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괄수가제 도입까지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대한의사협회와 보건복지부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그러나 ‘소비자를 위해서’라는 미명 아래 행해지고 있는 양측 갈등에 의한 혼란과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갈 것으로 보여 그 귀추가 주목된다.

복지부는 포괄수가제 도입 시 환자의 입원진료비 부담이 평균 21% 줄어들 것이라며, 과잉진료로 인한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반드시 시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의협은 의료서비스 질이 하락할 수 있으며, 국민에게 획일화된 저가 치료를 강요하는 것이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포괄수가제는 정부가 미리 정한 입원비만 소비자가 부담하면 되는 일종의 ‘입원비 정찰제’로 수정체수술, 편도수술, 중수절제술, 탈장수술, 항문수술, 자궁적출술, 제왕절개술 등 7개 질병군이 해당된다.

예를 들면 백내장수술(수정체수술) 시 수술 전 검사인 각막형태검사(ORB CT)는 지금까지 행위별수가제에서 비급여로 분류돼 비용의 전부(약 10만원)를 환자가 부담했지만, 포괄수가제가 시행되면 비용의 20%인 약 2만원만 환자가 부담하면 된다.

환자의 입장에서는 보다 많은 건강보험혜택을 받게 되므로 의료진료비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다. 병원을 이용하는 소비자로서는 환영할 만한 제도인 것이다.

저가 치료 위험한데…
환자 위해 ‘반대’

그러나 의협은 건정심 탈퇴 의사를 밝히는 등 포괄수가제 시행에 대해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의료서비스 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이 이유다. 좋은 재료를 쓰거나 치료기간이 길어질수록 진료원가는 높아지는데 진료비가 고정되면 원가를 아끼려는 의사가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진료비를 절약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의협도 긍정적이다. 다만 같은 질병의 환자라도 각자 상태가 다르기 때문에 치료비의 차가 있을 수 있는데 포괄수가제를 도입하면 아직 치료가 필요한 환자에게 조기퇴원을 강요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질환의 경중, 환자 연령 등에 따른 진료비가 제각각이라는 의협의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의협의 지적은 의료계 의견을 반영한 복지부의 발표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다. 복지부는 중증도, 연령구분, 시술법 구분 등 환자분류체계를 61개에서 78개로 세분화하고, 환자특성에 따라 보상체계를 다양화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또한 응급시술에 야간․공휴가산도 신설, 합리적인 보상도 가능케 했다.

이러한 의협의 주장이 나오게 된 이유는 정부와 의협이 함께 환자분류체계를 정하지 못한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복지부 관계자에 따르면 환자분류에 대한 안건이 상정되기 전 의협이 건정심에서 탈퇴 의사를 밝혔으며, 이후 정부는 협의를 계속 진행하고자 했으나 의협 측에서 논의를 거부했다.

의사에 따라 필수 검사, 혹은 치료 과정을 생략하거나 싼 의약품의 사용, 새로운 의료기술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의료 질이나 안전성 문제는 이미 모니터링을 통해 확인됐고 의협에서 말하는 신의료기술 도입 등에 제약이 뒤따른다는 지적은 기존에도 별도의 비급여를 인정하고 있고, 성과지불제를 확대 도입하는 방향으로 검토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비싼 진료비 잡아
국민 부담 완화

의협의 반대가 거세지만 정부는 포괄수가제가 과잉진료로 인한 환자의 입원진료비 부담 줄일 수 있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을 이어가고 있다.

갈수록 높아지는 의료비와 병원마다 제각각인 진료비에 많은 소비자들이 부담과 불편을 느끼고 있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이에 복지부는 포괄수가제가 도입되면 환자의 입원진료비 부담이 평균 21% 줄어들게 되며, 건보심에서 의결된 포괄수가 개정안에 따르면 포괄수가를 적용하기 전과 비교할 때 환자부담은 연간 100억원 경감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복지부 관계자는 정부가 포괄수가제 대상으로 7개 질병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환자 변이가 적은 질병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의료기관이 받는 총 진료비(환자부담금+건강보험공단부담금)는 평균 2.7% 인상되며, 병의원 포괄수가제 당연적용으로 건강보험재정에서 약 198억원 정도 투입될 전망이다.

이번 수가인상은 지난 2011년 하반기 의료기관 진료내역 중 급여 및 비급여비용 증가분 반영에 따른 것이라고 복지부는 전했다.

복지부는 “7월 1일부터 당연적용이 시행되면 7가지 수술을 하는 모든 의원 2천511개소와 병원 452개소에서 포괄수가제를 적용하게 된다”며 “환자들이 보다 쉽게 포괄수가제 병․의원을 이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또한 의료의 질 저하와 관련된 의료계의 우려에 대해 포괄수가제는 지난 2002년부터 선택적으로 적용해왔으며, 의원 83.5%, 병원 40.5%, 종합병원 24.7%가 참여한 결과 필수 서비스 제공량, 재입원률 등 질 저하가 없음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입원 전 필수검사 시행률, 입원 중 감염발생률 등 18개 지표를 7월 1일 시행과 동시에 철저히 모니터링 할 예정으로 사전보완책 역시 마련됐으나 의협은 ‘선시행 후보완’ 제도라며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포괄수가제 반대 위한
수술 거부는 안 돼

지난 9일 대한안과의사회는 임시총회 후 포괄수가제가 실시되는 7월 1일부터 1주일간 백내장 수술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 12일 노환규 대한의사협회 회장과 외과, 산부인과, 이비인후과, 안과 개원의사회 회장 등이 긴급회동을 갖은 것으로 알려져 파장이 일고 있다.

의료계에 따르면 이들은 포괄수가제 적용 대상인 제왕절개, 맹장 등 7개 질병군에 대한 수술 거부에 동참할 것으로 보인다. 

파장이 거세지자 의협은 지난 13일 “4개과의 개원의협의회 회장들과 모임을 갖고 오는 7월 1일부터 포괄수가제 적용을 받는 질병군에 대해 1주일간 수술을 포기하기로 의견을 모았다”며 “다만 어떤 질병군에 대한 수술을 포기할 지 여부는 각 과와 협의 중에 있으며 맹장수술, 제왕절개 등 응급진료 포기는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이러한 의사들의 움직임에 의료대란에 일어나는 것은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수술거부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병원을 찾는 소비자들의 몫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의협의 주장은 소비자의 입장에서 볼 때 국민을 볼모로 잡고 이익을 챙기려는 것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12일 회동이 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의사들의 윤리의식이 있기 때문에 긴급상황에서 수술을 거부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이는 안과의사회를 봐도 알 수 있다. 백내장 수술을 거부한다고 했지만 환자의 상태, 동의에 따라 수술 시기를 미루는데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와 의료계, 국민이 서로 신뢰할 수 있어야 하는데 국민들에게 불안감을 안겨 드리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심경을 전했다.

한편, 복지부는 의협이 부득이하게 집단 수술 거부 행동에 돌입할 경우 의료법에 따라 처벌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정효정 기자  hj@wso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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