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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광주민주화운동 추모곡이자 민중들 애국가 ‘임을 위한 행진곡’1982년 황석영 작사/김동률 작곡, 백기완 장편 詩 내용 일부 사용···광주지역 젊은 남녀 ‘영혼결혼식’ 헌정곡, 1991년 공식음반 첫 발매
왕성상 언론인/가수 | 승인 2022.05.10 08:21

[여성소비자신문]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임을 위한 행진곡’은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난 민중가요다.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추모곡이자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을 대표하는 노래로 꼽힌다. 1960~70년대 구호적인 행진곡흐름과 달리 서정성이 녹아있다.

부르다 보면 코끝이 찡해지고, 눈시울이 붉어지고, 목을 메이게 한다. ‘사천만 민중의 애국가’란 수식어가 붙었을 만큼 운동권, 386세대는 물론 많은 이들의 국민애창곡이다. 노래는 1991년 발매된 ‘노래를 찾는 사람들’ 3집 음반에서 처음 정식녹음, 대중에 선보였다. 2000년대 들어선 진보진영 각종 집회 때 단골로 불리고 있다. 프로축구단 광주FC의 서포팅곡(응원하는 상징노래)이기도 하다.

창작노래극(뮤지컬)에 삽입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82년 소설가 황석영(본명 황수영) 씨와 전남대 학생 김종률 씨 등 광주지역노래패 10여명이 만든 창작노래극(뮤지컬) ‘넋풀이-빛의 결혼식’ 음반의 마지막 삽입곡이다.

‘넋풀이’는 광주민주화운동 중 1980년 5월 27일 전남도청에서 계엄군 총에 맞아 숨진 시민군대변인 윤상원 씨(5·18항쟁지도부 홍보부장/당시 31세), 광주 광천동 들불야학을 운영하다 1979년 겨울 노동현장에서 과로로 숨진 박기순 씨(전남대 국사교육과 3학년)의 영혼결혼식 헌정곡이다. 윤상원-박기순 유해는 1982년 2월 20일 광주 망월동 공동묘지(국립5·18민주묘지)에 합장됐다.

노래가 태어난 건 1982년 4월 광주시 북구 운암2동 황석영 씨 집(현재 광주문화예술회관 국악당 언저리)에서다. 황석영, 김종률, 뮤지컬제작자 전용호(소설가) 씨가 모였다. 광주항쟁과 영혼결혼식에 참석 못한 죄책감을 고인의 영혼을 기리는 뮤지컬로나마 달래자는 황 씨 제안이 있었다.

역할을 나눠 ▲전체구상과 작사는 황석영 ▲작곡은 1980년 MBC 대학가요제 은상을 받은 김종률 ▲노래 부를 사람을 찾고 연락하는 일은 전용호 씨가 맡았다. 황 씨는 그때 출판된 시민사회운동가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미발표 시 ‘묏비나리-젊은 남녘의 춤꾼에게 띄우는’ 내용 일부를 따와 노랫말로 만들었다. ‘묏비나리’는 1979년 YWCA위장결혼식 사건주모자로 수감된 백 소장이 1980년 12월 서울 서대문구치소에서 지은 15장의 장편 시이다.

4분의 4박자 단조리듬 행진곡

노래녹음은 경찰감시를 피해 황 씨 집 2층 서재에서 이뤄졌다. 장비는 기타, 장구, 북, 꽹과리, 징, 빌려온 가정용 카세트녹음기가 전부였다. 몇 명만 모여 담요로 거실유리창을 모두 막고 녹음했다.

노래는 오정묵 씨(당시 25세, 대학생/전 광주MBC PD)가 불렀다. 카세트녹음기로 취입한 것이어서 음질은 좋지 않았다. 음악극 공연 겸 녹음이 이뤄진 ‘넋풀이 굿’ 창작노래극테이프 수록곡은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녹음테이프, 사람 손으로 쓴 악보, 입에서 입을 통해서였다. 노래제목은 ‘님을 위한 행진곡’. “표준어규정에 따라야 한다”는 지적에 따라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바뀌었다. 후렴부분 ‘앞서서 나가니’도 원곡가사에선 ‘앞서서 가나니’였다.

가사엔 깊은 뜻이 담겨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대목은 슬픔을 노래했다. 온몸을 바쳤던 뜨거운 투쟁과 죽음으로 끝난 비극적 패배의 절망을 말해준다.

고인이 된 두 남녀가 저승으로 가면서 ‘산 자’에게 남기는 당부는 의미심장하다.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구절이 그렇다. 굳센 의지, 용기와 결단을 말한다.

슬픔과 비극, 절망을 딛고 힘차게 나가자는 노랫말은 대중적이면서도 비장하다. 4분의 4박자 단조리듬의 행진곡풍과 맞닿는다. 작곡 땐 가단조였으나 여럿이 부르기 편하게 라단조로 편곡된 악보가 널리 쓰이고 있다.

원곡악보는 손으로 쓴 것으로 5·18민주화운동 5·18교육관에 있다. 5·18민주화운동상징곡이 된 이 노래는 대학가, 노동운동현장, 농민운동현장, 6·10항쟁 등 민주주의운동이 벌어지는 곳이면 빠지지 않는다. 노래가 널리 알려지면서 1980년대 저항가요 대명사이자 민주화운동 간판곡으로 자리 잡았다.

전두환 대통령 시절엔 ‘금지곡’

그러나 정권에 따라 이 노래를 둘러싼 우여곡절이 많았다. 전두환 대통령시절엔 금지곡으로 묶였다. 운동권학생들, 민주·노동운동가들이 많이 부른다는 이유에서였다. 노태우 대통령시절엔 금지곡에서 풀려 운동권, 일반시민들이 부르는 대중가요로 사랑 받았다.

시민사회단체, 노동단체, 학생운동단체의 행사시작 때 의례의 일부로 불렸다. 5·18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1997년부터 2008년까지는 기념식참석자들이 다함께 부르는 본행사 제창곡(齊唱曲)으로 자리를 굳혔다. 영어, 일본어, 중국어 등으로 번역돼 외국에서도 불렸다. 요즘엔 홍콩, 중국, 대만, 미얀마, 캄보디아, 태국, 말레이시아, 프랑스 등지에서의 민중시위 때 현지어로 불린다.

이명박 정부 땐 상황이 달라졌다. 2008년 이 대통령 취임 첫해 기념식 땐 제창됐다. 그러다 보수단체들 반발과 공식기념곡 규정이 없고 북한영화에 나온 노래란 이유로 2009년부터는 합창형식으로 바뀌었다.

2010년 5·18민주화운동 30주년기념식 땐 ‘방아타령’을 연주키로 했다가 파문이 일기도 했다. 5·18기념식 때 노래제창을 순서에서 빼고 식전행사 합창단이 부르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그러자 5·18유가족회 등 시민단체들은 광주 금남로에서 기념식을 따로 가졌다. 

야당과 5·18단체는 본행사 식순에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요구했다. 2011년부터는 본행사에 노래가 들어갔으나 합창단이 합창하고 행사참석자 중 원하는 사람만 따라 부르도록 해 논란은 이어졌다.

2013년 2월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분위기는 그대로였다. 국가보훈처가 5·18기념식 본행사 때 제창이 아니라 합창단만 부르게 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않고 5·18기념곡을 대체 추진한다는 입장까지 밝혀 시끄러웠다.

때를 맞춰 야당은 들고 나섰다. 2013년 5월 7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민주당 강기정 의원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반주는 없었다. 일부 동료 국회의원들도 따라 불렀다. 국립5·18민주묘지, 망월동 등이 있는 광주시 북구(갑 지역구)출신의 강 의원은 ‘5분 자유발언’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만들어진 배경을 설명, “5·18민주화운동 공식기념곡으로 지정하라”고 촉구했다.

2013년 6월 국회에선 ‘5·18광주민주화운동 공식추모곡 지정결의안’이 통과됐다. 그럼에도 기념식 때 이 노래는 불리지 못했다. 2017년 5월 10일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은 국가보훈처에 그해 제37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때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지시했다. 2009년 이후 처음 공식적으로 제창돼 눈길을 모았다. 

노래가 유명해지자 2018년 같은 제목의 영화도 개봉됐다. 관련 사진전시회, 그림전시회, 영상과 함께 하는 서예전시회, 음악제, 창작관현악곡 연주회도 열렸다. 2020년 5월 13일 황석영 씨 옛집자리인 광주문화예술회관 국악당 앞에 노래비 성격의 표지석도 설치됐다. 격자무늬 타일벽에 검은색 사각바탕의 액자크기로 악보와 가사가 새겨져 있다. 암울했던 시절 5·18진실을 노래로 세상에 알리고자 했던 이들의 노력을 기억하자는 취지에서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추가등재 추진

이런 가운데 ‘5·18유네스코 등재 및 아카이브 설립추진위원회’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추가등재를 추진키로 했다. 김영진 추진위원장은 2013년 5월 9일 광주시의회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임을 위한 행진곡’과 김준태 시인의 ‘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추모시 등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하겠다”고 밝혔다.

프랑스대혁명 때 불려 프랑스국가로 지정된 ‘라 마르세이유(La Marseillaise)’처럼 ‘임을 위한 행진곡’은 5·18상황을 실질적 근거에 따라 잘 묘사하고 있어 등재요건과 당위성을 갖췄다는 견해다.

‘임을 위한 행진곡’ 작사가 황석영은 1943년 만주태생으로 1962년 사상계 ‘입석 부근’으로 등단한 소설가다. 동국대 인도철학과(3학년)를 중퇴했다. 1989년부터 문익환 목사를 따라 북한에 가 김일성을 여러 번 만났다. 1993년 4월 27일 귀국,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투옥됐다가 1998년 김대중 대통령 때 특사로 풀려났다.

작곡가 김종률은 1958년 전남 강진출생으로 광주제일고, 전남대 경영학과, 광주대대학원(음악학)을 졸업했다. 대학 2학년 때인 1979년 정권수, 박미희와 제3회 MBC 대학가요제에 나가 ‘영랑과 강진’으로 은상을 받았다.

그해 전남지역 대표대학가요제인 제2회 전일방송 대학가요제 때 ‘소나기’로 대상을 받았다. 광주문화재단 사무처장(2015년 1월~2018년 12월)을 거쳐 음반사 소니BMG뮤직코리아, JR미디어 대표이사, 세종시문화재단 대표이사로 일했다. 

왕성상 언론인/가수  wss404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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