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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성상의 그 노래 그 사연] 봄냄새 물씬나는 서정적인 창작동요 ‘과수원 길’박화목 작사, 김공선 작곡, 서수남-하청일 노래...1972년 발표, 음악교과서 수록, 고향인 북한 과수원길 노래무대, 가사 속 ‘두 사람’은 박 시인과 여동생
왕성상 언론인 / 가수 | 승인 2023.04.24 10:19

[여성소비자신문] 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꽃이 활짝 폈네

하이얀 꽃 이파리 눈송이처럼 날리네

향긋한 꽃냄새가 실바람 타고 솔솔

둘이서 말이 없네 얼굴 마주보며 생긋

아카시아꽃 하얗게 핀 먼 옛날의 과수원 길

 

봄이 익어가고 있다. 이 맘 때면 박화목 작사, 김공선 작곡, 서수남‧하청일 노래 ‘과수원 길’이 떠오른다. 봄 냄새 물씬 나는 서정적인 곡이다. 멜로디와 가사가 포근하다.

이 노래는 가사가 먼저 만들어지고 작곡이 뒤따랐다. 작사가, 작곡가는 고향이 북한이란 공통점이 있다. 

박화목(필명 : 은종 銀鐘) 시인은 황해도 황주군, 김공선 작곡가는 강원도 고성군 장전읍이다. 자연히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작사·작곡에 영향을 미쳤다. 한국동요동인회 모임을 통해 인연이 된 둘은 동요와 아동문학을 좋아하는 친한 벗이었다.

노랫말은 박 시인이 쓴 동시 ‘과수원길’이 그대로 쓰였다. 과수원이 많았던 그의 고향마을 동구 밖 산자락에 꽃 피던 과수원의 봄과 그때 그 시절 동심의 세계가 오롯이 담긴 것이다.

한국동요동인회 통해 처음 발표

‘과수원 길’ 노래는 문화방송(MBC) 주관으로 태어났다. ‘금주의 노래’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PD가 어느 날 김공선 작곡가에게 박화목 시인의 ‘과수원 길’ 시를 건네주며 작곡을 부탁했다. 며칠 후 곡은 완성됐다. 동요 ‘과수원 길’이 만들어진 것이다. 노래는 1972년 한국동요동인회를 통해 처음 발표됐다.

서울 효창초등학교 교장이었던 김 작곡가는 고향의 과수원 길에 얽힌 가족과 친구들에 대한 그리운 추억을 멜로디에 담았다. 고향마을의 사과나무과수원을 떠올려 리듬에 실었다. 4분의 3박자, 왈츠풍(보통 빠르게)으로 흥겨우면서도 부드럽다. 합창곡으로도 편곡돼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도 많이 부르는 노래가 됐다.

‘과수원 길’은 그림을 그리듯 과수원풍경을 잘 나타내고 있다. ‘동구 밖 과수원 길에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다’며 마을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하얀 꽃잎은 눈송이처럼 날리고 꽃냄새가 솔솔 불어온다는 대목에선 정감이 넘친다. 서정의 무대엔 두 사람이 나온다.

시인과 그의 여동생이다. 둘은 말이 필요 없다. ‘얼굴 마주보며 생긋’ 웃을 수 있는 한 말의 경계를 넘어선다. 먼 옛날 소꿉동무와 아카시아 꽃이 하얗게 핀 고향마을의 과수원 길로 접어들며 소중한 시간 속에서 함께 했던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과수원길’은 쉽게 익힐 수 있는 가락에 아름다움이 가득한 노래로 인기였다. 1975년 대중가요 순위 프로그램에서 4위까지 올랐다. 동요장르로 작곡된 노래가 대중음악순위에 오른 특별한 사례다. 

1985년 만들어진 만화영화 ‘독고탁의 다시 찾은 마운드’ 삽입곡 및 배경음악으로도 쓰였다. 만화에서 여주인공 숙이가 즐겨 부르는 노래로, 기억상실증에 걸렸던 남주인공 독고탁이 같이 부르기도 한다. 

노래는 독고탁이 기억을 되찾는 과정에 숙이와의 추억을 떠올리는 매개체가 됐다. 2000년대 초 초등학교 6학년 음악교과서에 실리면서 국민애창곡이 됐다. 노래가 유명해지자 기념우표까지 나왔다. 1991년 3월 27일 음악시리즈 7집 우표로 동요 ‘꽃밭에서’와 같이 발행됐다.

액면가는 100원. 강원도지역에선 동요이름을 딴 ‘과수원길 동요음악제’가 2013년, 2014년 열렸다. 지난해는 10월 21일 춘천시청에서 어린이날 제정 100주년 기념무대로 펼쳐졌다.

춘천교대, 1999년 ‘과수원길’ 노래비 ‘과수원길’ 노래엔 1960년대 초 정부가 가난한 문인들에게 등기이전해준 서울 불광동 문화촌 집에서 평생을 산 박화목 시인의 정갈하고 고운 정서가 스며있다. 박 시인은 맥주를 좋아해 한 잔하는 날이면 고향과 젊은 날 떠돌던 하얼빈얘기로 밤을 새웠다.

1924년 황해도태생인 그는 만주에서 컸다. 평양신학교 예과, 하얼빈영어학원, 만주봉천동북신학교, 한신대 선교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망향’, ‘과수원길’, ‘보리밭’ 등 그의 시들은 향수를 노래한 게 많다. 1941년 어린이잡지 ‘아이생활’에 동시(‘피라미드’)를 발표, 문단에 이름을 올렸다.

기독교신앙에 바탕을 둔 동심의 세계를 선보이며 동화․동시작가로 필명을 날렸다. 서울중앙방송국(KBS) 문예담당PD, 기독교방송국(CBS) 편성국장, 한국문인협회 아동문학회 분과회장 등을 지냈다. 노래로 우리들 마음에 고향을 심어준 그는 2005년 7월 9일 83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작곡가 김공선은 ‘광복 후 1세대 동요작곡가’다. 1924년 강원도 고성군 장전읍 태생인 그는 장전소학교 교사로 근무할 때 혼자 남쪽으로 왔다. 25세 때였다. 어업가공공장을 운영하던 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가 홀로 5남매를 키웠다. 

춘천사범학교(4회·현 춘천교대) 심상과, 명지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사범대 행정연수원을 수료했다. 그는 학교정규코스인 피아노연주, 음악수업을 받으면서 동요작곡에 큰 관심을 가졌다. 재경춘천교대동창회장을 한 그는 서울시교육위원회 음악담당장학사, 서울 효창초등학교장, 서울사대부속초등학교장, 한국동요동인회장을 지냈다.

45년간 교직에 몸담으며 20여권의 동요관련 책도 썼다. ‘과수원길’, ‘나무야’, ‘파란가을 하늘’ 등 동요 500여곡과 교가 100여곡, 송가(頌歌, 공덕을 기리는 노래) 100여곡을 작곡했다. 춘천교대는 1999년 개교 60주년을 맞아 ‘과수원길’ 노래비를 세웠다.

이 학교 전신인 춘천사범학교 졸업생 김공선을 기리기위해서였다. 그는 암 투병 끝에 2014년 11월 4일 낮 12시 눈을 감았다. 향년 85세.

가수 서수남, 굴곡 많은 삶 눈길

노래를 부른 가수 서수남도 삶의 이야기가 많은 음악인이다. 1943년 2월 25일 서울에서 3대 독자로 태어난 그는 서울공고(화학과), 한양대 화학과를 졸업했다.

음악에 발을 디딘 건 1962년 서울운동장에서 열린 MBC가요콩클에서 1등을 하면서다. ‘동물농장’ 곡을 만들어 서울대 공대생과 부르려하자 대학교수 어머니를 둔 친구가 입대하는 바람에 헤어졌다.

그래서 다른 벗들과 4중창단을 만들어 미8군 오디션을 보고 3년쯤 활동하다 1969년 ‘노래 짝궁’을 만났다. 바로 가수 하청일이다. 둘은 그해 듀엣을 만들어 MBC 개국과 더불어 ‘웃으면 복이 와요’ 프로그램에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서수남-하청일 콤비는 ‘동물농장’, ‘과수원길’, ‘팔도유람’, ‘수다쟁이’, ‘한번 만나줘요’ 등의 노래로 인기였다. MBC 10대 가수 특별가수상(1973년), 동양방송(TBC) 방송가요대상(1975년) 등을 받았다.

그러다 서수남은 1992년 솔로가수가 됐다. 그해 낸 솔로데뷔 첫 음반은 ‘서수남의 세상사는 이야기’. 훤칠한 키(187cm)의 그는 듀엣 23년, 솔로가수 31년 경력의 원로가수다.

예원예술대학교 실용음악 겸임교수를 지냈고 1988년 서수남음악원을 열어 노래지도에 열심이다. 통기타리듬의 서수남 노래는 풍자적·해학적 분위기로 경쾌하다. 수십 년이 흘러도 향수처럼 느껴지면서 불린다.

하지만 그의 삶엔 굴곡이 많았다. 2008년 11월 21일 MBC-TV ‘기분 좋은 날에’ 출연, 힘들었던 과거를 털어놨다. 특히 이혼에 얽힌 사연을 밝혀 눈길을 모았다. 

2000년 어느 날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지었다. 날 찾지 마라”는 쪽지를 남기고 집을 나간 뒤 소식이 끊긴 아내얘기와 홀로 구순 노모를 모시고 살아온 사연을 공개했다.

29년간 함께 산 아내의 가출충격은 엄청났다. 서수남은 수십 년 지기의 뽀빠이 이상용과 우정여행을 떠나 속내를 터놓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2003년 이혼했다. 사유는 돈 문제. 1999년 11월 아내가 20억원 사기사건에 얽히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아무도 모르게 투자를 잘못해 벌어졌고, 보증을 선 부분도 있어 빚쟁이들에게 시달렸다.

게다가 당뇨병, 허리디스크까지 겪으며 힘든 시기를 보냈다. 그는 몇 번을 죽으려 했고, 세 딸은 대인기피증에 걸릴 정도였다. 큰딸은 2013년 미국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2022년 8월 24일 방송된 TV조선 ‘퍼펙트 라이프’에서도 이런 내용들이 전해졌다.

신곡 ‘잘 될꺼야’ 내고 빚 청산

서수남은 다시 일어섰다. 2009년 4월 신곡 ‘잘 될꺼야’를 내고 가수활동을 본격화했다. 4년 만에 신고한 노래다. 가수데뷔 때로 돌아간 컨트리포크스타일이다. 경제위기로 긴장감과 허탈감마저 드는 때 열심히 일하는 이들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다.

그는 “아내의 잘못된 재테크로 재산(서울 청담동 집 두 채 등)을 다 날리고 17억원의 빚을 청산했을 때 비로소 자유로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시인은 가도 노래는 남는다고 했던가. ‘먼 옛날의 과수원길’은 우리 모두의 꿈의 무대가 됐다. 하얀 꽃잎이 지는 날, 누군가와 얼굴 마주 보며 말없이 그 길을 걷고 싶다. 

왕성상 언론인 / 가수  wss404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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