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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만에 만들어진 최장수 학교의식가 '졸업식 노래'외솔 최현배 부탁으로 1946년 6월6일 윤석중 작사/정순철 작곡...1절 재학생, 2절 졸업생, 3절 선후배 함께 불러
왕성상 언론인 / 가수 | 승인 2023.01.25 12:28

[여성소비자신문]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 아름 선사 합니다

물려받은 책으로 공부를 하며

우리는 언니 뒤를 따르렵니다

 

잘 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선생님 저희들은 물러 갑니다

부지런히 더 배우고 얼른 자라서

새 나라의 새 일꾼이 되겠습니다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

우리나라 짊어지고 나갈 우리들

냇물이 바다에서 서로 만나듯

우리들도 이 다음에 다시 만나세

 

해마다 1~2월이면 전국 학교에서 졸업식이 열린다. 그때 빠지지 않는 게 있다. 졸업축가 등 노래다. 그 중에서도 ‘졸업식 노래’가 자주 불린다.

윤석중 작사, 정순철 작곡의 이 노래는 우리나라 최장수 학교의식가(儀式歌)다. 초등학교에서 주로 불리는 이 곡의 장르는 동요에 가깝다. 중・장년층에겐 오래 기억되는 추억의 노래다. 만들어진지 77년째를 맞았지만 생명력은 꾸준하다.

1946년 6월 6일 교육당국이 ‘졸업식 노래’로 공식 제정해 불리는 이 노래는 4분의 4박자, 다장조로 엄숙하면서도 다정한 감정이 배어있다. 노래를 부르다보면 공부하고 함께 어울렸던 그 옛날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1~3절 가사내용은 제각기 다르다. 1절은 재학생, 2절은 졸업생, 3절은 선・후배가 함께 부르도록 돼있다. 1절은 교과서도 없어 선배들 것을 물려받아 공부했던 시대를 노래한다. 졸업장을 받는 선배를 축하하며 물려받은 책으로 공부해 형, 누나들 뒤를 따르겠다는 것이다.

첫 소절에 나오는 ‘언니’는 여자들 사이에서 쓰는 지금의 뜻과는 다르다. 손윗사람을 다정히 부르는 호칭이다. 예전엔 언니란 단어를 남녀구분 없이 썼다. 19세기말까지 우리 문언에 언니란 말이 나오지 않았다. 1938년 문세영의 조선어사전에서 뜻풀이로 ‘형과 같음’이라고 돼있다. 언니나 형 모두 같은 뜻으로 남녀 두루 쓰였다.

뭉클한 내용은 2절이다. “잘 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 선생님 저희들은 물러갑니다~”를 부를 때면 졸업식장은 눈물바다가 된다. 낮에 일을 하고 밤엔 공부하는 야간학교나 특수실업학교 등지에선 더욱 그렇다.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며 힘들게 공부했던 지난날이 떠올라 목이  메인다. 졸업식장 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도 들린다. 3절은 다짐의 합창이다. 냇물이 바다에서 만나듯 우리들도 이 다음에 다시 만나자는 무언의 약속이기도 하다. 아쉬운 이별의 아픔을 뒤로하고 희망의 만남을 노래한다.

서울 낙원동 설렁탕집에서 노래 합창

‘졸업식 노래’는 어떻게 태어났을까. 1946년 초여름이었다. 서지학자 차웅렬 씨가 지은 책 ‘잊혀진 이름, 동요작가 정순철’에 노래가 만들어진 사연이 나온다. 신탁통치시절 재조선미육군사령부군정청(약칭 미군정청) 문교부 편수국장이던 외솔 최현배(1894년 10월 19일~1970년 3월 23일)가 6월 5일 아동문학가 윤석중(1911년 5월 25일~2003년 12월 9일)을 갑자기 찾았다.

우리나라가 광복된 후 각 학교에서 열릴 첫 졸업식 때 부를 노래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최 국장이 작사의 적임자로 윤석중을 꼽은 것이다. 그는 만나자마자 노랫말 부탁을 했다. “여보 석동, 노래 하나 지어 주시게. 졸업식 때 쓸 노래가 마땅하지 않소. 외국 곡을 이것저것 가져다 쓰는 형편이니 하나 지어줘야겠소”라고 말했다.

석동은 윤석중의 아호(雅號)다. 학교졸업식 때 1788년 작곡된 ‘올드랭사인(Auld Lang Syne)’ 등 외국곡조에 우리말가사를 붙여 부르는 것을 안타까워해 제대로 된 우리 노래를 만들어달라고 한 것이다. 1946년 6월 5일의 일이다. 

청년 윤석중의 머릿속엔 시상(詩想)이 번득였다. 그는 그날 곧바로 시를 지어 경기도 학무국과 문교부에 보냈다. 고쳐진 내용이 왔다. ‘형님’을 ‘언니’로, ‘동생’을 ‘아우’로, ‘걸머지고’를 ‘짊어지고’로 다듬어져 왔다.

편수국장인 한글학자 최현배가 손을 본 것이다. 윤석중은 수정된 노랫말을 갖고 동요작곡가 정순철(1901년~?)을 만났다. 작곡을 맡기기 위해서였다. 정순철은 ‘새 나라의 어린이’, ‘엄마 앞에서 짝짜꿍’의 작곡가다. 악보는 그날 만들어졌다.

정 작곡가의 아들 회고에 따르면 “아버지가 가사를 받고 악상이 번개같이 스치고 지나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정 작곡가는 피아노건반을 두들이며 악보를 순식간에 만들었다. 

윤 작사가와 정 작곡가는 그날 서울 낙원동 설렁탕집에서 만났다. 둘은 흥에 겨워 자신들이 만든 노래를 소리 높여 불렀다. 식당손님들로부터 “좀 조용히 하라!”는 항의를 받았지만 둘의 합창은 멈추지 않았다.

‘졸업식 노래’는 그렇게 하루 만에 태어났다. 그럼에도 노랫말과 가락은 엉성하지 않았다. 문교부 편수국 직원들 앞에서 첫 선을 보인 노래의 반응은 아주 좋았다. 노래는 다음날(6월 6일) 공식적으로 공표돼 전국 초등학교에서 불리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 때의 졸업식노래는 스코틀랜드민요곡 ‘반딧불’(‘석별의 정’)에 가사만 바꿔 불렀으나 우리나라 첫 ‘졸업식 노래’가 나오자 국민들 기쁨은 헤아릴 수 없었다. 노래 바람에 재미를 본 곳은 꽃집들이었다. 졸업식분위기가 좋아져 꽃 주문이 줄을 이었다. 

문교부는 ‘졸업식 노래’를 발표한 지 13일 뒤인 1946년 6월 19일 남녀 중・고교 졸업가도 만들어 반포했다. 이병기 작사, 이유선 작곡의 이 노래는 ‘졸업식 노래’처럼 생명력이 길지 못했다. “쇠처럼 구슬처럼 달구고 갈아~ 감사의 이 노래를 부르는 도다~”로 나가는 노랫말이 가슴에 잘 와 닿지 않은 탓도 있었다.

6・25전쟁이 할퀸 동요작가 콤비

‘졸업식 노래’를 만든 ‘윤석중-정순철 콤비’는 6·25전쟁의 회오리에 큰 상처를 입었다. 이념대립의 격랑 속에 삶을 송두리째 빼앗겼다. 서울태생인 윤석중의 경우 아버지와 새어머니가 인민군이 북으로 달아난 뒤 좌익으로 몰려 처형당했다.

정순철은 6·25전쟁 때 서울 성신여중 교사로 학교를 홀로 지키다 1950년 9·28 서울수복 후 인민군후퇴 때 북으로 끌려갔다. 그는 생사조차 알 수 없어 대중의 기억에서 잊혀졌다.

윤석중은 1955년 복간된 소년조선일보 고문을 맡아 15년간 일했고 ‘새싹회’을 만들어 어린이운동에 앞장섰다. 1300편 넘는 동시를 써 800여 편이 동요로 불리며 ‘한국동요의 아버지’가 됐다. 그는 금관문화훈장, 막사이사이상을 받았다.

충북 옥천태생인 정순철은 1922년 동경음악학교 선과(選科)에 들어가 이듬해 방정환과 색동회를 만들었다. 잡지(‘어린이’)를 만들고 어린이계몽운동도 펼쳤다. 그는 조선일보 1928년 1월 19일자에 ‘자장가’를 발표했다. 1932년엔 동요집(‘참새의 노래’)을 펴냈다.

1927년 동덕여학교에 몸담은 이래 경성보육학교, 중앙보육학교, 무학공립여중, 성신여중에서 음악교사로 활약했다. 정순철이 납북되지 않았다면 명곡이 더 나오고 우리 동요의 밭도 풍성해졌을 것이다.

동학 2세 교주 최시형 선생의 외손자인 정 선생은 교사가 되기 전 동학 3세 교주 손병희 선생 사위인 방정환 선생과 일본 유학 때 친해졌다. 정순철이 태어난 옥천군 청산면 지전∼교평리 중심거리(300여 m)는 동요거리로 변신했다.

2012년 11월 9일 오후 옥천읍 문정리 문화예술회관 앞 광장에 ‘정순철 노래비’도 세워졌다. 비엔 동요 ‘짝짜꿍’과 선생의 업적이 새겨졌다. 비 제작은 정 선생의 고향후배인 이기수 충북대 교수가, 비문은 시인인 도종환 국회의원이 썼다. 정순철기념사업회는 2008년 선생의 평전을 내고 ‘짝짜꿍동요제’도 해마다 열고 있다. ‘짝짜꿍합창단’을 만들어 정 선생의 동요 CD화 작업도 하고 있다.

‘졸업식 노래’ 대신 대중가요 등장

요즘 초등학교에선 ‘졸업식 노래’가 많이 불리지 않는다. 가사내용이 시대흐름에 맞지 않아서다.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빛나는 졸업장을~으로 나가는 노래를 아느냐”고 물으면 고개를 갸우뚱한다. 가사에 나오는 ‘물려받은 책’을 이해하지 못한다.

졸업식 날 재학생 동원의 어려움도 이 노래가 덜 불리는 이유 중 하나다. 1절 가사내용 때문에 5학년생들을 학교에 나오게 해야 함에도 참석을 잘 하지 않아 행사담당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음악그룹 015B의 ‘이젠 안녕’, 인순이의 ‘거위의 꿈’, 진추하의 ‘Graduation Tears’ 한글개사 곡, 정수은 작사 ‘졸업을 축하합니다’ 등을 부르기도 한다. 학교에 따라선 노래를 부르지 않는 곳도 있다. 축제형 졸업식에서 숙연한 분위기의 노래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게 교육계 반응이다.

이런 변화의 물결에서도 선생님, 벗들과 헤어지고 정든 교정을 떠나야하는 현실 앞에서 마음만은 그 옛날과 다르지 않다. 가슴 뭉클하고 울컥해지는 분위기는 ‘졸업식 노래’를 불렀던 시절과 거의 같다.

왕성상 언론인 / 가수  wss404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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