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소비자신문] 빈집으로 들어갈 구실은 없고 바람은 차가워 여관에 갔다​

마음이 자욱하여 셔츠를 빨아 널었더니

똑똑 떨어지는 물소리가 눈물 같은 밤

그 늦은 시각 여관방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옆방에 머물고 있는 사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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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미안하지만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왜 그러느냐 물었다

말이 하고 싶어서요 뭘 기다리느라 혼자 열흘 남짓 여관방에서 지내고 있는데 쓸쓸하고 적적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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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뭔지 몰라서도 아니고 두려워서도 아닌데 사내의방에 가지 않았다

간다 하고 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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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를 기다리기는 마찬가지, 그가 뭘 기다리는지 들어버려서 내가 무얼 기다리는지 말해버리면

바깥에서 뒹굴고 있을 나뭇잎들조차 구실이 없어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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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츠 끝단을 타고 떨어지는 물소리를 다 듣고 겨우 누웠는데 문 두드리는 소리

온다 하고 오지 않는 것들이 보낸 환청이라 생각하였지만

끌어다 덮는 이불 속이 춥고 복잡하였다

우리는 요즘 누구와 대화를 나누는가?

공원 벤치에 앉아서, 또는 지하철에서나 심지어 산책을 하면서도 손전화를 들고 통화를 하든지 문자를 주고받는다.

대화 체널이 온통 핸드폰 안에 들어 있다. 마주 보고 대화를 나누는 일이 점점 적어지고 전화 음성이나 문자를 통해서 소통을 더 많이 하고 있는 빠르고 건조한 세태가 승해지고 있다. 단적인 예로, 자녀들이 각자 자기 방에서 나오지 않고 엄마에게 먹고 싶은 것을 문자로 전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이병률의 시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는 비대면 시대의 목마름과 불통의 여러 모습들을 떠오르게 하는 동시에 풍요로운 대화의 시간을 되찾고 싶은 욕구를 느끼게 한다.

타지에서 여관방에 혼자 열흘 남짓을 머물다 보니 누구랑 이야기가 하고 싶어져서 생면부지의 옆방 사람에게 말을 걸어본다. “정말 미안하지만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왜 그러느냐 물었다/말이 하고 싶어서요 뭘 기다리느라 혼자 열흘 남짓 여관방에서 지내고 있는데 쓸쓸하고 적적하다고“ 말이 하고 싶다고 고백한다.

인간은 말을 하는 존재다. 말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이해 할 수도 있고 외로움도 아픔도 삭일 수 있게 된다.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 자체가 약이 되기 때문이다.

누군가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청한다면 이야기를 기꺼이 잘 들어주고 내 이야기도 흔연히 나눈다면 화목한 관계, 나아가 더 따듯하고 밝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  

구명숙 숙명여대 명예교수  k9350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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