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소비자신문] 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네 
고운 빛은 어디에서 왔을까 
아름다운 꽃이여 꽃이여 
이렇게 좋은 날에 
이렇게 좋은 날에 
그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 

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네 
고운 빛은 어디에서 왔을까 
아름다운 꽃송이 
두루루루 루루루 
이렇게 좋은 날에 
이렇게 좋은 날에 
그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 

이종택 작사, 이봉조 작곡, 정훈희 노래의 ‘꽃밭에서’는 노랫말이 아름다운 추억의 가요다. 우리 토박이말을 잘 살린 가사와 부드럽게 이어지는 멜로디, 해맑은 정훈희의 목소리가 어우러져 정감 나는 불후의 명곡이다.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로 나가는 같은 제목의 동요 ‘꽃밭에서’(어효선 작사, 권길상 작곡 / 1953년 발표)도 있지만 가사내용과 멜로디가 정훈희의 ‘꽃밭에서’와는 전혀 다르다. 

성악가 조수미, 리메이크해 화제

‘꽃밭에서’는 작곡가 이봉조가 한 때 어려움을 겪었던 가수 정훈희의 재기를 돕기 위해 만들어준 곡이다. 1975년 12월 정훈희가 ‘대마초 사건’으로 가요계활동을 할 수 없게 됐을 때 태어난 것이다. 노래가 작곡되자 다른 가수들이 ‘꽃밭에서’ 곡을 서로 받으려고 경쟁이 뜨거웠다.

하지만 이 작곡가는 힘들어하고 있던 정훈희에게 “이 곡은 내가 제일 깨끗한 마음으로 작곡한 노래다. 네 것이다”며 연습을 시켜 취입토록 했다.  

‘꽃밭에서’는 1978년 음반으로 발표된 후 방송전파를 타면서 순식간에 히트곡이 됐다. 바닥에 떨어졌던 정훈희의 인기가 되살아나기 시작, 가요계 정상을 향해 달릴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정훈희는 2016년 11월 10일 밤 방송된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에서 ‘꽃밭에서’에 얽힌 뒷얘기를 털어놓으며 울먹였다. “처음 ‘꽃밭에서’의 멜로디를 들었는데 너무 예뻤다. 그런데 내가 ‘대마초 파동’에 걸려들었고, 다른 가수들이 곡을 탐냈지만 선생님은 나에게 주셨다.” 작곡가를 향한 정훈희의 가슴 아픈 사연은 시청자들 가슴을 찡하게 했다.

그녀는 ‘안개’, ‘무인도’ 등 많은 명곡을 만들어준 이 작곡가 묘소를 찾아 “이 선생님은 ‘인간 정훈희’를 ‘가수 정훈희’로 만들어준 분이다. 저한테는 이 선생님이 빠질 수 없다”며 추억에 잠겼다. 가수 현미(본명 김명성, 1938년~) 남편이기도 한 이봉조는 1931년 5월 1일 경남 남해에서 태어나 1987년 8월 31일 세상을 떠나기까지 색소폰연주자 겸 작곡가로 활동했다.

‘꽃밭에서’는 여러 가수가 리메이크했다. 1994년 조관우가 맨 먼저 불러 인기를 모았다. 정훈희가 처음 발표했을 때만 해도 “노래가 너무 어렵다”는 소리를 들었으나 조관우가 부른 이후 노래방인기곡이 됐다.

이어 가수 소향, 성악가(소프라노) 조수미가 리메이크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성룡돌’로 불리는 노래그룹 JJCC가 정훈희와의 공동작업(콜라보레이션, collaboration)으로 컴백무대를 가졌다.

JJCC는 2015년 4월 6일 유튜브채널, 온라인음악사이트 등을 통해 ‘꽃밭에서’를 리메이크한 3번째 디지털싱글음반 ‘꽃밭에서(JJCC-정훈희)’ 티저영상을 선보였다. 30초짜리 영상엔 아름다운 선율이 리드보컬 에디(Eddy)의 감미로운 목소리를 타고 흐르는 가운데 봄을 맞아 바닷가로 떠나 즐기는 JJCC 다섯 남자들 힐링얘기가 담겨 눈길을 끌었다. JJCC의 싱글음반 ‘꽃밭에서’는 꾸준히 인기다.

성균관 유생 최한경의 한시(漢詩) ‘화원(花園) 

‘꽃밭에서’가 히트곡으로 뜨자 노랫말 출처를 둘러싼 이색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원래가사가 작사가 이종택 씨 작품이 아니라 세종 26년 진사로 시작해 이조참판을 지내고 세조 12년 강원도 관찰사로 관직을 마친 최한경(崔漢卿)의 한시(漢詩)란 것이다.

최한경에겐 성균관 유생 때 어릴 적부터 마음에 둔 박소저란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결혼대상으로 양쪽 아버지끼리 혼삿말이 오가기도 했다. 고향의 그 이웃집처녀를 생각하며 지은 애틋한 시가 이 노래의 원래가사란 설명이다. 성균관 유생이면 유교사상 흐름 속에 공부해야할 처지였지만 사랑이 이념, 사상, 신분을 뛰어넘었다.

‘반중일기(泮中日記)’에 실린 한시 ‘화원(花園)’는 봄날 꽃밭에 피는 고운 꽃을 보고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며 그 사람과 함께하고 싶다는 고백이 절제된 품격으로 다가온다. ‘반중일기’는 최한경이 자신의 일생을 쓴 자서전이다. 한시 ‘화원’은 다음과 같다.

坐中花園 膽彼夭葉(좌중화원 담피요엽) : 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네 
兮兮美色 云何來矣(혜혜미색 운하래의) : 고운 빛은 어디에서 왔을까 
灼灼其花 何彼(艶)矣(작작기화 하피염의) : 아름다운 꽃이여 그리도 농염한지 
斯于吉日 吉日于斯(사우길일 길일우사) : 이렇게 좋은날에 이렇게 좋은 날에 
君子之來 云何之樂(군자지래 운하지락) : 그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臥彼東山 (觀)望其天(와피동산 관망기천) : 동산에 누워 하늘을 보네 
明兮靑兮 云何來矣(명혜청혜 운하래의) : 청명한 빛은 어디에서 왔을까 
維靑盈昊 何彼藍矣(유청영호 하피람의) : 푸른 하늘이여 풀어놓은 쪽빛이네 
吉日于斯 吉日于斯(길일우사 길일우사) : 이렇게 좋은 날에 이렇게 좋은 날에 
美人之歸 云何之喜(미인지귀 운하지희) : 그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KBS 2TV 드라마 ‘꽃밭에서’ 방영

노래인기에 힘입어 같은 제목의 방송드라마도 만들어졌다. 2001년 2월 19일부터 2001년 8월 25일까지 방영된 KBS 2TV 아침드라마로 선우은숙(왕인희 역), 한진희(한재섭 역), 장용(도관우 역), 이창훈(도진표 역), 이민영(한기준 역), 이승신, 사미자 등이 출연했다. ‘꽃밭에서’ 이름을 붙인 유튜브, 기업체, 음식점, 단행본 책도 있다. 

정훈희는 1951년 5월 11일 부산시 서구 아미동에서 6남1녀로 태어나 아미초등학교, 부산여중, 부산여상을 졸업했다. 피아니스트였던 아버지(정근수), 피아노연주자 겸 밴드마스터였던 작은아버지(정근도), 기타리스트인 큰오빠(정희택), 색소폰연주자 둘째오빠 등 음악과 인연이 깊은 집안에서 자랐다. 가수 J(정재영)의 고모다. 

정훈희는 국내 최고작곡가 이봉조와의 인연으로 노래 삶을 시작했다. 17살 여고생 때였다. 이봉조가 작곡한 대중가요 ‘안개’를 받아 1967년 가수로 데뷔해 잘 나갔다. 1970년 제1회 도쿄국제가요제에서 ‘안개’로 가수상을, 이듬해 아테네국제가요제에서 ‘너’ 노래로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수상했다. 칠레가요제에선 1975년 ‘무인도’로 3등상, 1979년  ‘꽃밭에서’를 스페인어로 불러 최고가수상을 받았다.

그리스 아테네국제가요제(1971년) 인기상을 포함, 6차례나 국제가요제 입상기록을 남긴 것이다. 그러나 삶엔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법. ‘대마초 사건’ 때 훈방되긴 했지만 가수활동을 못했던 그는 1981년 방송규제가 풀렸음에도 재기무대는 순탄치 못했다. 록밴드 ‘라스트찬스’의 리더가수 김태화(1950년 10월 4일생)와의 연애스캔들 때문이었다. 

어려움을 버텨낸 정훈희는 히트곡 ‘꽃밭에서’로 제2전성기를 맞았다. 김태화와 결혼, 아들을 낳고 가정도 꾸렸다. 1989년 만삭인 상태에서 두 사람은 음반 ‘우리는 하나’를 함께 내기도 했다. 2008년엔 가수데뷔 40주년기념 정훈희 독집앨범 ‘40th Anniversary Celebrations’를 냈다. 특히 데뷔곡 ‘안개’가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 삽입곡(OST)으로 실리면서 55년 만에 역주행 신화까지 쓰고 있다. 

정훈희, 부산 기장에서 해변카페 ‘꽃밭에서’ 운영

정훈희는 부산시 기장군 장안읍 해맞이로 238(임랑해수욕장 부근)에서 ‘꽃밭에서’란 상호의 해변라이브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주말과 일요일에 그곳에서 공연하며 손님도 맞는다. 시설이 깔끔하고 바깥풍광도 아름답기로 소문나 길손들이 끊이지 않는다. 혼전동거로 화제를 모은 남편 김태화와는 별거 중이다.

정훈희-김태화 부부 사이엔 아들 둘(김유진, 김유성 / 본명 김대한, 김민국)이 있다. 김유진은 2008년 정훈희 데뷔 40주년기념행사 때 함께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왕성상 언론인 / 가수  wss404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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