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소비자신문=최문희 기자]“우리 사회는 가장의 권위적인 행동으로 여성이나 아동에 대한 폭력이 남몰래 자행되곤 했지요. 2010년에 발표된 여가부의 가정폭력 실태 조사결과만 봐도 한국의 기혼여성 신체폭력 피해률은 15.3%에 육박했어요. 미국이나 영국 등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치로 양성평등한 문화가 덜 자리 잡혔다는 반증인 셈이지요.”

인터뷰 당일, 특유의 강단 있고 차분한 목소리로 사회 현안들을 되짚은 강월구 원장은 한나라당 여성부장을 거쳐 국회사무처 정책연구위원, 중앙당 여성국장, 예결위 수석 전문위원 등 당직을 20년 동안 두루 종횡무진한 인물.

그는 지난해 오월, 현장에서 성폭력·가정폭력·성매매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청취하고 지원하는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 취임했다. 그리고 일 년이 훌쩍 지난 지금, 여전히 바쁜 일정 속에서 진흥원을 꾸려 나가고 있다.
 
울산과 칠곡의 계모사건, 포천 살인사건들은 모두 가정 내에서 벌어진 아동학대 방치 사례이다. 아동폭력 발생 장소의 80%가 가정에서 이뤄지는 가운데, 대부분 사람들은 가정폭력에 대해 “개인의 가정사인데 참견할 게 되겠느냐”라는 안이한 태도를 취하기 일쑤다.

무심코 굳게 닫힌 울타리 안에서 쓰러져가는 한 가정을 우리 스스로 외면할 동안 한 생명은 숱한 폭력 속에서 살인으로까지 이어지는 사태와 맞닥뜨리게 된다. 폭력이 한사람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길 동안 가정폭력에 따른 제 2, 3의 피해 역시 심각한 형태로 양산된다.

따뜻한 보금자리서 안식을 취하고 살아가야 할 내 형제와 부모, 혹은 주변인들은 지독한 트라우마를 겪으며 평생을 정신적 고통을 짊어지고 살아가야 하는 셈이다.

사회 전체가 가정폭력이 심각한 ‘범죄’임을 인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진단하는 강월구 원장은 우리나라 여성과 아동의 인권 수준에 관해 “아직은 갈 길이 멀다”고 지적한다.

그도 그럴 것이 보건복지부와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이 집계한 지난해 아동학대 피해 사례 가운데 중복학대(43%)를 제외하면 방임이 26%로 개별 유형 중에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최근 여성가족부는 매달 8일을 보라데이로 정해 지난 8월 8일 첫 캠페인을 진행하는 행보를 밟았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도 캠페인에 참여한 가운데 강 원장은 “보라데이는 가정폭력 예방과 피해자의 조기발견을 위해 주변에서 관심을 갖고 적극적인 시선으로 ‘보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고 찬찬히 설명했다. 보라데이 캠페인은 지역별 캠페인이 순차적으로 이뤄질 예정이다.

 

폭력피해여성의 인권 보호하기

현재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서는 폭력피해여성의 인권 보호와 관련된 교육사업을 활발하게 수행하고 있다. 특히 성매매 방지교육을 위한 상담사 양성교육을 수행하는 기관은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 유일무이하다. 성매매 피해 청소년에 대해서는 직접 교육을 진행하고 전국 10개 위기 청소년 교육센터를 지원·관리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성매매에 노출될 수 있는 위기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5박6일 성장캠프를 진행하고 있어요. 선생님들의 사전 상담이 이뤄진 후 5~9명씩 모여 필요한 강의와 체험을 하는 등 친밀한 생활을 이어나가지요. 특히, 선생님과 아이들이 함께 놀이공원에 가면 아이들이 무척 행복한 얼굴로 보이곤 하는데요.

선생님을 엄마처럼 대하며 좋아하는 것을 보면서 저 역시 놀랐고 가슴이 뭉클했어요. 대부분 가난한 가정이나 방임가정에서 키워지면서 사춘기 때 무작정 집을 뛰쳐나오는 경우가 많거든요. 마땅한 생계 수단이 없으니 이들을 돈벌이로 내모는 사람들의 손아귀 속에 쥐어지고 성매매 사업에 노출되는 안타까운 수순을 밟을 수 있는 거죠.”

강 원장은 아이들이 성매매에 노출될 시 따르는 부작용과 나쁜 점을 알려주는 동시에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조력제 역할’을 수행하는데 노력을 가하고 있다.

‘3P’라고 불리는 예방과 피해자 보호 지원, 처벌 중에서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은 마지막 단계를 제외한 두 업무를 중점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형사사법기관과 유관기관 등 피해자보호와 관계된 직군을 대상으로 직무교육을 실시해 피해자 중심의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교육사업 또한 병행해 수행하고 있다.

“직무교육 차원으로 경찰청, 중앙청, 본청, 각 지방청과 경찰서와 일선 파출소, 지구대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직무교육을 수행하고 있지요. 4대악 중 하나인 가정폭력에 집중해 경찰 내부에서 ‘개인의 가정사를 국가가 왜 나서서 개입하냐’라는 인식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 중이예요.

가정폭력에 대해 ‘국가가 개입을 해야 한다’는 새롭고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는 교육이죠. 현재 경찰청 역시 여성폭력에 관해 매우 발 빠르게 대처하기 위해 인식을 전환하고 있어요 .”

피해자 지원기관 교육사업

24시간 여성긴급전화 1366

강 원장에 따르면 진흥원은 성매매방지중앙지원센터와 성폭력방지본부, 가정폭력방지본부 총 세 개 기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성매매방지중앙지원센터의 경우 앞선 설명처럼 국내외 네트워트 강화, 탈성매매여성 자립·자활 지원과 지원기관 종사자 양성과 보수교육, 형사사법기관 관계자 직무교육, 성매매방지 대책연구 등의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성폭력 방지본부는 여성·아동폭력피해중앙지원단에서 해바라기아동센터, 원스톱지원센터 등 통합지원센터 운영을 활성화하는 지원과 종사자 전문교육, 성폭력 피해자 지원과 예방프로그램 개발, 성폭력피해아동과 장애인 진술조력인 배치 등을 통해 지원사업을 활발하고 꾀하고 있다.

현재 24시간 운영되는 가정폭력방지본부의 여성긴급전화중앙지원단에는 하루당 100건에 달하는 상담전화가 걸려온다.

인터뷰 당일 방문한 진흥원에는 상담을 요청하는 목소리들이 수화기를 타고 각각 상담원에게 전달되는 숨 가쁜 풍경을 목도할 수 있었다. 전국 각 지역의 1366센터가 운영되는 가운데 지역번호를 누르지 않고 전화를 걸면 모든 긴급전화는 중앙센터로 모이는 구조로 이뤄져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긴급전화를 통한 상담 장치를 몰라 발생하는 여성들의 피해가 아직도 곳곳에서 속출하고 있다. ‘여성 시민들의 적극적인 앎’ 역시 중요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강 원장은 결국 핵심은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하는 것이고, 어떻게 참여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일반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한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성매매와 성폭력, 가정폭력 방지를 주제로 진행하는 전국 릴레이 캠페인, 대학·병원·군대 등을 찾아가는 영상 상영회 사업, 콘텐츠 개발과 보급이 이뤄지고 있어요. 영상공모전을 개최하여 두 작품을 선정, 제작비 500만원을 지원해 극영화도 제작하고요. 성매매 방지를 위해서 통신사와 제휴해 인터넷 TV를 활용하는 광고와 온라인 웹툰 제작과 배포 등을 진행하고 있답니다.

해외의 경우 성매매 피해를 당한 한인 여성을 지원키 위해 미국과 호주에서 잡지와 지역방송 광고를 기획·진행 중에 있습니다. 독립 여성인권 주제관에 해당하는 독립 공간을 만들어 성매매 방지 영상을 상영하고 영화를 무료 상영하는 기획도 협의 중에 있어요. 폭력을 근절하기 위해선 상담전화 홍보 뿐 아니라 우리 사회 시민들의 참여 의식이  절실합니다.”

그 외에도 진흥원은 2012년마다 매년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하고 아-태 지역 국제네트워크 홈페이지 운영과 공적개발원조(ODA)사업을 실시하는 등 해외로 영향력을 뻗어나가고 있다.

 

이주여성들의 고충 “가장 마음 아팠다”

사실 강 원장은 2011년 고위 공무원 개방형 직위 공모를 통해 여성가족부 권익증진국장으로 1년 6개월간 일해왔다. 당시 권익증진국장으로 근무하면서 폭력피해여성 지원시설에서 여성들을 만나 겪은 일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무척 아팠다고.

“특히 외국에서 이 낯선 곳까지 잘 살아보겠다는 꿈을 품고 온 이주여성들을 만났을 때는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 가장 컸어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우리 사회가 제대로 지원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실제로 이주여성들은 ‘예술흥행비자’라는 명목으로 한국에 입국해 성매매 전선에 뛰어드는 경우가 허다하다. 유흥업소에 출입하고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성매매를 하게끔 유도하는 사회적 현실이 그들을 막다른 골목으로 내모는 셈이다.

그 외 친족 성폭력으로 정신적 트라우마를 견디지 못하고 고층 베란다에서 뛰어 내리기도 하는 사건들을 접하면서 강 원장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필요성과 보람을 몸소 겪게 되었다.

“근무할 당시 2012년에는 나주 초등학생 성폭력 사건, 여성폭력에 대한 경찰의 미흡한 대응으로 벌어진 오원춘 사건, 도가니 사건의 재점화 등 사회저 이슈를 일으킨 사건들이 많이 일어났어요.

때문에 국회와 정부의 대응이 활발히 이뤄졌고 여가부 내에서도 여성폭력 방지를 위한 정책을 위해 노력을 기울였죠. 그때 경험과 활동이 이곳 진흥원장으로 일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 같아요.”

가장 강력한 가정·성폭력 근절안은 처벌

강 원장은 ‘술에 취해서, 홧김에 폭력을 휘둘렀다’고 털어 놓으면 실수라고 생각하는 한국의 폭력에 대한 ‘관대한 통념’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미국의 경우 오히려 가중 처벌되는 데 반해 우리나라에선 사적인 공간에서 가정폭력이 발생할 시 개인들이 해결해야 하는 인식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2004년 9월 성매매특별법이 도입된 지 벌써 10년이 되었어요. 그 때 이후 몇 년간은 성매매 단속건수가 7만건 이상을 넘어섰지만 어느 순간 2만건대로 대폭 줄어들었죠. 만약 정부와 경찰이 움직이지 않으면 가해차처벌이 뒤떨어지는 동시에 사회 통념 역시 그대로 유지되는 결과를 초래해요. ‘단속의지’가 뒷받침돼야 강력한 처벌이 수행되며 우리 사회 인식의 틀도 깰 수 있습니다.”

강 원장은 진흥원이 끊임없이 가정폭력과 성에 대한 편견을 깨는 작업에 노력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이 같은 작업들은 모두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 공들여야 지속 가능한 실천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부분이다.

성매매에 대한 오해와 편견

성매매특별법이 제정된 지 10주년이 됐지만 지난해, 한터전국연합과 남성연대 등이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이 인격권과 행복추구권, 기본권에 어긋나는 동시에 성폭력 사건이 오히려 증가했다‘는 목소리를 낸 바 있다.

강 원장은 이에 관해 “돈으로 사람의 몸을, 성을 합법화한다는 것 자체가 여성을 상품화하는 동시에 성적인 도구로 보는 것이다”며 우려의 의견을 비쳤다. 그의 말대로 성매매는 명확한 사회적인 범죄인 동시에 권력을 가진 자가 약한 자에게 행하는 폭력의 하나이다.

성매매 사업 수요에 맞춰 어린이와 여성을 속여 인신매매 불법사업을 영위하는 폐해가 이처럼 ‘남성의 성적욕구는 반드시 충족돼야 한다는 무지와 편견’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일각에선 성매매를 부분적으로 소위 ‘인정해주려는’ 여성들도 있다. 이들의 마음 한 켠에는 내 가정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에서 비롯된 부분이 있다.

하지만 강 원장은 “성구매자가 내 남편, 내 아들이 될 법이 없으라는 법도 없고 성적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 내 딸, 내 이모, 내 누이가 되지 말린 법이 없다”며 “우리 사회가 서로 맞물리고 있는 거대한 공동체라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된다”고 따끔한 메시지를 던졌다.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

강 원장은 어릴 적부터 당연히 남녀가 동등한 위치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왜 남자가 앞 번호이고 여자가 뒷 번호인지, 남자아이가 왜 여자아이에게 힘으로써 억압하려 드는지 납득하기 힘들었다.

그는 특정 성에 불리한 환경에 온당한 목소리를 내는 데 익숙한 시절을 통과했다. 때문에 강 원장은 기관에서 유독 대표 역할을 많이 맡았다. 그럼에도 암암리에 차별을 겪어왔지만 꿋꿋하게 목소리를 개진하고 버텨왔다.

그는 현재 진흥원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환경을 개선하는 데 유독 관심이 많았다. 직원들 각각의 개인적 역량을 끌어올리는 것은 물론 ‘즐거운 일터’를 조성해 더 많은 피해자들을 구제하고 싶은 것이 소망이라고.

아울러 그는 앞으로 현장 단체에 가서 성매매 피해자들을 돕는 역할을 하고 싶다는 꿈이 있다. 다른 폭력 피해자들보다 성매매 피해자들의 경우 가정에서의 일차적 폭력에 이미 노출될 가능성이 많고 상처 역시 크기 때문이다.

“거창한 목표를 갖고 있진 않아요. 하지만 무엇보다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신념은 변함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종종 가해자 편에 서 있는 사회에서 공동체 의식을 갖고 부단하게 함께 노력하기를 기대합니다.”

최문희 기자  moon@wso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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