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소비자신문 한지안 기자]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 100일을 맞는 가운데 국내기업들이 관련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다만 중소기업들은 산업현장의 안전관리에 난항을 겪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업 현장의 안전·보건 확보 의무가 지켜지지 않아 중대 재해가 발생할 경우 최고 경영자를 처벌토록한 법이다. 근로자 사망 등 사고가 발생하면 최고경영자 및 안전담당 이사 등이 1년 이상 징역형이나 10억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진다. 고의나 중과실이 드러나면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 

해당 법안과 관련해 대기업들은 앞다퉈 관련 투자를 확대하며 대응에 나서는 모양새다. 우선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법정 안전관리비 외에 안전강화비를 신규 편성했다. 국내 건설현장은 산업안전보건법의 공사유형별 안전관리비 계상기준에 따라 공사 금액의 1.20~3.43% 범위에서 안전관리비를 편성해 운영하고 있는데, 삼성물산은 안전관리비 외에 현장의 자체 판단으로 안전을 위한 추가 투자가 필요할 경우 안전강화비를 활용해 즉시 조치하도록 했다.

현대건설은 안전에 대한 문제가 생겼거나 위험요인을 발견했을 때 신고를 하면 안전 포인트를 지급해 근로자 스스로 안전의식을 높이도록 하는 '안전지갑제도'를 도입했다. 또 협력사의 안전관리 역량 제고를 위해 안전관리비 50% 선지급 제도를 도입하고, 사고가 발생했을 때 즉각적인 안전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한 건설현장 안전관리 시스템도 도입했다.

DL이앤씨는 사고 예방을 목적으로 빅데이터를 활용해 기존에 발생한 재해를 유형별로 분석해 대응하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설계와 자재, 시공 등 건축물과 관련한 모든 정보를 3차원 입체영상으로 구현하는 건설정보모델링(BIM) 기술도 활용하고 있다.

한편 중대재해법은 처벌보다는 예방을 위한 법이라는게 당초 취지지만, 경영계 등에서는 법 제정 직후부터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확보 의무 관련 법 조항이 모호하고 처벌이 과도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돼왔다. 특히 인력과 예산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이 대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설문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 65.3%, 중견기업 71.4%는 최근 1년간 안전관리자 취업 지원자 수가 줄었다고 답했다. 주된 원인은 '대형 건설사 채용 증가', '높은 업무 강도와 형사처벌 위험성 등에 따른 기피' 등이다.

또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이 국내 기업 367개사(상시근로자 50인 이상)를 대상으로 실시한 '기업 안전관리 실태 및 중대재해법 개정 인식조사'에 따르면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중대재해처벌법 대응방안에 차이가 컸다.

경총에 따르면 법 제정 전과 비교해 기업들의 안전 관리 예산은 대체로 증가(70.6%)했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차이가 컸다. 증가 규모는 응답 기업의 절반인 52.0%가 ‘50~200% 이상’ 증가했다고 답했으며, 규모별로는 대기업(1000인 이상)은 ‘200% 이상’, 중견기업(300~999인)은 ‘50~100% 미만’이었으나 중소기업(50~299인)은 ‘25% 미만’ 응답이 가장 많았다.

중대재해법 제정 전과 비교해 안전 인력이 증가했다고 응답한 기업은 조사대상의 41.7%였다. 중소기업(50~299)보다 중견기업(300~999인) 및 대기업(1000인 이상)의 인력 증가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증가한 인력은 전체 평균 2.8명이였으며, 규모별로는 대기업(1000인 이상) 6.9명, 중견기업(300~999인) 2.3명, 중소기업(50~299인) 1.8명으로 대기업의 인력 증가 규모가 상대적으로 컸다.

안전 관련 인력 채용·운용 시 애로사항은 58.3%가 ‘안전관리 인력 수요 증가에 따른 인건비 부담 심화’, 47.1%가 ‘현장에서 필요한 만큼의 안전자격자 공급 부족’이라고 답했다. 규모별로는 중소기업(50~299인)은 ‘인건비 부담 심화’ 66.3%, 중견기업(300~999인)이 ‘안전자격자 공급 부족’ 50.0%, 대기업(1000인 이상)은 ‘현장에서 필요한 수준의 안전관리 역량 부족’ 51.4%를 가장 많이 선택했다.

중대재해법 개정 필요성에 대해서는 기업 10곳 중 8곳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법률이 모호하고 불명확해 현장 혼란만 가중’(66.8%), ‘기업과 경영자가 노력해도 사고는 발생할 수 밖에 없어서’(54.7%) 순으로 응답했다.

실제로 중대재해법 시행에 들어간 올해 1분기(1~3월)에 건설사고 사망자는 55명 발생해 지난해 1분기 사망자수인 49명보다 오히려 더 늘어났다.

업계 관계자는 “법 시행후 100일이 지났지만 내용이 모호하다 보니 어떤식으로 안전관리에 나서야 하는지 알기 어렵다는게 문제"라며 "꼭 필요한 조치가 아닌 보여주기식 조치가 취해지는 경우도 있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사고는 항상 예기치 못한 순간에 일어난다. 경영자 처벌을 강화한다고 해서 사고 발생건수가 줄어든다고 확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안전관리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예산과 인력을 투입하려해도 여의치 않은 중소기업계의 어려움이 문제"라고 우려했다. 

한지안 기자  hann923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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