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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떠난 남편 그리는 여인의 마음 노래한 ‘봄날은 간다’백설희 1953년 대구서 취입 대히트, 시인들 좋아하는 노랫말 1위···조용필/장사익 등 리메이크, 언론인출신 성악가 고승철 5절까지 첫 완창
왕성상 언론인/가수 | 승인 2022.04.23 08:04

[여성소비자신문] 연분홍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 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길에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열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오늘도 앙가슴 두드리며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길에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밤 깊은 시간에 창을 열고 하염 없더라

오늘도 저 혼자 기운 달아

기러기 앞서 가는 만리꿈길에

너를 만나 기뻐 웃고 너를 잃고 슬피 울던

등굽은 그 적막에 봄날은 간다

 

어두운 이 밤이 지나가면 푸르른 새벽

오늘도 그 모습 그리면서

이별에 겨워 우는 주마등길에

별이 뜨듯 다시 만나 꽃이 피듯 함께 하자

살뜰한 그 다짐에 봄날은 간다

 

노래 중엔 계절을 소재로 한 것이 많다. 특히 봄노래가 그렇다. 그 가운데서도 대중가요 ‘봄날은 간다’(손로원 작사, 박시춘 작곡)를 빼놓을 수 없다. 4분의 4박자, 블루스곡으로 애절한 음률, 아름다운 가사가 마음을 울린다.

가수 백설희(본명 김희숙, 1927년 1월 29일∼2010년 5월 5일)가 1953년 대구에서 취입, 이듬해 선보였다. ‘봄’하면 떠오르는 대표적 히트곡이다. 많은 가수들이 이 노래를 취입했을 만큼 명곡이다. 황금심, 은방울자매, 금사향, 한영애, 나훈아, 조용필, 최백호, 장사익 등이 리메이크음반을 냈다.

봄의 기쁨보다 슬픔을 노래

1954년 등장한 유니버살레코드사의 첫 작품으로 제작·발표된 ‘봄날은 간다’는 백설희의 실질적인 데뷔곡이다. 노랫말은 한편의 시이다. 시인들이 그래서 이 노래를 좋아한다. 2004년 전국 시인 100명을 상대로 ‘시인들이 좋아하는 대중가요노랫말’을 뽑았을 때 1위를 했다.

‘봄날은 간다’는 봄의 기쁨보다 슬픔을 노래했다. 멀리 떠난 남편을 그리는 여인의 마음을 시적(詩的)으로 나타낸 것이다. 노랫말에 나오는 ‘연분홍’은 새색시임을 짐작케 한다. 노래 발표시기로 볼 때 6·25전쟁이 한창일 때 갓 결혼한 색시가 입대한 신랑을 그리는 애상곡(哀傷曲)이자 사부곡(思夫曲) 같기도 하다. 시각에 따라 여러 해석과 얘기가 펼쳐진다.

노래사연은 부산에서 비롯된다. 화가였던 손로원 작사가가 6·25전쟁 때 피난살이하던 부산 용두산 판잣집에 어머니사진을 걸어뒀다. 연분홍치마에 흰 저고리를 입고 수줍게 웃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판자촌에 불이 나 타버렸다. 손로원은 황망한 맘으로 어머니를 그리며 노랫말을 썼고 여기에 곡이 입혀져 ‘봄날은 간다’ 노래가 태어났다.

4분의 4박자 블루스곡인 ‘봄날은 간다’에서 느껴지는 정서는 토속적․향토적이다. 옷고름, 성황당, 청노새, 역마차 등의 단어에서 알 수 있다. ‘연분홍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란 첫 구절부터 아련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봄날의 찬란함, 인간 삶의 허무한 심정을 대비시키면서 한국적 정서를 잘 담아낸 것으로 평가받는다. ‘같이 울고 같이 웃던’ 임이 떠나고 나서 체념하듯 ‘봄날은 간다’고 말하는 대목이 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따라 울던∼’ 구절에선 울컥해진다. 2절 가사 중 ‘청노새 짤랑대던 역마차 길에’ 부분은 처음 발표된 SP(Standard Play)음반에선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로 돼있었으나 왜 바뀌었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 노래는 2020년 1월 11일 오후 5시 서울시 강남구 반포 심산아트홀에서 열린 ‘세종솔리스트 앙상블’공연 때 5절까지 소개돼 눈길을 모았다. 나남출판, 문학사상 사장을 지낸 언론인 출신 성악가 겸 소설가 고승철(베이스)이 5절까지 불러 큰 박수를 받았다.

이날 완창은 국내 처음이다. 노래가 맨 처음 발표될 땐 3절까지였다. 그러나 녹음시간이 맞지 않아 첫 음반엔 1절과 3절만 실렸다. 그러다 2015년 문인수 시인이 신작시집 ‘나는 지금 이곳이 아니다’를 내면서 4절을 발표했다.

이어 2017년 임철순 전 한국일보, 이투데이 주필이 5절을 지었다. 고승철 베이스의 이날 공연은 ‘봄날은 간다’ 노랫말 원본과 이후 창작본을 아우른 1~5절 전곡의 첫무대로 화제였다. 공연모습은 유튜브 등에서 볼 수 있다. 

노래가 유명해지자 같은 제목의 영화, 연극 등도 나왔다. 2001년 9월 개봉한 영화 ‘봄날은 간다(One Fine Spring Day)’는 봄날이 갈 때 잘 어울리는 멜로물이다. 허진호 감독, 유지태, 이영애가 주연을 맡고 박인환, 백성희, 신신애 등이 출연했다.

삼척시 근덕면 동막리 신흥사, 대숲, 맹방해변, 동해시 등지에서 찍은 이 영화의 주제가(OST)를 김윤아가 불렀지만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와 멜로디, 가사가 모두 다르다. 2017년 11월 무대에 오른 연극 ‘봄날은 간다’(부제 ‘늙은 과부들의 수다’)는 대전시 선화동 상상아트홀에서 선보였다. 극단 빈들의 유치벽 대표가 연출했다.

‘봄날은 간다’ 부른 백설희는 전영록 어머니

‘봄날은 간다’를 부른 가수 백설희는 영화배우 황해(강원도 고성출생, 1921년 3월 6일~ 2005년 2월 9일)의 아내이자 배우 겸 가수 전영록의 어머니로 유명하다. 그는 2009년 말부터 고혈압합병증으로 치료받던 중 병세가 나빠져 경기도 광주의 한 병원에서 87세 나이로 별세했다.

고인은 1943년 조선악극단이 운영하던 음악무용연구소에 들어가 악극단원으로 활동했다. 주로 막간무대에 섰던 그는 1949년 KPK악단이 공연한 ‘카르멘 환상곡’의 주인공 카르멘 역을 맡아 신데렐라로 떠올랐다.

예명 백설희는 ‘에베레스트 산의 눈이 낮이나 밤이나, 여름이나, 겨울이나 녹지 않고 눈부신 자태를 드러내듯 연예인으로서 높은 곳에서 식지 않는 열정으로 빛나라’란 뜻에서 KPK단장 겸 작곡가 김해송이 지어줬다.

백설희는 6·25전쟁 직전 새별악극단에 입단, 황해를 만나 결혼했다. 그는 1953년 작곡가 박시춘(본명 박순동, 밀양출생, 1913년 10월 28일~1996년 6월 30일)을 만나면서 본격적인 레코드가수로 스타가 됐다.

‘봄날은 간다’, ‘카르멘 야곡’, ‘물새 우는 강 언덕’, ‘청포도 피는 밤’, ‘코리아 룸바’ 등 박 씨와 손잡고 발표한 곡마다 히트했다. 1950년대 말엔 최고인기 여가수로 떴다. 박시춘이 오향영화사를 차려 만든 영화의 주제가들도 도맡아 불렀다.

춤바람이란 파격적 내용을 다룬 영화 ‘자유부인’에 출연하고 주제가 ‘아베크 토요일’도 불렀다. 영화 ‘딸 칠형제’에선 황해와 출연해 화제였다. 황해와의 사이에 4남1녀를 뒀다. 손녀인 보람(전영록 딸)도 노래그룹 티아라로 활동, 3대째 연예인집안 맥을 잇고 있다.

‘봄날은 간다’ 작사가 손로원은 ‘페르시아 왕자’, ‘인도의 향불’, ‘홍콩아가씨’ 등을 작사했다. 일제강점기 아래선 가사를 쓰지 않겠다고 결심했다가 1945년 8월 15일 광복과 함께 손석봉이 부른 ‘귀국선’을 필두로 다시 활동한 음악인이다.

그는 노랫말 때문에 두 번이나 경찰에 끌려갔다. ‘물레방아 도는 내력’(이재호 작곡, 박재홍 노래)이 자유당 말기세태를 풍자했다며 끌려갔고 금지곡까지 되는 수모를 당했다. ‘비 내리는 호남선’(박춘석 작곡, 손인호 노래)도 비슷한 사연으로 조사를 받았다.

작곡가 박시춘, 3000여 곡 노래 남겨

작곡가 박시춘은 권번(기생양성소)을 운영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음악을 가까이 하며 자랐다. 유랑극단에서 악기를 연주하다 시에론레코드의 이서구, 박영호를 만나 작곡가가 됐다.

데뷔곡은 ‘몬테칼로의 갓난이’, ‘어둠에 피는 꽃’. 1935년 ‘희망의 노래’에 이어 ‘항구의 선술집’, ‘물방아 사랑’을 발표하며 인기작곡가가 됐다. 1938년 남인수가 불러 빅히트한 ‘애수의 소야곡’으로 두 사람은 최고인기를 누렸다.

이후 ‘고향초’, ‘가거라 삼팔선’, ‘신라의 달밤’, ‘비 내리는 고모령’, ‘낭랑 십팔세’, ‘전선야곡’, ‘전우여 잘 자라’, ‘굳세어라 금순아’, ‘이별의 부산정거장’, ‘럭키서울’ 등 히트곡들을 작곡했다. 3000여 곡의 노래와 악상을 남긴 그는 한국가요의 뿌리이자 기둥으로 평가받는다.

6·25전쟁 땐 해군 정훈국 소속으로 참전했다. 1943년엔 영화 ‘조선해협’으로 영화음악감독으로도 데뷔했다. 1950년대엔 영화음악작업을 많이 했고 영화사도 운영했다. 히트한 영화주제가는 반야월과 호흡을 맞춘 ‘딸 칠형제’, ‘남성 넘버원’, ‘유정천리’ 등이 꼽힌다.

1956년 영화 ‘청춘쌍곡선’ 단역배우로도 출연했고 1958년 ‘삼등호텔’로 영화감독 겸 영화제작자로도 이름을 올렸다. 1961년 한국연예협회 초대이사장을 맡은 그는 1982년 대중가요작곡가로선 처음 문화훈장보관장을 받았다. 

왕성상 언론인/가수  wss404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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