lawfirm)도 긴즈버그를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채용하지 않았다. 이에 제럴드 건서(Gerald Gunther)교수가 연방 판사에게 긴즈버그를 채용하지 않으면 향후 콜럼비아 학생을 추천하지 않겠다고 한 이후에 재판연구원으로 일하게 된다.

이후 긴즈버그는 럿거스(Rutgers Law School) 및 콜롬비아 대학교 로스쿨 교수, 콜럼비아 특별재판구 연방항소법원 판사를 거쳐 1993년부터 2020년 사망 때까지 연방대법관으로 재직했다.

영화는 1970년대 긴즈버그가 로스쿨에서 '여성과 법' 강의를 하며 성(gender)차별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후, 미국시민자유연맹(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 ACLU)의 참여 변호사로 성차별 법률의 철폐에 매진하면서 미연방수정헌법 제14조 제1항의 '사람'이라는 표현에 주목하여 여성도 이 평등권 조항의 적용대상이 될 수 있도록 선구적 노력을 하는 과정을 담아낸다.

특히 긴즈버그는 당시 성차별 입법이 대부분 사법심사 과정에서 합리적 심사기준을 적용받아 합헌판단을 받아오던 것에 적극적으로 이견을 제시하며 차근차근 차별적 입법이 폐지되도록 했다. 다음은 영화에 소개된 총 9건의 케이스(case) 중 일부이다.

첫째, 1975년 와인버거 대 와이젠펠드(Weinberger v. Wiesenfeld) 사건이다. 와이젠펠드는 아내와 사별 후 혼자 아이를 키우던 중 보육수당을 신청하고자 사회보장사무소를 찾아가지만 그 어떠한 도움도 받지 못한다.

당시 육아는 전적으로 여성의 몫이었기 때문에 남성에게는 보육수당이 지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긴즈버그는 이 사건이 성차별이 남성에게도 해가 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여겨 해당 사건의 변호를 맡아 승소로 이끌었다.

둘째, 1996년 미국 대 버지니아(United States v. Virginia) 사건에서 남성의 입학 만을 허용하고 있던 버지니아 군사학교(Virginia Military Institute, VMI)에 대해 긴즈버그는 "여성의 특성에 대한 일반화는 대부분의 여성에게 가장 적합한 것이 무엇인지를 추측하게 하지만, 보통의 범주에서 벗어난 재능과 능력을 가진 여성들에 대한 기회를 부정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고, 군사학교가 남성과 여성을 모두 받아들인다면 더 완벽한 연합에 기여할 것이고, 학교나 성별 간의 관계를 파괴한다고 볼 수는 없다"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에 대해 연방대법원은 "공적 자금을 지원받는 학교로서 수정헌법 제14조에 따라 여성의 입학을 허용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셋째, 2007년 레드베터 대 굿이어(Ledbetter v. Goodyear) 사건이다. 이는 타이어 공장 관리자인 레드베터가 1999년부터 19년간 회사에서 일하며 남성관리자보다 20-40% 적은 임금을 지급받아왔다고 주장하며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급여 차별에 관한 사건이다.

연방대법원은 해당 사건에서 레드베터의 청구가 고용인의 차별혐의를 인정한 결정이 있은 때로부터 180일의 제소기간을 도과하였다고 판결했다. 이에 대해 긴즈버그는 "1964년 제정된 민권법(The Civil Rights Act) 제7장은 인종, 피부색, 종교, 성별, 출신 국가를 사유로 한 직장 내 차별을 금지하는데, 이는 실제 사업장의 고용 행태를 규율하겠다는 의도였으나, 오늘날 법원은 사업장의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성별에 따른 임금 차별은 종종 작은 차이부터 시작하고, 차별이 존재한다고 의심하게 만드는 원인은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발생하며, 더욱이 다른 직원과의 급여를 비교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법원의 판단은 여성이 얼마나 교활한 방법으로 급여 차별의 피해자가 되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아예 무관심하다는 결과이다"라고 비판하며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그리고 이후 2009년 노동자들이 임금차별 관련 소송 제기 시 차별적 임금이 결정된지 180일 이내에 제기해야 한다는 1964년 민권법상 제한규정을 수정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는 '릴리 레드베터 공정임금법'(Lilly Ledbetter Fair Pay Act)이 제정되었다.

넷째, 2013년 셀비 카운티 대 홀더(Shelby County v. Holder) 사건이다. 이는 역사적으로 인종차별이 심했던 주에 대해 소수인종의 참정권을 보장하기 위해 주선거법 개정 시 연방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함을 규정한 투표권법(Voting Rights Act) 제4조의 위헌 여부가 문제된 사안으로 연방대법원은 인종차별에 대한 시대적 변화가 이루어졌음을 이유로 위 법률조항을 위헌으로 판결했다.

이에 대해 긴즈버그는 "미국 내 모든 구성원의 평등한 시민적 지위, 인종을 빌미로 희석되지 않는 민주주의 체제, 그 안에서 모든 유권자들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발언권이 위기에 처했으며, 투표권법이 훌륭하게 작동한다는 이유로 이를 폐기하는 것은 비에 젖지 않는다고 빗 속에서 우산을 던져버리는 것과 같은 것"이라는 반대의견을 제시하며 다수 의견을 강력히 비판했다.

그리고 이러한 위헌 결정 이후 노스캐롤라이나주(State of NorthCarolina)는 2016년 여권과 운전면허증 등 사진이 있는 신분증을 지닌 유권자만 투표를 할 수 있도록 선거법을 개정했다. 이러한 개정의 이면에는 전통적인 공화당 강세 지역인 노스캐롤라이나주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형편인 유색인종과 나이 어린 학생은 해당 신분증이 없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민주당의 주요 지지층인 이들을 막기 위한 술수였다.

긴즈버그는 연방대법원의 해당 위헌 판결이 이처럼 인종차별이 심했던 주들이 인종차별적 선거법을 도입해도 된다고 연방대법원이 허가해 준 것이나 다름없음을 우려했던 것이다. 한편 이 판결 이후 긴즈버그는 대중들에게 악명 높은(notorious) RBG라는 별명을 얻었다.

한편 영화에서는 다루어지지 않았지만, 연방대법원이 긴즈버그의 주장을 인용하며 처음으로 성평등의 문제를 미연방수정헌법 제 14조의 평등보호조항에 근거하여 판단하고, 평등권 위헌심사 기준에 대해서도 기존의 합리성 심사 기준에서 그 기준을 더욱 엄격하게 해석·적용하는 중간심사 기준으로 발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리드 대 리드(Reed v. Reed) 사건이 있다.

이는 유언 없이 사망한 미성년자의 유산 상속 시 유산관재인 지정 시 동등한 위치의 상속인인 양부모 중 남성의 우위를 인정한 아이다호주(State of Idaho) 유언검인법(Probate Code) 상 규정이 문제된 사안으로 긴즈버그는 양모인 샐리 리드를 대리했다.

긴즈버그는 "성별에 있어 생물학적 차이는 재산관리인이 수행해야 하는 직무와 무관하며, 이는 행정적 편의에 관한 것에 불과하다"고 했고, 연방대법원은 "성에 기초한 판결은 정당한 주의 목적에 공정하고 실질적 관련(fair and substantial relationship to legitimate state ends)을 가진 경우에 한해 합헌"이라고 하면서 "어느 한 쪽의 성에게만 우선권을 주는 것은 헌법상 평등조항이 금지하는 자의적 입법"이라고 판결했다.

이처럼 긴즈버그는 "삶의 길을 갈 때 발자국을 남겨라. 후세의 건강과 안녕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사회가 나아갈 수 있도록 자신에게 주어진 몫을 다하라"는 생전 본인이 남긴 말을 일생 동안 그대로 실천하며 사회적 약자들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그들을 대변하여 타협 없이 반대 의견을 내면서 이들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헌법적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정진했다.

2020년 9월 췌장암 합병증으로 고인이 된 긴즈버그를 추모하기 위해 미국 전역에서 수천 명의 사람들이 거리로 나왔다. 당시 사람들은 긴즈버그의 얼굴이 새겨진 티셔츠(T-shirt)를 입고 노래를 부르며 행진했다.

이는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풍경이다. 그러나 '법의 언어'로 더 많은 사람들이 평등을 누릴 수 있도록 세상을 바꾸어 나간 긴즈버그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나는 반대한다>는 그 어느 때보다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보여진다.

젠더 평등이나 임금 평등을 비롯한 평등권에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사회적 담론들을 영화 속 주제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나면 2020년 당시 미국에서의 행렬의 대열에 서있는 자신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임복희 전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객원교수  imunterweg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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