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소비자신문=최문희 기자]지난 2014년 4월 28일, 20년 만에 여성발전기본법이 양성평등기본법으로 탈바꿈했다. 여성정책의 패러다임이 ‘여성발전’에서 ‘양성평등 실현’으로 전환되고 있는 추세에 따라, 헌법에서의 양성평등 이념 실현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에 정부는 성별영향분석평가를 비롯해 성인지 예산·성인지 통계·성인지 교육 등 정부가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정책의 양성평등 효과를 강화시킬 수 있는 각종 조치들을 신설하고 나섰다.

올 2월 말 양평원 제 6대 원장으로 취임한 김행 원장의 책임 역시, 더욱 막중해졌다. 

“양성평등은 우리 사회의 현안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어젠다로, 여성의 고위직 진출과 정계 진출이 활발하게 이뤄진다면, 남녀의식 전환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죠.”

인터뷰 당일,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하 양평원) 집무실에서 마주한 김행 원장은 무척 열띤 모습을 보였다.

청와대 대변인에서 물러나 올해 2월 말, 양평원에 자리를 잡은 김 원장은 기관의 홍보를 위해 로고를 상징 마크로 전면 바꾸는 등 숨 가쁜 조직 개편도 성공적으로 일궈냈다.

양평원의 마크인 GENDER EQUALITY는 기관의 정체성과 양성평등의 격차를 그래프 모티브로 시각화한 워드마크이다.

이 워드마크는 치우치지 않는 중립적 의미와 단단한 기반이 느껴지는 서체를 통해 양평원의 정체성을 나타내며, "="(Equal)모양의 Bar는 그래프 형태로 활용해 양성이 평등하지 않은 현재와 양성평등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미래(비젼)를 담고 있다.

홍보를 위해 더욱 명확해진 양평원의 로고는 김 원장의 오랜 수고 끝에 탄생한 값진 오브제이다. 더불어 여성가족부의 성평등지수를 산출하는 8개 영역인 가정, 안전, 건강, 복지, 일자리, 의사결정, 문화정보, 교육의 워드마크도 제작해 활용하고 있다.

양평원은 일상 속에서 체감하는 다양한 지표들을 통해 교육 자료들을 생산하는 동시에, 해당 정책을 수립키 위한 성인지예산 교육에도 전격 매진하고 있다. 

폭력예방 전문강사 관리 강화

김행 원장이 취임한 이후, 최근 6월에는 양평원 산하에 폭력예방부가 신설됐다.

성폭력방지법을 비롯해 가정폭력방지법 등 관련법이 대폭 개정되면서, 학교 뿐 아니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ㄱ·공공단체에 관한 체계적인 교육이 매우 시급해졌기 때문이다.  

현재 집계되는 가정폭력·성매매·성희롱방지법 의무대상 교육기관만 하더라도 1만6000여개이다. 성폭력방지법 의무대상 교육기관 역시,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포함해 6만8000여개에 달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여가부는 우리사회에 만연한 남녀 차별적 의식과 관행을 개선키 위한 교육기관인 양평원을 통해, 전문강사가 실제 교육 현장에서 강의하는 내용을 다각도로 모니터링하고 참여자 만족도를 조사하는 등 엄격한 강사 관리를 해나가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정책 입안 전 과정 제고키 위한 성인지 정책 교육

아직까지는 양평원이라는 명칭이 생소할 <여성소비자신문> 독자들에게, 김 원장은 전달력이 빠르고 재미있는 예를 들어 설명했다.

만약 국가기관이 공공 화장실을 짓게 되었을 때, 남녀를 같은 공간으로 배치할 시 여성이 남성의 세 배쯤 시간이 더 소요된다는 점을 국가 공무원은 현실적으로 인지하고 사고해야한다.

이 같은 수치에 따른 인식을 제고한 끝에, 실질적인 정책 사업 시 여성화장실을 남성화장실보다 두 배 큰 면적으로 공공시설을 짓는, 이른바 ‘공무원의 인식 깨우치기’가 양평원의 성인지 정책과정에 따른 교육의 대표 사례인 셈이다.

기본적으로 중앙공무원 교육기간인 양평원은 김 원장의 설명처럼, 국가 공무원들이 정책 수립 시 남녀 간 차별에 따른 집행이 이뤄지지 않도록 교육을 통해 의식을 깨치는 작업에 착수한다.

이후 양평원 교육을 이수 받은 국가 공무원은 양평원의 성인지 정책 교육에 따른 정책 입안과 예산 집행을 실행할 수 있게 된다. ‘깨어난 눈’으로 국가 예산과 집행을 실행할 수 있는 양성평등 정책에 엔진 역할을 하는 셈이다.

정책 수립 시 사전 양성평등교육의 유무는 국가정책을 책정·집행하는 데 있어 크나큰 영향력이 가해진다. 사전 교육이 있어야, 현장 정책에도 양성평등이 실현될 수 있는 초석이 마련된다. 이는 ‘인권’과도 연결되는 대목인 동시에 양평원의 기본 철학과 맞닿는 부분이다.

최근 김 원장이 내놓은 ‘성인지력 향상 브랜드 과정’ 역시 흥미롭다. ‘역사 속 젠더여행’과 ‘UCC로 만나는 젠더탐구’ 등 딱딱한 제목으로 이뤄지지 않은 다양한 브랜드 교육과정이 기관 내 꾸준히 신설되고 있다.

브랜드과정에 따른 교육과정은 연말 만족도 평가 등을 통해 차년도 정규과정으로 편성여부가 결정될 전망이다.

현장에서 양성평등의 싹 틔우는 전문강사 양성과정

특히, 성폭력 예방을 강화하기 위한 차원에서 시행되고 있는 전문강사 양성과정도 주목해볼 만 하다.

양성평등을 비롯해 성폭력 예방교육·가정폭력 예방교육·성별영향분석평가·교원대상 성인지 인권통합교육 등을 실시 중인 전문강사양성과정은 “고급 유휴인력을 우리 사회의 일터로 유입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라고 강조하는 김 원장이 중점적으로 추진 중인 교육사업이다.

교육을 이수 받은 강사는 자격증을 취득한 이후, 현장 교육이 필요로 하는 기관과 기업에서 활발하게 강의를 펼쳐나가는 등 최근 활동 반경을 꾸준히 넓혀나가고 있는 추세다.

특히, 스타강사로 잘 알려진 김미경 씨도 양평원 초기에 위촉된 강사이다. 그는 사회적 이슈를 불러일으키며 재치 있는 입담과 감동을 선사해 각계각층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바 있다. 

하지만 김 원장은 이에 멈추지 않고 한 발자국 더 나아갈 계획이다.

교육 이수 후 자발적으로 현장에 뛰어들어 전문강사들이 사후 보고를 전달했던 과정에 멈추지 않고, 앞으로는 교육 이수 후 교육을 필요로 하는 기관과 직접 연계하는 방식으로 매칭서비스를 실시할 예정이다.

양평원 교육을 이수 받은 후 언론과 기업 등에 포진돼 있는 전문강사에 대해 김 원장은 새로운 여성들이 도전할 수 있는 가능성 높은 직업군으로 관측하고 있다. 

해외로 뻗어 나가는 양평원

유엔과 월드뱅크 등 전 세계적으로 직접적 구호보다는 교육 원조가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김 원장은 ODA(공적개발원조)사업을 확대해, 한국국제협력단인 KOICA와 함께 아프카니스탄, 베트남, 인도네시아, 몽골 등 저개발 국가 고위직 공무원을 주 대상으로 2주간에 걸친 성인지 예산 교육을 집중적으로 제공할 계획이다.

실제 앞서, 2주간 교육을 받고 귀국한 몽골의 고위직 공무원의 만족도 역시 상당히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하반기에도 초청해달라는 러브콜이 잇따랐다.

이에 양평원은 여성 지위가 낮고 가정 폭력이 잦은 저개발 국가에 새마을 운동 교육프로그램과 더불어 젠더 이퀄리티 교육 프로그램을 풀가동시킬 전망이다.

여성 정계 진출 동시에 가정 속 여성유권자 역할 “증대돼야”

허술한 국내 여성 정책과 관련해 피부로 맞닥뜨린 김 원장의 고난도 한 차례 있었다. 당시 동성동본으로 결혼신고가 이뤄지지 않았던 상황 속에서, 김 원장 본인 역시 법적 규제에 따른 어려움에 봉착해야만 했다. 당시 김 원장은 관련 자원봉사로 법률 상담을 자발적으로 나섰다.

그는 현장에서 법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해 막대한 피해를 보는 여성들이 현장에 대거 몰린 것을 수차례 목격했다. 당시 동성동본 법에 따른 구제는 4년마다 치러졌던 대선 때마다 특별법 형식으로 해소됐다.

김 원장은 법적테두리가 부실한 가운데, 동거 상태에서 남자에게 버림을 받고 눈시울을 붉히던 동성동본 피해 여성들을 여러 차례 상담했다.

실제로 동성동본 사이의 결혼은 조선시대 이후로 거슬러 내려간다. 대한민국 민법 역시 제 809조제1항에 ‘동성동본금혼’을 규정하는 등 우리나라는 엄격한 부계 중심의 중국식 친족제도의 영향을 받아 여러 시민단체로부터 ‘악법’이라는 원성을 샀다.     

그러나 1997년 7월 16일, 헌법재판소에서 해당 규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져 효력이 중지됐고 2005년 3월 2일, 드디어 국회에서 민법 개정안이 의결됨으로써 악법은 폐지됐다. 현재는 8촌 이내의 혈족, 6촌 이내의 인촌 사이에서의 혼인만을 금지하고 있다.

그는 최근 들어 여성들이 행시와 사시를 비롯해 각종 시험과 관련된 문턱을 남성보다 훨씬 우월한 성적으로 넘어서는 것은 청신호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우수한 성적으로 뽑혀 기업이나 기관에 입사를 해도, 중간관리자급 이상으론 발전이 되지 않는 것 역시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이는 여성들의 결혼과 육아 문제가 가장 큰 이유이고, 여성 스스로 일을 중단하지 않겠다는 자기 확신이 부족하기 때문이에요. 정치권과 기업권에선 이러한 여성의 자주권을 확립시키는 교육과 육아 비용 등을 사회적 비용으로 인식해 발전시켜야 마땅하죠.”

그는 여성의 정계 진출도 시급하다고 내다본다. 여성엘리트로만 공석을 채울 것이 아니라, 지역구에서 풀뿌리 민주주의 현장에서 출발한 여성 정치 세력의 씨앗이 활발하게 일궈져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여성유권자의 의식도 매우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가정의 주출돌이기도 한 여성은 유권자의 최고 행사 권리인 투표 시, ‘여성의 권익을 잘 대변해줄 수 있는지’, ‘교육에 얼마만큼 관심을 갖고 있는 후보인지’ 꼼꼼히 따져보고 가정 내 토론회를 열어 의견을 주고받는 등 삶의 질을 개선시키는 데 척도가 되는 정치 참여와 주도권을 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성의 결정권이 핵심

그는 소비의 주체이자 나아가 공급망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여성의 소비행태도 짚고 넘어갔다.

스스로 자본주의에 잠식돼가고 있는 여성의 수동적인 혼수문화와 관련해 “명품으로 치장하며 ‘거품 부풀리기’로 예식을 치르는 것은 국내의 관습적인 폐해 중 으뜸”이라며 “가장 좋은 결혼식은 부모도 자녀의 청첩장을 받고 하객으로 가는 결혼식”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소비권을 주도하는 여성이 실천할 수 있는 덕목은 무한대라고 설명한다.

환경 및 동물권(animal right)과 같은 생명존중에 대한 의식 또한 양성평등 가치와 인권에 연결된다. 일례로 그는 가죽가방을 들고 다니지 않는다. 무거운 가죽가방 대신 천가방(에코백) 등을 애용한다. 모든 생명에 대한 존중이 인간에 대한 존중과 다름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같이 작은 실천에서부터 사회 곳곳에서 양성평등에 따른 실천적 목소리가 줄지어 터지는 그 날까지, 현장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김 행 원장의 행로가 앞으로도 활발하게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최문희 기자  moon@wso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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