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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시 읽기] 장병천 '벽의 길'
구명숙 숙명여대 명예교수 | 승인 2023.05.15 11:10

[여성소비자신문저 벽에도 피가 있고 살이 있어

밤마다 신음소리를 낸다

울음을 참아내는 그 힘에 대해

한 치의 틈도 허용치 않으려는 

빡빡한 삶에 대해

속수무책, 아무런 그늘도 되어주지 못한다

철저히 무너져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는

그 막막함에 대하여

섣부른 동조도 할 수 없는

길 없는 길을 내는 너를 위해

외마디 작은 비명, 나의 몸은 아프다

천 년을 썩지 않는 슬픔, 콘크리트

크고 깊은 단단함으로

차갑게 벼리어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단壇을 쌓는

독한 싸움

분홍빛 상처, 나의 슬픔은 위험하다  

 

우뚝 가로막은 벽, 벽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 방어벽이 되어주기도 하고 방해 벽이 되기도 한다. 물론 크고 작은 마음의 벽도 도사리고 있다. 고속도로의 벽들은 바람을 막아주고 소음을 흡수해 고층아파트 주민들을 보호한다. 시인은 그 벽에도 “피가 있고 살이 있어/밤마다 신음소리를 낸다“며 같이 아파한다. 

”철저히 무너져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는/그 막막함“은 누구나 인생에서 한 번 쯤 경험하게 되는 길이라 생각된다. 길을 찾으려 ”길 없는 길을 내는“ 일은 앞뒤가 막힌 벽처럼 막막함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길을 찾기 위해서는 자신의 벽을 넘어서야만 한다.

길을 찾을 때, ‘벽의 길’은 막막함 그대로 서서 버티어 줄 것이다. 시인은 ‘벽의 길’은 나의 몸을 아프게 하고 나를 슬프게 해준다고 노래한다.

”천 년을 썩지 않는 슬픔, 콘크리트/크고 깊은 단단함으로/차갑게 벼리어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단壇을 쌓는/독한 싸움“의 이 길은 바로 시인의 길이며 우주적인 길이다.

시인은 벽의 길을 찾아가는 것이다. 벽을 넘어 미지의 새 길을 찾으려는 희망도 막막함을 넘어서야 한다.  시인은 시 쓰기로 벽의 길, 길 없는 길을 찾을 수 있어야하지 않을까.

구명숙 숙명여대 명예교수  k9350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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