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소비자신문] 약 40여 년 전 오래전 이야기이다. 내가 미국에 공부하러 갔는데 가장 급하게 필요한 것이 운전면허증이었다. 당시에는 그 곳에서 운전면허증을 취득하는 것이 별로 어렵지 않았기에 며칠 연습만으로 면허증을 쉽게 취득하고 의기양양하였다.

그 후 친구들이 나에게 대학에 설강된 2학점짜리 방어운전 과목을 이수해 보라고 권유하였다. 무척이나 바쁜 대다 필수과목도 아닌지라 크게 마음은 내키지 않았지만 방과 후 실기위주의 과목이었기에 그냥 재미삼아 수강해 보기로 했다. 물론 그곳 미국 친구들은 고등학교 또는 대학 1학년 때 수강을 했다고 한다.

도로상의 안전을 위해서 필요한 사전방어적인 운전습관과 사고발생시 취해야할 간단한 응급처치 방법, 악천후 대비 운전 등 교통안전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사항들을 실습으로 익히는 것이었다. 나이어린 대학 신입생들과 조 편성이 되어 실습하는 것이 좀 쑥스럽기조차 하였다. 그러나 이 과목을 선택하여 공부한 것이 운전은 물론, 직장과 사회생활 그리고 자녀들 교육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가장 보람있는 일로 여겨진다. 즉 소위 말하는 안전불감증이라는 고질병에 걸리지 않도록 사전예방 접종을 맞은 셈이다.

해맑은 2014년 4월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단원고 수학여행단 학생들을 포함한 475명의 승객을 태운 제주행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하였다. 이 세월호 참사는 해운업계는 물론 대한민국호를 일시 정지시켜버린 느낌이었다. 탑승자 가운데 생존자가 기껏해야 170여명에 불과 하였으니 유가족의 비통함은 물론 해운업계의 대형비리와 정부의 무능력에 대한 비난과 원망, 반복되는 크고 작은 안전사고에 대한 불안감, 우리 주위에 도사린 수많은 위험 속에서도 둔감 해져버린 우리의 안전불감증에 대한 자조감 등으로 온 나라가 집단 트라우마에 빠져버린 듯하다. 봄철에 계획되었던 많은 단체행사, 여행들이 취소되고 소규모 모임까지도 줄어들고 소비심리 마져 위축되어 문화와 레저, 관광업계는 물론 조그마한 음식점들 마져도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니 이 사고의 충격이 얼마나 큰 것인가.

6ㆍ25 사변 이래 최대 안전사고라는 1995년도의 서울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500여명의 고귀한 생명이 희생되고 나서도 공중, 땅, 바다는 물론 11년 전인 2003년도 대구 지하철 참사 또한 190여 희생자를 낳지 않았던가. 올해 2월 경주에서 부산외대생 모임장소 체육관의 붕괴로 10명의 사망자를 낸 대형사고 발생 후 2개월 만에 일어난 참사이니 더욱 그렇다. 외국 언론들은 ‘한국은 규칙이나 규정(rule)을 지키지 않는 나라’ 라고도 하였다. 아무리 규칙이나 규정을 잘 지켜도 사고나 재난은 발생할 수 있다. 국가적 트라우마 상태가 야기된 것은 아마도 구조대책이 너무나도 허술하였기 때문이다.

배안의 승객들을 충분히 구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음에도 담당자들은 허둥대기만 했고 책임자들은 누구의 책임이냐고 묻기만 했다.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은 나의 안전은 내가 책임질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씁쓸하고 안타까운 한숨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식품안전에는 문제가 없을까? 오죽했으면 불량ㆍ부정식품 근절이 대통령의 우선 국정과제가 되었겠는가? 이제 더운 여름철이 다가오면 학교 급식이나 대형 식품 공급업체들의 안전사고 우려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세월호 참사는 식품안전에도 큰 교훈이 되어야 한다. 식품안전에 대한 우리의 안전불감증이 치료 되어야한다.

안전불감증이란 단어는 퍽 어색한 표현 같기도 하다. 오히려 위험불감증이란 말이 더 적합할 것 같기도 하지만 의미하는 바는 모두 다 잘 알고 있다. 안전하지 못한 위험한 상황을 안전하다고 판단하거나 믿고 싶은 병적인 증세라고 해석해도 좋을 듯하다. 대상이 무엇이든 해석이야 어찌하든 중요한 것은 어찌하여 국민 대다수가 이러한 안전불감증에 감염(?)되어 크고 작은 안전사고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사고처리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지하철 추돌사고까지 발생하느냐에 있다.

안전관리의 기본은 인간존중이다. 인간의 안전이나 행복 등 인간존중이 아닌 재물이 우선시되는 개인의 가치관이나 기업윤리의 상실이 있는 한 안전은 뒷전이다. 안전을 비용으로 치부하는 기업경영에서는 안전수칙이나 교육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여객선이나 지하철에 국한 된 것이 아니고 사람이 날마다 섭취해야만 생존하는 식품은 더욱 그러하다. 여기에 현대 자본주의 경제에서 윤리 경영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점이다. 불행하게도 경제적 동물일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는 무한한 욕망이 존재하므로 이를 절제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수적이다. 여기에 엄격한 법률이나 규정들의 존재이유가 있다. 그리고 이를 공정하게 집행해야할 권한과 의무를 위임받은 정부와 관청이 있다. 이번 세월호 참사야 말로 이 세 가지 모두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할 때 나타나는 대표적인 결과이다. 운이 나빠 생긴 재앙이 결코 아니다. 이 세 가지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안전관리의 기본이다.

최근 한국 보건사회연구원의 식품안전 체감도 조사 분석 자료를 보면서 올 여름에 나와 내 자녀들은 운 나쁘게(?) 걸려들지 않기를 바란다. 이 자료에 의하면 식품안전에 관한 신뢰도가 가장 낮은 것은 학교 주변 어린이 식품이었고 그 다음이 수입식품, 그리고 단체급식 순이었다. 학교주변 식품이 안전하지 않는 이유로는 ‘실제 안전하지 못한 식품이 판매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라는 응답(30.3%)이 가장 많았다.

그리고 불량식품이 근절되지 않는 가장 주된 요인으로는 응답자의 50% 이상이 제조업자의 처벌이 약하기 때문이고 가장 먼저 해결해야할 식품안전 현안으로는 지자체의 식품위생 감시 감독 강화, 그 다음이 식품관련법규 개선으로 보았다. 이를 종합해보면 식품안전관리 역시 식품업자의 인간존중 가치관 내지 기업윤리, 엄격한 규제, 그리고 공평하고 철저한 감독, 감시강화의 세 가지가 안전관리의 기본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요사이 우려되는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통치자인 대통령께서 “규제는 암 덩어리”라는 말로 규제완화가 창조경제의 중요한 요소인 것처럼 말씀하셨다. 물론 불필요한 규제는 당연히 풀어져야 한다. 그러나 국민 안전이나 건강에 관련된 것들은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기업의 보호라는 명목으로 노후선박 사용이나 구조변경의 허가가 이번 참사에 한몫을 감당하였단다. 도시철도 수익보전 차원에서 노후차량 사용기간 연장과 안전관리 요원의 숫자가 줄어들었다니 무엇을 위한 규제 완화인가? 소상인 또는 영세상 보호라는 명목 하에 냉장보관 되어야 할 계란과 같은 식재료를 후끈 달아오른 대로변에 버젓이 내어 놓고 팔거나 요리하는 학교 주변식당이 방치된다면 우리 어린이들의 건강과 안전은 어찌할 것인가?
학교 급식 예산의 제한 때문에 식재료 가격에만 관심을 두고 공급업체의 위생관리를 소홀히 한다면 올 여름 식중독 사건도 연속 보도될 수밖에 없지 않을가? 한편 이러한 윤리적 제도적 접근보다 어쩌면 더 중요한 안전관리 요소가 있다면 그것은 나의 안전은 내가 책임지고 내 자녀의 안전은 부모가 먼저 챙기는 안전관리 습관이다. 가정, 거리, 직장, 등산, 여행 어디서 무엇을 하던지 융통성 없고 바보스러울 정도로 안전을 우선시 하는 나와 우리의 안전의식이야 말로 이처럼 참담한 사고로부터 얻어야할 안전관리의 기본정신이며 가장 중요한 교훈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것은 물론 식품안전 관리에도 마찬가지이다.

강창원 명예교수  건국대학교 동물생명과학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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